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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보푸라기
[꽃피는 보푸라기]
김금래 동시집, 김효은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6년 10월 20일
기다림이 만드는 ‘우리’라는 그리움
우리님 | 독자평점 독자 평점 | 추천(0) | 2017-01-31
초등학교 2학년, 방과 후 내 일상은 비가 오지 않는 이상 버스정류장에서 직장에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일로 채워졌다. 엄마가 야근을 할지도 모르고 퇴근 후 직장동료와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무턱대고 정류장 벤치에 앉아 몇 번 버스가 엄마 올 때까지 몇 번 지나가는지, 복주머니를 단 택시(이 당시 택시등은 복주머니모양이었다)가 몇 대 지나가는지를 세면서 그 길고 지루한 시간을 버텨냈다. 학교가 끝나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가 반겨주는 친구들이 부럽고, 엄마와 손잡고 장을 보러 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면서 남 몰래 서러움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부러움과 원망이 뒤섞인 감정은 나를 매일 정류장으로 달려 나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집에서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게 했다. 그해,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 건설노동자로 우리 곁을 떠나계셨다. 몇 년 만 고생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어린 자식과 젊은 아내를 남겨두고 아버지는 힘든 타향살이를 선택했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의 선택과 아버지가 보내온 돈을 쓰지 않으려고 직장에 다니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빠의 부재와 엄마 없는 빈집의 공허함은 지금까지 내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만들었다. 이유도 없이 외로움이 찾아들 때마다 나는 그 시절의 버스정류장 풍경을 떠올린다.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어린 소녀가 우둑 커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우리 학교 뒷산
아카시 향기는
혼자 놀기 싫어
학교로 내려오지요

창문에 매달려
아이들 들여다보다가
그네에 앉았다가
아이들 돌아가면

엄마 기다리는 아이처럼
정류장으로 가지요
뒷모습 따라가다
돌아서길 몇 번

어두워진 정류장에
별을 헤매 앉아 있지요

- p.13 <아카시 향기> 전문

아카시아 향기가 머무는 버스 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 위로 어린 시절 내 모습이 겹쳐졌다. 그 시절 기다림의 경험은 현재의 삶마저 외롭게 만드는 쓸쓸한 기억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옆에 아카시아 향기가 머문다는 시인의 말에 쓸쓸한 기억은 향기로운 추억이 됐다. 이런 게 일반 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동시만의 매력일 것이다. 그 매력에 빠져 나는 김금래의 동시집『꽃피는 보푸라기』를 읽어 내려갔다. <아카시 향기>에서 향기는 ‘기다림’의 다른 표현이다. 결국 기다림이란 무언가의 부재(不在)를 의미한다. 엄마의 부재가 버스정류장에서의 아이의 기다림으로 이어지듯 말이다. 김금래 동시집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정서는 부재에서 비롯된 기다림 또는 그리움이다. ‘축구하자!/농구하자!/아이들이 다툴 때/동전이 해결하지’(p.12 <동전 맘대로>중에서), 동전까지 던져가면서 아이들은 함께 뒤엉켜 뛰어 논다. 그러다 친구들이 한두 명씩 집으로 돌아가고 마지막에 홀로 남는 아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시인은 홀로 운동장에 남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듯 엄마가 부재한 집을 묘사한다. “아이들은/집을/둘로 나누지/엄마 있는/집/엄마 없는/집”(p.39 <아이들의 집> 전문).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혹시나 집에 엄마가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집으로 뛰어갔다. 이 기대는 매번 응답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기대를 끝내 저버릴 수 없었던 건 엄마의 부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내 머리에
나비 핀

나비는 어디 가고
핀만 남았네

핀 가슴에
본드 자국

나비 가슴에도
남아 있겠지

-p.35 <자국> 전문

고집스러운 기다림의 기억은 내 가슴에 “본드 자국”으로 남아있다. 그것이 유년의 상처였냐고 내게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이 자국이 내 삶에서, “나무에 새잎이 돌아오듯/언 강에 물소리 돌아오듯/보름달로 다시 돌아와/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끝이 없는 노래”가 되었다는 점이다(p.83 <그믐달>중에서). 기다림이 있기에 삶은 노래가 될 수 있었다. 때문에 “나비 가슴에도 남아 있”는 자국은 결코 상처가 될 수 없다. 더불어 김금래 시인은 이 자국을 서로를 알아보는 하나의 암호로 삼는다. “콕콕/가난한 사람도 맛난 사과를 먹을 수 있겠지?/새가 먹은 사과엔 암호가 있다/콕콕”(p.54 <암호 해독>중에서) 살면서 그리움 하나, 기다림 한 조각 안 안고 사는 사람 없을 것이다. 그것이 서로를 알아보는, 그래서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포용의 미학으로 전이된다. 김금래의 동시를 읽다보면 가슴께가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안아줘 온기가 가슴으로 전달된 것만 같다. ‘이제는 괜찮다’고 토닥토닥해주는 손길에서 온기가 등에서 가슴으로 전해진 것처럼 말이다.

작은 아이가
은행나무를 안았어

오백 년 묵은 은행나무
빙그레 웃으며
아이에게 안겼지

은행나무 발목에
매미처럼 붙은 아이
나무를 올려다보았지

“내가 안아 준 거야.
알았지?“

-p.36 <내가 안아 준 거야> 전문

어린 시절 우리집은 가난했다. 엄마아빠는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가난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사는 경우도 생겼다. 그중 대표적인 사건이 빵꾸난 양말이다. 엄마가 때마다 새 양말을 사주지는 못했다. 대신 양말을 기워주셨다. 그럼에도 일이 바쁘셔서 그때그때 양말을 꿰매주지는 못했다. 할 수 없이 빵꾸난 양말을 신고 학교를 갔다. 그날은 어김없이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날이었다. 양말 사이로 엄지발가락이 쑤욱 나와 있는 모양이 내 눈에도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솔직히 가난의 기억은 기다림의 기억과는 다르다. 가난의 기억은 삶의 허기가 됐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쓸쓸함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김금래의 동시를 읽는 동안 나는 삶의 허기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길거리 양말에서
보푸라기가 피지

친구 보기 창피하다 했더니
할머니는 보푸라기를 꽃이라 생각하래

그때부터
내 발은 걸어 다니는 꽃밭이 되었어

보푸라기를 뜯어 후 불면
민들레 꽃씨가 되고
돌돌돌 손끝으로 비비면
이름 모를 씨앗이 되어 떨어졌어

떨어진 씨앗 속에선
엄마 얼굴이 떡잎처럼 피어나기도 했지

내 양말에선 눈 내리는 날도
꽃이 환하게 피고 졌어
발꿈치가 해지도록

-p.32 <꽃피는 보푸라기>중에서

아마도 시 속의 화자인 아이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 손에서 크는 아이인 것 같다. 꽃씨가 된 보푸라기를 손으로 떼어내면서 엄마 얼굴을 떠올리는 것을 보니 말이다. 가난이 만든 존재론적 허기를 김금래 시인은 ‘그리움’으로 승화하고 있다. 허기를 채우는 그리움이란 테마는 이번 동시집에서 기다림의 정서와 함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소리>라는 다음 시를 보자.

배고픈 날
주방에서 소리가 들려요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
찌개 끊는 소리
치치츠츠 기름 두르는 소리
밥솥 여는 소리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

“우리 돼지 밥 먹어라
학원 빼먹고 피시방 가면 혼날 줄 알아!“

지금은 없는 엄마의 소리

-p.42

주방에서 들려오던 소리로 시끌시끌한 집안의 풍경은 4연에서 반전을 맞이한다. 집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이는 고요 속에 홀로 있다. 이 고요는 엄마의 부재를 대변한다. 돌고 돌아 우리는 다시 엄마의 부재에 직면했다. 여기서의 엄마는 인간 존재의 근원으로써의 상징적 존재로 해석된다. 부재는 (생물학적으로) 근원으로의 회귀가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이 불가능성이 삶의 허기를 채우는 그리움의 정체이다. 엄마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엄마의 부재를 따뜻한 밥 한공기와도 같은 그리움으로 변화시켰다. 김금래의 동시집 『꽃피는 보푸라기』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소리 내 읽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좋은 시집이다. 함께 있어도 애틋한 관계를 이루는 사람들만이 만들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이 작은 동시집 안에 담겨있다. 엄마의 부재와 가난의 기억이 지금의 나를 어떤 사람으로 성장시켰는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내가 사람을 그리워하는 인간으로 성장했다는 거다. 인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리움은 너와 나를 ‘우리’로 만든다. 때문에 나는 지금도 자국처럼 남아있는 누군가의 부재를 확인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겨우내 얼어붙어
담장 밑에
서 있던 발자국
어디로 갔나
보이지 않네

발자국 하나 응달에 두고
혼자 떠난 발자국

외발로 깡충깡충
뛰어가다가
강가에 앉아
돌아보며
돌아보며
기다리고 있겠지

-p.38 <기다리는 발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