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04월 웹진 제4호
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열린 주제 열린 글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우리 동화 제대로 보기]
잔디숲 속의 이쁜이

김서정 | 2001년 04월

『잔디숲 속의 이쁜이』1권 뒷표지 그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개미』, 스티븐 스필버그의 애니메이션「개미」, 그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또 다른 애니메이션「벅스 라이프」, 언뜻 생각나는 개미 이야기만 해도 이렇게 짱짱하다. 그리고 또 어렴풋이 떠오르는 어렸을 때 읽었던 개미 이야기. 셔츠 끝이 늘 바지 밖으로 비어져 나와 있다고 '촌도리노'라는 별명을 얻어 가진 아이가 개미가 되어 온갖 모험을 겪는 꿈을 한바탕 꾸는데, 재미있었던 것은 개미가 되어서도 궁둥이에 셔츠 끝자락이 비어져 나온 듯한 흰 무늬가 있어 그 지겨운 '촌도리노'라는 별명을 달고 다닌다는 설정이었다. 다른 건 다 잊어 버렸는데 개미가 된 아이가 그 촌도리노를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장면만은 내 머리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제목도 작가도 기억나지 않는 그 이야기를 다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개미 하면 우리는 일사불란한 조직 사회를 떠올린다. 철저한 신분제와 분업제, 단체를 위한 개체의 희생 등의 요소로 유지되는 체제는 인간들에게도 귀감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특히 여름 동안 놀고먹는 베짱이 옆에서 겨울에 대비해 땀 흘리며 일하는 개미의 부지런함!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들으며 개미의 부지런함과 준비성을 닮아라, 거의 세뇌를 당하다시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개미들은 정말 그렇게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회의도 이의도 없이 사회라는 기계의 부속품 노릇을 일사불란하게 하고 있을까?

『잔디숲 속의 이쁜이』표지 사진
동물생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개미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분주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개미들의 80%가 사실은 공연히 왔다갔다하면서 시간만 때우고 있다, 실제로 일하는 20%만 골라내 집단을 만들면 그 안에서도 다시 눈가리고 아웅 파가 80% 생긴다는 소위 80/20 설을 어디선가 읽고, "똑같다 똑같아! 사람하고 똑같다!" 하면서 낄낄 웃은 기억이 있다. 최재천의 개미 제국의 발견을 보면 알을 못 낳도록 되어 있는 일개미들이 여왕개미 몰래 구석방에서 알을 낳다가 들통나 사형 당하는 경우가 보고되어 있다. 그는 개미를 지독한 전체주의 사회에서도 자아를 잃지 않으려는 독립적인 생명체로 규정하면서, 스필버그의 개미에 나오는 불합리한 체제 속에서 자신의 권익에 대해 고민하는 사뭇 개성적인 일개미를 상상한다.

『숲속나라』표지 사진
그런 개미를 이원수는 스필버그보다 30여 년 앞서『잔디숲 속의 이쁜이』에서 창조해냈다. 이원수의 책 가운데에서는『숲속나라』가 우리 나라 최초의 본격 판타지로 평가받고 있지만, 구성의 그물망이 느슨하고 인물은 살아 있지 못하고 판타지로서의 리얼리티도 갖추지 못한 채 작가의 의도적 메시지만이 구호처럼 때없이 터져나온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장르적 성격 이전에 작품 자체가 더 꼼꼼히 살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에 비해『잔디숲 속 이쁜이』는 동물을 의인화시킨 동물 판타지이자, 주인공이 세상으로 나가 자신의 이상 혹은 임무를 찾고 완성하는 탐색담으로서 비교적 주목할 만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개미들의 공동 작업, 집짓기, 진디 목장, 혼인 비행, 개미귀신, 집단 사이의 싸움과 약탈, 알 낳고 돌보기 등 상당히 세밀하게 보고되는 개미의 생태를 바탕으로, 몸담고 있던 집단을 나와 새로운 개미 집단을 만들어가는 이쁜이와 똘똘이의 모험이 탄탄하고 긴박하게 펼쳐진다. 그러면서 작가는 이 모험을 통해 독자에게 '나'와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잔디숲 속 이쁜이』에서는 나와 우리의 대립 상황이 사건의 발단을 만든다. 힘을 합해 부지런히 아침 일찍부터 일하는 개미들, 그리고 늦잠 잔 주제에 그 달콤하고 고소한 새벽잠을 마음대로 자지도 않고 일만 하고 있는 동무들이 슬그머니 얄미운 생각이 드는 이쁜이와 좀 쉬려고 빠져나온 똘똘이. 둘은 결국 그 개미 집단을 떠나게 된다.

이쁜이와 똘똘이가 사회를 떠나는 동기는 언뜻 이기적이고 사소해 보인다. 늦잠을 못 자게 하니까, 옷매무새 바로잡는데 야단치니까, 벌 받는 게 무서우니까, 친구가 떠났으니까. 그러나 조그만 일이 생각지도 않은 큰 사건으로 벌어지는 것처럼, 그 사소한 이유는 점차 숨막히는 통제 사회에 대한 인식과 저항으로 발전한다. 이쁜이의 철없는 반항을 개성과 자유에 대한 자각으로 강화시켜 주는 것은, 일말의 일탈도 허용하지 않고 체벌을 가하는 반장(들)의 폭압성이다. 개미 반장들에게 공동 생활의 질서는 모든 것에 앞서는 절대 가치이며 그것을 해치는 행위는 배신이며 모반이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빈번하게 쓰는 말인 '우리'이다.

『잔디숲 속의 이쁜이』1권 속표지 그림
"우리는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최대의 명예다. 명예를 짓밟고 혼자 꾀만 피려 드는 너는 우리들의 배반자란 말이다."

"우리가 애써 일하고 있는 시간에 편히 낮잠을 자거나 그늘에서 놀고 있는 반원은 우리들의 땀으로 배를 불리려는 못된 생각을 가진 자다."

"우리들의 공동 생활을 위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우리 족속의 규칙은 우리 족속의 행복을 위해서 있는 거다. 너 같은, 제멋대로 놀아나는 놈은 벌주는 것이 우리 족속을 위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야."

그런 개미 사회 안에서 '나'는 설 자리가 없다. 늦잠 자기 일쑤고, 풀잎에 매달린 물방울 안에서 무지개를 발견하고, 실잠자리를 양식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그 날개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어하는 이쁜이는 더욱 그렇다. 반장들과 입씨름을 벌이며 이쁜이는 공동 생활의 규율이라는 것이 개인의 자유와 귄리를 말살하는 억압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선포한다.

『잔디숲 속의 이쁜이』2권 본문 그림
"반장님, 그런 일로 끌어다 징역을 살리고, 심하게는 토막을 내서 죽이고 하는 게 우리 족속의 규율입니까? 그런 지독한 짓이 우리 족속이 해야 하는 일입니까?"

"저는 그런 무서운 규칙이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규칙만 찾는 집 식구들에게서 뛰쳐나온 거예요."

늦잠 자다 벌 받을 게 무서워 집을 뛰쳐나온 이쁜이의 인식 지평은 이제 규칙 없이 행복해지기, 독립해서 살기, 명령도 사형도 노예도 없는 가족 만들기로 넓혀진다. 그리고 수많은 험난한 고비를 넘겨가며 결국 똘똘이와 함께 그런 가족을 이루는 데 성공한다.

이쁜이가 가족을 이루면서 맞는 대단원은, 구조적으로는 이쁜이가 가족을 떠나는 발단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많은 탐색 동화와 전래 동화가 그렇듯, 그 되돌아옴은 단선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를 떠나 '나'로서 행동과 인식 지평을 넓히고 성장한 뒤 다시 만나는 '우리'는 앞의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명령과 복종, 규칙과 형별로 다스려지는 집단이 아니라 사랑으로 어울리는 집단. 그것이 철없는 아이에서 여왕으로 탈바꿈한 이쁜이의 목표이자, 학자 개미의 말로 대변되는 작가의 주제이다.

"개미의 나라는 어디에서나 규율이 엄하고 모두 부지런해서 나라를 지켜 나가는 데에 있어 훌륭하단다. 그러나 동포끼리 서로 사랑하는 마음의 표시가 없고, 너무 자유롭지 못한 것이 흠이야. 그런데 이쁜이와 똘똘이의 나라는 너희들이 사랑이 너무도 뜨거워서, 동포들끼리도 그 사랑의 마음으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해방 이후 어둡고 혼란스러운 이 나라, 그것을 넘어서 이루고 싶은 이상향의 나라를 『숲속나라』에 생경하게 토로해 놓은 작가는 사반 세기가 지난 후에는 그것을 개미 나라 안에 조심스럽고 완숙하게 숨겨 놓는다. 부지런한 개미 나라는 60년대 이후 경제 발전에 매진하는 우리 나라의 투영일 것이다. 작가는 거기에 개인의 자각과 노력에 의한 사랑과 자유가 넘치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허리가 잘리는 형벌에 대한 잦은 언급도, 허리 잘린 우리 나라에 대한 안타까운 깨우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들이 개미의 생태계에 대한 상당히 세밀하고 치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짜임새 있는 모험 이야기와 생생한 묘사, 살아 있는 개미 인물들에 의해 드러나지 않게 전달된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또 읽게 만드는 매력이다.

『잔디숲 속의 이쁜이』2권 뒷표지 그림
그렇지만, 두어 가지 사족 같은 기우. 이 책에서 일개미들은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성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일개미는 여성이다. 작가는 이쁜이의 '나'에 대한 자각의 중요한 부분을 성적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확립으로 채우고 싶었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설정을 했을까? 또 하나, 여왕개미는 혼인할 때 거의 대부분 다른 집단의 수캐미들과 짝짓기를 하며(같은 집단의 수캐미와 짝짓는 경우는 아주 극히 드물다), 여러 개미들의 정자를 받아들여 저장해 놓은 뒤 평생 사용한다(한 개미하고만 짝짓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유전자 감식을 통해 계산해낼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되기는 했지만, 역시 확인된 바 없다). 그런데 이쁜이는 같은 집단 출신인 똘똘이하고만 짝짓기를 한다. 일반적인 개미의 생태와는 거리가 있는 이런 설정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것이 혹시, 우리가 신앙처럼 모셔왔던 단일 민족 이데올로기(그리고 정조 관념)의 숨은 발로가 아닐까 의심한다.

실제 개미 사회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는 '아빠'라는 존재가 이야기 후반부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해지고 여왕개미인 이쁜이가 그 아빠에 휘둘리며 약해지는 모습을 보자. 그것은 더 이상 개미 사회가 아니라 한국의 가부장적 인간 사회이다. 동물(곤충) 이야기에서 정작 주인공인 동물이나 곤충은 희미해지고 인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서게 만드는 올무에 뒷다리가 걸린 것 같아 개운치가 않은 기분이다. 기대치 않았던 인간과 개미의 합성물을 보는 듯하다고 할까. 동물을 철저히 그 동물이게 할 것, 인간은 그 안에 솜씨 있게 숨기거나 아예 바깥으로 빼놓을 것. 이것이 성공적인 동물 판타지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일 것이다.
김서정 / 동화 작가,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어린이 문학을 너무나 사랑하는 선생님은 동화『유령들의 회의』를 썼고,『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행복한 하하호호 가족』『용의 아이들』등을 우리말로 옮겼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