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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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었어요]
새 길을 만들어 가는 열정과 뚝심

정해왕 | 2002년 11월

이태 전 식구들과 함께 우리 땅 서쪽 바다의 갯벌에 나간 적이 있었다. 초등 학교에 들어가 첫 여름 방학을 맞이한 딸 아이는 두어 살 위의 사촌들과 함께 질퍽질퍽한 갯벌 위를 좋아라고 쏘다녔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참 동안 갯벌 탐사를 하던 딸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게 물었다.

『갯벌이 좋아요』표지
"아빠, 그런데 꽃발게는 어디 있어요?"

"꽃발게?"

"그림책에 나오는 꽃발게 말예요. 갯지렁이도 안 보이고……."

딸아이 얼굴에는 실망하는 빛이 뚜렷했다. 그 해 여름 우리가 갔던 곳은 이미 세상에 알려질 만큼 알려져 도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하도 잡아가니까 어디 깊숙한 곳에 꼭꼭 숨어 버린 모양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날 딸아이가 말한 그림책은 보림출판사에서 펴낸 유애로 글·그림의 『갯벌이 좋아요』였다. 나는 딸아이 덕분에 그 책을 꼼꼼하게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이 책은 어린 독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식 그림책'의 좋은 본보기였다.

첫째, 알찬 정보를 담으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갯벌이 좋아요』를 꼼꼼히 뜯어보면, 이 얇은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을 들였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편집자는 기획위원들과 오랜 조사와 토의 끝에 책의 구성 방식과 내용을 정하고, 글과 그림을 책임진 작가는 갯벌의 생태에 대해 부지런히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면서 원고를 완성해 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원고는 그 분야의 생태 전문가에게 넘겨져 꼼꼼한 감수를 받았을 것이다. 어느 단계에서든 만약 사실과 다른 점이 발견되면, 즉시 고치거나 다시 만드는 수고를 결코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갯벌이 좋아요』본문


둘째, 그 정보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한 권의 지식 그림책이 아무리 알찬 정보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불분명하거나 알기 어렵게 되어 있다면, 그 책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적어도 『갯벌이 좋아요』에서는 그런 걱정을 접어두어도 좋다. 흰 구름을 잡으러 가는 꽃발게의 갯벌 여행을 통해 갯벌에 살고 있는 다양한 동물들의 생태를 알기 쉽고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꼼꼼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가 있다. 꽃발게가 갯지렁이의 발을 헤치고 나가다가 '백하고 스물두 번째'에서 숫자를 잊어버리는 대목이 나오는데, 정말 그림에서도 꽃발게가 커다란 집게발로 가리키는 갯지렁이의 발이 앞쪽에서부터 122번째 발이다. 믿기지 않는 분은 손수 세어 보시라.

『갯벌이 좋아요』본문


셋째,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표현하고 있다. 알찬 정보에 명확한 설명,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 적절한 표현이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좋은 지식 그림책이 된다. 표현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는 그 책을 읽는 독자들의 수준과 연관되어 있다. 유치원생과 초등 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그 또래 아이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갯벌의 생태를 재미있는 이야기와 버무려 알기 쉽게 표현해 놓았다. 따라서, 아이들은 주인공 꽃발게와 함께 흥미진진한 여행을 하다 보면, 갯벌에 사는 여러 동물들의 생태를 저절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책의 끝 부분에 엄마랑 아빠랑 함께 보는 '갯벌의 숨겨진 이야기'를 덧붙여 놓음으로써, 필요한 경우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보충 설명을 해 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갯벌이 좋아요』본문


나는 『갯벌이 좋아요』뿐만 아니라 같은 출판사에서 펴내는 전통 문화 그림책 시리즈인 '솔거나라'에 속한 여러 책들에도 다정한 눈길을 보낸다. 이미 남들이 내놓은 길만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걷는 걸음을 따라서 새 길이 나리라고 믿는 책 일꾼들의 열정과 뚝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록 그 걸음걸이는 고단할지라도, 이 땅의 새싹들에게 새 길을 열어 주는 일은 갯벌을 지키는 일만큼이나 소중하지 아니한가.
정해왕/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으며, 갯벌 아이들을 글감으로 쓴 작품 <개땅쇠>로 1994년 MBC창작 동화 대상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카페 '어린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cafe.daum.net/childbooks)'의 대표 노릇을 하면서, 어린이 책 전문 작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쓴 책으로는 『지혜가 하나씩 30가지 꾀이야기』, 『그림 성경 이야기』, 『강아지 마루』 등이 있으며, 『오른발 왼발』, 『난 안 잘 거야』, 『헨리에타의 첫 겨울』 등의 외국 그림책을 우리 글로 옮기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