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5월 통권 제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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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나의 작품 나의 이야기]
우리 모두 한동네 같이 사는 거야

김민경 | 2017년 05월

10여 년 전 출판사에서 일할 때였다. 어느 작가의 동화책 편집을 위해 처음 원고를 읽은 날, 그 글에 푹 빠져들었다. 편집자로 일한 지 6년이 넘은 때였고 몇 년째 남몰래 습작하던 때였다. 감동을 주는 동화들은 읽은 만큼 읽은 뒤라 웬만한 글은 성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그 원고는 처음부터 남달랐다. 원고 상태가 심하게 나쁘지 않으면 보통 편집자는 세 번의 교정을 본다. 좋은 글은 반복해서 읽더라도 편집자의 내면을 줄기차게 건드린다. 그 글이 그러했다. 그 파동은 책이 출간된 뒤에도 이어져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그 전까지 소설과 희곡 습작만 하던 나는 처음으로 짧은 동화 한 편을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우리 동네에 놀러 올래?』에 실려 있는 「네가 그런 게 아니야」이다. 어릴 때 대문 앞에 죽어 있는 고양이를 본 날 아침에 받은 충격이 색이 바랜 풍경화처럼 남아 있었나 보다. 그 전날 우리 식구들은 양념통닭을 맛있게 먹고 쓰레기 봉지를 밖에 내다 놓았었다. 초고를 쓰고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고 보물 숨기듯 감춰 놓았지만, 언젠가 동화를 쓰게 되면 이 글 속의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래전 구상을 현실로 옮긴 건, 3년 전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봄이었다. 글만 쓰겠다고 회사를 그만둔 지 2년, 둘째 아이가 18개월쯤 되던 때였다. 그리고 내가 처한 여러 현실들 속에서 갈팡질팡하던 때였다. 육아에 치여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고, 도시 생활에 염증이 났고, 10년 가까이 되는 아파트 생활에도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던 때였다. 마땅한 대안 없이 갈등만 되풀이하던 어느 날, 우연찮게 「네가 그런 게 아니야」 초고를 읽게 되었다. 거칠고 모호해서 읽는 내내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여름밤, 창밖으로 고양이를 내려다보던 주인공 순정이의 여린 마음과 고양이의 환한 눈동자가 나를 움직였다. 순정이가 보낸 그해 여름을, 그 동네를 오롯이 그려내고 싶었다.

「네가 그런 게 아니야」가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써서 그런지, 중학교 3학년 언저리까지 살았던 고향의 오래된 주택이 자꾸 생각났고 여름날에 겪은 여러 사건들이 땅속에서 감자가 줄줄이 딸려 올라오듯 떠올랐다. 그 추억들 중에서 요즘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것들만 추렸다.

「쥐와 고양이」 「우리 집에 처음 온 농어」 이 두 편은 어릴 적에 겪은 사건이 토대가 되었다. 우리 집 부엌에 들어온 커다란 쥐를 동네 할아버지가 잡아 주었는데, 숨이 끊어져 몸이 축 늘어졌던 큼지막한 잿빛 쥐를 보는 순간 너무나 놀라 땅바닥에 주저앉았었다. 아빠가 잡아온 커다란 물고기를 만져봤던 그 여름밤도, 다음날 고양이가 물어뜯어 놓은 처참한 흔적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내가 어린 시절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완연한 봄에 쓰기 시작해서 그해 12월에 초고를 마쳤다. 수차례 퇴고 과정을 거쳤는데 모든 원고가 비슷했지만 특히 「쥐와 고양이」가 더 신경이 쓰였다. 이 책을 여는 단편이기 때문에 첫 문장도 여러 번 손을 봤다. 회고담처럼 읽히지 않아야 하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연작동화로 묶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나오게 해야 할지도 고민이 되었다. 늘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던 고양이들을 앙드레 할아버지네 집 화단에서 본 순간 순정이 마음속에 있던 할아버지에 대한 무서움이 사라졌다. 고양이 놀이터나 다름없는 화단에서 순정이는 고양이와도 놀고 동네 할아버지와도 가까워졌다.

「엄마의 아파트 타령」에서는 좀 무리를 해서라도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은 엄마와 낡고 불편하지만 좁은 마당이라도 있는 현재의 집에 살고 싶은 아빠와의 갈등을 통해 우리가 사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른들에게 ‘집’은 주로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이 되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다르지 않을까, 궁금했다. 어쩌면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나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 글에는 전업주부이던 엄마가 취업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과 등원 도우미로 일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세상에는 가치의 우열을 따질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직업도 그렇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순정이가 엄마의 일터에 따라가게 되고 일을 마친 후 집으로 오면서 엄마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그렸는데 잘되었는지 모르겠다.

「빨간 고추 소동」의 주인공은 곤경에 빠진 순정, 순모 남매와 동굴 같은 경로당에서 막 튀어나온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다. 청장년들은 일터에 가거나 볼일 보러 나가고 없는 적막한 평일 대낮의 동네를 시끌벅적하게 그려 보고 싶었다. 뜨거운 여름 낮을 배경으로 남매가 요리 삼매경에 빠졌던 동네 뒷산과 텃밭, 당황한 순정이가 뛰어다니는 골목, 순모가 큰 울음을 터뜨리며 서 있던 길가 등등 동네 곳곳이 사건 속에 펼쳐진다. 동네 노인 분들이 없었다면 순모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은근히 아찔하다. 요즘에도 소꿉놀이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싶지만 자연 속에 있으면 아이들은 손에 아무것도 없어도 무척이나 편안하고 즐겁게 논다.

「우리 집에 처음 온 농어」는 이 책의 마지막 단편이다. 좁은 순정이네 마당에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 농어를 구경하러 모인다. 아빠가 잡아온 농어로 한바탕 잔치가 벌어질 것 같았지만 결국 무산되고 만다. 다 같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순정이 마음속의 의문을 풀어 주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쓰레기 봉지 속 통닭을 먹고 죽은 고양이에 대해서, 종종 멀리 바람 쐬러 다녀야 하는 아빠에 대해서, 죽인 쥐를 고양이 먹이로 주는 앙드레 할아버지에 대해서. 사람도 살고 고양이도 살고 나무도 살고 텃밭의 여러 작물도 같이 사는 동네에서 그 어떤 것도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행동이자 흐름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고 마음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봄은 모든 것이 기지개를 켜는 시기이다. 심각하게 나빠진 대기 탓에 이젠 순전하게 투명한 봄 햇살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이고, 지난 몇 해 동안 사회적으로 일어난 사건들로 심리적으로도 버겁고 힘든 계절이 되어 버렸지만, 봄은 아이들이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펴고 햇살과 바람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밖으로 나도는 계절이다. 큰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작은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도서관과 텃밭이 내가 다니는 동네의 전부지만, 봄이라서 마주치는 아이와 어른들이 많아져서 무척이나 반갑다. 해마다 연하게 한 줄씩 생기는 이웃의 눈주름을 보는 것은 애틋하고, 계절마다 쑥쑥 자라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기쁘기 그지없다.

한동네에 7년 째 살다 보니 친구가 된 이웃이 생기고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거나 눈웃음을 보내 주는 어린 친구들도 생겼다. 그 덕에 『우리 동네에 놀러 올래?』에 대한 반응을 접할 수 있었는데, 내가 하는 일을 몰랐던 이웃이나 아이들이 많았기에 특별한 경험이었다.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책 표지에 이름이 적혀 있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는 게 신기한 모양인지 “아줌마 이름이 김민경이었어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라고 물어본 아이도 있었고, 제목을 ‘우리 집에 놀러 올래?’로 착각했는지 “초대장 보내 줘서 고마워요. 놀러 갈게요.”라고 한 아이도 있었고, “우리 애는 「빨간 고추 소동」이 제일 재미있고 「엄마의 아파트 타령」이 제일 재미없었다는데, 나는 「엄마의 아파트 타령」에 제일 공감이 간다고 말했더니 애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라고요.” 하는 엄마도 있었다. “왜 그림에 쥐가 없어요? 그게 불만이에요.”라고 자못 진지하게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또 홍보해야 한다며 내 책을 공연 소품으로 쓴 아이도 있었다. 눈앞에서 책에 대한 소감을 듣는 일이 무척이나 쑥스러웠지만 정말 하나하나 고맙고 소중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첫 책을 내고 6년 만에 두 번째 책을 냈다. 그동안 ‘직업’ 란을 써넣어야 하는 순간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뭐라고 써야 할지 망설였었다. 여전히 내 안에서는 여러 가지가 갈등 중이다. 예전에는 그 갈등들을 어찌할 줄을 몰라 속을 끓였다. 내 성격 탓도 있을 테고 요령이 없어서, 혹은 그 갈등에 푹 빠져들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갈등을 동력으로 삼으려고 한다. 어떻게? 누가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실에 꼿꼿이 발붙이고 서서 생계형 작가로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면서 늙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전한다면 답이 될까? 너무 뻔하고 식상한가? 그렇다고 해도 할 수 없다. 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니까.
김민경 | 1975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공부했고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습니다. 작품으로 소설 『앉아 있는 악마』와 동화 『우리 동네에 놀러 올래?』가 있으며, ‘작은 새’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