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통권 제179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선정 이달의 좋은 책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더불어 책 읽기

[우리의 밑줄 긋는 시간]
엘리의 열네 번째 금붕어

어유선 | 2017년 08월

미래학자이면서 물리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미래의 어느 순간에 인간이 죽지 않게 된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대로라면 지금의 장년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세대가 된다. 그러나 죽지 않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인공 지능 기술이 인간을 능가하는 미래가 멀지 않고 인간은 인공 지능에 의해 죽음이 아닌 멸망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혜안처럼 농경 시대의 인간은 행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생산의 풍요는 더 많은 인구와 그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할 노동의 증가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넘어서고 싶은 『열네 번째 금붕어』는 우리에게 무겁고 힘든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죽지 않고 사는 삶이 행복할 것인가. 늙지 않고 사는 삶이 있다면 인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인류의 역사는 생존의 시간을 연장해 온 역사이고 철학도 문학도 과학도 죽음과 맞닿은 삶의 문제를 탐구해 왔기 때문이다.

과연 열네 번째 금붕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주인공 엘리는 유치원 때 선생님에게 금붕어를 선물로 받는다. 선생님이 금붕어를 선물로 준 이유는 금붕어는 오래 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엘리의 금붕어는 무려 7년 동안이나 죽지 않았고 그 이유는 곧 밝혀진다. 엄마가 금붕어를 새로 사다 놓았기 때문이다. 작고 좁은 집에 살고 있는 엘리는 그동안 금붕어들이 죽었다는 것에 놀라고 상처받는다. 변기 속에서 장례식을 치른 금붕어를 생각하며 기분이 안 좋다.

너무나 빠른 전개에 어리둥절해질 무렵 2장이 열리고 이렇게 시작하는 문장에 마음이 놓인다. “우리는 신발 상자처럼 생긴 집에 살고 있다.” 엘리가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엘리의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는 문장이다. 엘리는 자신을 잘 모르고 있지만 꼼꼼하고 사물을 잘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읽는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신발 상자처럼 생긴 집에는 침실 두 개와 화장실 하나. 그리고 화장실의 변기는 그동안 엄마가 몰래 버린 금붕어 때문인지 항상 막힌다. 연극 선생님인 엄마와 배우인 아빠는 엘리에게 항상 열정을 가지라고 말한다. 특히 연극에 열정을 가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엘리는 자신이 잘못 태어난 건 아닌가 고민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엘리는 엄마와 아빠가 바라는 것을 잘하지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거나 좋아하거나 심지어는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퍼즐을 좋아하고 무대 의상에 증기를 쐬어 다림질하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부엌엔 질서가 있고 실험하는 일이 즐겁다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엘리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신이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엘리에게 열네 살 소년의 몸을 가지게 된 할아버지가 찾아온다. 할아버지는 과학자인데 해파리를 연구하여 쥐에게 실험했고 쥐들이 젊어지는 걸 보고 그 약을 본인의 몸에 투약한다. 몸은 열네 살이고 정신은 일흔인 할아버지의 말은 구태의연하고 특히 엄마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완고하고 보수적이며 교과서에 자기가 나오지 않아 엉터리라고 화를 낸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엘리에게 과학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묻는 게 좀 두려웠지만 또 물었다.
“소아마비가 뭐예요?”
“끔찍한 질병이지!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들은 다리를 절게 돼. 죽거나. 소크와 동료 과학자들이 그 병을 막으려고 개발에 나선 거야. 심지어 소크는 자신에게 그 약을 실험하기도 했어.”
“자기 자신한테요?”
미치광이처럼 들렸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말이다.
“미친 과학자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고쳐 앉더니,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엘리, 모든 과학자들은 조금씩 미치광이야.”


할아버지는 과학자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며 실험은 퍼즐과 같고 과학자들은 그 퍼즐을 다 맞출 때까지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제 엘리는 마치 퍼즐을 맞출 때처럼 과학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할아버지의 사과 이야기도 근사하다.

할아버지는 사과를 흔들며 사과는 따는 순간 죽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과를 반으로 자른다. 갈색의 씨를 건드리며 그럼 씨는 죽은 거냐고 묻는다. 엘리는 오히려 죽은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좀 더 어려운 문제지. 씨는 발육 정지 상태야. 기다리는 거지. 씨를 땅 속에 묻고 물을 주고 햇빛을 받으면 자라날 거야. 어떤 면에서 그것들은 죽은 게 아니야. 줄곧 사과 안에 있었을 뿐이지.”

엘리는 과학이 실험이나 연구가 아닌 것 같아 놀라고 그런 엘리에게 할아버지는 과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찰이라고 말한다. 엘리는 조금씩 과학의 매력에 빠지고 할아버지를 관찰한다. 좁은 집은 할아버지가 살면서 접이식 소파를 펼쳐 놓게 되었고 책장을 정리하여 옷장으로 활용하고 집안엔 온통 남자아이 냄새가 난다. 할아버지의 별난 점도 관찰한다. 미리 준비하고 뜨거운 차를 마시며 쓰레기도 챙긴다. 둘은 유대감을 가지며 함께 저녁 요리를 한다. 엘리는 자신이 할아버지를 닮았음을 느끼며 요리가 실험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계량스푼이 실험 도구가 같은 느낌을 받으며 정성스레 만들어진 요리는 아주 근사한 냄새가 나고 엄마는 할머니가 만들었던 요리를 먹으며 환호한다.

할아버지는 연구실에서 해파리 샘플을 가져와 인류 모두가 젊어지는 약을 만들어 상을 탈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런 할아버지를 말리는 것은 엘리이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할아버지는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나는 현미경으로 할아버지의 기분을 달래 보기로 마음먹었다. …… 현미경에 금붕어 비늘을 놓고 들여다보았다. 화려한 색깔의 부채처럼 아름다웠다. 그 순간 우리 집에 살았던 모든 골디가 떠올랐다. 티멜 비너스 화합물만 있었다면 그들은 살았을지도 모른다. 커다란 탱크 속에 금붕어들이 헤엄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거다.

엘리는 그동안 죽은 금붕어가 마음에 쓰이는 소녀이다. 영생을 할 수 있는 약이 있음에도 그녀의 생각은 그동안 죽은 금붕어들에게 미안하고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할머니가 그립다. 죽음이란 문제가 인간에게 주는 그림자를 생각하면서 할아버지의 연구실에서 샘플을 가져오지 못할까 봐 함께 마음 졸인다. 샘플인 티멜 비너스를 가져와 인류의 영생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 엘리는 그 약이 세상에 퍼지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말한다. 엘리의 말은 당연히 옳다. 왜냐하면 그 약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면 이 소설은 조금 다르게 쓰여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가 힘들었던 이유는 몸은 젊다 못해 어려지고 정신은 여전히 초롱초롱한 할아버지가 부러워서이다. 집안에 노인이 있는 집이라면 무슨 말인지 금방 알 것이다. 몸이 아픈 것도 힘든 일이지만 정신이 아픈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방금 전에 한 말을 기억 못하고 곱씹어 말씀드리면 역정을 내신다. 병원에서 잠시만 다른 일을 보고 있으면 사라지셔서 찾으러 가 보면 병실을 찾지 못하고 복도를 빙빙 돌고 계신다. 몸의 노화뿐만 아니라 마음의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노인이 다시 젊어진다면 마음의 병이 나을 것인가. 그것은 의문이 아닌 참담한 자괴감이다.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죽어야 사는 여자」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의 끝에서 죽지 않게 된 여자 둘은 무너지는 얼굴, 무너지는 팔다리를 어쩌지 못하고 죽지 못하지만 부셔져 가는, 죽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보여 준다. 죽는다는 것의 허망함에 멍해질 때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산다는 것의 참담함에 고개를 숙이게 한다.

결국 엘리의 할아버지는 샘플을 버리지만 소설은 더 좋은 재료인 해파리가 도착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인간의 오래된 욕망, 불로장생의 꿈은 버릴 수도 잊어버릴 수도 없다. 죽지 않는다는 것보다 끔찍한 일은 늙지 않는 일이고 그 과제를 풀어내는 것이 과학자의 꿈을 갖게 된 엘리의 포기할 수 없는 도전이 될 것 같다. 그것이 엘리의 열네 번째 금붕어가 아닐까.
어유선 | 작은도서관에서 오랜 동안 활동했으며 대안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었습니다. 현재는 뒷동네도서관 운영위원으로 마을도서관을 꿈꾸며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