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04월 웹진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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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작가를 찾아서]
어린이와 뛰노는 마음씨 좋은 황소 아저씨, 정승각

공혜조 | 2001년 04월

그림을 그리는 정승각 선생님
제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림책『강아지똥』으로 너무나 유명한 정승각 선생님을 뵈러 가는 길입니다. 버스가 설 때마다 정류장을 눈여겨봅니다. 선생님이 사신다는 엄정이라는 곳은 좀체 나타나지 않습니다. 조바심으로 마음에 흙먼지가 입니다. 뿌연 먼지 속으로 한 질문이 솟아납니다. 소달구지를 타고 이 길을 가자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하루? 이틀? 하루 반? 하고 셈하는 마음에 흙덩이를 소중히 안고 가던 농부의 여유로운 얼굴과 투박한 손이 떠오릅니다. 한 줄기 소나기가 지나간 뒤처럼 마음이 맑아집니다. 선생님의 그림을 떠올리니 조바심이 가라앉습니다.

평온한 마음으로 창밖을 보고 앉아 있자니 금방 엄정이 나타났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마중 나온 선생님을 따라 마을 골목길을 걸었습니다. "저기 저 집이에요." 가리키는 손끝을 보니 야트막한 동산 아래 다정한 교회 한 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금은 예배당이 아니고 제 작업실로 쓰고 있어요." 반갑게 짖는 강아지를 몇 번 쓰다듬고 동시를 쓰시는 김 선생님께도 인사를 드립니다. 글과 그림이 행복하게 만난 그림책처럼 두 분이 썩 잘 어울려 보입니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표지 사진
널따란 작업실 한가운데에 널따란 선생님의 책상이 있고, 그 옆으로 연탄 난로가 놓여 있습니다. 난로 옆에 앉아 엄정에 살게 된 특별한 까닭이 있냐고 여쭈어 봤어요. "외가집이 있던 동네여서 낯설지가 않았어요. 무엇보다 작업실 걱정 안하고 살 수 있어서 좋아요." 이어서 처음으로 그린 책 그림 이야기가 나옵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이라는 시집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 그 책 뒷표지에 개정판에 넣을 시화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났다고 합니다. 그 때가 선생님이 대학을 졸업하던 1988년 봄이었대요.

책을 좋아하던 선생님은 책에 그림이 실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답니다. 어떻게 그려야 시와 잘 어우러질 것인지 고민하다가, 지금 선생님이 살고 있는 엄정면 세고개의 외가에 내려와 농촌에 대한 그림을 다시 연구했답니다. 대학에서 배운 서양식 그림으로는 고유한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는 권정생 선생님의 시를 표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그림의 형식을 찾는 데만 꼬박 반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책을 너무나 소중하게 여겼던 선생님은 '내가 감히 책에 그림을 넣다니! 정말 가능한 일일까?' 설레는 가슴으로 출판사로 그림을 보냈답니다. 마침내 당선이 되어서 상금도 받고 출판사의 전속 작가 약속도 받았대요. 하지만 책의 개정판은 출판사 사정으로 아주 시간이 많이 흐른 96년에야 나왔답니다. 책이 바로 출판되지 않아서 마음 고생은 했지만, 이 때『강아지똥』의 작가 권정생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강아지똥』으로 그림책을 그릴 수 있으리라는 꿈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리려 흙으로 빚은 강아지똥과 『강아지똥』표지 사진
선생님이 책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까닭은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선생님은 출판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는데, 어린이 도서 연구회 일을 맡게 되어 어린이 책을 공부하게 되었답니다. "어린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웠어요. 외국 책과 비교하니 너무 화가 났어요. 우리 나라 어린이 책 그림은 말 그대로 글에 끼워 넣는 삽화에 불과한 그림이었어요. 그림책 그림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게다가 그림책은 대부분 전집으로 만들었어요. 한꺼번에 몇십 권씩 만들다 보니 그림 제작 여건도 좋지 않은 데다가 저작권도 보호받을 수가 없었지요. 그림 작가가 자신의 세계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단행본으로 그림책을 출판하는 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표지 사진
이런 생각으로 탄생한 그림책이 바로『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입니다.『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는 우리 나라 천연기념물인 삽사리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예요.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탄생한 그림책입니다. 경북대학교에서 삽사리 연구를 하는 하지홍 교수님은 삽사리가 나오는 그림과 문헌, 시와 이야기를 모아 주셨지요. 삽사리 사진 자료를 모으고, 직접 삽사리도 보고 삽사리가 주는 느낌을 잃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렸답니다.

그림을 어떤 기법으로 그리느냐도 무척 고민스러운 부분이었답니다. "절에 가보면 꽃문이나 수미단을 볼 수 있어요. 모두 부조인데 채색은 평면에 하듯 해 놓았어요. 그런 데서 오는 우리 고유의 미감을 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각적인 조형성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지점토로 돋을 새김 부조를 하고 풀칠해서 모시천을 붙이고 천에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데 모시천이어서 칠도 잘 안 되고, 섬세한 선을 그려 넣을 수가 없었어요. 고민하다 탱화 그리는 스님에게 천의 질감을 살리면서 고운 선도 그릴 수 있는 표면 처리 기법을 배웠어요. 발동냥, 눈동냥, 귀동냥으로 그린 그림이 바로『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이지요." 표지 그림은 사신도를 참고해서 그린 그림입니다. 원화를 보면 고구려 고분의 천장처럼 층을 지게 해서 사신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놓았어요. 아마 다시 원화 전시회를 한다면 정말 많은 어린이들이 신기해하고 기뻐할 것 같습니다. '정말 여럿이 나누어야 할 그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뭐예요?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뒷표지 그림
그림이 완성되자 어린이 전문 서점 '초방'에서 원화 전시회를 열어 주었어요. 그림 전시를 하면서 '뿌리 있는 우리 그림책'에 대해 토론도 하였답니다. 전시회를 하는 동안 방문한 어떤 출판사에서는 토이북처럼 만들자고 했고, 또 어떤 신문사 출판부에서는 특수 인쇄를 하여 한정본으로 만들자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생각은 달랐답니다. 그림책의 단행본 발행을 활발하게 하려면 대형 서점과 어린이 전문 서점을 통해서라도 많은 독자들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래서 통나무 출판사에서 출간하게 된 것이지요. 선생님은 출판사가 결정된 뒤에도 넉 달 동안 꼬박 책 내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권윤덕 선생이 디자인을 맡았는데, 펼친 면마다 그 펼친 면에 나오는 그림의 한 부분을 응용해서 문양을 만들고 금색으로 인쇄했지요. 본문 글자는『여사서』라는 옛 책에서 목판 글자를 이야기에 맞도록 한 자 한 자 모아서 우리 한글의 아름다움을 살려냈어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를 찾는 까닭은 이렇듯 여러 사람의 지극한 정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머지 않은 날에 삽사리 이야기를 한 편 더 그릴 것이라고 합니다.『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의 뒷표지 그림에는 오랫동안 사랑 받아 온 삽사리 이야기를 한 편 더 만들고 싶다는 소망과 꼭 만들고 말리라는 선생님 스스로와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귀여운 표정인 듯하지만 살아 가는 일의 힘겨움과 즐거움을 다 아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시간을 바라보며, 어떤 어려움에도 믿음직한 친구가 되어 주겠다는 듯 삽사리가 우뚝 서 있습니다.

흙으로도 빚고 도자기로도 빚은 황소의 모습 사진
작업실에는 얼마 전에 작업을 마친『황소 아저씨』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도자기로 구운 황소와 지점토로 만든 황소, 외양간, 구유, 생쥐 외에도 모시에 그린 황소와 한지에 그린 황소가 작업실 이곳 저곳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선생님의 집 거실 한쪽 벽에도 커다란 황소 한 마리가 누워 있습니다. 그림책 한 권을 두고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애썼는지 느껴집니다.

황소 아저씨의 정겨운 수염
작업실에 지은 외양간
황소 아저씨도『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처럼 부조를 뜨고 모시로 덮은 위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처음에는『강아지똥』그림처럼 전통 한지에 그렸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오랫동안 유운영 선생에게서 우리 전통 한지를 받아다 썼습니다. 천 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종이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자연 염료인 쪽으로 한지에 그림을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니 짙푸른 색이 바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부조를 만들어 모시에 그림을 그린 것이지요. 기법도 고민스러웠지만 배경이 외양간으로 거의 제한된『황소 아저씨』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온전히 몸으로 익힌 다음에야 보여 주는 우리 그림의 전통을 제대로 살려낼 수 있을 것인지 무척 고민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런 깊은 고민 끝에 탄생한 그림이기에 책의 첫 부분에는 보이지 않던 황소 아저씨의 듬성듬성한 수염이 더욱 다정해 보입니다.

선생님은 오랜 동안 어린이들과 어울려 벽화 작업을 해 왔는데요, 왜 그런 작업을 자주 하느냐는 물음에 선생님의 낯빛이 더욱 진지해집니다. 전시장에서 보는 그림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 선생님이었기에, 생활 주변에서 그림 작업을 하는 것이 그림책으로 독자를 만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답니다. "벽화를 그리는 지역의 아이들과 주민들을 만나면서 작가가 그리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그들에게 오히려 내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저는 그저 어린이들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표현하도록 돕는 거죠. 인천 만석동에 있는 기차길 옆 공부방에 그린 벽화는 여섯 달 동안 준비했어요. 어린이들이 마을을 다니면서 주민들이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색 선호도를 조사하고, 종이로 밑그림을 준비하여 붙여 보기도 했지요. 작업을 하면서 저도 많이 배우게 됩니다. 내가 받았던 교육에서 못 보았던 것들이 때로는 충격적으로 나를 바꾸었어요."

얼마 전부터 선생님은 어린이집 교사들과 세 살에서 일곱 살까지 아이들이 자신을 잘 표현하도록 돕고 싶어서 '오감 살리기' 미술 교육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책을 어떻게 보나 연구한다는 선생님은 아이들이 책을 참으로 날카롭게 본다고 느낀답니다. "아이들은 그림이 보드라와 보이면 책을 만져 보거나 볼에 갖다 대지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저는 어떤 느낌을 받는 데 참 느리고 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아지똥』그림을 그릴 때도 그랬어요.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 보니 내가 강아지똥이 되어야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강아지똥처럼 되려는 마음만 앞섰지, 진정 강아지똥이 되지는 않더군요. 그때, 나는 왜 이렇게 느린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려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차길옆 공부방 벽화를 그리는 장면 사진
제천 백운의 덕동에서 태어나 방아다리서 자라고 일곱 살 때 서울로 이사해 주욱 서울서 살았던 선생님은 어릴 때부터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집안이 어렵다 보니 그림 공부를 양껏 하지는 못했답니다. 초등 학교 다닐 때는 미술 학원이 얼마나 다니고 싶었던지 학원에 가서 "얼마예요?" 하고 물어 보기까지 했답니다. 그렇지만 "5천 원"이라는 말만 듣고 되돌아 나와야 했지요. 집안 형편 때문에 공고에 가라고 하는 것을 일반 고등학교에 갔는데, 그 때 담임 선생님이 미술 대회에 나가라고 해서 부모님 몰래 미술 대회에 몇 번 나갔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미술부가 아니어서 수업이 끝나면 종례를 빠지고 점심을 굶고 헐레벌떡 대회장으로 갔답니다. 몇 번 대회를 나가 입선을 했는데, 한 번은 최고상을 받기도 했답니다. 미술 선생님은 언제나 99점을 주었지만 미술 공부는 여전히 꿈도 못 꿀 일이었답니다.

벽화를 그리는 장면과 완성된 그림 앞에서 웃고 있는 어린이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이 살던 보광동 상가 이층에 화실이 생겼답니다.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적은 화실비에 상관없이 나오라고 해서 그 학원을 다니게 되었대요. 그런데 안타깝게 그 화실이 석 달만에 문을 닫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나를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가 봐요. 저를 데리고 화실이 많이 있는 남영동으로 가셨어요. 4층 건물이었는데, 삐걱이는 나무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까 화실이 있었어요. 천장도 낮고 화장실도 바로 옆에 있어서 겉보기에 형편없는 화실이었지요. 전혀 선생님으로는 보이지 않는 여자가 한 사람 앉아 있었어요. 그 선생님은 나즈막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그림 한번 그려봐.' 하더군요. 그래서 그림을 그렸더니 '제가 한 번 가르쳐 보죠.' 했어요. 그렇게 인연 맺은 선생님이 바로 이계안 선생님이었어요. 중학교 교사였던 선생님은 퇴근하면 무척 피곤하실 텐데 꼭 화실에 오셨어요. 쭈그려 앉아서 제 그림을 보고 얘기를 해 주었지요. 대학 들어오고 나서도 그렇게 철저히 내가 그린 그림을 놓고 지도 받은 적은 없었어요. 일본에서 나온 화집을 펼쳐 놓고 그림을 모두 설명해 주셨어요. 당시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아, 그렇구나.'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게 꼭 집어서 무엇인지는 터득하지 못했지요. 대학을 들어가고 눈이 열리면서 그때 배운 것이 되살아났어요. 이계안 선생님은 석고상 그리기를 가르칠 때도 기능적으로 그리는 방법만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석고상의 구조를 가르쳐 주었어요. 선생님은 늘 '그림을 꼬작꼬작 그려라.' '만져서 그린 것처럼 그려라.'하고 말씀하곤 했지요. 내게 그림을 가르쳐 주신 실제적인 선생님은 어쩌면 그 선생님이 유일한 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오소리네집 꽃밭』표지 사진
선생님의 그림책은 이제 일본 어린이들도 즐겨보는 그림책이 되었어요. 지난 해 9월 일본의 평범사에서『강아지똥』이 출간되었고, 이어서 올해 3월에는『오소리네집 꽃밭』이 계약되었어요. 그리고 일본의 다른 출판사와 새로운 그림책 발간도 진행하고 있답니다. 반가운 소식이 또 하나 있어요.『강아지똥』이 연극 무대에 올려진다고 해요. 4월 3일부터 14일까지 동숭아트홀에서 공연이 있는데, 강아지똥 그림도 영상으로 볼 수 있다고 하는군요.

선생님의 소원은 참 아름답습니다. "어린 시절 읽은 그림책을 대물림해서 자기 아이에게 읽어 줄 수 있는 책을 몇 권이라도 남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책을 만들려면 하늘의 은혜가 내려야 한다고 하더군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을 꿈꾸며 살고 있어요." 겸연쩍게 웃으면서 듬성듬성 삐죽삐죽 솟은 짧은 턱수염을 만지는 선생님은 마음씨 좋은 황소 아저씨 같습니다. 새앙쥐처럼 귀여운 어린이들을 구유에 초대한 황소 아저씨 말이에요.
공혜조/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여러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 어린이에게 좋은 읽을거리를 권해 주고 싶어서 좋은 어린이 책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어린이』 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좋은 어린이 책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어린이들이 행복에 겨워 웃음 터뜨릴 날을 기다리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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