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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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찾아서]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 송언

공혜조 | 2002년 09월

지하철 2호선 뚝섬 역.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송언 선생님이 어린이들과 하루를 보내는 경일 초등 학교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 한갓진 2학년 3반 교실에서 선생님은 아이들의 방학 과제물을 정리하여 이름표를 붙이고 있습니다. 학급 대표로 전시할 과제물을 전시 장소로 옮긴 선생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아이들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검은머리가 흰머리로 변하는 동안 선생님은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하지는 못했습니다. 십 년 남짓 학교를 떠나 있었던 선생님은 복직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송언 선생님
“98년 9월 5일에 복직했어요. 그래서 담임을 못 맡고 6학년 자연 교과를 담당했지요. 해직되던 89년에는 6학년을 맡고 있었는데, 한 반이 60명이었어요. 한 주일에 서른 두 시간씩 수업했지요. 요즈음은 한 반에 35명에서 40명 남짓인데다 네댓 시간은 교과 담당 선생님이 맡아 주시니 환경은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아이들과 생활하기는 훨씬 어려워진 것 같아요. 80년대만 해도, 비록 획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요소가 교실에 남아 있긴 했어도, 그때는 아이들의 동심이 살아 있어서 수월했어요. 선생님이 야단치면 반성하고 잘못을 시인할 줄 알았는데, 요즈음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요. 그때 아이들이 순수했지요.

『사라진 세 악동』 표지
그렇지만 학부형들은 이런 학교 현실을 잘 모르고 있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요. 『사라진 세 악동』을 읽고 학부형들이 보이는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지요. 학교 선생님들은 책의 내용에 대해 공감을 많이 하는데, 학부형들은 이런 동화를 자식에게 읽히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해요. 작년에 제가 6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나, 우리 학교의 다른 아이들은 아주 재미있어하더라고요. 그런데 학부형들은 부담스러워해요. 그래서 지금 중학교 1학년인 우리 아들에게 읽어 보라고 했죠. 애들이 읽기에 이상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빠, 뻔한 얘긴데 뭐가 그래요?’ 하더군요.”

『사라진 세 악동』은 김형석과 양순모 두 어린이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학교 철봉대 밑 모래에 가방을 묻고 집을 나간 세 악동 한영웅, 안기대, 양순모의 이야기와 그 친구들이 왜 집을 나가고 학교에도 오지 않는지 까닭을 알아내려는 김형석의 이야기가 나란히 펼쳐지는 보기 드문 소재와 구성을 가진 동화입니다.

“감초 양순모의 시각으로 갔을 경우, 한쪽 면만 보여 주게 된다는 아쉬움 때문에 그렇게 구성했어요. 두 세계가 동떨어져 있는 것보다 두 시각이 교차하면 양쪽이 공감하는 부분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실 세 악동 같은 아이들이 많은 건 아니고 한 반에 한두 명 있거든요. 모범생으로 살아가는, 혹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런 친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제시하고 싶었어요.”

『사라진 세 악동』 본문
그럼 선생님은 왜 하필 고학년 악동 이야기를 썼을까요? 또 왜 하필 세 악동 모두 집안에 문제가 많은 아이로 그려져 있을까요? 아름답고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소재로 택할 때 선생님의 마음 또한 참 무거웠을 것 같습니다.

“악동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거든요. 어른들이 그런 세상을 만들기 때문이지요. 제가 해직될 때만 하더라도 교사들이 몸과 마음을 바쳐 그런 아이들을 좋은 곳으로 이끌 가능성이 높았지요. 하지만 요즈음은 그런 악동을 끌어안으려는 계층이 훨씬 엷어진 것 같아요. 심지어 부모까지도 그런 아이들을 ‘버린 자식’ 취급하려 들어요.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닫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아이들 세계와 통하는 문을 닫아 버리는 거죠.

제가 보기에 아이들이 상처받고 비뚤어지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가정이 망가지는 거예요. 서구처럼, 이혼과 재혼이 보편화되어 아이들끼리, ‘너네 아빤 몇 번째 아빠니?’ ‘난 세번째 아빠, 넌?’ 하는 식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없는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의 이혼이나 한쪽 부모의 가출은 아이에게 심한 상처를 주지요. 전통적인 가치관이 아직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도 부모도 집안 내력을 잘 드러내려 하지 않아요.

사실 아이나 부모가 교사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교사로서도 그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알기 어렵죠. 별거나 가출 등의 경우는 거의 드러나지 않아요. 자신이 결혼 생활을 견딜 수 없어 집을 나가 버리는데, 아이를 배려할 기운은커녕 자신을 추스릴 기운조차 없는데, 학교에 와서 ‘우리 아이를 잘 보살펴 달라’고 할 리 없는 거죠.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에는 더욱 그렇고요.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려 하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서로 환경이 비슷한 친구를 귀신같이 알아내서 같이 몰려 다녀요.

학부형들이 이 책을 읽고 왜 하필 이런 소재냐는 말씀들을 자주 하세요. 그렇지만 저는 『사라진 세 악동』의 경우, 문학적 성과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교육적인 관점에서 이런 이야기를 꼭 써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사실 우리 어린이들은 『사라진 세 악동』에 나오는 어린이들보다 더 힘겹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현실에 있는 어린이의 모습을 그려야 하는 사명감이 선생님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한 모양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현실의 아이들을 반영한 작품을 발표하기 오래 전부터 옛이야기 작업을 참 많이 했습니다. 『강림도령/궤네깃또』『아기 장수 우뚜리』『꾀보 막동이』『다자구야 들자구야 할머니』『꽃들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바리왕자』 모두 선생님이 쓴 우리 옛이야기들입니다.

『강림도령/궤네깃또』표지와 본문 『꾀보 막동이』『아기 장수 우뚜리』표지

『다자구야 들자구야 할머니』『꽃들이 들려주는 옛이야기』표지와 본문

“아이들에게 ‘옛이야기 들려줄까? 재미있는 동화 들려줄까?’ 하고 물으면 열에 여덟은 ‘옛이야기요!’라고 해요. 학년이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말이죠. 우연찮게 한겨레신문사 출판부에서 옛이야기 책을 펴낸다기에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우리 신화를 재정리하는 것이 뜻깊다고 생각했거든요.”

최근에 출간된 『흰 사슴을 타고 간 여행』에는 선생님이 쓴 옛이야기나 어린이 역사 소설에 나오는 이미지가 간혹 등장합니다. 오랫동안 옛이야기와 어린이 역사 소설을 쓰시면서 자연히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된 건 아닌지 조심스레 여쭈니 『흰 사슴을 타고 간 여행』이 선생님이 쓴 어떤 옛이야기 책보다 일찍부터 선생님 마음을 차지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오래 전부터 이재복 선생이 판타지 동화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오륙 년 전에 김중철 선생께 부탁해서 우리 나라 판타지 동화 몇 편을 안내 받아 읽어 보았어요. 그런데 내가 바라던 그런 판타지 동화가 아니더군요. 서양의 판타지 작품으로는 『호비트의 모험』을 제일 좋아해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었을 때는 ‘이렇게 잘 쓰는 작가가 있었구나.’ 하고 감탄했지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고 판타지 동화를 쓰려면 이 정도는 써야 되지 않겠는가, 동화에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나는 어쨌든 조선 놈인데, 쓰고 싶지도 않고, 서양식 판타지를 쓸 이유도 없고 해서 우리 식의 판타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지요.

『흰 사슴을 타고 간 여행』 표지
그러다가 서사무가를 보니 ‘한국적 판타지의 전형이 바로 여기에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당들은 보통 무당이 되기 전에 무병을 앓는데, 내림굿을 하면 그 병이 씻은 듯이 낫고 신을 모시게 되지요. 무병을 앓으면서 무당들은 저승을 갔다 오게 되는데 저승이란 것은 바로 초현실의 세계이자 판타지의 세계이지요. 그래서 이쪽에서 한국식 판타지에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서정범 교수가 펴낸 『무녀별곡』을 읽게 되었어요. 그때 모두 여섯 권으로 묶여 나왔는데, 그 책에서 서정범 교수가 이영희 선생의 동화 한 편을 보기로 들면서 그 동화가 서사무가와 가장 맞아떨어진다고 언급해 두었더군요. 우리 식의 판타지 동화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되었지요.

『무녀별곡』에는 무당들이 판타지 세계에 갔다온 사실도 기록되어 있었어요.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동화라는 옷을 입힌 게 바로 『흰 사슴을 타고 간 여행』입니다. 무당들이 무병을 앓으면서 초현실의 세계로 갔다 온 부분들을 참고해서 몇몇 기본 틀을 마련했지요. 놋대야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이고, 흰 사슴은 처음에는 흰 말을 흰 사슴으로 바꾼 거고요.”

비록 책이 나온 건 요즈음이지만 선생님은 꼬박 오 년 동안 묵히고 삭혀서 『흰 사슴을 타고 간 여행』을 세상에 내보낸 겁니다. 하지만 오래 사랑하여 쓴 작품인 만큼 작품을 안고 아파했던 시간도 그만큼 길었을 것입니다.

『흰 사슴을 타고 간 여행』 본문
“문학이란 게 경험과 상상력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흰 사슴을 타고 간 여행』의 경우에는 제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데 작품으로 쓰려 하니 기가 막혔어요. 초고를 써 놓고도 이게 제대로 쓴 건지, 남들이 공감해 줄지 걱정이 앞섰어요. 그래서 또 한 일 년 지나 다시 꺼내 보고 고쳐 보았다가 아닌 것 같아서 또 덮어두고……. 그렇게 오 년이 흘러갔지요. 제 나름대로 사랑을 많이 쏟은 작품이지요. 제 입장에서 보면 『흰 사슴을 타고 간 여행』은 소설을 쓰던 제가 동화로 넘어온 계기가 된 작품이지요.”

우리 어린이들은 어린이 역사 소설이나 옛이야기를 쓴 작가로 송언 선생님을 알고 있지만 선생님은 동화를 쓰기 전 소설을 썼고 시를 썼습니다. 글과 선생님이 어떻게 만나 오늘까지 같이하게 되었을까요?

선생님은 고등 학교 1학년 때 문학 병에 걸려 학교를 자퇴하고 집에 틀어박혀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 지냈답니다. 청계천 헌 책방에서 문학지 과월호를 사서 보면서 작가가 되는 꿈을 키우던 선생님은 ‘이렇게 길게 살다가는 인생이 망가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검정고시를 봤어요. 춘천 교육 대학 1학년 때 강원 일보 신춘 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군대 갔다와 복학한 2학년 여름 방학에는 방학 내내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다 글을 쓰고, 글을 쓰다 책을 읽고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바로 그해 중앙 일보 신춘 문예로 등단하고, 대학을 졸업하여 초등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선생님은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방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책꽂이
“그때만 해도 소설을 쓰고 싶은 열정 때문에 아이들이 잘 안 보였어요. 교사인 나로서는 무척 고통스러웠지요. 이른바 문학을 한다는 선생이 아이들에게 좋은 동화도 못 들려주고, 좋은 책도 못 읽어 주었어요. 아이들이나 나나 다 그런 면에서는 불행했지요. 갈등 속에서 여섯 해를 교단에 섰어요.”

그렇게 여섯 해를 교단에 섰던 선생님은 아이들과 기나긴 이별을 하게 됩니다. 전국 교직원 노동 조합에 가입한 교사들을 정부에서 해임시켰기 때문이지요.

“여섯 해 동안 교육 현실을 바라보면서 많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교내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차례 설득도 하고 싸워도 보았지만, 그럴수록 적막해졌어요. 혼자서 부당한 세력에 맞서 싸우다 보면 ‘노조’를 안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지요. 그러다 해직을 당한 거고요.

그때 천 오백 명 가량의 교사가 해직되었는데, 그 가운데 시인만 오륙십 명이더라고요. 해직당한 교사들 가운데 시인 · 소설가 · 동화 작가 · 평론가들이 모여 교육 문예 창작회를 만들었으요. 우리는 소설 · 시 · 동화 · 평론의 네 분과를 만들어 활동했지요. 우리들은 교육 문예 운동의 한 방법으로 삶의 동화 운동을 하자고 뜻을 모았고 이중현 선생과 이재복 선생, 나 셋이서 그 운동을 이끌었어요. 그래서 동화를 쓰게 되었고, 처음 쓴 작품이 「오늘 재수 똥 튀겼네」죠. 동화를 쓰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죄스러워했던 마음이 씻기는 것 같았어요. 언젠가 복직하면 아이들에게 동화를 많이 들려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때만 해도 어린이 책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을 때였기에 동화 쓰는 일은 더욱 의미가 컸어요.”

이재복 선생님이 우리 교육 기획 위원으로 있던 1995년에 어린이 역사 소설을 써 보자고 제안을 해서 『고구려』를 쓰게 되었고, 그 즈음부터 선생님은 『흰 사슴을 타고 간 여행』과 긴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흰 사슴을 타고 간 여행』은 내가 소설가에서 동화 작가로 가는 터널이 되어 준 작품이에요. 1997년부터 나는 내 마음에서 소설을 지웠어요. 동화 쓰는 데 전념했지요. 현정권이 들어서자 나는 멋진 동화를 쓰는 좋은 선생님으로 아이들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지요. 만약 이 작품을 쓰지 못했다면 나는 『사라진 세 악동』처럼 소설과 동화의 경계선에서 계속 머뭇거렸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흰 사슴을 타고 간 여행』은 나를 동화 자가로 거듭나게 한 중요한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쓰면서 ‘나는 동화 작가’라고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었지요. 소설 쓰는 일은 교직과 병행하기가 벅찼는데, 동화 쓰는 일은 복직하여 교사 생활을 하는 게 도움이 되었어요. 움직이는 원단과 생활하니 서로 상승 효과가 켰지요.”

『오늘 재수 똥 튀겼네』 표지
올해 오월에 나온 『오늘 재수 똥 튀겼네』에는 「제비야 제비야」「줄무늬 다람쥐」「병태와 콩 이야기」「오늘 재수 똥 튀겼네」「할아버지 새」 다섯 작품이 실려 있는데, 선생님 반 아이들이 제목을 정했다고 합니다. 출판사 편집자가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6학년 교실로 찾아와 아이들에게 어떤 제목이 좋으냐고 설문 조사를 했는데 두 아이만 「줄무늬 다람쥐」에 표를 주고 나머지 아이는 모두 「오늘 재수 똥 튀겼네」에 표를 던졌다고 하네요. 「오늘 재수 똥 튀겼네」는 선생님이 처음으로 쓴 동화이고 「제비야 제비야」나 「줄무늬 다람쥐」는 지금 선생님이 살고 있는 집에서 겪은 일을 동화로 쓴 작품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댁 처마에는 제비집을 짓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병태와 콩 이야기」는 물을 주지 말아야 할 실험용 콩에 물을 주어 콩을 살리는 병태 이야기입니다.

제비집이 있던 흔적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선생님의 집 처마에는 제비가 집을 지었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달라진 건 옆방 아줌마가 이사하고, 이제는 그 방을 선생님 내외분이 쓰시는 겁니다. 그 방에 선생님의 책상이 있고 벽에는 선생님의 책꽂이가 있습니다. 컴퓨터를 켜니 갑작스레 들이닥친 손님에게 화사하게 웃어 보이던 사모님과 선생님이 모니터에서 환히 웃고 있습니다. 군자동 ‘어린이 대공원 만남의 장소 1번’에서 처음 만나고 두 번째 만났을 때 “당신은 내 아내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선생님의 말에 담긴 마음을 받아들인 사모님과 선생님은 그해 결혼하여 오늘까지 다정하게 지내십니다. 해직 교사로 살림이 어려워졌을 때에도 불평 한 번 않았던 사모님은 선생님의 절대적인 후원자입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고, 여러 모임과 출판사 일 등으로 바쁘실 텐데 선생님은 언제 작품을 쓰시는 걸까요?

컴퓨터 앞의 선생님
“네 시 반에 퇴근해서 집에 오면 다섯 시쯤 돼요. 그러면 여섯 시쯤에 저녁 먹고 소주 한 잔 마시고 일곱 시 뉴스를 보다가 잠이 들어요. 여덟 시 반이나 되면 일어나 씻고 열두 시 정도까지 집중해서 글을 쓰지요. 모임 같은 데 다니고 하다 보면 열흘 가운데 이레 정도 글을 써요.”

선생님이 밤늦도록 글을 쓰는 동안 사모님은 집 가까이 얻은 작은 작업실에 나가 ‘우리옷’을 연구합니다. 사모님은 문화 센터에 ‘우리옷’ 강의도 나가고, 작품 활동도 하면서 지내십니다. 학교를 10년이나 떠나 있었기에 선생님 댁 살림은 그다지 형편이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엄마와 아빠의 살아가는 모습을 큰마음으로 이해하는 딸과 아들이 있어 마음은 부자입니다.

학교 교정에서 사모님과 함께한 선생님
“어려운 가운데서 잘 자라 준 아이들이 고맙지요. 제 나이가 이제 마흔 일곱, 조금 두려운 마음도 있고, 또 나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을 해야 하거든요. 부자? 좋은 작품? 존경받는 사람? 과연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보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맑게 살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 인생에서 마지막 추한 것이 늙은이의 욕망이거든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돈이란 들어온 뒤에 사람이 망가지든 망가진 뒤에 돈이 들어오든 둘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을 가지고 추하지 않고 맑게 살 수 있다면 좋은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전에는 소설가로 이름을 내거나 시골 학교에 박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슴속에 키우곤 했는데, 요즈음은 인생을 맑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만 하며 살아요.

성공한 예술가에는 천재형이 있고 대기만성형이 있는데, 천재형 예술가는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고, 대부분의 예술가는 대기만성형이죠. 『큰소리꾼 박동진 이야기』를 쓸 때 판소리에 관련된 자료는 거의 다 봤는데, 판소리 200년사에서 천재라 할 명창이 딱 두 명 있더라고요. 를 가왕(歌王)의 칭호를 받은 송흥록과 천하명창이라고 일컬어지는 임방울 두 사람이지요. 그 책을 준비하면서 판소리를 500곡은 더 들었는데, 역시 천재는 하늘이 섣불리 내려보내지 않는 것 같더군요. 또한 천재는 혜성처럼 나타나는 거예요. 임방울도 시골 촌놈이 단 한 번 노래를 불러 하루아침에 모든 명창을 제치고 천하명창이란 이름을 얻었지요. 한 단계 한 단계를 밟으면서 이름을 알리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게 아니라 하루아침에 가장 높은 자리에 그 이름이 올라 널리 알려지는 것이죠.

『큰소리꾼 박동진 이야기』 표지
내 인생을 돌이켜보니 죽었다 깨어나도 천재형이 아니더군요. 일단 천재는 젊어서 죽어요. 임방울도 그렇고 이상도 서른에 저 세상으로 갔지요. 그렇다고 천재형 예술가만 필요하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기만성형 예술가도 있어야지요. 대기만성형 예술가의 특징은 가도가도 끝이 안 보이는 거예요. 내일은 연꽃이 필까? 희망을 가져 보지만 가도가도 진흙구덩이만 펼쳐져 있을 뿐이죠. 30년을 노력해도 ‘저 사람은 안 돼, 저 사람 아직도 저러고 있나? 이제 어지간하면 그만 두지.’ 이런 말만 듣기 십상이에요.

그래서 나도 천재형이 아닌 대기만성형 예술가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어렵고 힘든 길, 바리공주가 다녀온 저승길 같은 험한 길을 걷는 사람이 작가로서 오래가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면서 후배들에게 작은 밑거름이라도 되자는 생각으로 살아요. 거듭나는 삶을 사는 거죠. 그래서 저는 대기만성형이야말로 멋진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때는 내가 이렇게 더디 가도록 하는 게 하느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담금질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죽을 때까지 의심하지 않고 문학이라는 길을 갈 수 있을까?’ 스스로 물어 보기도 하지요.

‘죽음에 이라는 병은 절망’이라고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살아가면서 좌절하는 건 괜찮은데 절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박동진 명창처럼 50대 후반에라도 일어설 수 있는 자기 믿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내 작품에도 하느님의 손길이 한 번은 스칠 것이라고 믿어요. 그러면 천재형 예술가가 쓰는 작품과 같은 작품이 세상에 나올 거예요. 수없이 좌절하되 절망까지는 가지 말자. ‘꺼진 불씨도 살펴보는’ 끈질긴 자기 믿음을 가진다면 자기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하느님의 손길이 스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희망 때문에 나는 글을 쓰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요.”

『하느님께 보내는 편지』 표지
초등 학교 높은 학년 아이들이 읽을 만한 동화가 없다는 말이 자주 들리는 요즈음, 선생님은 이미 사춘기에 들어선 5 · 6학년 어린이들의 세계를, 거칠고 반항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여 서슴없이 행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 주며 선생님은 이 땅의 어른들에게 묻습니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앞서가는 현실을 외면한 채 어른들은 언제까지 아이들 뒤를 따라갈 작정’이냐고 말입니다.

아버지의 얼굴로 아이를 볼 수 있는 작품을 쓰려고 한다는 선생님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부쩍부쩍 자라는 우리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랑스런 눈길로 들여다봅니다. 『내일은 맑을 거야』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하느님께 보내는 편지』로 제목을 바꾸어 다시 펴낸 혜민이네 동네 이야기는 서초동 비닐 집에 살다가 집이 헐리는 아픔을 겪고 뿔뿔이 흩어지는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은 이번에 『왕언니 망고』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 아이들의 마음결을 따스하게 보듬었습니다. 『사라진 세 악동』처럼 가정 환경 때문에 고통받아 제 마음을 다스리기 힘겨워하는 여자 어린이가 주인공입니다. 이미 초고를 써 둔 「나쁜 아이」또한 집 나간 소녀가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곧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고구려』와 『아, 발해』 표지
원래 시리즈로 만들려 했던 어린이 역사 소설은 『고구려』와 『아, 발해』에 이어 세 번째 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역사 이야기는 자료를 많이 봐야 할 뿐 아니라 정확한 자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처음에 ‘고조선’부터 쓰려 했는데, 자료가 부족해 고구려부터 시작하게 된 이 시리즈 또한 머지 않은 시간에 세 번째 권이 선보일 것이라고 합니다. 어린이 역사 소설은 동화 작가로서, 선생님으로서, 또한 학부형으로서 선생님이 특별한 애정을 갖고 하는 작업입니다. 선생님은 또한 앞으로 제대로 된 우리 옛 소설을 쓰고 싶으시답니다.

“전래 동화는 많이 나왔는데, 「춘향전」이나 「심청전」「홍길동전」 같은 우리 옛 소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잖아요? 이런 이야기들은 널리 알려지기는 했지만 요즈음 아이들의 눈높이와 정서에 맞게 재미있고 맛깔스럽게 씌어진 책이 그다지 많지 않아요. 「이생규장전」 「전우치전」……. 이런 고전 소설들에는 요즈음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상상력이 들어 있거든요. 제대로 정리해서 요즈음 아이들의 정서에 맞게 다시 쓰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아무리 못해도 열 권 가량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때로는 고달파하며,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분노하면서 행복을 그리며 살아가는 골목으로 들어가시는 선생님 내외분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섭니다. 우리의 발자취, 우리의 정서, 우리의 전통, 우리의 현실을 넓은 마음으로 보듬고 동화를 쓰는 선생님 같은 분이 있기에 우리 어린이들은 행복하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밝힌 도시의 불빛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별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어린이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도 그렇게 숨어 빛나는 밤입니다.
공혜조/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여러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 어린이에게 좋은 읽을거리를 권해 주고 싶어서 좋은 어린이 책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어린이』 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좋은 어린이 책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어린이들이 행복에 겨워 웃음 터뜨릴 날을 기다리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