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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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작가를 찾아서]
아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림 작가 강우근

공혜조 | 2003년 03월

강우근 선생님
수유리 4.19 국립묘지로 가는 길, 골목 안 다세대 주택의 옥상에 선생님의 작업실이 있습니다. 옥상에 올라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니 가까이는 북한산 도봉산에 멀리는 불암산까지 아련하게 병풍으로 섰습니다. 간이 부엌을 지나 자그마한 작업실로 들어섭니다. 앉은뱅이 책상, 의자가 딸린 책상, 커다란 복사기, 작은 접는 상 하나가 오밀조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이 쓴 동시에 곡을 붙여 펴낸 보리 어린이 노래마을 『딱지 따먹기』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선생님의 그림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림들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책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무척 부끄럽고 쑥스러운 모양입니다. 작업실에 앉아 한참이나 다른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어렵게 책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태까지 동시집이나 동요집을 보면 동시나 동요에 시화를 그려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여태까지 만든 책과는 다르게 흐름이 있는 책으로 만들어 보자고 얘기가 되었어요. 과연 어떤 흐름을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흐름을 줄까 고민하다가 도시 산동네와 농촌, 탄광의 세 부분으로 시를 나누어서 각 부분마다 같은 캐릭터로 잡아 그림을 그렸어요.
시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 그림을 그리는 내내 그림이 시를 훼손하는 게 아닐까 해서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이런 작업은 어렵긴 하지만 참 재미있어요. 퀴즈 푸는 것처럼요.”
『딱지 따먹기』 본문 그림들

강한 외곽선과 군데군데 판화 느낌이 나는 요소들을 신기해하는 방문자에게 선생님은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우선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먹으로 그림의 테두리를 그리지요. 앞면이 마르면 뒷면에 색을 입히는데, 색을 입힐 때는 담채처럼 슬쩍 얹어요. 색이 짙게 들어가면 답답하거든요.

『박박 바가지』나 『호랑이 뱃속 구경』의 표지도 같은 기법을 써서 그린 그림들입니다. 작업할 때는 어떻게 재미있게 그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해요. 이야기를 읽고 제 마음 속에 인물들이 잡히면 장면을 구성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요. 인물을 잡을 때는 탈이나 장승, 민화에 나온 인물의 표정을 참고하지요.”

『딱지 따먹기』『박박 바가지』『호랑이 뱃속 구경』표지

“봄, 여름, 가을에도 행사를 진행하여 사계절 자연 탐험을 해 볼 생각입니다. 저는 초등 학교 다닐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어요. 혼자 채집도 많이 했지요. 그때는 삼화출판사에서 나온 식물도감을 보고 꽃이나 풀, 나무의 이름을 확인하곤 했어요.”

복사기가 놓인 쪽 벽에는 말린 정성이 돋보이는 자귀나무 잎사귀가 붙어 있습니다. 잎맥을 따라 나란히 두 장씩 난 잎사귀들이 밤이 되면 마주 붙어 잠을 자는 습성이 있어 마당에 심으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진다는 믿음을 주게 된 나무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식물을 좋아해서 전자 우편 주소도 붉나무로 정한 모양입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책갈피에 꽃잎이나 나뭇잎을 모으는 데 빠졌던 것 같아요. 붉나무는, 파괴된 숲이 극상림으로 가는 과정에서 선구 식물 역할을 하는 나무지요. 그래서 붉나무는 산과 밭이 만나는 곳에서 곧잘 볼 수 있어요. 망가진 곳을 처음 치고 들어오는 선구 식물이고 열매의 맛이 짜요. 옛날 산촌에서는 붉나무 열매로 간을 맞추기도 했다는 말이 있어요.

선생님의 식물 채집 공책과 새 관찰 기록 공책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꽃잎이나 나뭇잎을 잘 그렸어요. 아마 그때 그 기억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생태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서른이 넘어서 생물학과나 농대에 가서 다시 공부를 시작해 볼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산림감독관 시험을 봐서 산림감독관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어찌 된 일인지 그런 삶이 부러웠어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다 식물을 공부하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 선생님 댁으로 가 보니 나무나 풀을 공부하면서 선생님이 채집한 식물과 그 식물의 특징 따위를 기록한 오래 된 공책이 여러 권 있습니다.

선생님이 채집한 갖가지 식물의 눈들과 곤충들

어떤 공책에는 온갖 새가 그림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어떤 상자를 여니 직접 채집한 곤충이 가득합니다. 또 다른 상자에는 온갖 식물의 눈을 채집한 것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가지 하나 하나를 가리키면서 이름을 말씀하시지만 나는 것이 적은 방문자는 그 이름을 미처 기억 속에 담지 못합니다. 마치 동식물학자의 방에 온 것 같습니다.

책으로 가득한 방, 특히 각종 도감류가 가득한 방의 책꽂이 한쪽은 자연 다큐멘터리 비디오 테이프가 정연하게 꽂혀 있습니다. 식물과 동물에 대한 선생님의 사랑과 탐구심이 물씬 느껴집니다.

생태 관련 책들, 도감류, 자연 다큐멘터리 테이프가 꽂힌 책꽂이들

“제가 원래 사소하고 작은 부분에 잘 끌리거든요. 궁금증이 생기면 그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생각해요. 그래서 동물이나 식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도감들을 사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도감만으로는 궁금증을 다 해소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선생님들을 찾아다녔어요.

95년 경, 그러니까 생태 공부를 막 시작할 즈음에는 두레 생태 기행에 따라 다녔어요. 두레는 ‘우리의 자연과 문화를 소중히 생각하는 시민 모임’이죠. 이 모임에서 김정환 선생님을 만났고, 그 뒤에는 자연생태연구소 에코마당의 류창희 선생님을 만났지요. 두 분 다 제게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식물의 눈을 떼어낸 자리를 자세히 보면 참 재미있는 표정들이 많이 있어요. 이런 것들도 책으로 꾸미고 싶고 자연 생태를 다룬 그림책도 만들고 싶은데, 제가 아직 그럴 능력이 안 되는 것 같아요.”

풀이나 나무에 대한 탐구도 역시 마지막에는 그림으로 이어집니다. 채집한 나뭇잎에 눈과 코와 입을 그려 아주 재미있는 나뭇잎으로 변신시켜 놓기도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그림장이의 모습을 봅니다.

나뭇잎에 그린 재미있는 표정들
“어릴 때부터 나보다 잘 그리는 친구들을 보면 왜 그런지 그렇게 부럽더군요. 공부 잘하는 친구는 전혀 부럽지 않았는데, 그림 잘 그리는 친구는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저는 워낙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어서 그림 그린 것을 남에게 잘 안 보여 주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다닐 때 화장실을 갔다 오니 친구들이 내가 그린 만화를 꺼내 보고 있더라고요. 화가 나서 그 만화를 다 찢어 버렸어요. 꼬박 한 달 걸려 작업한 것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며 찢었는지 모르겠어요. 그 뒤로는 그림을 별로 안 그렸어요. 그 일을 겪은 뒤로는 그림 그리는 게 시들해졌어요. 어릴 적부터 일기를 참 열심히 썼는데, 역시 그림일기였죠. 어른이 되고 보니 가방으로 하나 가득이었어요.

그런데 96년에 감옥에서 나와 찾아보니 다 없어졌어요. 아마 아버지께서 나와 관련된 물건이라 내게 더 큰 해가 돌아올까 봐 다 치우셨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그건 참 안타까워요.”

작업 책상 위에 놓인 도감류와 간단한 화구들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미술에 대한 선생님의 재능은 숨길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고등 학교 때 미술 선생님께서 덩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고 조소를 전공해 보라고 해서 선생님은 대학에서 조소를 공부했습니다.

“저는 창동에서 나고 자랐어요. 제가 나던 1963년에 창동은 서울로 편입되었어요. 저를 낳을 때 어머니께서 직접 탯줄을 끊었다고 하시더군요. 어머니께서는 여덟 살에 고아가 되어 강인하게 사셨어요.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하셨지요.

어머니는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시면서 형과 나를 사립 초등 학교에 보냈어요. 그런데 사립 초등 학교에 다니면서 저는 자격지심을 심하게 가졌던 것 같아요. 다른 애들은 너무 잘사는데, 우리 집만 못살았거든요. 그렇게 공들여 키운 자식들이 모두 반체제 운동에 참여하여 수배 생활을 하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자 1986년부터 민가협 활동을 하셨지요. 평생 힘들게 사셔서 그런지 전신 마비로 고생하시다가 재작년에 세상을 뜨셨어요.”

미술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선생님이지만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어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어린이 책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십 년 남짓 되었습니다.

“졸업 후 한동안은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1993년 3월, 서른이 막 넘었을 때였지요. 최호철 화백과 함께 박생광 선생 전시회에 갔는데, 박 선생님의 그림을 보니 다시 그림을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이 재고 뭐 할 거 없다. 그렇게 하는 거야. 사람이란 그렇게 살아야지. 그냥 하는 거지 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그간에 하던 일도 정리했던지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을 떠올리며 다시 그림을 그려 보자고 마음먹었어요. 박생광 선생님은 여든 여섯 되시던 1985년에 별세하셨는데, 여든이 다 되어서 민화를 연구해서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 오륙년 사이에 얼마나 그림을 많이 그렸는지 몰라요. 정말 빛나는 작품들이죠. 그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람은 모름지기 무와 성실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무는 매사에 욕심을 버리고 사심을 버리고 청정의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고, 더불어 온 정성을 다하는 성실성이 필요한 것이다.’틈날 때마다 되새겨 봅니다.”

『불의 이용』 『재주꾼 오형제』『도둑 나라를 친 새신랑』표지

『불의 이용』은 선생님이 처음으로 그림을 그린 어린이 책입니다. 그 책을 보여 주시면서 무척이나 부끄러워하십니다. 다음으로 『재주꾼 오형제』라는 그림책에 그림을 그렸는데, 종이에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양감이 풍부하게 느껴집니다. 조소를 공부해서 그랬을까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일을 할까 생각한 선생님은 지점토로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장영실』은 표지뿐 아니라 본문까지 모두 지점토로 작업을 했습니다.

『도둑 나라를 친 새신랑』의 그림은 『재주꾼 오형제』의 그림과 비슷한 재료와 방법을 써서 그렸습니다. 그림을 보면 특이한 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종이에 과슈로 바닥칠을 하고 유채 파스텔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는 마카 펜으로 테두리 선을 그렸다고 합니다.

“『어찌하여 그리 된 이야기』는 종이에 수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펜으로 테두리 선을 그렸지요. 전래 동화에 그림을 그리는 건 참 재미있어요. 이야기에 어울리는 사람을 만들어 보면서 수채로 그리고 과슈로 덮기도 하여 그렸어요.”

『어찌하여 그리 된 이야기』표지와 본문

1998년에 결혼한 선생님은 나무가 태어나자 나무를 기르는 데 온 힘을 쏟습니다. 연년생으로 단이가 태어나자 하루 종일 나무와 단이를 보살피며 육아 일기를 씁니다. 나무가 태어났을 적에는 나무의 얼굴을 그린 공책 갈피에 꽃잎을 끼워 두었습니다. 나무가 태어나던 날 피어 있던 꽃이라고 합니다.

단이가 태어난 날 기록에는 단이 얼굴을 그리고 여러 가지를 빼곡하게 써 두었습니다. 처음부터 육아 일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게 아니라 아이가 몇 시에 우유를 얼마나 먹는지만 기록하다가 점점 말이 덧붙고 그림이 덧붙어 멋진 육아 일기가 되었습니다.

아이를 업고 쩔쩔매는 아빠의 모습 옆에는 “더위에 짜증난 나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쉬지 않고 울고불고 칭얼거린다. 잠잠해지는가 싶으면 이내…….”라고 씌어 있기도 하고 등산 갔던 길을 그림으로 그린 옆에는 “북한산 대동문까지 올라갔다 왔다. 우리 아기의 첫 산행. 엄마는 힘이 들었지만……”라고 씌어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일기의 중간중간에도 역시 식물을 관찰한 기록이 세밀하게 적혀 있습니다.

선생님이 쓴 육아 일기들

아이 기르는 일에 푹 빠진 선생님은 열다섯 달 동안 나은희 선생님과 함께 나무와 단이를 기르며 살뜰한 육아 일기를 썼습니다. 두 아이를 같이 낳아 길렀듯이 선생님 부부는 앞으로 어린이 책 일을 함께 해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어린이 책이 아닌 다른 여러 매체에도 작업을 했는데, 색한지를 섬세하게 잘라 기업체의 사보 표지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연하장을 만들기도 했고요. 어떤 작업이든 엄청난 집중력과 섬세함이 겸비되어야 하는 그런 작업들입니다. 또한 지금도 격주로 나오는 『노동자의 힘』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깨한 자연 탐험 프로그램과 사보 표지, 연하장


1999년 11월에 그림을 열심히 그리려 마음먹고 작업실을 구했는데, 어머니께서 쓰러지셔서 또 일 년을 어머니 병간호에 보냈던 선생님, 섬세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지난 선생님이기에 이 세상 누구보다 다정했던 어머니를 간호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찾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그 모든 날들이 그림으로 살아날 날만 남았습니다.

스스로 아직 덜 자란 아이라 말씀하시는 선생님은 아주 어릴 적 풀잎과 꽃잎에 마음을 뺏겼던 것처럼 천진난만한 나무와 단이와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또한 선생님의 내면에 있는 아이에게 앞으로도 계속 마음을 빼앗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빼앗김에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은 없겠지요. 뺏길 수 있는 만큼 온통 아이에게 마음을 뺏겨 우리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며 그 기쁨으로 한 세상을 살아갈 것 같습니다. 망가진 자연 환경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붉나무처럼 선생님은 나무와 단이, 아니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그 천진한 마음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신의 열매를 우리 아이들이 소금으로 요긴하게 쓰게 하겠지요.
공혜조/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여러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 어린이에게 좋은 읽을거리를 권해 주고 싶어서 좋은 어린이 책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어린이』 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좋은 어린이 책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어린이들이 행복에 겨워 웃음 터뜨릴 날을 기다리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