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속 깊은 책 이야기
더불어 책 읽기
책 너머 세상 읽기
열린어린이 선정 이달의 좋은 책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작가를 찾아서]
웃음을 머금게 하는 그림 작가 김유대

공혜조 | 2002년 05월

김유대 선생님
서울이 끝납니다. 도시의 경계는 사람 사는 집 같은 건 모른다는 듯 자잘한 나무가 자라고 있는 숲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입니다. 사람 사는 집이, 삶을 꾸리는 상가가, 삶을 지탱하는 공장 건물들이 사람 냄새를 훅 끼치며 차창으로 달려듭니다. 옹기종기 모이는 것으로는 모자라 층층이 올린 아파트가 숲을 이룬 곳, 김유대 선생님과 할머니께서 함께 사는 곳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문을 여니 너무나 밝아서 아이 같은 선생님의 얼굴에 제 눈이 놀랍니다.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사람살이의 흔적이 적당히 배인 작은 마루를 지나 선생님이 작업실로 쓰는 방으로 들어갑니다.

한켠은 책꽂이, 한켠은 책상, 다른 한켠은 출입문이고 또 다른 한켠은 하늘로 열린 베란다입니다. 책상 앞 하얀 벽에는 선생님이 그린 그림과 낙서, 선생님이 좋아하는 다른 작가가 그린 그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장난기 가득한 작은 그림들이 모여 한 풍경을 이룹니다. 마치 처음부터 선생님 책상 앞의 벽에 걸리기로 약속하고 그려지기나 한 듯 말입니다. 장난스런 웃음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지 않을 것 같은 선생님 얼굴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게 되셨냐는 질문에 선생님이 배시시 웃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어떤 그림이든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선생님 책상 앞 벽에 붙은 그림들
선생님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회사에 취직하지 않았지요. 경원대학교 차세대 디자인정보센터 연구원으로 일하면서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린이다운 마음으로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한국출판미술대전 특별상(1997)과 계몽사 주최 서울 일러스트 공모전 대상(1997)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올 봄에 연구소 일을 그만두게 되어 지금은 어린이 책에 그림 그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아마 선생님의 밝은 마음과 장난기가 어린이 책 그림과 잘 맞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 다닐 때부터 어린이 책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선생님은 많은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들키고 싶은 비밀』『나는 책이야』『 모자야! 모자야!』『뭐든지 뚝딱뚝딱 수리공 하마 군』『미리 쓰는 방학 일기』『거인들이 사는 나라』『나는 고도슴치야』『도망자 고대국』『롤러블레이드를 타는 의사 선생님』『말박사 고장수』『학교에 간 개돌이 』『삐노끼오의 모험 1, 2 』…….

『거인들이 사는 나라』와『들키고 싶은 비밀』표지 사진과 본문 그림들

어떤 때는 물감으로, 어떤 때는 색연필로, 또 어떤 때는 연필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시지요. 동시집『거인들이 사는 나라』의 표지 그림은 유화 물감으로 그리고, 본문 그림은 연필로 그렸지요. 선생님은 동시를 읽고 느낀 생각을 종이 몇 장에 몽땅 모아 그렸지요. 그렇게 모아 그린 그림들 하나하나는 동시와 어울려 책 속으로 녹아들어 갔고요.『들키고 싶은 비밀』의 책 그림에는 어렸을 적 선생님을 닮은 은결이가 살아 있지요. 그림으로 그렸지만 책에 실리지 않은 그림이 선생님 책상 앞의 벽에 붙어 있기도 합니다.

『모자야! 모자야!』『나는 고도슴치야』표지
고릴라와 장바구니와 새해 인사 카드
『나는 고도슴치야』『거인들이 사는 나라』『모자야! 모자야!』는 마치 어린이가 물감과 풀을 반죽하여 그린 ‘풀 그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유화 물감으로 그린 거예요. 유화 물감은 더디 마르니까 이런 효과를 줄 수 있는 거지요.” 깜박 속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제가 속은 것이 아닌지 모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아이들다운 그림을 그리려 애썼을 테니, 선생님이 바라던 대로 제가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어린이들이 선생님 그림을 좋아하는 걸까요?

성탄을 축하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을 다른 이에게 전할 때도 선생님은 고릴라에게 시켰습니다. 작은 새가 머리에 앉아 있어도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띤 고릴라에게 말입니다. 고릴라는 카드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은, 대형 할인점에서 받아왔다는 까만 장바구니에도 그 고릴라를 그려 넣었습니다. 장난기가 가득하면서도 수줍은 묘한 웃음을 웃고 있는 고릴라가 그려진 가방은 선생님이 무척 아끼는 물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고릴라에게 새해 인사를 부탁하면 너무 힘들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선생님은 여러 작은 동무들을 온통 모아 예쁜 카드의 앞면을 만들고, 그 작은 동무들의 그림자를 모두 모아 카드의 뒷면을 만들었어요. 재미있는 생각과 부지런한 손이 멋진 카드를 만든 것이죠. 아주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것 같다구요? 글쎄요, 누구나 마음과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자기만의 멋진 카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젯소를 칠한 캔과 그려질 밑그림들, 완성품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선생님이 부엌으로 가시더니 하얀 캔을 꺼내 오십니다. 맥주라고 합니다. 하얗게 분칠한 맥주? 또 무슨 장난이 숨어 있는 것일까요? 알고 보니 그 맥주 캔은 화려한 치장을 하기에 앞서 제 몸을 깨끗하게 다듬었던 거예요. 학교 다닐 때 맥주 캔에 그림을 그려 전시한 적이 있는데, 그 작업을 다시 하고 싶어서 맥주 캔에 젯소를 하얗게 발라 두었던 거예요. 하얀 맥주 캔은 선생님이 그려 둔 멋진 그림 옷을 입을 거랍니다. 까만 선으로 그림 옷을 입은 맥주 캔은 다시 또 알록달록 제 그림에 맞는 멋진 색깔 옷을 입을 거구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어린이 그림책 작업을 시작했다는 선생님답게 맥주 캔에도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답니다. 그뿐이 아니랍니다. 선생님은 졸업 작품 전시회 때 포스터를 그리기도 하셨는데, 그 포스터 그림은 지금 선생님의 명함이 되어 선생님과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생님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책상 위의 그림 도구들, 선물 받거나 여행지에서 만난 동무들, 작품을 담아 둔 보물 창고, 스크랩북

선생님 방 작업 책상에는 갖가지 화구가 놓여 있고, 여행에서 사 온 피노키오와 고깔모자, 여행 갔던 친구가 선물한 고양이 그림 병 등 온갖 재미있는 물건들로 가득합니다. 책과 시디가 빼곡이 꽂힌 책장에는 장난꾸러기 인형이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책상 아래에는 선생님이 그린 그림과 이모가 찍은 어린 선생님 사진이 놓여 있구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손등에 풀씨를 얹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답니다. 바로 그 사진 옆에 선생님만의 보물들이 쌓여 있습니다. 여태까지 작업한 책 그림뿐만 아니라 작품 사진까지 고이고이 담아 둔 스크랩북들입니다.


『나는 책이야』 밑그림과 본문 그림들

작년에 나온『나는 책이야』를 작업한 흔적도 곱게 스크랩북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글자 자리를 용수철처럼 표시하고 그림 자리를 잡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책이 빠꼼이 얼굴을 내밉니다. 어떤 밑그림은 그대로 책 그림이 되었고, 또 어떤 밑그림은 자리를 바꾸어 책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이 책 그림을 구상할 때 들고 다니는 앙증맞은 작은 책이 숨어 있는가 하면 밑둥만 남은 나무에서 가지가 솟아 꽃을 피운 그림도 있고, 모자를 쓰고 장난스런 몸짓을 하는 선생님의 자화상도 있습니다. 그리고 싶은 것을 끊임없이 그리는 선생님의 흔적들이 스크랩북 속에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냅니다.

보물 창고 스크랩북에서 나온 꼬마 책과 그림, 선생님 자화상, 어릴 적 선생님 사진

『나는 고도슴치야』를 보면서 ‘다른 나라 풍경을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표현했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요. “처음에『나는 고도슴치야』를 그려 달라는 청을 받았을 때 참 난감했어요. 고슴도치를 표현하는 것도 고민스럽고, 어떻게 해야 고슴도치의 뾰족한 가시를 표현할까 오래 고민했지요. 그러다 물감을 칠하고 선을 그어 보니 괜찮아 보였어요. 그런데 고슴도치가 사는 집이랑 마을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사진으로는 다른 나라 거리도 보고 집도 봤지만 실제로 본 적이 없었으니 어떻게 표현해야 하난 막막하더라구요. 그러다 볼로냐 아동 도서전에 가게 되었지요. 도서전이 끝난 뒤, 유럽 마을을 돌아다녔어요. 그 사람들이 사는 집, 마당을 자세히 살펴보았지요. 그렇게 해서 고슴도치가 사는 집을 그렸어요.”여행을 가서도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까만 생각하는 선생님입니다.

『나는 고도슴치야』본문 그림과 여러 고슴도치들의 모습

선생님은 과연 앞으로 어떤 책을 펴내고 싶을까요? “제가 참 좋아하는 책이 있어요. 국제 도서 전시회에 가서 홀딱 반해 사 온 책인데요, 바로 이 책이에요. 처음에는 그냥 동네 그림이 나오죠. 그 가운데 한 집이 다음 장에 나와요. 그리고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죠. 이야기와 그림이 아주 편안해요. 마치 어떤 사람의 그림 일기를 보는 것 같죠. 저도 언젠가 이런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요.” 편안하고 정다운 그림책, 언제일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아마 편안함 속에 유쾌함까지 담긴 그림 일기를 펴낼 것 같아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책의 본문 그림들

베란다에는 골판지와 종이 상자로 만든 커다란 로봇이 총을 들고 선생님을 지키고 있습니다. 해사한 웃음 덩어리인 선생님은 총을 든 전사가 지키지 않아도 웃음의 마력으로 언제까지나 선생님 스스로를 지켜 나갈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차라리 그 어떤 이도 선생님을 공격할 마음 같은 건 먹지 않을 것 같다는 게 더 맞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공혜조/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여러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 어린이에게 좋은 읽을거리를 권해 주고 싶어서 좋은 어린이 책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어린이』 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좋은 어린이 책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어린이들이 행복에 겨워 웃음 터뜨릴 날을 기다리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