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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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보는 다른 나라 그림책]
날자, 다시 한 번 날아 보자꾸나―데이비드 위스너

서남희 | 2003년 11월

자기 전에 어떤 아이는 꼭 동생과 싸웁니다. 어떤 아이는 꼭 물을 마시겠다고 하고요. 또 어떤 아이는 꼭 오줌이 마렵다고 하죠. 더러 어떤 아이는 재미있는 그림 벽지를 들여다보며 상상 속에 빠져 들기도 합니다.

데이비드 위스너
꼬마 데이비드 위스너는 상상 속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날마다 새로이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꼬마 데이비드 위스너의 집은 선사 시대의 정글이 되기도, 우주 공간 속에서 떠도는 행성이 되기도 했지요. 또 이 꼬마가 좋아한 것은 바로 백과 사전. 디테일이 풍부한 사전 속의 그림들을 보면서 어린 데이비드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졌답니다.

몸과 마음이 커 가면서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미술사로 풍덩 뛰어든 그는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거쳐 달리, 마그리트, 지오르지오 드 치리코 등의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그림에 푹 빠지게 되지요. 그러나 그는 ‘그림’보다는 ‘그림을 엮어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훨씬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마련해 준, 떡갈나무로 만든 커다란 도안용 테이블 앞에 앉아 Slop the Wonder Pig 처럼 글자 없는 만화 책들과 드라큘라가 휙휙 지나가는 The Saga of Butchula같은 무성 영화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네모 칸의 예술 작품인 만화와 한 컷 한 컷 이어져 나가는 영화의 묘미를 알고 실험에 옮긴 거지요.

개구리가 연잎을 타고 날아다니는 『이상한 화요일』(Tuesday)은 바로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거의 글자 없는 그림책으로, 만화의 칸을 알맞게 이용한 그림책이랍니다.

그런데 왜 하필 개구리냐고요? 이 아이디어는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었어요. 데이비드 위스너는 1989년에 만화 잡지 Cricket의 3월호 표지를 맡게 되었는데, 이 때의 주제가 ‘성 패트릭의 날’과 ‘개구리’였습니다.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의 성인으로, 상징색은 녹색입니다.) 개구리 역시 녹색이죠. 데이비드 위스너에게 성 패트릭의 날은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흐느적거리며 축축한 개구리들은 매력 그 자체였죠. 그래서 National Geographic을 보면서 통통한 개구리, 비쩍 마른 개구리, 울퉁불퉁한 개구리, 미끈미끈한 개구리들을 스케치해 놓았답니다.(평소 그의 아이디어는 모두 스케치 북에 담겨 있다고 하는군요. 우리 나라 개그 맨 전유성은 평소에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아무데다 써 넣기 때문에 방바닥이고 벽지고 온통 낙서투성이이지만 절대 지우면 안 된다던데, 데이비드 위스너에겐 스케치 북이 그 역할을 하는군요.)

자, 그리긴 그렸는데 이 개구리들을 어떤 식으로 다루어야 할지 몰랐던 그는 그림을 끄적이다가 평평한 연잎에 개구리 한 마리를 앉혀 놓았습니다. 어? 그런데 이게 가만히 보니 하늘을 나는 비행 접시 위에 앉은 것 같네? 그래서 독자들은 그 달의 Cricket 잡지 표지에서 수많은 개구리들이 연잎을 타고 날아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그는 이 개구리들을 잡지 표지에만 놔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림책을 하나 만들고 싶었던 거죠. 그림책 이야기를 어떻게 엮어 나갈지 고심하던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자, 내가 개구리라고 치자. 그런데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하고 싶지?’ 어렸을 때 만화책을 많이 본 저력이 여기서 나옵니다. 바로 악동 개구리들이 나타난 거지요.

『이상한 화요일』(Tuesday)표지와 본문

악동 개구리들이 날아다니는 『이상한 화요일』(Tuesday)에서 첫 장은 세 칸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칸은 각각 독립적인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한 곳의 풍경을 클로즈 업하고 있지요. 첫 칸은 저녁놀이 지는 늪의 풍경을 멀리서 잡았고(이 때 멀리 통나무가 보입니다), 두 번째 칸은 하얀 달이 풀섶에서 슬그머니 솟아 올라오는 광경을 보여 주고(통나무가 제법 가까워집니다), 세 번째 칸은 하얀 보름달이 점점 크게 떠오르면서 뭔가 수상하고 의심스러운 분위기로, 술렁거리는 듯한 분위기에 불안해 하며 이곳저곳을 바라보는 도마뱀 한 마리를 클로즈 업하고 있습니다(통나무가 화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다음 장은 양쪽 페이지로 펼쳐진 큰 칸. 보름달을 뒤로 하고 연잎을 탄 개구리 부대가 날아옵니다. 다음 장의 세 칸에서는 연잎을 타고 날아가는 개구리들이 마치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로 찍은 듯이 빙빙 돌아갑니다.

개구리들은 동네를 휩쓸며 날아다니지요. 밤 11시 21분에 샌드위치를 먹는 남자에게 손을 흔들면서 지나가기도 하고, 늦은 밤까지 널려 있던 빨래에 휩싸이기도 하고, 배트맨처럼 그 빨래들을 망토처럼 휘날리며 날아가기도 합니다. TV를 보다 꾸벅꾸벅 조는 할머니 곁에 날아와 에워싸고는 긴 혓바닥으로 리모컨을 조정하며 진지하게 TV를 보는 개구리들. 개를 보고 연잎 위에서 급브레이크를 밟고 도망가는 개구리. 이들은 곧 인(?)해전술로 개를 공격합니다. 새벽이 오고 멀리서 여명이 보이는 장면에서 개구리들은 모두 다 다시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지요. 물론 다음 화요일에는 다른 동물들인 돼지들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개구리들이 악동이 되는 날을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로 잡았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서양의 보름달은 충만하고 신령스런 이미지를 가진 우리 나라의 보름달과는 전혀 다릅니다. 달의 형용사형은 ‘lunar’이고, 거기서 나온 단어 ‘lunatic’은 ‘미친’이란 뜻입니다. 보름달은 바로 ‘광기’를 의미한답니다. 아, 알겠다. 개구리들은 그래서 초승달이나 반달이 뜨는 밤이 아니라 보름달이 뜨는 밤에 바로 그 요상한 달빛을 받고 그렇게 평소와 다른 행동을 했던 것이었군요?(그러나 다음 화요일에도 왜 또 보름달이 뜨는지? 위스너의 화요일에는 늘 보름달이 뜨나 보죠?)

그럼 왜 제목이 하필 일요일도 아니고, 월요일도 아니고, ‘화요일’일까요? 작가는 ‘Tuesday’가 요일 중에서 가장 우스워 보이는 단어라서, 또 그 단어가 개구리들에서 연상되는 어떤 특성-축축한 데서 뭔가 배어나오는 ‘ooze’라는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서 그랬다네요. 자, 한 번 길게 발음해 보세요. ‘Tues-ooze’. 뭔가 찐득찐득한 게 배어 나오는 것 같지요?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상상력을 키워 나갑니다. 초등 학교 1학년 꼬마들이 작가에게 편지를 썼다지요. “우리 반에서도 책을 만들었는데, 제목을 ‘수요일’로 했어요. 그 책에는 수학 시험지들도 그렸고, 가위들이 날아다녀요.” 아마 수요일에 수학이 들었나 보죠?

아, 그리고 위스너는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처럼 자기 얼굴을 그림책에 넣는 것을 잊지 않았어요. 늦은 밤에 샌드위치를 먹는 남자는 바로 자기 자신의 얼굴을 본따 그린 거랍니다.

『구름 공항』(Sector 7)표지와 본문

이 책을 끝낸 후, 작가는 다시금 책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에 빠져 듭니다. “왜 내가 날아다니는 것을 내려가게 했지? 일단 뭔가 날아 올라가는 게 먼저인데 말이야.” 그리고 그는 꼬마 아이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 오르는 책, 『구름 공항』(Sector 7)을 만들어 냅니다.

뿌옇게 안개가 낀 창문에 물고기들과 문어 모양을 손가락으로 그리는 아이 ─ 이 창문은 집의 창문도 아니고 학교의 창문도 아니고, 바로 스쿨 버스의 창문이랍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바로 다음 장이면 노란 스쿨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이 보이거든요.

안개가 자욱한 날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현장 학습을 간 꼬맹이들. 그 중에서 빨간 모자, 빨간 목도리, 빨간 장갑을 낀 꼬마가 장난꾸러기 구름과 친구가 되어 구름 발송 본부에 가서 모양이 비슷비슷한 따분한 구름들 대신 물고기, 문어 등 여러 가지 바다 생명체들의 모양으로 구름이 날아가게 해 주는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글자 없는 그림책입니다. 하지만 줄거리가 매우 뚜렷해서 아이들이 책장을 넘기면서 즐겁게 따라갈 수 있지요. 꼬마는 구름 공항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다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돌아가, 스쿨 버스를 탄답니다, 스쿨 버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한번 보세요. 정말 멋있지요? 안개가 개어 가는 연파랑 하늘에 물고기와 문어 모양 구름이 떼를 지어 둥둥 떠다니고 있으니까요. 집안에 갇혀 있는 고양이들은 창문을 지나가는 물고기 구름을 잡으려 신이 났습니다.(먹이가 떠다니는데 그러지 않을 고양이 있음 나와 봐!) 맨해튼 빌딩들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바다의 진짜 물고기들까지도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물고기들을 보며 펄쩍펄쩍 뛰네요. 아이들은 스쿨 버스를 타고 재미있게 바라봅니다. 스쿨 버스는 달려가고 하늘에는 물고기 구름, 스쿨 버스 옆에는 빨간 모자를 쓴 장난꾸러기 구름. 구름 공항의 직원들은 이제 블루 프린트에 다시금 구름 도안을 합니다. 무슨 모양인지 알아맞혀 보세요!

이 책에서 데이비드 위스너는 빨간색과 모자를 중요한 모티프로 삼고 있습니다. 안개 낀 날답게 그림색이 전체적으로 흐릿한데, 이 아이만 빨간색 모자, 목도리, 장갑을 끼고 있죠. 남달리 생동감 있게 세상을 본다는 뜻일까요? 그리고 모자를 쓰고 있을 때는 날지 못하는데(그건 현장 학습을 온 다른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 ― 다들 모자를 꾹꾹 눌러 쓰고 있지요), 이 아이가 모자를 장난꾸러기 구름한테 빼앗긴 순간부터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구름타고 하늘을 날아오르게 되니까요.

“그런데, 데이비드 위스너 씨. 왜 그렇게 ‘하늘을 나는 것’에 유난히 집착하세요?”
“아, 그건 말이죠. 상상이 이끄는 대로 가다 보면 결국 하늘을 날게 되더라고요.”

June 29, 1999 표지와 본문

June 29, 1999 역시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뭐가요? 이번엔 야채들 차례지요. 과학 프로젝트 숙제를 위해 어느 여자 아이가 오랫동안 실험을 계획해서 풍선을 열기구 삼아 하늘로 채소 씨앗들을 날려 보냅니다. 외계의 조건이 채소들의 생장에 어떤 효과를 미치나 알아 보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한 달이 지난 6월 29일이 되자 엄청난 크기의 순무들이 로키 산맥 위를 날아다닙니다. 이뿐인가요? 오이, 리마콩, 호박, 양배추 가지가지 거대한 채소들이 하늘을 날아 땅에 내려앉지요. 사람들은 호박을 파서 집도 만들고, 거대한 감자 조각을 하기도 합니다. 여자 아이는 집 앞에 떨어진 거대한 브로콜리 앞에 앉아 하늘을 보며 궁금해 합니다. 이 모든 건 내가 날려 보낸 씨앗들이 아니었는데, 대체 누가 보낸 걸까?

데이비드 위스너의 재미난 상상력이 다음 장에 펼쳐집니다. 외계인들이 타고 있던 우주선에서 보조 요리사가 그만 실수를 해서 먹을 것들을 몽땅 공중에 날려 보내게 된 거죠. 작은 푸른 별 쪽으로 ‘떠내려가는’ 거대한 야채들을 넋놓고 보면서 앞으로 뭘 먹고 살 건지 하도 한심해서 다들 한숨 쉬고 있는데 둥실둥실 무엇이 떠오고 있는지 아세요? 바로 지구의 소녀가 날려 보냈던 아주 작은 채소들. 그 사이 조그만 열매들이 달려 풍선에 둥실둥실 떠오는데, 이 때 외계인들이 읽고 있던 책은 바로 ‘보통 크기의 채소를 대형 채소로 만드는 방법’이었답니다!

Hurricane 표지와 본문

책을 읽다 잠이 든 아이가 상상 속에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글자 없는 그림책 Free Fall, 태풍이 불어 나무가 송두리째 뽑히자 그 나무를 정글과 바다 그리고 우주 삼아 노는 남자 아이들을 그린 Hurricane, 전래 동화 속에 갇혀 버린 돼지들이 그림책의 틀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가는 이야기를 그린 『아기돼지 세마리』(The Three Pigs)에서도 재치있는 그림과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 준 데이비드 위스너. 톡톡 튀는 그의 상상력이 다시 날아다닐 곳은 어디일까요?

부탁 하나 할게요. 너무 높이 올라가진 마세요.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버린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요? 아, 맞다. 태양을 저 아래 두고 머나먼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면 되겠군요!

참고 사이트
http://www.bookpage.com/9909bp/david_wiesner.html
http://www-personal.ksu.edu/%7Ecdt3545/Theme.htm
http://www.amazon.com/exec/obidos/tg/feature/-/22106/103-5248261-187432/102-8719601-6983362

사진 출처
http://www.houghtonmifflinbooks.com/authors/wiesner/bio/bio.
서남희/ 개인 홈페이지 ‘The Cozy Corner http://cozycorner.new21. net)’에 영어 그림책 이야기를 엮어 올리고 있습니다. 미국 유치원 교육에서 활용하고 있는 ‘꼬마 책?Mini-Books)’을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구성한 『아이와 함께 만드는 꼬마 영어그림책』을 만들었고, 뉴베리 상을 받은 작품 『별을 헤아리며』를 번역했습니다. 그림책과 시, 바위산, 걷는 것과 잠자는 것을 아주 좋아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