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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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책 이야기]
우리 안에 담긴 따스한 숨결

안소영 | 2008년 06월

모처럼 아버지가 오셨다. 딸이나 사위가 궁금하기보다는 날로 자라는 손자 얼굴이 아른거리셨을 것이다. 그새 훌쩍 자란 아이가 대견하신지 입가에 떠오르는 웃음을 내내 지우지 못하셨다. 그런데 커 갈수록 무뚝뚝해져 엄마 속을 태우는 아이는 몇 마디 물음에 겨우 대답하더니 보던 책에,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민망하다. 친구가 부르는 소리에 엉덩이가 들썩이는 걸 억지로 주저앉혔는데, “나가 놀아라.” 하신다. 얼굴이 환해지며 뛰어가는 아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아버지는, 여전히 함박웃음이시다. 웃음 어린 눈길은 내게로도 이어지는데, 붙잡아도 붙잡아지지 않는 게 커 가는 아이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도 같다.

아흔 살이 가까운 할아버지 작가와 화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매듭을 묶으며』는 아름다운 책이다. 아이는 늘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해 달라고 조른다. 들어도 들어도 싫증 나지 않는 이야기, 바람 소리와 함께 온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자신이 태어난 그날 밤 이야기를. 할아버지는 여리고 약한 손자가 푸르고 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푸른 말의 힘’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자신의 기억과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만나는 대목에서 아이의 눈은 더욱 빛난다. 주고받으며, 맞장구치는 대화도 아름답다. 한 차례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할아버지는, 수를 세는 끈에 매듭을 하나 더 묶는다. 끈에 매듭이 가득 차면, 아이 스스로가 그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아이는 알고 있다. 자신의 몸과 시간에는 오래전부터 따스하게 빛나던 햇살과 바람과 사람들의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매듭을 묶는 인디언 할아버지처럼, 견뎌야 할 아픔이 많은 사람들은 눈길이 더욱 그윽해지고 깊어지는 것일까. 엄마와 딸과 또 그 딸들로 이어지는 8대의 삶이 담긴 『엄마가 수놓은 길』은 유장한 흐름에 경외감이 들기도 하는 책이다.

어린 흑인 아기 토쉬의 할머니의 할머니인 수니의 증조할머니는, 일곱 살 때 엄마 아빠와 헤어져 혼자 팔려갔다. 엄마가 준 헝겊 조각 하나와 붉은 색실을 지니고서. 낯선 농장에서 아이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조각천 위에 자신이 떠나온 오솔길과 하늘의 달과 별을 수놓는다. 엄마와 헤어져야 하는 것은 그 어린 손녀들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엄마의 조각보에서 별 하나를 잘라 내고 길 한 조각을 잘라 내어 다시 먼 곳으로 팔려간다. 세월이 흘러 노예의 처지에서 해방되었다고는 하나, 흑인이 백인과 똑같은 사람으로 존중받는 것은 아니었다. 조각천 위를 바늘로 한 땀 한 땀 수놓아 가듯, 그들은 거리와 광장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자유와 평등과 자신의 존엄이 보장되는 그날을 위해. 수니의 딸 조지아나와 그 딸 앤과 또 그 딸이자 이 책을 쓴 재클린, 그리고 그의 어린 아기 토쉬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눈물과 한숨, 기억들이 수놓아진 삶의 조각보는 끊임없이 이어져 간다.

재클린 우드슨의 그림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은, 어두운 배경과 대비된 조각보의 화려한 색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견뎌야 할 아픔이 많았던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기억과 아픔을 제대로 꺼내 놓고 새겨 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들어서였다.

그해 여름은 유달리 더웠다고 한다. 1950년 6월, 가족과 떨어져 포항에서 학교에 다니던 어머니는 겨우 경주 집으로 돌아가는 차를 탈 수 있었다. 아무런 짐도 꾸리지 못한 채 학교 갈 때 들고 간 책가방 그대로. 만약 그 차를 놓쳤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서늘해진다고 한다. 그해 뜻하지 않은 운명의 위태로운 순간에 놓인 사람이 어디 어머니뿐일까. 소용돌이에 휩쓸려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예기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테고, 하늘이 허락해 주었으나 사람이 만든 포탄에 산산이 부서진 목숨들도 한둘이 아닐 것이다.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이 수백만에 이른다고 하니, 살아남은 어느 누구도 피붙이의 죽음과 헤어짐의 고통에서 오래도록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억울한 사연들을 언제 한번 마음껏 펴 놓고 풀어내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멈추어졌지만 그날에 대해,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오래도록 자유롭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 두고 지내는 동안 진실은 아득해져 버렸고 희미해져 버렸다. 지금까지도 어머니에게 6월은, 신록이 싱그러운 아름다운 계절이 아니라 뜨거운 태양 아래 우왕좌왕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절망적이고 막막한 시간들로 먼저 다가온다고 한다. 제자리 잡지 못한 역사가 사람들에게, 자연의 고유한 빛깔을 감상하는 여유로운 마음까지 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해 여름에 시작되어 또 세 번의 여름을 거친 후에야 멈추어진 전쟁은 그저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뀌어지게 된 것은 원래부터 정해져 어쩔 수 없는 운명 탓도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히, 부당하게 얻은 것을 계속 가지려 하고 세계 곳곳에서 자기 나라만의 이익을 얻고자 한 소수의 사람들이, 다수의 힘없는 사람들의 삶에 저질러 놓은 횡포였다. 지나간 시간과 그 안의 진실을 돌이켜보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설계한 삶들도 마구 뒤틀어지고 헝클어져 버리는, 심지어는 사라져 버리기까지 하는 일들이 또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무차별적인 폭력도, 신무기가 경쟁하는 전쟁도, 나라 안에서 혹은 나라 간의 절망적인 불평등도 여전하기만 한데.

그날의 일을 차마 말하지 못하고 살아오는 동안에, 그때 사람들은 늙어만 가고 새로운 아이들은 자꾸만 태어난다. 빠르게 변화하는 문명과 문화는 세대와 세대 사이 거리감을 더욱 벌려 놓았고, 나이든 세대와 어린 세대는 서로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주춤거린다.

『할아버지의 뒤주』가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흥미롭다. 뒤주 속으로 들어가 과거와 만난다는 발상도 그렇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재미도 있다. 할아버지의 뒤주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비밀스런 통로이다. 그 안에서 민제는 사도세자를 만나고, 임진왜란 시절의 조선 수군과 왜군을 만나기도 한다. 민제의 할아버지처럼 누구나 살다 보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이 원치 않고 예측하지 못한 삶으로 시대와 함께 휩쓸려 가 버린 사람들은 더욱. 밤마다 뒤주 속으로 들어간 할아버지가 돌아가고 싶었던 시간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봄날이었다. 그때 열두 살이었던 할아버지는 무심코 큰형이 숨어 있는 곳간의 뒤주를 가리켰고, 형은 결국 전쟁터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 일들을 다시 돌이켜 놓고 싶은 할아버지의 염원은 끌려가는 형을 바라볼 때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오랜 아픔이, 뒤주 속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회오리바람처럼 강렬하면서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아버지의 국밥』은 열두 살 소녀 은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은진이만할 무렵 겪은 전쟁과 그 시절 살아온 이야기들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체제라든가 이념이라든가 하는 것들의 갈등에서 빚어진 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마구잡이로 뒤틀어 버린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또 자신의 삶을 우직하고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그 소박한 진실이 가슴 저리게 다가오기도 한다. 난리 통에 가족들과 헤어져 갖은 고생을 하던 두수는 개성에서 진주의 외가까지, 어린 동생 소영이의 손을 잡고 내려온 당찬 소년이다. 또한 두수는 선한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어려운 가운데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속 깊은 소년이다. 옛 소년 두수의 진심은, 어떤 기교나 잔재미를 구태여 끼워 넣지 않더라도, 지금 아이들의 마음에도 진솔하게 스며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전쟁의 포성이 잦아들 무렵, 두수는 아버지가 있는 서울로 올라간다. 고된 지게질을 마친 아버지는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국밥 한 그릇을 사 준다.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는 두부 한 모로 아침 겸 점심을 때우면서. 눈물과 함께 국밥을 먹던 두수는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제삿날이면 언제나 국밥을 상에 올린다. 국밥 한 그릇조차 마음 놓고 드셔 보지 못한 아버지를 그리며.

이 가족들의 이야기에 젖어 있다 보니, 제사를 마치고 커다란 상 앞에 둘러앉은 은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왠지 친숙해진 느낌이다. 그분들의 어린 시절을 엿보아서일까. 고모할머니가 되긴 했어도 소영 할머니는 피란길에서 오빠의 애를 태우던 깜찍함과 깐깐함이 여전한 것 같고, 그때 엄마 등에 업혀 있던 한수도, 엄마 뱃속에서 전쟁을 겪고 태어난 민수도 어느새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칼조차 허연 할아버지가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갓난아이일 때가 있었고,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 당연한 사실을 무심히 넘긴 채, 그분들을 지금의 나이든 모습으로만 보아 왔던 것이 미안해지기도 한다. 한 사람 안에 담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흐름을 세심하게 보려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만 바라보고 판단하려는 마음이, 우리의 지난날들을 바르게 보는 것도 소홀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실컷 놀다 들어온 아이는 제가 생각해도 미안한지 슬금슬금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앉는다. 묻는 말에도 제법 길게 대답하고, 이사와 새로 사귄 친구들 이야기도 하며 간간히 웃음도 터트린다. 아버지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진다. 보기 좋다. 다음에 아버지께 가면 아이와 옛 사진첩을 뒤적여봐야겠다. 앞뒤 짱구머리가 고집스러워 보이는 ‘어린’ 할아버지를 보노라면 ‘쿡-’ 웃음이 번질 테지. 바랜 사진 속에서 사진 바깥 자신을 바라보는 빡빡머리 소년과 눈길이 마주치면 무슨 생각이 들까. 그 눈길이, 무슨 이야기를 하건 그저 웃으며 들어 주는 할아버지의 눈길과 하나라는 신비로운 사실을 아이는 알아챌 수 있을까.
안소영 |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민족 분단으로 오랜 세월 고통을 겪어 온 이들의 삶을 듣고 기록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특히 역사 속 인물들에게 새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펴낸 책으로 『책만 보는 바보』 『다산의 아버님께』, 그리고 옥살이를 오래 하신 부친과 주고받은 서간집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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