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통권 제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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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찾아서]
진정성을 찾는 그림 작가 조혜란

김원숙 | 2004년 12월

조혜란 선생님
제법 매서워진 바람이 연방 은행잎을 떨어뜨립니다. 아휴. 청소부의 한숨 소리 새어나오는데 그 옆을 지나던 행인이 한 마디 합니다. 쓸지 말지. 낙엽 흩날리는 거리는 낭만 그 자체겠지만 도심에서 어찌 그 풍경을 기대할까요? 묵묵히 낙엽 쓰는 청소부의 뒷모습. 부질없어 보이는 일이 하나 둘일까? 또 한 해가 가니 기분도 축축 처집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웃음 아닐지……. 조혜란 그림 작가의 과장과 해학 넘치는 그림들이 웃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혜란 그림 작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똥벼락』을 비롯하여 『배장수와 신선』 『사물놀이』 『참새』 『또랑물』 『삼신 할머니와 아이들』 『조선의 여걸 박씨부인』 『다자구야 들자구야 할머니』 『허생전』 『옹고집전』 등의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해학의 특징 말고도 조혜란 선생님의 책에는 전통의 색채가 두드러집니다. 색채 뚜렷한 작가의 그림 이야기를 들으러 서산에 있는 작가를 찾아갔습니다. 챙 모자 쓰고 질끈 꽁지머리 한 소탈한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먼저 『똥벼락』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작업실 모습

“글과 그림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먼저 했어요. 그림책은 길어봤자 17, 18쪽으로 승부 나야 되기 때문에 장면에 맞춰 글을 다시 조정했어요. 폭죽 같은 똥, 똥 구름, 똥 산 그런 것들이 그림으로 넘어와 이미지로 새로 생겨난 겁니다. 그림을 보면서 글도 구체성을 가지고 성공한 경우입니다. 16바닥으로 구성하고 발단에서 돌쇠 아버지가 30년 동안 일하고 받은 돌땅을 프롤로그로 줄여서 단숨에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풍년을 중심으로 임의로 1장과 2장으로 나누어 풍년 전은 돌쇠 아버지의 테마로, 풍년 후는 김 부자의 테마로 했어요. 똥의 위력을 강조하려면 폭죽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으로 표현해야 할 것 같았지요. 1장과 2장의 똥의 힘을 차별화했구요.”

‘똥’ 이야기 자체가 아이들에게 묘한 해방감과 웃음을 안겨 줍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재라고 해도 얼마만큼 그림을 재미있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책의 무게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림의 구성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구성 문제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셨다는 선생님. 하지만 나름의 아쉬움도 남는다고 합니다.

『똥벼락』 표지와 본문

“구성에 치우치다보니 마지막 단계인 그리는 작업에 소홀했던 것 같아요. 종이를 아끼는 편이라서 다시 그린 그림이 거의 없었거든요. 많은 습작을 통해 풍부한 그림을 보는 즐거움을 주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요.”

작가의 아쉬움이 있다 해도 똥을 들고 가는 돌쇠 아버지 모습, 혀를 내민 개, 똥 마려운 것을 참는 모습, 쌓인 똥을 보고 오줌 싸는 개, 금가락지를 빼앗고 좋아라하는 김 부자와 고양이 등 재미있는 묘사에 아이들은 즐겁습니다. 그런 과장과 해학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지요? 우리 옛이야기를 다룬 책에도 그런 특성이 드러납니다. 민화나 법당 벽의 불화를 떠올리는 독특한 조혜란 작가의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한국화를 전공한 터라 한국화 표현 양식이 몸에 익숙해져 있었어요. 그 중에서도 색과 선이 한껏 자유로운 민화의 표현 양식이나 조선 시대 생활상이나 정서가 잘 반영된 감로탱(甘露幀)을 보며 놀란 적이 있습니다. 민화의 어떤 그림을 보면 상상의 세계가 끝없이 열려서 미지의 어떤 곳과 연관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느낌이 친근하고 그래서 우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이죠. 또 감로탱이 재미있는 것은 한 장의 그림 안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도해화인 것 같지만 전혀 도식적이지 않고 자연스레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는 거에요. 한 편의 훌륭한 일러스트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 역시 우리 정서와 삶이 반영되어 있어서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많지는 않지만 선조 화원들이 그린 훌륭한 그림들이나 학문의 냄새가 느껴지는 수묵화보다 민화나 감로탱을 보며 보낸 시간이 더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 민화나 감로탱의 영향을 받았지요. 저는 표현 양식이나 캐릭터의 모방이나 차용에 관대한 편입니다.”

감로탱 책 속 사진

불교에 관한 내용을 눈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표현했던 감로탱은 사회 풍속까지도 반영하고 있어서 그림책에 차용해올 만한 것들이 많았다고 하셨습니다. 감로탱의 영향은 선생님 그림 곳곳에 드러납니다. 대학 민화반 활동 시절 보았던 민화들은 선생님의 의식 바탕에 깔려 있다가 서서히 표면으로 떠올라 선생님의 독특한 색채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그 그림들은 현재를 사는 어린이들에게 우리 것을 전승하고 부각시킨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옛그림 이야기를 하다가 그림책의 모방에 대해서까지 이야기가 가 닿았습니다.

“우리에게 그림책 작가라는 위치가 아직 정착이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글은 문학의 역사를 갖지만 그림책은 수입 책을 통해 이해된 경우라서 우리 나라에서는 이해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시작이라는 생각입니다. 한국 그림책에는 상징화되지 못하고 단순화되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시작이니까 너그럽게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구조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작품이 그림책으로서 아류작이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임시로 기법을 모방하는 것에는 관대한 편이에요. 우리에게 지금 모방할 수 있는 선조의 그림이 적은 것이 안타깝지요. 작품 전체의 구조가 모방인 것은 문제이지만 그림을 한 장 한 장 따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림의 모방과 창조에 대한 논의는 우리 나라 그림책 시장에서 앞으로 계속 논의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선생님께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더 깊은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선생님이 그림책 작업을 시작하던 무렵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책에 삽화를 그리기 시작하고 일의 연장선상에서 그림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심이 있어서 그림책을 많이 봤지요. 그림책이 뭐다, 라는 확신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그림책에 대해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제 감성으로 아이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뒤로 선생님의 그림 기법에도 변화가 많았습니다. 『배장수와 신선』에서는 물감으로, 『몽실이와 이빨천사』에서는 색연필로, 『사물놀이』는 석판화 작업으로 완성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기법의 변화에 대해, 우리 그림책에서는 비교적 보기 드문 석판화 작업을 한 『사물놀이』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물놀이』 표지와 본문

“몇 가지 표현 방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붓 그림에 자신이 없어서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붓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생겨서 붓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물놀이』에서는 오방색의 명징함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석판화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수묵화의 느낌을 판화로 표현한 거지요. 소리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얼마만큼 잘 표현했는지 모르겠는데 판 굿에서 소리가 확장되는 느낌을 형상화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작업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좀 더 나갔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가 끈기나 집중력이 약하고 작업하면서 부담감을 많이 느껴 그랬던 것 같아요. 요즘 다시 작업에 집중하다보니까 그런 느낌이 듭니다.”

최선을 다한 무엇도 시간이 지나면 아쉽고 모자란 점이 눈에 보이기 마련입니다. 시간이 지혜고 거리가 지혜인지……. 최근 그림책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어지고 자신감도 부쩍 커진 선생님은 그림책 작업에서 느꼈던 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셨습니다.

“그림 작가는 그림을 구성해 보고 또 구성해 보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다들 구성할 때가 힘들고 골치 아프다고 하는데 저는 그게 재미있는 작업 같습니다. 기법이나, 인물의 표정, 표현……. 한 장을 보고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전체적으로 구조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쪽입니다. 그 작업이 저는 즐거웠어요.”

이어서 글과 그림 모두 선생님이 작업한 그림책 『참새』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연필과 색연필로 작업한 그 그림책은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고 해서 관심이 갔습니다.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그림책이기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아 있는 듯하였습니다.

『참새』 표지
“어릴 때 처마 밑에 참새가 흙이 묻은 채 죽어 있던 장면이 생각나서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앞뒤 이야기를 만들었지요. 아버지가 선생님이라서 학교 사택에서 살았는데 저는 동네 아이들과 교류가 별로 없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잘 뛰어다니고 무엇이나 잘 꺼내먹었는데 저는 아이들과 놀고 싶어도 그렇게 못해서 아쉬워요. 딱지치기, 자치기, 고무줄 놀이 그런 것도 잘 못했어요. 건강한 유년을 보냈단 느낌이 없지요. 결국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교훈적인 이야기가 되었고…… 토방에 참새가 떨어져 있던 인상적인 장면 얘기도 빠졌어요.”

어린 시절 기억의 한 장면으로부터 출발한 그림책 이야기가 나온 차에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좀더 듣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자랐는지 궁금했습니다.

“집안 어른 대부분이 농사짓거나 학교 선생님이거나 그랬어요. 다들 악기를 하나씩 다룰 줄 알았지요. 단소나 사물놀이를 잘하고 명절 때도 시조 가락을 읊었어요. 시조대회가 열리면 심사위원은 할아버지나 큰아버지였어요. 풍류 하는 집안이었다고 봐야지요. 큰집 토방에 돗자리를 깔고 연극했던 기억이 나요. 앞에서는 달빛이 무대를 향해서 내리고 뒤뜰에서 고모나 삼촌이 나와서 갑돌이 갑순이 노래를 했어요. 신식 교육 받을 필요를 못 느끼던 분위기였고, 저희 아버지처럼 선생님이 된 분들은 겨우 자기 주장을 해서 그렇게 되었던 거지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나니 『사물놀이』를 그림책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감로탱을 눈여겨 본 것이, 단소 불고 시조 읊던 집안 분위기에서 나온 자연스런 결과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음악이 아닌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림이 좋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잘 그리지는 못했어요. 잘하는 게 없었던 것 같아요. 내 그림도 교실 뒤에 한 번 붙여 봤으면 바라곤 했지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취미로 화실을 다녔어요. 그림 못 그린다는 게 주관적인 생각이었는지 화실에서 선생님이 데생 잘 한다고 칭찬해서 자신감을 갖게 되고 미술 대학에도 가게 되었지요. 부자가 아니었고 3남 1녀의 맏딸이었으니까 미술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걸까요? 아니면 하고 싶다는 마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다 준 것일까요? 어쨌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의 끈을 놓지 않아서 선생님이 그림 작가가 된 것은 아닐지요. 스스로 꿈을 찾아 이룬 선생님은 앞으로 어떤 그림책을 만들고 싶으실까요?

선생님이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조각보

“예전에는 특색 있는 그림책을 좋아했었어요. 회화적이고 느낌이 강조된 그림에 관심 있었는데 지금은 단순하게 아이들에게 가깝고 아이들 생각이 잘 드러나는 것이 좋아요. 좀 촌스럽게 느껴져도 소박하고 아이들에게 친근한 그림책을 그리고 싶어요. 원초적인 삶의 모습이 표현된 그림책이 점점 더 좋아져요. 과장과 해학이 강조되면서도 아이들의 심연에 들어갈 수 있는 그림을 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최근 들어, 발상에서부터 자기 것으로 시작하는 게 그림책 작가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앞으로 그런 작업을 하려고 해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소수의 독자를 위해 만드는 책이 있는데 어쩌면 그것이 더 진정성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매체에 있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붓 그림만 고집하지 않을 겁니다. 제 그림책 작업 가운데 『참새』 같은 경우는 비록 그게 작품으로 성공은 못했어도 그 작업이 다음 작업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만들어 본 더미 북 중에 「할머니 어디 가요」는 잡지에 연재할 예정이고, 「상추」는 1년 정도 시간을 갖고 다듬어 볼 생각입니다.”

작년 12월 서울에서 서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뒤로 선생님은 그림책에 대해서도 삶에 대해서도 예전과는 생각이 조금 바뀌는 것을 느낀답니다. 탐조 여행에서 댕기물떼새나 뿔종다리 같은 새들을 보고, 가창오리가 먼지같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시장에 나가 가만히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생각의 방향도 달라졌다고 합니다. 조금씩 선생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자연의 힘인 것 같다고 합니다.

싫도록 느끼고 누린 자연의 힘은 곧 좋은 그림책이 되어 우리 아이들 가슴으로 달려들겠지요. 낙엽이 거름이 될 즈음, 추운 겨울을 견딘 나무들이 연한 새순을 낼 즈음, 환한 봄 햇살 아래 조혜란 작가가 서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열린어린이』가 만난 모든 작가들이 그 자리에 함께 서 있기를 바라며 작가와의 만남을 접습니다.
김원숙 / 오픈키드 도서 컨텐츠팀장. 대학에서 정치 외교학을 공부했지만 아이들과 놀기, 책 읽기를 좋아해서 어린이들과 더불어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오래 하였고 지금도 어린이 책에 파묻혀 지냅니다. 우리 아이들이 좋은 책을 읽으며 행복하기를 바란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