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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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보는 다른 나라 그림책]
경쾌하면서도 고즈넉한 책을 함께 만드는 사라 스튜어트와 데이비드 스몰

서남희 | 2003년 07월

사라 스튜어트와
데이비드 스몰
집에 손님이 오면 책을 들고 벽장 안으로 숨어들어가 손님이 갈 때까지 내내 거기서 책을 읽던 비쩍 마른 소녀가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수줍음을 탔던 ‘사라 스튜어트’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동네의 도서관 구석 자리와 할머니 텃밭에서만큼은 언제나 자유로웠습니다. 그 경험은 어른이 되어 남편인 ‘데이비드 스몰’과 함께 만든 그림책, 『도서관』(The Library)과 『리디아의 정원』(The Gardener)에 녹아들었죠.

『도서관』의 주인공 소녀는 앉으나 서나, 침대 속에서나, 캠프에 가서나 책 읽기에만 몰두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책만 모으고 읽으며 살다가 더이상 책 한 권을 둘 공간이 없어 아예 그 집채 기증해 버리죠. 한 사람의 소유물이었던 수많은 책은 이제 그 기증자의 이름을 딴 ‘엘리자베스 브라운 도서관’의 장서가 되어 많은 아이들이 드나들며 책을 빌려 가게 됩니다.

책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또 책이 많으면 여름에 얼마나 더운지 아는 사람은 다 알죠. 제 친구네 집은 아버지가 책을 엄청나게 모아서, 온 거실에 책이 더미로 쌓여 있어 오솔길 하나 간신히 내어 놓고 다닌다는데요, 친구 말로는 여름만 되면 숨이 콱콱 막힌다더군요. 아버지는 책 정리하신다며 한 권 펼치면 하루 종일 읽으시고……, 제발 어디다 기증 좀 하셨으면 좋겠다더군요.

『도서관』표지와 본문

주인공이 책 짐을 법원에 기증하러 가는 내용의 원문 글을 한번 보세요. 끝소리가 척척 맞아 읽기가 재미있답니다.

『도서관』본문 중에서
“Elizabeth Brown
Walked into town
That very afternoon.
Elizabeth Brown
Walked into town
Whistling a happy tune.”

박자 맞는 글에 어울리게 그림 또한 경쾌합니다. 엄마가 빨래를 널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아기, 주인공이 물구나무 선 채 책을 읽을 때는 인형도 함께 물구나무 서기를 하고 있고, 부스스한 빨간 머리 아가씨는 사라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림을 그린 데이비드 스몰은 디트로이트 출신입니다. 두 살 때부터 그림에 천재성을 드러낸 그는 미술관에 등록해서 수업을 받았는데, 그때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에서 영향을 받아 한동안 집의 지하실 벽에 벽화만 그려 대던 시절이 있었다네요. 그가 도시 출신임에도 서정적인 그림을 잘 그린 것은 아무래도 어린 시절 여름 방학 때마다 갔던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풍요한 자연을 즐길 수 있어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채화와 펜과 잉크, 파스텔의 색조가 너울대는 그의 그림은 더 나은 반쪽이 사라 스튜어트의 간결하면서도 재기 발랄한 글 덕분에 더욱 빛을 발하니, 이 둘은 정말 잘 만났다고나 할까요? 데이비드 스몰이 그림을 그리고 주디스 세인트 조지가 글을 쓴 『발명가가 되고 싶다고?』(So, You Want to Be An Inventor?)나 2001년 칼데콧 메달을 받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So, You Want to Be President?)는 글도 콩 튀듯 팥 튀듯 하는데다 그림도 엽기 발랄 쪽에 속하거든요. 하지만 데이비드 스몰과 사라 스튜어트가 짝을 이뤄 만든 그림책들은 경쾌하면서도 문득문득 고즈넉한 기운이 감돌지요.

『발명가가 되고 싶다고?』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표지

『리디아의 정원』을 읽다 보면 제가 텃밭을 가꿨던 첫 해가 떠오릅니다. 무작정 밭에다 씨를 뿌린 후 돋아난 연둣빛 가녀린 새싹에 황홀해진 것도 잠시, 비 내린 다음날 가 보면 수도 없이 돋아난 새싹, 새싹, 새싹들……. 그 중에 어떤 것이 잡초고 어떤 것이 원래 심은 건지를 몰라서 상추, 오이, 토마토, 참외의 어린 싹에 이름 모를 여러 풀까지 뒤섞어 키웠던 슬프고도 귀여운(?) 과거가 있지요.

하지만 이 책의 여자아이는 저와 달리 아주 야무집니다. 리디아가 할머니와 함께 토마토를 거두고 있는 시골집의 텃밭은 구획도 잘 되어 있고 무엇이든 풍성하죠. 가을 하늘 아래 제 무게를 못 이겨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 커다란 잎사귀 속에서 단단하게 여물어 있는 양배추, 여기저기 툭툭 떨어져 있는 토마토, 가을 바람에 곳곳에서 한들거리는 색색가지 꽃들……. 그런데 이렇게 즐겁고 풍요롭고 흐뭇한 정경도 잠시, 경제 공황기의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리디아는 도시에서 빵집을 하고 있는 외삼촌네 집으로 가게 됩니다. 자연의 풍요로운 색감에 젖어 지내던 아이에게 낯선 도시의 어둡고 황량한 기차역이 어떤 느낌이었을지, 그림책을 펴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리디아의 정원』표지와 본문

하지만 리디아는 늘 뚱한 삼촌과 시멘트 건물에 붙어 있는 무뚝뚝한 빵집 건물에서 봄을 읽어 낼 줄 알고, 그 봄을 바로 자기가 틔워 내는 재기 발랄한 소녀랍니다. 리디아는 할머니에게서 꽃씨와 구근을 우편으로 받아 여기저기 바지런하게 꽃을 심지요. 몇 달이 지난 6월의 빵집 건물은 꽃으로 뒤덮여 기막히게 아름답고,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거리를 오갑니다. 꽃 한 송이를 들고 가슴 저미게 행복한 표정으로 꽃내음을 맡으며 가는 낡은 옷차림의 아저씨, 진열장 앞에 피어난 꽃을 보고 있는 아줌마들(귀여운 개들은 서로 뽀뽀하고 있답니다), 자동차 뒤 유리창에 매달려 밖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빵집 이층의 작은 베란다에서는 리디아와 엠마 아줌마가 꽃에 물을 주고 다듬느라 바쁩니다.

이 책의 이야기 구조는 매우 단순합니다. 빵집 건물뿐 아니라 자기만의 비밀 장소(책을 보시면 압니다)에 꽃을 가득 심어 놓고(말은 쉽지만 겨울부터 내내 씨앗을 구하고, 화분이 될 만한 수십 개의 그릇을 모으고, 질 좋은 흙을 구해 담고, 씨를 심고, 물 주고, 싹 틔우고, 잡초 뽑아 주고……. 굉장한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지요) 삼촌에게 그 화려 강산을 보여 주니 무뚝뚝이 삼촌도 그만 감동해서 아이를 꼭 껴안는다는 이야기인데, 자기가 속한 작은 세상을 꽃으로 변화시키는 아이의 마음 씀씀이와 노력이 하도 예뻐서 저도 그 애를 꼭 껴안아 주고 싶어집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예뻐 보이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한결 더 예뻐 보이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표지를 다시 보면 계단 위에서 해바라기 화분을 가슴에 안고 한 손으로는 꽃삽을 높이 쳐들고 있는 리디아의 모습이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하군요.

『머리에 뿔이 났어요』표지와 본문

이 아름다운 책 외에도 The Money Tree를 함께 만든 이 부부는 (귀엽고 유쾌한 책, 『머리에 뿔이 났어요』(Imogene’s Antlers)는 데이비드 스몰 혼자 만들었죠) 지금 미시간 주 세인트 조셉에 살고 있습니다. 사과밭이 많은 동네에 살면서 (저도 미국 살던 어느 가을에 그곳으로 사과를 따러 간 적이 있었죠) 언젠가 사과 내음 향긋한 책을 함께 만들어 내지는 않을까요?

자, 방금 저는 작은 보라색 꽃 화분에 물을 주었습니다. 무표정한 우리 집을 환하게 해 주고 제게 기쁨을 가져다 준 이천 원짜리 이 화분에 꽃을 심은 이름모를 분께 말합니다. “…… 고맙습니다.”

『리디아의 정원』본문
중에서
참고 자료
http://www.nccil.org/exhibit/davidsmall.html
http://www.pippinproperties.com/authill/stewart/
http://www.parents-choice.org/full_abstract.cfm?art_id=22&the_page=editorials
서남희/ 개인 홈페이지 ‘The Cozy Corner(http://cozycorner. new21. net)’에 영어 그림책 이야기를 엮어 올리고 있습니다. 미국 유치원 교육에서 활용하고 있는 ‘꼬마 책(Mini-Books)’을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구성한 『아이와 함께 만드는 꼬마 영어그림책』을 만들었고, 뉴베리 상을 받은 작품 『별을 헤아리며』를 번역했습니다. 그림책과 시, 바위산, 걷는 것과 잠자는 것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