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통권 제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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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길 위에서

한여름 대낮, 쨍쨍한 햇빛 아래 서 있다 보면 흠, 더 뜨거운 곳은 어디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어딘가 너른 벌판이나 사막을 떠올려 보다가는 무슨 오기인가 싶어 우선은 마음을 접으면서도, 한 가지 더 큰 욕심을 품습니다. 우리 땅 반대편 즈음에 있는,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는 팔백여 킬로미터 순례 길을 언젠가 나도 꼭 밟아야지 하고요. 누군가는 이리 말합니다. 조국 순례부터 하지 그래! 아 네, 그래서 올해는 오랜만에 지리산을 다시 찾을 거고요 내년엔 백두산, 후년엔…….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5년 후와 10년 후엔 무얼 하고 있을까 더듬던 끝에 품게 된 야무진 바람입니다. 과연 제가 이룰 수 있을까요?

제가 자주 가는 공원 옆에는 한 종합병원이 있어서, 저녁나절이면 환자복을 입은 채 바람 쐬러 나온 분들을 꽤 만나게 됩니다. 그래도 상태가 웬만해서 혼자 걸을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뇌졸중 따위로 쓰러졌다가 회복기에 계신 분인 듯, 누군가와 두 손을 맞잡고 겨우 한 걸음씩 떼며 삼십 분쯤 동안 십 미터 정도 지나는 이도 있습니다. 해질 무렵 고즈넉함 속에 조용히 휠체어에 앉아 계신 분도 만납니다. 다행히 이 분 곁 바위나 의자에도 누군가가 함께 있어, 말도 별로 나누지 않는 채 고요하고 나란한 정경을 한 폭 보여줍니다. 병원 후문에서 공원 그 길까지 고작 이삼백 미터 거리이지만 환자 혼자였다면 나오지 못했겠지요. 누군가 함께이기에 가능한 그 광경에 작은 감동이 있습니다.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 주장하며 수천 수만, 때로는 수십만 인파 속에서 길을 걷다 보면 ‘우리’ 생각은 다 비슷한가 보다 여기게도 되지요. 하지만 요즘 들어 자주 시사 토론 현장을 접하면서, 부쩍 다른 생각을 갖게 됩니다. 거의 모든 토론회들은 선수 토론자들이 처한 위치와 입장에 따라 시각과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을 겨우 확인하고 끝나더라고요. 그러니 ‘우리’라는 말로 모호하게 뭉뚱그려 덮기보다는 차라리 각자 갖는 다른 가치관과 생각 차이를 분명하게 짚어 내는 것이, 그리고서 다르지만 소통할 수 있는 여지를 찾고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한 일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이제 여름 방학입니다. 학교로 들어가는 『열린어린이』 부수가 꽤 많아서, 방학 전에 8월호를 받아보시도록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저희 이런 서두름에 협조해 주신 필자 선생님들과 출판사 분들,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뜨겁고 쨍쨍한 여름 길 위에서도, 부디 건강하세요.

글쓴이 편집인 조원경 | 2008년 0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