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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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이야기]
다양한 언어권의 빛나는 문학들을 찾아

이정선 | 2007년 08월

‘다림 출판사’ 하면 대부분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다 ‘한빛문고’ 몇몇 작품을 꼽으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황소와 도깨비』 『양초 귀신』 같은 우리 작가 그림책과 『엄마는 거짓말쟁이』로 대표되는 이슬비 시리즈, 『길모퉁이 행운돼지』 같은 개성 있는 작품들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8월 1일이면 다림이 생긴 지 딱 10년. 우연히도 이 글이 실리는 달이기도 해서 내겐 더욱 뜻깊다. 소개할 기획 이야기는 ‘다림 세계문학’이다. “새로운 세상, 즐거운 책 읽기”를 표방하며 야심찬 출발을 한 기획물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언제 읽어도 빛바래지 않을 좋은 문학 작품을 소개하겠다는 것이 처음 취지였다. 흥미를 느끼게 하면서도 문학의 감성을 한껏 풍기는 작품을 엄선하는 것, 그동안 잘 소개되지 않던 다양한 문화권의 작품들까지 발굴하여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보다 풍성하고 다채로운 문학 세계를 경험하게 하자는 것이 기획 의도다.

우선 꼼꼼한 자료 조사에 들어갔다. 작품 선정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편의상 15개 언어권으로 나눠 각 언어권별로 기획자를 두고 작품을 물색했다. 초기에 작품 리스트가 쌓이기 전까지는 도서관으로, 서점으로, 대학으로, 사무실로 바쁘게 찾아다녔다. 그래서 찾은 자료를 공유하며 의견을 나누고 작품 선택의 폭을 좁혀 나갔다. 작품의 완성도나 내용 면에서 월등히 좋은 것을 찾고 싶었다. 한 번 보고 나면 입에서 입으로 알려지고 또 읽고 싶어지는, 꾸준히 읽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품을 찾는 게 중요했기에 영미권이나 독일어권의 경우도 모두 기획자를 두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작품을 찾았다.

꽤 오랜 기간 작품 물색에 몰두했지만 많은 작품을 확보하지 못해 처음엔 힘도 빠지고 고민되기도 했다. 초등 고학년을 주 독자 대상으로 하는, 문학성과 재미를 두루 갖춘 작품, 이것이 우리가 찾는 작품의 기준이었는데, 너무 분명한 이런 기준 때문에 오히려 후보에서 빠져 나가는 작품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5~6학년에서 중학교 1~2학년까지가 보기 적절한 작품으로 찾다 보니 분량이나 소재에서 걸러야 하는 부분이 있고, 이 기준을 맞추면서 문학성과 재미를 고루 갖춘 작품 찾기가 쉽지 않았다. 조건에 맞는 작품을 찾기 위해 한 작가의 작품을 스무 편 이상 보기도 했고, 필요한 경우엔 샘플 번역과 전문을 번역해 검토하고 논의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고도 미심쩍거나 염려되는 부분이 있으면 독자 의견 수렴부터 서점 관계자 의견 수합까지 거치니, 한 작품이 채택되기까지 6개월 이상 걸린 작품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공들여 오랜 시간 검토하고도 포기하는 작품이 반 이상이었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기획자들이나 에이전시 담당자들로부터 다림의 책 고르는 기준이 너무 엄격한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듣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떨어져 나간 작품 후보들 중 애착이 가고 버리기엔 아까운 아쉬운 작품들이 꽤 있다. 하지만 하나를 만들어도 내실을 기하고 제대로 만든다는 의지가 1년에 몇 종 내지 않고도 자리를 잡아 나갈 수 있었던 다림의 근원적인 힘이라면 힘! 세계문학 시리즈도 예외일 수 없었다. 아니, 다림 세계문학 시리즈는 그 의지를 더 분명히 해야 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비슷한 컨셉의 책이 더 나오기 전에 빨리, 한 번 나오면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을 만한 좋은 작품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도 처음부터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료 조사와 기획 기간 1년여를 거쳐 2005년 6월부터 첫 책을 내기 시작해 그 해에 4권을 냈고, 2006년엔 6권, 2007년 올해엔 15권가량 출간될 예정이다. 작업 초기를 떠올려 보면 이제는 안정 궤도에 올랐다는 생각이 든다.

다림 세계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곳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던 다양한 문화권 작품들을 꽤 찾았다는 데 있다. 다림 세계문학 시리즈 네 번째로 나온 불가리아 작품 『얀 비비얀의 모험』이나 아르헨티나 작품 『세상에서 나가는 문』, 스웨덴 작품 『에스페란자』, 네덜란드 작품 『북풍마녀』 그리고 지금 편집 중인 인도와 이란, 스페인 작품 등은 각 나라의 독특한 정취를 풍기면서도 사춘기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고 흥미로워할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시리즈 초기에 나와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바다소』나 이탈리아 작품 『마두레르를 위한 세상』과 더불어 다양한 언어권의 작품들이 발판이 되어 앞으로도 더욱 다채롭고 좋은 작품을 찾는 힘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다양한 작품을 물색하면서도 아쉬웠던 점은 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 쪽 작품 선택이 어려웠던 것. 이 지역 어린이 문학은 기획 초기부터 큰 관심을 갖고 찾았지만 작품을 찾기가 어려웠다. 출판 시장에서 이 언어권의 작품들을 보기 어려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열심히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다.

다림 세계문학을 더욱 빛나게 하는 특징은 그림이다. 텍스트의 힘만으로도 갈 수 있겠지만 우리의 주 독자 대상은 독서 호흡이 그리 길지 않다. 문학이 자칫 어렵거나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으므로 독특하고 다채로운 그림으로 친근하고 흥미롭게 다가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그 문화권의 특성이 살아 있으면서도 화가의 독창력과 상상력이 살아 숨 쉬는 그림을 넣어 작품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그래서 작품이 결정되면 곧바로 화가 물색 작업에 들어갔다. 전시회나 외국 도서, 국내에 소개된 외국 그림책, 인터넷 웹서핑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각 작품을 잘 살릴 수 있는 화가들을 찾았다. 다행히 좋은 화가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리즈 초반에는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조건이 맞지 않아 화가가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외국 화가들은 자기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영미권 전역에서 활동하는 예가 많아 화료가 대부분 높았다. 활동 영역이 넓고 기회가 많으니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게다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잘 몰라 선뜻 제안을 수락하지 않는 화가들도 있어 초기에는 많이 어려웠다. 한 작품에 대해 10명이 넘는 화가에게 연락을 해도 답이 없거나 거절 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런 가운데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중국 화가 첸지앙홍이나 독일에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비탈리 콘스탄티노프, 이탈리아 화가 파비안 네그린 등은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꽤 이름 있는 화가였지만 여러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작품이 마음에 들어서 그리고 싶다는 것이 계약이 성사된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작품을 공들여 선정한 보람이 있었다! 이런 사실을 기반으로 작품의 우수함과 다림 세계문학 시리즈의 의미를 설명하며 설득해 나갔고, 18권이 나온 즈음에는 화가 섭외하는 일이 한층 수월해진 셈이다. 책 선정에도 화가 물색에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책이 나왔을 때 외국 저작권사나 그림 작업을 했던 화가들로부터의 반응은 책 만드는 기쁨을 곱절로 만들어 주었다. 원서 그림을 쓰지 않고 새로 발주해서 진행한 경우가 더 많기에 한국어 판은 원서와 다르다. 그런데 출간된 한국어 판을 받은 저작권사들은 우리 책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고, 자기네 책을 또 출간해 달라며 다른 책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화가들도 마찬가지다. 주로 메일로 스케치가 오가고 채색 샘플이 오면 그걸 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작업했는데, 계약이 성사되기까지가 어렵지,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그들은 프로 정신을 발휘했다. 그림은 대부분 3~4개월 안에 다 마무리해 주었다. 화가들은 출간된 한국어 판을 받고는 대부분 다 마음에 든다며 좋아했고, 선물을 보내오기도 했다. 작업이 끝난 후에도 아들 사진이나 자신의 근황 등을 메일로 보내며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 우리와 작업한 책을 가지고 볼로냐 도서전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북풍마녀』의 화가 클레멘티너 오머스는 기회가 되면 다음에 다른 작업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렇듯 각 언어권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게 된 것도 새로 얻은 큰 재산이리라. 몇 번을 두드려도 계약되지 않고 작품 목록이 쌓이지 않아 좌절의 고비를 맞으면서도 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고 꾸준히 작업해 온 동료들의 노력에 이 자리를 통해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세계문학 시리즈는 앞으로도 꾸준히 나올 것이다. 새로운 세계명작 목록으로 인정받아 다음 세대에까지 전해 주자는 큰 포부를 안고서.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지금까지 겪은 시행착오와 노력을 기반으로 좋은 작품 찾는 데 더욱 힘을 쏟을 것이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품들로 세계의 다양한 문화권의 친구들을 책으로 만나는 우리 아이들이 다림 세계문학의 마니아가 되는 날을 꿈꾼다.

2005년 출간 : 『바다소』 『망각의 정원』 『마두레르를 위한 세상』 『얀 비비얀의 모험』
2006년 출간 : 『세상에서 나가는 문』 『잔지바』 『바다 아이』 『에스페란자』 『괴물 셀리반』 『셰익스피어를 사랑한 거북이』
2007년 출간 : 『북풍마녀』 『늑대의 꿈』(상·하) 『제시카와 함께한 날들』 『하염없이 내리는 비』 『레닌그라드의 기적』 『기적의 섬으로』 『인생은 그런 거야』
이정선│책 만드는 일과 인연을 맺은 지 어느 새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꿈을 먹고 사는 어린애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장르의 책들 중 특히 그림이 함께 들어간 책을 좋아합니다. 책에서 얻는 감동과 즐거움을 버릴 수 없으므로 더 많은 아이들에게 책 읽는 즐거움과 기쁨을 전해 주고 싶습니다. 다림 출판사 기획부에서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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