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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네 병아리 부화 일기
[여름이네 병아리 부화 일기]
최덕규 지음 | 창비 | 2016년 10월 28일
아름다운 생명 탄생의 신비
삐악삐악 | 독자평점 독자 평점 | 추천(0) | 2016-12-31
아름다운 탄생의 신비 『여름이네 병아리 부화 일기』

어쩜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게 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웃음부터 난다.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는 장면이다. 초등학교 교문 앞, 혹은 교문 앞의 문구점 앞, 커다란 종이상자 안에 노랗게 오밀조밀 모여 있는 병아리들. 책에서만 읽던 그 ‘삐악삐악’ 소리가 바로 앞에서 생생하게 들려올 때 신비감에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병아리가 이렇게 생겼구나, 이렇게 생겼구나, 집에 한 마리 가져가서 키워보고 싶다, 정말 이 병아리가 자라서 닭이 될까? 궁금증은 끝도 없었다. 확인해봐야지 다짐을 여러 번 했지만, 나는 아직 병아리가 자라서 닭이 되는 걸 지켜보진 못했다. 그저 닭이 낳은 달걀을 사 먹고, 닭고기를 사 먹었을 뿐. 처음에 병아리를 사가지고 갔을 때는 며칠 지나지 않아서 죽었고, 그렇게 한두 번 더 사가고 난 후에도 병아리는 며칠을 견디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엄마가 무서워서 병아리를 사 갈 수가 없었다. 잘 키우지도 못하는 거 그만 사오라고, 냄새난다고, 자꾸 죽는데 왜 자꾸 사오느냐고... 그렇게 잔소리 좀 듣다 보면 시간은 흐르고 병아리의 기억은 희미해진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자라던 시절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초등학생 조카에게 들었는데 요즘에도 학교 근처에서 병아리를 팔 때가 있다고 한다. 조카는 병아리도 사 오고 햄스터도 사 왔다. 햄스터? 아, 요즘엔 이렇게 작은 동물들도 같이 파는구나. ^^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라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봤었는데, 안타깝게도 조카가 사온 병아리도 죽었다. 대신 햄스터는 잘 자랐다. 너무 크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죽지도 않았다. 그게 몇 달 전에 조카의 집에서 보고 온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요즘엔 어떤지 궁금하던 차에 이 책을 읽다 보니 다시 어릴 적 추억도 생각나고, 전문 양계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정말 병아리를 잘 키우면 닭으로 자랄까 의문도 들었다. 어떤 사업장이 아니라 개인이 병아리를 닭으로 키워낸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 책이 마냥 신기했다. 혹시 아이들에게 얼토당토않은 꿈을 키워주려고 이러나? 읽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병아리 부화 실험으로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 자라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정말 탄생의 신비를 그대로 느끼게 했다. 실제 실험으로 보여주는 관찰일지 같았다.

마트에서 산 유정란으로 병아리를 부화시키겠다는 여름이네 가족의 생생한 실험이다. 시간 순서로 보여주는 그 과정이 너무 생생해서 더 실감 난다. 달걀은 그냥 여러 가지 반찬으로 만들어져 식탁에 오르는 식재료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론상으로는 달걀에서 병아리가 부화해서 닭으로 자라난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이렇게 직접 그 과정을 지켜보니까 자그마한 달걀 한 알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어미 닭이 품어주어야 달걀은 부화한다. 하지만 달걀만으로 어떻게 그 부화를 이뤄낼 것인가? 그것도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에서? 여름이와 아빠는 마트에서 달걀을 사와서 그 부화를 이뤄내고자 한다. 어미 닭이 알을 품어줄 때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만 한다. 상자를 마련하고, 그 안에 조명을 설치해 부화에 최적화된 온도를 만들어준다. 21일 동안 어미 닭처럼 조명이 달걀을 품어주는 것이다. 이론 그대로 시행했는데, 실패다. 이유가 뭐지? 정성스레 다 해줬는데 왜 부화는 성공적이지 못했나? 여름이와 아빠는 금방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시도하고 다시 시도하고... 결국, 달걀에서 병아리가 태어나는 기적을 본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참 간단하게 들리지만, 이 책의 매력은 그 간단한(?) 과정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애정, 경건함으로 가득한지 그대로 보여준다. 처음 부화의 시도가 실패했을 때의 슬픔을 겪고 극복하고, 또다시 도전하면서 그 실패의 원인을 찾는다. 그 시간 동안 여름이와 아빠가 보고 배운 건 단순히 병아리의 탄생뿐일까? 아니다. 병아리의 탄생 과정을 기본으로 하여, 그 과정에서 겪는 감정의 변화와 탄생의 신비를 지켜보는 것으로 세대와 세대가 연결되어 이뤄가는 세상의 이치를 배운 거였다. 나, 나의 후손, 나의 조상. 혼자서 태어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의 기본을 배우며 아마도 ‘함께’라는 공존의 의미를 더 깊게 배웠을 것 같다. 그냥 새끼로 낳으면 될 것을 굳이 알로 낳아서 품고, 병아리로 깨어 나와 닭으로 성장하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여름이가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게 되었기를 바라게 된다. 과학책에서 배우는 생태계의 원리를 이렇게 실제로 부딪쳐 배우니까 더 깊게 새겨질 것 같다. 그냥 태어나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동물이 낳는 알의 모양이 다 다를 수 있고, 그렇게 태어난 자기 아기를 사랑하는 방법, 어떤 모습으로 자라나서 또다시 알을 낳는 동물로 성장하는지 그대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 이야기인 줄 알았다. 누구나 가졌음 직한 어렸을 적 추억의 공감대로 불러 모으려는 건 줄 알았다. 그게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도 코 흘리며 다니던 초등학교 시절을 당연하게 떠올렸으니까.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전하는 것은 동물 탄생의 시작과 성장, 거기에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할 책임감이었다. 그냥 낳았다고 해서 저절로 자라나는 건 아니라는 걸 그대로 증명한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종족의 번식이 아니었던 거다. 사랑으로 엮어진, 책임감이 바탕이 된 부모에게서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듯이, 병아리의 탄생도 똑같았다. 일정 온도로 맞춰주고, 매일 살펴보며, 그 알을 깨고 나오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 없었다면, 병아리의 탄생도 없었으리.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시도하고 노력했던 여름이네 가족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다.

조카는 지금도 햄스터를 잘 키우고 있다고 했다. 몇 달 전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그 햄스터의 형으로 책임감 있게 돌봐야 한다는 약속을 지키는 모습이었다. 언니(조카의 엄마)와 몇 가지 약속을 하고 햄스터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배고프지 않게 햄스터 밥 주기, 깨끗하게 햄스터 집을 잘 청소해주기, 냄새나지 않게 햄스터를 잘 씻겨주기. 그것 말고도 하나씩 더 살펴봐야 할 게 많겠지만, 그런 기본을 알고 대하는 아이의 마음이 어떻게 자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잘 보살펴주는 마음이 무엇인지 스스로 배우고 있을 것 같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또 초등학교 앞에 병아리 파는 아저씨가 나올 것 같다. (아마도? ^^) 그때 다시 병아리를 사서 오자고 말해보려고 한다. 준비 없이 그냥 병아리만 데려오는 게 아니라, 이 책으로 배운 병아리 탄생과 성장을 이뤄낼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잘 키워보자고 말이다.

단순한 먹거리로 생각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마지막에 여름이네 가족이 병아리의 성장을 돕기 위해 장소를 변경해준 건 현실을 반영한 현명함으로 보였다.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동물도 사람도, 부모의 역할이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보게 한다. 과학 공부라고 하면 지레 겁내고 싫어할 것 같은데, 이런 생생함으로 마주한 공부는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니까. 이런 실험 성공해보고 싶고, 그 결과를 눈으로 지켜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한다. 그 과정에서 배우는 자연의 이치와 사랑은 당연하고! 치킨을 앞에 두고 고민에 빠진 여름이도 귀여웠는데, 막상 우리가 이 실험을 직접 했다고 하면 우리도 그러지 않을까? 그렇게 맛있는 치킨을 먹기가 미안해질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