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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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지도의 이론과 실제]
과학책의 분류, 과학책 읽기

이지유 | 2005년 11월

도서관에서 과학책을 찾아 보면 책들이 지식 분야 별로 나뉘어져 있다. 예를 들면 천문학, 화학, 의학 이런 식이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른 방법으로 책을 분류해 보려고 한다. A단계, 전문 지식을 충실히 다루었는가? B단계, 전문 지식을 설명하는 데 이야기적 요소가 가미되었는가? C단계,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과학 지식이 들어갔는가? 여러분은 이 세 가지 단계를 머리 속에 그리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과학책이 이들 가운데 어느 단계에 속하는지 또는 이들 단계 사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요리가 맛있으려면 신선한 재료가 있어야 한다. 좋은 독서가 되려면 읽는 사람에게 맞는 좋은 책을 골라야 한다. 독서 지도에 나서는 사람에게 책을 분류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과학책에서는 그 점이 더 중요하다. 자신만의 책 분류 방법을 지니고 있어야 어떤 아이에게든 딱 맞는 책을 고를 수 있다.

『그림으로 보는 우리의 몸』 본문 중에서

우선 A단계에 해당하는 책들은 과학 지식을 전문적으로 충실히 다룬 것으로 내용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보다 정밀하고 사실적인 그림이 필요하다. 좋은 예로 ‘아틀라스’ 시리즈를 들 수 있다. 이 시리즈는 동물, 식물, 우주, 인체 등을 다루고 있는데, 이 책의 그림들은 정밀성과 사실성을 갖추었음은 물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찍은 사진에서는 찾아 보기 어려운 따스함까지 지니고 있다. 정밀성과 사실성만 고려하자면 사진을 따라갈 매체가 없겠으나 찍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어느 부분을 강조하거나 생략하는 데 그림보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예로 ‘아틀라스’ 시리즈 가운데 인체를 다룬 『그림으로 보는 우리의 몸』을 보자. 여기에는 무수한 인체 해부도가 나온다. 그런데 이 해부도를 보면서 징그럽다거나 엽기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근육을 표현할 때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하지 않는, 약간 어두운 붉은빛이 도는 갈색을 썼기 때문이다. 몸을 이루는 근육이 인체 해부도 각 장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림 그리는 이가 근육의 색을 정하려고 얼마나 고뇌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다음으로 눈여겨 볼 책은 지식의 전문성을 전달하면서도 그 딱딱함을 줄이고자 노력한 책들이다. 이 책들은 앞서 말한 A와 B의 단계 중간쯤에 있는 것으로 책에 이야기적 요소는 없지만 직관에 호소하는 그림으로 독자를 끌어안으려고 노력한 책들이다. 좋은 예로 ‘꼬마 과학자’ 시리즈를 들 수 있겠다. 이 시리즈 가운데 『물』 편을 보자. 이 책은 물의 상태와 물의 순환 같은 물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알리는 데 이야기를 끌어들이지 않았다. 물을 설명하는 부분도 한 쪽 당 한 문장에 불과하다.

『물』 본문 중에서

그러나 이 책의 그림은 글보다 더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물의 증발을 설명하는 부분의 그림을 보자. 보통 물방울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므로 물방울을 그릴 때는 아래 부분을 둥글게 위 부분을 뾰족하게 그린다. 그런데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물방울의 뾰족한 부분이 하늘로 향한 것이 아니라 아래쪽으로 내려와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방울이 호수에서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또, 마지막 쪽을 보자. 거기에는 꽃을 든 사람과 개가 나오는데 이들의 몸 속에 7부쯤 물이 차 있다. 살아 있는 생물의 몸은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단박에 알아차리게 해 주는 인상적인 그림이다. 물론 그림 아래 있는 글에는 이런 말이 없다. 만약 이 책에 ‘아틀라스’ 시리즈에서와 같은 정밀하고 사실적인 그림들이 지면을 메우고 있었다면 과연 독자들의 눈길을 붙잡을 수 있었을까? 반대로 ‘아틀라스’ 시리즈에 『물』에서와 같은 그림이 있었다면 책의 가치가 살아날까? 물론 대답은 ‘아니오’이다.

이제 이야기적 요소가 가미된 B단계 과학책을 살펴볼 차례다. 『선인장 호텔』을 보자. 멕시코 북부 사막에서만 볼 수 있는 사구아로 선인장의 일대기를 그린 이 책은 사구아로 선인장의 죽살이와 그 선인장과 더불어 살아가는 각종 생물들의 삶에 초첨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의 이야기적 요소는 선인장과 생물의 생태를 설명하는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선인장과 그 둘레에 사는 새와 꽃을 단순히 설명하기 위한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인격을 부여했다는 뜻이다. 그것은 “도마뱀 무늬 딱따구리가 열매를 먹으러 왔다가 안전하고 먹이가 많은 선인장에서 살기로 했습니다.”와 같은 문구에서 잘 나타난다.

『선인장 호텔』 본문 중에서

이 책의 그림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초반부에서부터 계속 나오는 팔로버드 나무다. 사구아로 선인장의 씨는 이 팔로버드 나무 가까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성장한다. 작가는 왜 사구아로 선인장을 팔로버드 나무 옆에 그린 것일까? 팔로버드 나무는 일종의 비교 대상이다. 사람이나 동물은 머리와 몸통의 비율을 바꾸어 가며 나이의 많고 적음을 표현할 수 있지만 아무런 비교 대상이 없는 사막의 선인장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더구나 여기서 선인장은 사실적으로 그려져야만 한다. 만약 작가가 비교 대상으로 팔로버드 나무를 그리지 않았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사구아로 선인장을 느끼기 힘들었을 것이다. 황량한 사막에서 싹트는 사구아로 선인장 옆에 든든히 서 있는 팔로버드 나무는 마치 어린 사구아로를 지켜 주는 엄마 같다. 사구아로 선인장은 처음에는 이 나무보다 작지만 몇십 년이 지난 뒤 이 나무보다 커진다. 마치 부모 키를 훌쩍 넘는 자식처럼. 사구아로 선인장이 한창 인생을 펼쳐 갈 때 팔로버드 나무는 먼저 죽는다. 사구아로 선인장 역시 언젠가 생을 마감할 것이다. 영원히 사는 것은 없다. 팔로버드 나무를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그로 인해 사구아로 선인장이 더 돋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글에는 팔로버드 나무의 이런 역할이 전혀 소개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독자가 그림을 읽고 알아 내야 할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이것이 이야기적 요소가 가미된 과학 그림책을 보는 또 다른 묘미이기도 하다.

자, 이제 이야기적 요소가 좀 더 강한, B단계와 C단계의 중간쯤에 있는 책을 살펴보자. 이 단계의 대표적인 책으로 『갯벌이 좋아요』를 들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 꽃발게는 원래 갯벌에 사는 생물이지만 갯벌이 싫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 하지만 쏨뱅이의 공격으로부터 망둥이를 구해 주고 그것을 계기로 자기가 살 곳은 역시 갯벌이라는 것을 깨달아 그대로 눌러앉게 된다. 이 책은 갯벌에 사는 생물을 독자에게 알리고 갯벌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선인장 호텔』보다 이야기적 요소가 훨씬 강하다. 이야기에 생물들이 말하는 장면을 넣어 이들에게 강하게 인격을 부여하고 있다.

『갯벌이 좋아요』 본문 중에서

이 책의 그림들은 다분히 이런 이야기를 끌어 가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그려졌다. 물새가 작은 고기와 조개를 쪼아 먹는 장면을 보자. 거기에는 꽃발게의 튀어 나온 두 눈만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마치 외계인 눈처럼. 또 오른 쪽에 조개를 쪼는 새가 커다랗게 그려진 것도 독자에게는 같은 갯벌 식구가 잡아먹히는 이 현실이 좀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결국 작가는 독자들이 이런 구도의 그림을 봄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갯벌의 생물이 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구름에서 사는 것보다 갯벌이 좋다고 외치는 마지막 장면에서 꽃발게만 채색하고 나머지를 회색으로 처리한 것도 이야기적 요소가 강한 책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또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생물들을 아주 사실적으로 정밀하게 표현하지 않고 특징만을 잡아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이야기적 요소가 강한 책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혹여 이렇게 그리는 것을 쉽게 여긴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대상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만이 특징을 강조할 수 있다. 때로는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보다 특징만을 강조하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는 법이다.

자, 이제 C단계의 책을 이야기할 때다. 과학 이야기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공상 과학 소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니고 과학 소설이라고 해야 옳다고 생각하지만 공상 과학 소설이 정식 명칭으로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말한다. 공상 과학 소설을 쓰려면 작가는 소설가 못지않은 이야기 전개 능력이 있어야 하고 과학 전문 지식도 알아야 한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전문 과학 지식을 흡수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양한 계층을 배려한 많은 과학책이 나와야 가능한 일이다. 교양을 목적으로 하든, 좀 더 깊은 지식 탐구를 위해서든 과학을 말하는 수많은 대중서가 나와서 일반인들이 쉽게 과학 지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팔을 뻗으면 손닿는 곳에 과학을 말하는 책들이 있어야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쓰는 사람도 나오고 쓰고 싶어하는 사람도 생긴다. 결국 우리나라 작가가 쓴 공상 과학 소설과 공상 과학 동화가 많이 나오지 않는 까닭은 그 바탕이 되어야 할 과학 대중서가 부족하고 이를 집필하는 사람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을 몇 권 소개해 보면 그림책으로는 ‘신기한 스쿨버스’ 시리즈를 들 수 있겠고, 무엇이든 손만 닿으면 그 동물과 같은 동물로 변하는 능력을 지닌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인 『애니모프』, 유전자의 비밀을 풀어가는 『64의 비밀』, 종자를 둘러싼 음모를 파헤치는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 생명 공학이 미래에 불러올 문제를 미리 들여다본 『지엠오 아이』 등을 들 수 있겠다.

책을 골라 읽는 것은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 입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리 비싼 옷이라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남들이 아무리 좋은 책이라 떠들어도 아이에게 맞지 않는 책이 있다. 아이들에게 독서 길잡이로 나서는 사람들은 먼저 아이를 이해하고 그 아이에게 맞는 과학책을 골라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과학책을 그냥 커다란 한 덩어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용과 형식에 따라 나름대로 분류 체계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모쪼록 이 글이 그런 활동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지유 / 대학에서 천문학과 과학 교육을 전공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재미난 과학 글을 쓰려고 천문대, 화산, 박물관, 열대 식물원, 병원 등 안 가는 곳이 없습니다. 늘 디지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필요하다 싶으면 아무 때나 사진을 찍는 바람에 아들, 딸이 아주 괴로워한답니다. 어린이들을 위해 지은 책으로는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화산 이야기』 『별똥별 아줌마 우주로 날아가다』 등이 있고, 초보 부모들을 위해 『그림책 사냥을 떠나자』를 썼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