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6월 통권 제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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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영향을 미친 과학]
연금술, 화학, 그리고 산소의 발견

김연희 | 2017년 04월

연금술과 화학은 다른 분야다. 그렇게 단정하는 큰 이유는 두 분야의 연구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연금술은 자연계의 여러 물질로부터 금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고, 화학은 자연을 이루는 물질을 규명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나아가 두 분야는 토대도 다르다. 연금술은 고대 그리스의 물질관을 바탕으로 한다. 즉 모든 물질들은 연결되어 있고, 각각을 이루는 종자나 요인의 비율을 조정하거나 약간의 신비로운 힘을 지닌 ‘현자의 돌’을 작용시키거나, 하늘에 뜬 별 같은 힘을 지닌 물질의 작용으로 변화를 가져와 금이나 다른 원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반면 화학은 각각의 물질이 낱낱으로 나누어지는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질들의 끊임없는 기계적 운동으로 자연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신비로운 힘이라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이렇게 전제부터 다른 두 분야가 유사해 보이거나 심지어 화학이 연금술에 뿌리를 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두 가지다. 화학이 연금술에 의해 만들어진 황산이나 염산, 질산, 알콜 같은 약품들을 사용하고 연금술에서 사용하는 비이커, 실험관, 증류관, 스탠드와 같은 도구들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물질을 섞고, 휘젓고, 뜨겁게 끓이거나 차갑게 식히며 결과를 기다리는 등의 행위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연금술을 의미하는 낱말 ‘alchemy’에서 화학의 영어 낱말인 ‘chemistry’가 왔다는 점은 이런 의심을 강하게 만든다. 이 두 분야를 명확하게 나눈 것은 18세기 말 산소를 발견하고 나서부터였다. 그 후로는 연금술이 사라지게 되었다.

공기를 나누다

연금술사, 마술사, 의화학자 등이 별이 지닌 힘으로 물질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동안, 몇몇 자연철학자들은 물질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공기가 단 하나의 물체인지 여러 물체의 혼합물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공기를 분리하기 시작했고, 공기가 ‘고정된 공기(오늘날의 탄산가스)’, ‘가연성 공기(수소)’, ‘나빠진 공기(질소)’, ‘초석의 공기(일산화탄소)’ 등이 서로 섞인 혼합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체를 분리해 낸 자연철학자들은 보통 공기가 주로 두 가지 기체, 즉 불의 공기(산소)와 나빠진 공기(질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피 비율이 1:3이라는 사실과 물질이 탈 때 필요한 기체가 불의 공기라는 점을 알아냈다.

진공을 만들어 내다

이렇게 기체를 분리해 내면서 자연철학자들은 과감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근대 사회에서도 영향력을 완전히 거두지 않은 고대 그리스의 믿음 가운데 하나가 ‘꽉 찬 세계’였다. 이 세계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근대 자연관을 열었던 대부분의 자연철학자들은 이에 대해 별로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 가운데 몇몇은 빈 공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보여 주기 위해 진공 펌프를 만들었다. 유리병에 개구리를 한 마리 넣고 펌프로 유리병의 기체를 뽑아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개구리의 피부가 쪼그라들기 시작해 완전히 쪼그라들면(당시는 개구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와 같은 윤리적 문제는 크게 부각되거나 거론되지 않았다) 유리병 안이 진공이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주장했다. 귀족 신분인 보일이라는 발칙한 자연철학자가 만든 이 장치는 당시 영국에서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물론 그 안이 진공임을 알려 주는 과학적 증거도 없고, 펌프로 모든 공기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 없다는 반론도 펼쳐졌다. 사실 보일은 진공 상태를 한 번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성실하고 진지한 태도로 자신의 발명품을 거듭 공개했다. 그의 이런 태도로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 진공이 존재할 수 있다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보일은 이 장치를 이용해 압력과 부피는 반비례한다는 보일의 법칙을 세상에 내놓았고, 이는 아직도 부피와 압력 사이의 관계를 보여 주는 이론으로 이용되고 있다.

연금술에서 완전히 벗어나다

17, 18세기 자연철학자들이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 자체에 관심을 가지며 변화의 양상을 살피고, 이전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진공 상태도 만들어냈다고 해서 연금술의 깊은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근대 화학의 세계가 도래했다고 할 수 없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연금술이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답으로 플로지스톤(독일의 화학자 슈탈이 연소를 설명하기 위해 유성인 흙에 붙인 이름)의 출입에 의해서라는 설명이 제시되었던 것이다.

플로지스톤은 그나마 연금술의 마술적인 신비로운 힘, 혹은 현자의 돌, 별들과의 연결에 의한 힘의 작용과 같은 방식으로 변화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플로지스톤은 연금술, 즉 고대 그리스 식으로 땅에는 물과 흙이라는 두 원소가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했다. 이 흙을 유리같이 녹는 흙, 기름같이 타는 흙, 액체 흙으로 나누고, 잘 타는 흙에 불붙는 성질인 플로지스톤이 포함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생각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를 좀 더 발전시켜서 물질의 변화, 특히 생생하던 것이 풀이 죽고, 불에 타서 재가 되고, 사람이 늙어 생기가 없어지는 모든 변화를 플로지스톤의 드나듦에 의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공기 중으로 나간 플로지스톤은 식물 같은 물체가 다시 흡수한다고 보았다.

자연철학자들은 기체를 분리해 내던 실력으로 플로지스톤이 물체에서 나오면 물체의 무게가 줄어든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바로 금속의 변화였다. 철과 같은 금속은 공기 중에 놓아두거나 열을 가하면 녹이 슬어서 푸석푸석해지는데 이 금속재의 무게는 금속보다 더 나갔다. 철이 플로지스톤을 내보냈는데, 더 무거워지다니 그럼 플로지스톤은 음의 무게를 가졌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중 프리스틀리( Joseph Priestley)라는 영국 목사는 수은재를 가지고 실험을 해 보았다. 수은재를 밀폐된 유리병 같은 곳에 넣고 오랫동안 높은 온도로 가열해서 수은이 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 과정을 밀폐된 유리병 안의 공기에서 수은재가 플로지스톤을 흡수해서 수은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역시 수은은 수은재보다 무거웠다. 또 이 플로지스톤을 내어 준 공기를 따로 모았더니 이 공기는 죽어가던 촛불을 되살렸고, 비실비실하던 쥐를 다시 생생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 공기를 플로지스톤을 잃은 것이라는 의미의 디플로지스톤이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이 설명 방식은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플로지스톤이 음의 무게를 가졌던 것이다. 물질인데 무게가 0도 아니고 음이라는 것은 물질의 변화를 현상만으로 접근하던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닐지 모르지만 엄밀하게 변화의 전후 과정을 무게로 따지는 사람에게는 문제였다. 그 사람이 바로 라부아지에(Antoine-Laurent Lavoisier)였고, 그는 이 디플로지스톤이 새로운 기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기체의 이름을 산소라고 불렀는데 이는 금속이 아닌 물체들과 반응해서 산을 만드는 물질이라는 뜻이었다. 이 산소가 모든 불타는 과정에 관계하고 금속이 녹스는 데에도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이 세상에 물질을 생생해지게 하는 플로지스톤은 사라졌고, 모든 변화는 양의 무게를 가진 물질들로 설명되었으며, 나아가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신비로운 힘도 자연 세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산소 옥시젠, 수소 하이드로젠, 원소 이름 부르기

산소를 발견한 라부아지에는 1787년, 『화학적 명명법의 방법』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화학 물질의 이름을 붙이는 것에 대해 매우 쉽고 논리적인 체계를 제안했다. 이 방법은 20년이 지나서야 화학자들에게 받아들여졌지만 화학자들이 체계를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는 서로 통하는 단일한 언어를 가지게 되었고 이 이름 붙이는 방식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단일한 언어가 중요할까? 연금술의 시대를 거치면서 화학은 신비와 비법의 분야가 되었음은 이미 이야기했다. 연금술사가 다루는 물질은 자신만이 아는 이름을 붙였고 같은 물질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허다했다. 이런 전통은 17, 18세의 과학 혁명을 경험한 과학자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어 이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물질은 신비하고 환상적이면서 혼란스러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아연의 꽃들’, ‘비소의 버터’, ‘호전적인 이디오피아인들’…. 언뜻 ‘비소의 버터’같은 이름은 먹어도 괜찮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독약이다. 즉 이런 이름들은 오해하기 좋은 것들이 많았다. 또 어떤 물질의 합성인지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지도 않았다. 이것 역시 비밀을 중요시하는 연금술의 전통이기도 했다. 이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했는데 이 기준을 제공하는 일이 18세기 화학 분야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18세기 화학에서 이 기준이 중요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화학이 이미 연금술사의 손을 떠나 인류의 복지 증진을 위한 과학의 한 분야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또 화학자들은 신비와 비법의 연금술이 아닌 명실상부한 과학으로 화학의 지위가 상승되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했다. 화학의 진보를 위해서는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정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화학자들이 심각하게 깨닫고 있었다. 18세기의 위대한 화학자들이 모두 이 작업에 매달렸다. 라부아지에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라부아지에는 물질 보존의 원리와 리네우스의 생물 분류 원리를 두 축으로 화학 명명법의 체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한 물질의 명명이 그 물질의 조성과 화학 반응을 해독하는 수단, 기술하는 수단이 되게 했다. 라부아지에의 명명법 체계를 받아들인 네덜란드의 화학자 베르젤리우스(Jöns Jacob Berzelius)는 1813년 이 체계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즉 낱말의 첫 글자를 사용하는 것으로 H는 hydrogen(수소)을 나타내고 O는 Oxygen(산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화학 표기법, H₂O, CO와 같은 표기법이 완성되었고 이제 화학은 연금술과 영원히 이별하고 인류의 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분야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김연희 | 서울대학교에서 한국과학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연구 교수로 있습니다. 한국 역사 속에서의 자연 이해와 자연 이용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양 과학과 우리 전통 과학이 만났을 때의 이해 방식에 관해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 『강은 어떻게 흘러가나』 『고종 시대의 과학 이야기』 『경복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