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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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보는 다른 나라 그림책]
심스 태백(Simms Taback)

서남희 | 2002년 10월

심스 태백
네모난 모양의 끈끈한 해태 미루꾸 캬라멜. 입에 넣으면 단맛이 끈적끈적하게 혀에 감기곤 했지요. 캬라멜이 캬라멜인 건 알겠는데, ‘미루꾸’라는 게 ‘milk’라는 걸 전혀 몰랐던 어린 시절. 하긴, 애들한테 ‘미루꾸’나 ‘milk’나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저 많기만 하면 되지요.

며칠 전에는 출판사 편집자에게서 “‘도무송’ 알아봐야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슨 말이어요?”“아, 그거요? 왜, 책보면 페이지마다 구멍 나 있는 거 있죠? 그거 제작하는 기계가 ‘Thompson’상표거든요. 그걸 일본식으로 발음해서‘ 도무송, 도무송’그래요.” 후후……. 그러니까 ‘die-cut’기법으로 만든 책들은 ‘도무송’을 써서 만든 거라 이거죠. ‘Thompson’이든 ‘도무송’이든 ‘die-cut’이든 무슨 상관입니까, 잘만 만들면 되지요.

그 ‘도무송’을 아주 재미있게 책에 이용한 작가가 있습니다. 콧수염이 태백산 속 덤불 같은‘심스 태백 (Simms Taback)’. 어릴 때부터 그림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하는데, 그 될 성 부른 싹을 부모가 다 알아봤겠지만, 정작 예술가인 아빠는 뒷짐지고 있었고, 엄마가 미술 레슨에 아이를 끌고 다녔습니다. 게다가 학교 선생님이 팍팍 밀어 줘서 ‘High School of Music and Art’에 어영부영 들어가게 되었지요. 낯익은 동네와 친구들, 근처 학교를 떠나 낯선 곳으로 가는 게 싫었지만, 그곳에서 심스 태백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술 쪽으로 흥미가 있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재능은 매우 다양한 다른 아이들을 만나게 된 거지요. 그리 하야 이 아이는 아, 삶에는 뭔가 다른 게 있구나, 예술이란 정말 즐길 만 한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는 것.

『옛날 옛날에 파리 한 마리를
꿀꺽 삼킨 할머니가
살았는데요』 표지
그래서 심스 태백은 예술가를 직업으로 삼았습니다. 빈대 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는 그래픽 디자이너 일, 광고사의 아트 디렉터, 카드 비지니스 (Greeting Card Business)를 해서 해결하고, 몇 년에 한 번씩은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렸지요. 그 일을 아주 사랑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이 아저씨는 자기만의 책을 만들고 싶어졌어요. 즉, 글도 내가, 그림도 내가, 만들고 파는 건 남이, 뭐 그런 거죠. 그런데 그림은 자신 있었지만 글쓰는 건 만만치 않아 고민하다가 1940년대부터 여기저기서 불리던 작자 미상의 노래, “There was an old lady who swallowed a fly”를 듣고 ‘아, 이거다!’ 하며 머리를 탁 쳤지요.

파리를 꿀꺽 삼킨 할머니가 있었네 왜 파리를 삼켰는지 난 몰라. 아마 그 할머닌 죽을 거야.

거미를 꿀꺽 삼킨 할머니가 있었네. 거미는 배 안에서 이리저리 뒤챘지. 파리를 잡으려고 거미를 삼킨 거지. 그런데 왜 파리를 삼켰는지 난 몰라. 아마 그 할머닌 죽을 거야.

도무송(die-cut) 기법
이렇게 시작해서 할머니 뱃속에 새, 고양이, 개, 소, 말이 차례차례 들어가고 마지막엔 할머니가 이 세상과 작별하는 걸로 끝나는 노래입니다. 심스 태백은 이걸 소재로 잡고 도무송(die-cut) 기법을 이용하기로 했지요. 만들기는 쉽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건 한참 작업하다가 어느 날 도서관에 가 보니 이 책이 이미 나와 있지 않겠어요? 그것도 한 권이 아니라 무려 세 권이. 게다가 현재 인쇄중인 게 두 권. 『흥부와 놀부』같은 작자 미상의 이야기란 저작권이 없으니 한 군데서만 나오지는 않지요. 일은 이미 한참 진행 중이니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심스 태백은 계속 작업을 하여 마침내 일을 마칩니다.

이 책은 열두 번 가까이 거절당했습니다. 여기가 물어 보면 못 내겠소, 저기 가 물어 봐도 이건 이미 많이 나왔잖소. 작가로선 여태 했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바이킹 출판사의 눈 밝은 편집자가 ‘오케이’ 하는 덕에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제목이 『흥부와 놀부』라고 다 똑같은 책인감?

이 책은 디테일이 아주 많은 책입니다. 작가는 디테일에 관심이 많은 사서들의 취향도 고려했다고 합니다. (머리도 좋아!) 그럼 한 번 책을 펴 볼까요?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하품을 하다 입 안으로 파리가 들어간 걸 모르고 꿀꺽 삼켰겠지만, 그날 재수가 무지 없었던 이 할머니, 그림책에서 보면 동그란 구멍이 나 있고(할머니의 배), 그 안에 파리 한 마리가 보이는군요. 다음 페이지로 넘기면 온갖 콜라주가 다 있는데, 꼭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게 신문의 가십 기사 “웬 할머니가 무엇무엇을 삼켰다.”투로……. 옆에서는 동물들이 수근수근. 파리를 먹었대. 왜 그랬을까? 난 몰라. 아마 금방 죽을걸? 그리고 다음에 삼켜질 운 나쁜 동물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점점 커지는 할머니의 배

그 다음엔 파리를 잡으려고 거미를 삼켰죠. 할머니 배도, 구멍도 점점 커집니다. 거미 다음엔 새가, 새 다음엔 고양이가, 고양이 다음엔 개가, 개 다음엔 소가, 소 다음엔 말이…. 처음엔 날씬했던 할머니가 나중엔 책 거의 한 페이지를 다 차지할 정도로 몸이 커지지요. 그때마다 나오는 신문 기사도 재미있고 동물들의 수군거림도 재미있습니다. “Perhaps she'll die.”는 라임으로 계속 나오고요.

마지막으로 말을 삼키고 “She died of course.”로 마무리됩니다. 마지막 페이지엔 너무나 웃기게 생긴 비석 하나. “Here / Lies an / old / lady” 그리고 그 위엔 Moral: Never swallow a horse.
말을 삼키고는 결국 죽고 마는 할머니, 할머니의 비석

노래 내용도 익살맞지만, ‘die cut’기법은 궁금한 마음을 자아내고, 신문기사 콜라주는 디테일을 매우 잘 표현하지요. 게다가 수군거리는 동물들은 마치 인간만 가십을 퍼뜨리는 줄 아냐?
우리도 할 줄 안다, 하고 말하는 것 같군요.
이 책은 뉴욕타임즈에서 어린이 책에 주는 상 등 꽤 많은 상을 받았는데, 특히 일러스트레이션과 디자인이 아주 절묘하다는 평을 받으며 1998년‘Caldecott Honor Book’으로 선정되었죠.

내친 김에 심스 태백은‘Joseph Had a Little Overcoat’를 내서 2000년엔 칼데콧 메달을 받지요.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표지
이 책은 원래 Yiddish folk song인 “I had a Little Overcoat”라는 노래를 변형시켜 만들었대요. ―Yiddish는 동유럽계통의 유태인들이 쓰는 언어랍니다―
이 작가는 노래만 보면 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생기나봐요. 이 책 끝에 아예 기타 코드까지 얹어서 악보가 나와 있어요. 그림은 온갖 종류의 콜라주 + 수채화물감 + 과슈 + 연필, 잉크 등을 써서 만들었고 ― 그린 게 아니라 만들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 디테일을 들여다보는 맛이 그만입니다. 물론 ‘도무송’기법도 썼고 텍스트는 최소한 그림으로 모든 걸 표현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폴란드계 유태인의 삶과 문화가 잘 녹아 있지요.

낡은 오버코트를 입고 있는 요셉 아저씨, 이제 그 오버의 수명이 다 되었나 봐요. 한 장을 넘기면 그 오버는 재킷으로 변해 있지요. 앞장에 나온 구멍은 여기에서 보면 재킷 모양이죠. 기분 좋은 표정으로 장에 간 Joseph. 달걀 바구니를 들고 나온 아줌마도 있고 닭을 들고 나온 젊은이도 있고 잘 차려 입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한 가득.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자세히 보면 “Rabbi from Chelm Visits Kazrilevke”라는 기사가 보입니다. 이로 미루어 짐작컨대 Joseph은 유태인이군요. 물론 이 작은 동네는 유태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고…….

재킷도 또 낡게 마련. 이번엔 그걸로 조끼를 해 입지요. 흥겨운 시골 잔치. 요셉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신나게 춤을 추고 있네요. 아코디언, 클라리넷, 밴죠가 흥겹게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즐거운 표정. 춤을 추는 신부는 볼이 통통하고 빨간 이팔 청춘 아가씨. 레이스와 꽃으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전통 의상인 듯한 옷을 입고 춤을 추고 있습니다.

오버코트가 재킷으로, 조끼로

저런, 그 조끼도 이젠 낡아 버렸어요. 풍경은 Joseph의 집 안. 여러 액자들과 편지 겉봉, 촛대 등을 보면 Joseph이 폴란드 출신의 유태인인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흠……. 탁자 위엔 큼직한 가위. 실, 빨간 바늘꽂이, 골무. ― 우리 나라 건 가죽으로 만들잖아요. 여기 건 스텐으로 만들었답니다. 선물 가게에선 도자기로 만든 것들을 팔지요. ― 액자에 써 있는 재미있는 글귀 하나.
“When the coat is old, only the holes are new.”

그 조끼는 목도리로 둔갑하고, 목도리는 넥타이로 둔갑합니다. 새로 만든 넥타이를 매고 꽃을 한 다발 옆구리에 끼고 도시의 길거리에서 여동생 식구들과 서로 반기는 요셉 아저씨. 삼층, 사층짜리 집들의 창문마다 사람들 사진이 꼴라주되어 있습니다.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유태인인데, 여기선 도시답게 여러 인종의 얼굴이 보이는군요. 서울 쥐도 한 마리 보이고, 바람에 굴러다니는 신문엔 “Fiddler on Roof Falls off Roof”라는 기사. ‘지붕 위의 바이올린’―유태인들을 담아낸 이야기죠―을 한번 비틀어 본 기사 제목이 익살맞습니다. 자, 여기까지 내용을 보면 재미있는 패턴이 있습니다. 오바, 재킷, 조끼 등이 낡았을 때는 다 조셉 아저씨의 개인 생활(농장에서 일을 하거나 집안에 있는 것)이 배경이고, 새로 무언가를 만들어 입고 나선 건 다 사회 생활이 배경이군요.
목도리가 넥타이로

집안에서 넥타이로 만든 손수건을 목에 냅킨처럼 걸고 레몬을 띄운 뜨거운 차를 마시는 Joseph. 절절 끓는 화로. 양탄자 위에서 잠자는 개. 액자엔 또 재미있는 글: Better to have an ugly patch than a beautiful hole. ― 덧대고 기운 자국이 웃길지라도 그게 이쁘기만 한 구멍보다는 낫다는 소리죠.
또 손수건은 낡아 헝겊을 덧댄 단추로 바뀌고 어디서 편지가 왔는지 편지도 한 장. 바닥에 떨어져 있습니다. ― Dear Joseph, / Please remember that a house with no windows is no house and a garment without buttons is no cost.

창문이 없으면 집이라 할 수 없듯이 옷에도 단추가 안 달려 있으면 옷이라 할 수 없다. 뭐 그런 얘기. 여기서 잠깐 자기 옷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분이 계시겠죠? 자, 단추를 다세요, 단추를.

손수건이 단추로

그러다가 아저씨는 그만 단추를 잃어 버렸습니다. 돋보기까지 동원해서 온 바닥을 헤집으며 단추를 찾아보지만 소용이 없네요. 이제 남은 건 없습니다.

이렇게 끝나나 보다, 했는데 다음 장에선 뜻밖의 유쾌한 반전.

So Joseph made a book about it. Which shows……. you can always make something out of nothing.
즉, 아저씨는 거기에 관해 책을 쓰기로 했죠. 무에서 유를 빚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책……. 이 마지막 부분이 정말 멋지지 않아요? 온갖 물감, 종이 조각, 사진, 붓, 펜 등을 앞에 놓고 열심히 책을 만들고 있는 이 아저씨. 제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네요.

이 책은 사실 1976년에 랜덤하우스에서 이미 한 번 나왔던 책입니다. 그때는 사실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컬트 북 정도로 여겼지요. 1999년에는 독자들이 좀 더 포용력이 생겼는지 아니면 미국 교육이 다문화 교육으로 바뀌어서 그랬는지, 바이킹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 이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지요. 음……. 아저씨, 당신은 성공한 겨.

제가 이 아저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림이 유쾌하고 익살맞고 반전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의 손자 손녀들은(으윽, 벌써 할아버지라니!) 자기네 할아버지가 맥도루나루도의 해피밀(Happy Meal ― 어린이 메뉴) 상자를 최초로 디자인하고 거기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인정해 준다네요. 자,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으세요? 팍팍 몸을 낮춰 꼬마들의 눈 높이로 내려가세요. 얼른얼른.
서남희/개인 홈페이지 ‘The Cozy Corner(http://cozycorner.new21.net)’에서 영어 그림책 이야기를 엮어 올리고 있습니다. 서강 대학교와 서강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UCLA Extension에서 TESOL(영어 교수법)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 10년간 살면서 Haslett Adult Education의 영어 클래스에서 보조교사, 이스트 랜싱에 있는 ‘한마음 한글학교’의 외국인반 교사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미국 유치원 교육에서 활용하고 있는 ‘꼬마책(Mini-Books)’을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구성한『아이와 함께 만드는 꼬마 영어그림책』을 만들었답니다. 그림책, 소설책, 시를 좋아하고, 북한산, 도봉산, 지리산, 속리산, 소백산 등 바위산을 좋아하며, 무엇보다 잠 자는 것을 제일 좋아한답니다. 스스로 뾰족뾰족하다고 말하면서 사랑하는 남편과 딸과 더불어 누구보다 둥글고 넓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