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속 깊은 책 이야기
더불어 책 읽기
책 너머 세상 읽기
열린어린이 선정 이달의 좋은 책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열린 주제 열린 글

[새롭게 보는 다른 나라 그림책]
완전주의자 피터 시스 (Peter Sis)

서남희 | 2002년 08월

그는 망명자. 조국 체코슬로바키아가 철의 장막에 가려져 있을 때 자유를 꿈꾸었네. 재주 많은 아버지를 뒤이어 촬영기사로 일하며 1980년 West Berlin Film Festival에서 The Golden Bear Award를 수상했지. 당은 1984년에 열릴 LA 올림픽을 위해 만화 영화를 찍으라고 미국으로 그를 보냈지. 그리곤 구소련과 동유럽의 올림픽 보이콧. 자유를 원하는 새는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피터 시스
유유상종. 모리스 센닥은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 수 있게 그를 도와 주었지. 그는 『The Whipping Boy』로 Sid Fleischman과 함께 1986년 Caldecott Medal을 받았네. 그리곤 뉴욕타임즈에서 뛰어난 삽화에 주는 상을 다섯 번이나 받고. 『Starry Messenger』는 1997년 Caldecott Honor Book으로, 『Tibet Through the Red Box』로도 1999년 같은 상을 받았지.

그는 완전주의자. 책을 만들 때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려 애쓰지. 사람들은 그의 테크닉을 Pointillism이라고 한다. 점묘법과 비슷하다는 얘기. 남들은 그가 ‘글은 적게, 그림은 아주 자세히 그리는 타입’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글도 길게 쓰곤 하지. 하지만 장면을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더 좋아할 따름.

그는 아티스트. 어린이책도 만들고 삽화도 그리고, 발레 무대도 디자인했지. Washington과 Baltimore 공항에 혹 들르실 일 있으면 그의 벽화를 유심히 보시라. 아, 그리고 그 유명한 영화「아마데우스」의 포스터도 그가 만든 것.

그는 또한 섬세한 아버지. 유화는 독한 냄새가 많이 나지. 결혼해서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들이 집안을 기어다니며 굳어진 유화물감을 만지자 아이들을 염려해 유화대신 잉크를 즐겨 쓰고 고무 도장을 찍네. 밝고 생생한 그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수채화 물감으로 다채로운 색깔을 실험해 보기도 하며. 수채화 물감은 마르는 데 시간이 꽤 걸리지. 그래서 그는 오븐 앞에 수채화 그림을 펼쳐 놓고 요리를 하곤 하네. 그의 그림에선 때론 닭고기 냄새, 소고기 냄새.

『Starry Messenger』의 번역본 『갈릴레오 갈릴레이』 표지와 본문
하지만…….
독창적인 생각으로 인습과 전통의 벽을 깨보려는 용감한 별쟁이,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그린 『Starry Messenger』을 펼치면 닭고기 냄새와 소고기 냄새는 날아가고 애절한 분위기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별이 그려진 포대기에 폭 싸인 갓난아기, 조금 자라서는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땅따먹기, 공놀이, 체조, 굴렁쇠 놀이 등을 하며 놀고 있을 때 홀로 막대기로 땅에 별을 그리며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와 닿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려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하며, 자신을 전혀 이해해 주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때론 얼마나 큰 슬픔이 치밀어 오를까요.

『Starry Messenger』본문에서


『Starry Messenger』본문에서


천동설 대신 지동설을 주장하는 자신을 받아들여 주지 않았던, 당시의 최고 권력인 교회는 갈릴레오를 자그마한 집에 가둬 놓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나가면 안 되는 거지요. 어렸을 때 막대기로 별을 그리며 놀던 갈릴레오는 이제 나이 들어 지팡이를 집고 좁은 뜰에 서 있군요. 그러나 그의 뒤로 펼쳐지는 광막한 하늘, 그리고 둥근 별 하나.

『Starry Messenger』의 본문
마침내 수백 년이 지난 후, 교회는 갈릴레오를 용서했고, 그가 아마 맞을 거라는 점을 인정했어요. (대단히 외교적인 용어죠? He was probably - in fact, surely and absolutely - right.)

마지막 장의 그림. 검푸른 밤하늘, 이탈리아 도시의 실루엣이 보이고 무채색의 어느 건물 한 꼭대기에 노랗게 보이는 방. 누군가가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고 있군요. 그는 또 어떤 슬픈 사연을 담게 될 별쟁이인지…….

『Tibet: Through the Red Box』에서 작가는 별만큼이나 아득히 떨어져 있는 티벳이라는 먼 나라로 여행을 하지요. 하지만 이 책에서 돋보이는 것은 Peter의 여행이 아니라 먼먼 1950년대에 동유럽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북경을 거쳐 티벳으로 우연히 가게 되었던 어떤 사진 기사 - 바로 Peter의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아버지의 일기와 길 떠난 뒤 한동안 소식이 끊긴 그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어린 아들의 몽롱한 꿈이 교차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Tibet Through the Red Box』 표지
뉴욕에 살고 있는 아들은 어느 날 프라그의 아버지로부터 돌아오라는 편지를 한 장 받습니다. 황급히 프라그에 돌아온 아들. 그리운 낡은 옛집, 아버지의 서재 책상 위에는 붉은 상자 하나가 그를 기다리고 있지요. 녹슨 열쇠로 그것을 열어 보니 그 안에 있는 것은 아버지의 일기. 부스러지기 쉬운 낙엽을 만지듯 날강날강한 종이를 조심스럽게 뒤적이며 이제는 색 바랜 아버지의 글씨와 세밀한 그림들과 지도를 보면서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1950년대, 낯선 땅 히말라야(히말라야는 박완서 님의『모독』에 나온 표현대로라면 ‘칠성이가 미국 가서 리차드가 된’ 이름이고, 티벳에서는 ‘초모랑마’라고 합니다. 입에서 굴려 보세요. 정말 아름다운 발음이지요죠? ‘하얀 베일을 쓴 여신’이라는 뜻입니다.)에서는 중국이 티벳으로 가는 길을 내고 있었지요. 그곳에 동원된 머나먼 나라의 사진기사 아버지. 공사현장이 무너지면서 길을 잃은 아버지가 ‘The Dark Mountain’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꿈길처럼 아련합니다. 그런가 하면, 프라그에 남아 있는 어린 아들은 아버지를 상실한 아이. 가족을 묘사하는 그림에 아버지의 모습은 실루엣으로만 그려집니다. 크리스마스 때까지 돌아올 거라는 아버지는 소식도 없고……. 운동을 잘못하다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아이는 침대에만 누워 있는 신세가 됩니다. 아, 그러나 뜻밖에 그는 침대맡에서 누군가가 조근조근 이야기해 주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와 아들의 손을 잡고 티벳이라는 신비한 나라, 그곳의 괴물들, 신비로운 호수 등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이었지요.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 신비한 곳에 대한 이야기를 믿어 주지 않지요. 붉은 상자 안에 가둬 버린 아버지의 젊은 시절, 꿈, 여행……. 아들도 자기 일상에 함몰되며 어른으로 자라버립니다.

하지만, 뒤늦게 옛집에서 붉은 상자를 열어 그 시절을 불러낸 아들. 헤어져 있었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아이의 어린 시절이 이제 슬픔의 강을 건너 화해를 하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산책하는 장면의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져 내릴 듯…….

『Madlenka』의 번역본 『마들렌카』표지와 본문
작가는 슬픔의 강을 건너기 이전의 어린 시절,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빨이 흔들리는 어마어마한 사건을 통해 세상을 담은 꼬마 여자아이를 그린『Madlenka』에서는 아주 경쾌하고 발랄한 내용을 선사합니다. 넓은 우주 속의 행성, 그 행성의 한 대륙, 한 나라……. 이렇게 좁혀들어가다 보면 어느 집 창가에서 비가 내리는 길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지요. 회색 벽, 흐린 분위기에서 갑자기 보라색 옷을 입은 밀색 머리의 아이가 환하게 드러납니다. 바로 이 순간, 아이는 앞니가 흔들리는 걸 느꼈지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에 터질듯이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아이. 모두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싶었거든요. 노란 우산을 들고 아이가 ‘내 이가 흔들려요!’ 라고 신나게 외치는 순간 노란 우산은 뱅뱅 돌아가고 네모난 도시도 둥글게 변해 빙빙 돌아갑니다. 이제 지구를 돌아돌아 여행을 떠나는 거지요.

『Madlenka』 본문, 프랑스 문화
아이는 프랑스에서 온 빵가게 주인 가스통 아저씨를 만나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아저씨는 프랑스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요. 그림책답게 이 모든 내용은 텍스트 한 마디 없이 그림으로 처리됩니다. 개선문, 어린 왕자, 왕가를 상징하는 태양……. 어둑어둑한 환상의 세계에서 빨간 색으로 강렬하게 처리된 것은 바로 실타래에서 풀려나오는 실……. 바로 이야기의 실타래를 상징하지요. 이제 아이는 인도에서 온 싱 아저씨, 이탈리아에서 온 차오 아저씨, 독일에서 온 그림 아줌마,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에두아르도 아저씨, 이집트에서 온 학교 친구 클레오파트라, 아시아에서 온 캄 할머니를 차례로 만나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닙니다. 오른쪽 페이지가 그 나라나 대륙을 나타내는 이웃이 나오고 왼쪽 페이지에는 아이의 눈높이로 본 그 나라에 대한 작은 정보가 귀엽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 장 다시 넘기면 화려한 상상의 세계…….

상상이란 언젠가는 끝나는 운명을 안고 있지요. 빙빙 돌던 아이의 지구 역시 다시 네모난 도시로 변합니다. 하지만 대개 차가운 현실로 돌아오는 어른들과는 달리, 꼬마 여자아이는 새로운 기쁜 현실을 맞이하는군요. 어디 갔다 왔냐는 엄마 아빠의 물음에 아이가 신나게 하는 말, “음……. 온 세상을 여행했어요. 그리고 이가 빠졌어요!”

작가가 오븐 앞에서 그림을 말리면서 스며들었던 닭고기 냄새, 소고기 냄새가 이 그림책에서야 책장을 넘길 때마다 흐뭇하게 풍겨나오는 듯합니다. 아, 고소해!
서남희 / 개인 홈페이지 ‘The Cozy Corner(http://cozycorner.new21.net)’에서 영어 그림책 이야기를 엮어 올리고 있습니다. 서강 대학교와 서강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UCLA Extension에서 TESOL(영어 교수법)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 10년간 살면서 Haslett Adult Education의 영어 클래스에서 보조교사, 이스트 랜싱에 있는 ‘한마음 한글학교’의 외국인반 교사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미국 유치원 교육에서 활용하고 있는 ‘꼬마책(Mini-Books)’을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구성한『아이와 함께 만드는 꼬마 영어그림책』을 만들었답니다. 그림책, 소설책, 시를 좋아하고, 북한산, 도봉산, 지리산, 속리산, 소백산 등 바위산을 좋아하며, 무엇보다 잠 자는 것을 제일 좋아한답니다. 스스로 뾰족뾰족하다고 말하면서 사랑하는 남편과 딸과 더불어 누구보다 둥글고 넓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