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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주머니 이야기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
이억배 지음 | 보림 | 2008년 08월 27일
죽이는 글, 살리는 이야기
강은옥 | 독자평점 독자 평점 | 추천(4) | 2009-07-01
외할머니 살아 생전, 손주들 모아 놓고 여름일랑 무서운 이야기로 오싹하게 더위를 식혀주겠다며 밤잠 설치게 하고, 겨울에는 오손도손 모여 앉아 즐겁게 들으라고 따뜻한 이야기로 마음 녹여주던 모습이 생각났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할머니가 해주던 밥이 생각나면 퇴근길에 외갓집에 들러 밥도 얻어먹고, 이야기도 듣곤 했다. 다 커서는 할머니 살아 온 삶이 이야기가 되어 옛이야기 들려주시니 더욱 재미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주인공이 된 어린시절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재미있어 "할머니 또 해줘. 그때 그 이야기 또 해줘요." 라고 말하면 할머니는 언제나 준비된 것처럼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으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적에 그렇게 업어달라고 쟁쟁거리며 울던 네가 '큰 댁에 가서 할아버지 돌아가셨다고 말하고 와라'  했더니 '응' 하며 군말없이 가더란 이야기, 할머니가 고추 하나 심고 되돌아 보면 네가 고추 3개 뽑고 따라오더란 이야기, 그래서 하지 말라 그럼 안 된다 하면 대답은 '네' 잘도 하더니 또 돌아보면 2개 3개 뽑고 따라오더란 이야기, 시골에서 어쩌다 과자 하나 생기면 과자봉지 쥐어잡고 화장실도 못 가더란 이야기 등등 내가 자라 온 세월 이야기로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었다.

이 책을 보니 할머니에게 들었던 내 어릴 적 이야기들 내 가슴 어딘가 주머니 틀고 앉아서 꽤나 답답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좋아하는 아이는 지체가 꽤 높은 양반인 것 같은데 어디든지 스스럼 없이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는 대체 남에게 이야기해 주지는 않았다. 양반으로서 서민들의 이야기를 즐겨 듣자니 체면이 서지 않았던 것일까? 대신에 들은 대로 글로 열심히 옮겨 적어 주머니에 넣고 자기 방 벽장 속에 넣어 두었다. 아이가 자라매 아이 방 책장도 점점 높아간다. 그 책장이 천장까지 닿을 때쯤 아이는 자라서 혼인할 나이가 되었다. 아이 어릴 적 이야기 주머니는 손으로 눌러 벽장 안으로 밀어 넣어야 할 만큼 커다랗고 커다랐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얼마만큼 커졌을지 닫힌 벽장이 그 궁금증을 더한다.

여기서부터 그림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아이가 벽장 속에 이야기 주머니를 넣는 순간부터 그림의 분위기가 점점 바뀌고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은 어스름한 저녁 시간이다. 어둠은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아주 좋은 시간이다. 주인 없는 방엔 타다 남은 초가 녹아 흐르고 있고 촛대 밑에 도깨비 같은 형상의 정체 모를 동물의 눈동자는 살아 있는 듯 위로 향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불길함을 상징하는 검은 고양이는 담벼락 위에 앉아 아이의 방을 지켜보고 있으며 담벼락의 돌이나 처마 밑에 나무 그림자들이 도깨비 형상을 한 듯 음산하다. 벽장 속에 갇힌 이야기 주머니들에 대한 궁금증은 그림의 분위기로 보아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을 예감하게 한다.

이제 아이는 신랑이 되었다. 머슴이 빈방에 군불을 떼자니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보니 벽장 속에 갇힌 이야기들이 신랑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길가에 옹달샘이 되었다가 이놈이 물을 떠먹으면 죽게 하겠다."
"나는 먹음직스런 산딸기가 되었다가 이놈이 따 먹으면 죽게 하겠다."
"나는 잘 익은 청실배가 되었다가 이놈이 따 먹으면 죽게 하겠다."
"나는 독뱀이 되어 초례청 방석 밑에 숨었다가 이놈이 절을 하면 콱 물어 버리겠다."

신랑 장가 가는 좋은 날에도 기왓장을 보면 도깨비 형상이 그려져 있다. 신랑이 신부집에 말 타고 가는 길에도 곳곳에 숨은 도깨비 형상들을 볼 수 있다. 나무, 바위, 돌 등에 많이 표현되었는데 옛 어른들이 물건을 도깨비에 비유하던 이유에선 것 같다. 사람은 어떤 정체 모를 형상을 보면 사람의 얼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빛이 부족한 옛날의 어둠은 사람을 더욱 두렵게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 친근한 물건들에게 도깨비 형상을 만드니 두렵고 무섭다기 보다는 재미있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이야기들의 존재가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는 듯하다. 이야기란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이고, 어느 것이든 이야기 거리를 찾을 수 있었던 서민들의 삶이 표현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숲 속 길을 가다 만난 옹달샘도 서민에게 갈증을 풀어줄 반가움이였을 것이고 청실배나 산딸기도 출출함을 해결해 줄 맛난 별미가 아니었을까?

신랑은 고집 부려 따라나선 머슴의 기지로 신부 집까지 무사히 오게 되었지만 초례청 방석 밑에는 아직 마지막 귀신이 숨어 있었다. 머슴은 신랑이 절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신랑을 밀어 혼례는 엉망이 되었지만 들킨 뱀은 도망가고 신랑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신랑은 그제서야 자초지종 듣고 머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 장면 또한 머슴이 신랑에게 그동안의 일을 말하지 않고 참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신랑을 밀어 일을 해결하게 함으로써 듣는 이의 긴장감을 더하게 했다. 아니지, 읽는 이의 긴장감이지. 이처럼 글을 읽고 있지만 엄마의 입을 통해 듣고 있을 아이들에게 긴장감을 주고 또 해결되는 순간 양반 어르신들의 혼례가 엉망이 되는 것을 통해 서민들의 해학적인 복수가 드러난 것 같아 읽어주는 엄마도 속이 다 시원했다. 예나 지금이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거리감은 있는지라.....그러고 보니 난 아마도 가지지 못하는 자에 속하는가 보다. 또한 아이에게도 계속 고자세를 취하던 신랑이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시원한 웃음거리를 제공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지켜보는 아이들 마음이야 오죽 답답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화만 내는 신랑의 모습이나 아무것도 모르고 화만 내는 엄마의 모습이나 권위 있는 자의 모습이 뭐가 다를 상 싶어 웃는 아이들의 심정이 백분 이해가 되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신랑은 어떻게 했을까? 갇혀 있던 이야기를 주머니에서 풀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열어 주었다. 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들 줄줄 쏟아져 나오니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나도 이런 이야기 듣고 책으로 보고 살았었는데 하는 잊어버린 옛 이야기 생각해본다. 그런데 왜 신랑은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지 날려보냈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메타 형식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이 이야기는 내가 어릴 적에 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란다. 자, 이제 너희는 이 이야기를 누구한테 해줄래?"

이야기가 주머니에서 해방되었을 때 현대의 삶에도 도깨비 같은 녀석들은 곳곳에 숨어 있지만 더이상 험상궂은 모습은 아니다.

바로 이것이 신랑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지 않은 이유다. 옛 이야기의 맛은 전해주는 사람의 느낌과 생각이 흥을 돋구기 마련이다. 지역의 특색에 맞게 또는 이야기 전하는 사람에 의해 가감되어 전해지기 마련인 법이다. 책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재미난 이야기는 훨훨 날지 못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을 줄 만 알지 해주지 않았던 아이는 글을 배운 지식인으로서 기록은 잘 남겨두었다. 그러나 옛 이야기를 결국 가둔 결과를 가져왔지만, 글을 모르는 머슴은 지혜를 발휘하여 신랑을 살리고 결국 이야기를 풀어주는 결과도 초래했다. 옛이야기의 주최는 글을 배운 지식인 양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글을 모르던 서민들의 삶이 담겨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아이가 이야기를 주워 담은 곳도 서민들의 삶터에서였다. 그래서 머슴에 의해 이야기는 도로 세상에 해방되는가 보다. 그러나 서민들의 이야기를 잘 귀담아 들은 아이, 성년이 된 신랑은 높은 벼슬에 올라서도 서민들의 맘을 잘 읽는 그런 벼슬아치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야기인 줄 모르고 물어 뜯는 개들도 있고, 또 다른 문인들은 열심히 기록을 남기겠지만 결국 옛 이야기는 그렇게 사람과 사람사이를 오가며 재미를 더하는 것이다.

또 다른 재미를 찾아보자면 옛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옛 모습이다. 촛불 밝힌 모습이나, 벼루에 먹을 갈아 쓴 붓글씨, 창호지, 양반과 서민의 옷차림, 신분의 격차, 가로로 책을 꽂는 책장, 가구의 모양, 지금은 보기 힘든 다락방, 나무기둥이 훤히 보이는 천장의 모습이나 창호지 문과 창문, 기와집, 초가집, 아궁이에 불떼기, 혼례의 모습과 풍습 등 현대인과는 다른 삶의 모습에 대해 나눌 이야기 거리도 제공하고 있다. 사실 나도 초례청 방석 밑이라고 해서 '초례청'이 뭔지 궁금하던 차였다.

오늘 밤은 이미 아이들이 잠들어 버렸고, 내일 밤은 할머니에게 들은 옛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련다.
"옛날 옛날 엄마 어렸을 적에 꼭 너만 했을 적에 말이야. 엄마에게도 할머니가 계셨어...."
우리 아이들은 나의 할머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모두 내가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셨다.

책 속의 아이가 신랑이 되어서 이야기를 풀었던 것도 의미가 있다. 마치 어릴 적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지금의 내 딸에게 풀어주듯 내 가슴 속 답답하게 지내왔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내게 원한을 품지 못하도록 하나씩 꺼내어 자유를 주어야지. 오늘 밤 하루만 더 참아다오.

책의 겉표지에 그려진 이야기 주머니가 참 별스럽다. 별스러워서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겉표지앞면에서는 말 그대로 "이야기 주머니" 라고 말해주고 뒷면에서는 책의 내용을 깨알같이 기록해두었다. 책을 덮은 뒤까지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자! 이야기를 해 줄 것인가? 복주머니에 가둘 것인가?"

대부분은 책의 하단에 기록되기 마련인데 바코드가 복주머니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바코드는 책에 관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코드이다. 이것 또한 별스럽다. 보림 출판사의 별나도록 세심함이 엿보여서 감탄했다.

<독후활동>
복주머니에서 나오는 은지의 이야기들을 그려보았다.

은지의 복주머니에는 박쥐 대신 이쁜 리본이 달려 있다.

"이건 은지 이야기주머니야. 은지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 풀어줘. 이야기는 해줘야 제맛이라잖아."

"나 알고 있는 이야기 많아. 그런데 다 어떻게 그리지?"

"먼저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 먼저 해보자."

"이건 책이야. 이건 <반대말> 책이야. 부엉이가 책을 높이 쌓았어. 옆에는 책을 낮게 쌓았지. 팥죽할멈 호랑이도 이야기도 나왔어. 할머니는 아파서 여자아이가 대신 나왔어. 얘는 은지야. "

모자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며 스케치북 위에도 그려 넣었다. 요즘 은지가 좋아하는 책이다. 나는 기다립니다(문학동네)
"진추랑 진후가 싸웠어...... 그래서 얘네들 마음이 어지럽게 엉켜버렸어. 풀기 힘들겠지.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나는 할 수 없어. 얘네가 둘이 마음을 열어야 해."

은지는 자기가 그린 그림에 이름을 지어주기 좋아하는데 요즘엔 박진후란 이름을 자주 사용한다. 유치원에 그런 이름을 가진 친구는 없는데..... 암튼 재미난 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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