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7월 통권 제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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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일과 장미

여름이네요. 여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입으로 머금으면 곧 열다, 펼쳐 열다, 열리다, 열매 열리다, 이렇게 연상되면서 기분 좋아집니다. 학교와 일터, 그리고 가정에서 애써 쌓아온 노력들이 이제 잘 익었을까요? 하여, 이 여름에도 탐스런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열매 이전엔 성장이, 성장 앞엔 노력들이 전제되는 것이건만, 어쨌거나 여름이라면 좋은 것들이 우선 떠오릅니다. 휴가, 나들이, 야영, 여행, 축제 등등 생각만 해도 신 나는 일들이 많지요.

여름이면 고추 밭이나 담배 밭으로, 잠깐씩 일하러 다니던 학생 때가 생각나네요. 고추 밭에서 수건 두르고 쪼그려 앉은 채 몇 이랑 훑어가다 보면 오금이 저리고 허리와 엉덩이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죠. 담배 밭에서는, 긴팔 옷과 모자로 아무리 무장해도 그 끈적이는 타르와 몇 시간 씨름하다 보면 아주 까무룩 땅속으로 꺼지는 듯해지지요. 그러다 새참 한 사발 마시고서 논두렁 밭두렁을 겨우 돌아 나오면 원두막을 만나게 됩니다. 원두막 평상에 누워 잠시 하늘을 볼라치면 더운 것도, 힘든 것도, 그곳 주민들 걱정도 잠시 잊은 채 스르르, 아무 맺힌 것 없는 휴식에 빠질 수도 있지요.

언젠가는 내 몸으로 일해서 내 먹을 거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 이런 바람을 한참 품다가 지난 봄, 기대 반 장난 반으로 뒤뜰에다 조그만 텃밭을 꾸몄지요. 고추, 토마토, 들깨, 이런 거친 식물은 꽤 잘 자라네요. 곧 열매도 달릴 기세입니다. 한편, 상추는 나름 우아한 식물인지 땅에 뿌리 내리던 한 달 전이나 지금이나 곱고 여린 자태를 유지합니다. 하하, 얘가 그러니까 이번 달 『열린어린이』의 장미와 같은 존재인 건가요?

그러고 보면 저는, 가까운 생활반경 안에서 노동과 먹을 거리와 즐거움과 휴식을 모두 누리며 살고 있는, 운 좋은 신세이군요. 내 즐거움과 휴식이 혹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 아주 잠시 염려하다가는 곧 접었습니다. 이기적인가요? 하긴 저는 고추나 들깨보다 장미나 상추가 더 좋더라고요.

최근 몇 년, 여름만 되면 어휴 올해가 제일 덥네, 이러며 지내고 있습니다. 온실 효과 따위로 인해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극지방 얼음이 녹으면서 여러 심각한 재해들이 예견되고 있다지요. 이런 세상에서 되도록 많은 이들이 노동과 장미를 다 잘 보듬으며 살기, 오늘도 꿈꿉니다. 그래도 되겠지요?

글쓴이 편집인 조원경 | 2011년 0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