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통권 제24호
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열린어린이 책 여행
열린 주제 열린 글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편집인의 글

최고인가, 즐거움인가!

오랜만에 설악산 험한 고개엘 올라 보았습니다. 전에는 거의 완벽한 등반 장비를 갖추고 오르던 고개에 이젠 건들거리는 차림으로 들어서니, 보이는 것들도 다르고 떠오르는 생각도 다 달랐습니다. 전에는 한 발 한 발 많은 것들을 꾹꾹 누르며 찍어 오르다 보면 결국엔 정상에 다다른다고 주문을 외면서, 힘들면 그저 안전한 곳을 짚는지 확인할 겸 내 발과 앞사람 발만 쳐다보며 ‘끝까지’ 걸어 정상에 이르곤 했지요. 헌데 그 끝까지 혹은 최고를 일찌감치 포기하고서 걸으니 발만 쳐다보며 걷던 때보다 하늘도, 계곡도, 나무도 숲도, 단풍까지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한 욕심을 버리면 다른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거구나 생각하며 돌아왔는데, 사람들은 묻습니다. 대청봉까지 올랐느냐고!

얼마 전, 한 사람의 머리를 상하로 대략 6~7등분, 좌우로 또 6~7등분(MRI로!)하여 촬영한 100장쯤의 뇌 단면도를 보았습니다. 여기 왼쪽의 위-앞은 기억력, 또 여기는 이해력, 저기는 판단력을 제어하는 부분입니다, 머리 속 가운데는 물주머니가 있는데 뇌의 세포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작아지면 이 물주머니가 커집니다, 신경정신과 의사가 설명을 해 줍니다. 머리 속에 물주머니를 넣고서 출렁거리며 다니는 우리, 구석구석 색다른 능력들을 뇌 속에 품고 살다가도 어느 한 곳에 물리적 문제가 생기면 금세 허물어져 버리고마는 우리라는 사실에 허망합니다. 흔히 말하는 ‘정신’도 결국은 세포이자 에너지이겠다, 아 참 ‘신경’과 ‘정신’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러니 사람의 정신머리 혹은 생각하는 힘은 전혀 별것 아닐 수도 있고 또 한편 극히 대단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마음도 듭니다. 이러다가…… 결국 강건한 몸과 즐거운 생각이 우리들 삶의 질과 내용을 방향짓겠다는 궁색한 결론에 다다릅니다.

이번 달 『열린어린이』에서는 유난히 욕심 비움이나 평안, 정신의 건강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싣고 있습니다. 주요 일간지 전면에 마치 광고처럼 실린 ‘두 아이를 의과 대학에 보낸 강북 보통 아줌마’ 기사를 보며 드는 씁쓸함, 아이들의 독서 능력을 중요한 학업 성취도로 취급하며 측정하게 된 데 따르는 우려, 이제 달랑 한 장만을 뒤에 남겨 놓은 2004 달력이 주는 서운함, 이런 것들에서 영향받은 것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최고의 자리보다는 즐거움과 평안을 더 탐하는 우리이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글쓴이 편집인 조원경 | 200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