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06월 웹진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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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화 제대로 보기]
햄스터 땡꼴이의 작은 인생에 담긴 사랑

김서정 | 2001년 06월

조그만 사육장에서 열 마리 넘는 식구가 밟고 밟히며 사는 햄스터 가족. 주인이 먹이를 너무 주면 썩어 골치고 안 주면 배곯는 수밖에 없는 신세. 기를 쓰고 탈출해 봤자 침대 밑에서 쫄쫄 굶다가 제풀에 우리로 돌아가는 죄수 아닌 죄수. 짝짓기 후나 아기 낳은 후 미친 듯 날뛰며 물어뜯는 마누라 때문에 유배 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이혼하고 싶다”를 되뇌었던 아빠를 이해하는 고달픈 가장. 햄스터 땡꼴이의 인생이다. 그런데 이 인생은 유쾌하다. 유쾌하다 못해 통쾌하기까지 하다.

『햄스터 땡꼴이의 작은 인생이야기』표지 사진
별다른 사건 하나 없이 우리에 갇혀 일생을 보내는, 고작해야 아이들 주먹만한 이 조그마한 애완 동물의 이야기가 그토록 유쾌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군더더기 없고 탄력 넘치는 문체와 속도감 있는 서술. 의인화된 동물 이야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상과 연민이 이 이야기에는 전혀 없다. 둘째는, 햄스터 생태에 대한 정확한 관찰과 생생한 묘사. 실제로 햄스터를 키운 경험이 이 이야기를 낳게 했다는 머리말이 아니더라도 작가가 햄스터에게 얼마나 세밀한 눈을 들이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햄스터가 먹고 자고 놀고 신경질내는 장면이 선히 그려진다. 셋째, 아주 독특하고 재미있는 ‘땡꼴이’라는 캐릭터 창조. 땡꼴이뿐 아니라 엄마 햄스터와 아빠 햄스터, 그의 짝인 ‘실밥터진눈’, 땡꼴이와 실밥터진눈을 데려다 키우는 노처녀 ‘주근깨’가 각각 개성파 조연 노릇을 충실히 하면서 이야기의 재미를 살려 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시때때로 웃음이 터져나오게 만들면서 이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햄스터의 인생과 인간의 인생에 대한 땡꼴이의 심각한(?) 논평들이다. 의인화된 동물들을 어설픈 인간적 도덕과 철학에 묶어 동물로서의 본성과 개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함정을 이 이야기는 사뿐히 피해가고 있다. 서두에서부터 땡꼴이는 자기가 ‘햄스터’임을 강조한다. 쥐와 비슷하다고 우리를 쥐라고 부르지 말아라, 원숭이랑 비슷하다고 너를 원숭이라고 부르면 기분 좋겠느냐, 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 맹랑한 도발은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가는 큰 축이 된다.

『햄스터 땡꼴이의 작은 인생이야기』본문 그림
강아지 코 끝에 아이스크림을 들이밀어 마지못해 한 입 핥아먹자 “우리 애기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역시 족보 있는 개는 다르다!”며 환성을 지르는 부잣집 아줌마의 호들갑은 동물들의 눈에는 ‘재롱’을 부리는 것으로 보인다. 개는 자기가 할 수 없이 재롱 부린다는 것을 자각하지만 인간은 그게 재롱이라는 걸 모른다. 미련한 인간! 햄스터들이 사람처럼 이말 저말 전하기 좋아했다면 애완 동물 가게에 드나들면서 은근히 남 험담을 하던 사람들은 다 싸웠을 것이다. 입 싼 인간! 그러나 안심하라, 인간들이여.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입 무거운 햄스터이다. 우리에게는 무슨 말이든 터놓고 해도 괜찮다.

자기 눈앞에서 햄스터 한 쌍이 몇 날 며칠 짝짓기를 하자 주근깨 투성이인 노처녀 주인은 “번식이란 지구의 멸망을 막는 가장 원초적인 일”이라는 묵직한 정의를 내놓고 “힘든데 먹고 해.”라는 말과 함께 먹이를 소나기처럼 쏟아부어 주면서 동정을 금치 못한다. “내가 보기엔 주근깨가 우리들보다 몇 천 배 몇 만 배 더 불쌍한데.” 불쌍한 인간! 경제적 사정으로 우리에 톱밥 대신 신문지가 깔리자 ‘실밥터진눈’의 신경질이 폭발한다. “온통 더러운 기사뿐이잖아. 이런 나쁜 환경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란 말이야.” 더러운 인간!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그 신문지에서 오려낸 “쟁쟁한”사람들 이름을 햄스터 새끼들 머리에 감아 놓는 것이다.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정주영, 이건희, 박세리, 박찬호, 이회창, 최불암, 김기철.” 유명한 정치인, 경제인, 체육인, 연예인들 이름을 아이들에게 붙여 주는 햄스터 엄마의 “허영심”이 사실은 인간에 대한 조롱임이 “김기철”에서 드러난다. 땡꼴이가 “김기철이 누구냐고요? 모르죠, 나야.”하며 시치미를 뚝 떼는 것이다. 별 것 아닌 인간!

『햄스터 땡꼴이의 작은 인생이야기』본문 그림

손바닥보다 작은 조그만 동물의 이 도저(!)한 인간 풍자는 책 전체에서 웃음과 함께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그 설득력의 바탕은 땡꼴이가 햄스터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한계에 대해 갖고 있는 “비극적” 인식이다. 햄스터는 대부분의 개처럼 인간의 권위 아래 전적으로 몸을 굽히면서 절대적인 충성심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양이처럼 야성으로 돌아가 성공적으로 독립할 능력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을 우러러보지도 않고 내려다볼 수도 없는 위치에서 땡꼴이가 인간을 보는 시선은 수평을 이룬다. 햄스터의 눈높이에 맞춰진 아주 낮은 수평의 시선. 그 시선 안에서는 햄스터도 인간도 보잘것없고 가엾은 존재들이다.

『햄스터 땡꼴이의 작은 인생이야기』본문 그림
햄스터는 야생 동물로서의 본능을 잊지 않고 있다. 먹이가 넉넉해도 늘 볼주머니에 저장을 해두는 것이다. 땡꼴이는 그것을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자유를 원해. 우리는 우리끼리 살 권리가 있어. 언제까지나 사람들이 우리를 조물락거리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야.” 먹는 게 지나쳐 배탈이 난 애완견 부들이에게 땡꼴이는 이렇게 비장한 자유 선언을 토로한다. 그리고 팔려간 주근깨의 집에서 사다리를 타고 필사의 탈출! 하지만 자유의 대가는 굶주림이다. “자존심과 자유를 지킬 것이냐, 아니면 등에 붙으려는 뱃속을 채울 것이냐.” 먹을 것 없는 집안을 빙빙 돌면서 갈등에 빠져 있던 땡꼴이는 결국 제발로 걸어나가 다시 잡힌다. “케이크 밤톨만큼만 있으면 불러질 배였는데……. 그것과 맞바꾸는 나의 자유도 별 게 아니라는 비참한 생각”이 탈출로 얻은 소득이다.

그 이후 땡꼴이는 자유에의 갈망을 접는다. 애완 동물 가게에 있던 땡꼴이의 아빠는 우리를 나가는 데는 성공하지만 여전히 가게 안에 있으면서 텔레비전에만 눈을 두고 있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땡꼴이에게 진정한 자유는 죽은 부들이가 간 “하늘나라”에서나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컹컹 짖으며 연애도 하고 개답게 살” 부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이다.

『햄스터 땡꼴이의 작은 인생이야기』본문 그림
인간도 본능과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로는 햄스터와 별로 다르지 않다. 무슨 일이 있으면 후다닥 일어나 달아날 준비 자세로 잠들어 있다가 주근깨의 눈에 들어 팔려간 땡꼴이는 “비극적이고 초라한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인간은 하루 14시간 잠자는 햄스터를 부러워하며 출근하고, 천둥 번개 치는 밤이면 베개 들고 거실로 나와 햄스터 우리 옆에서 꼬부리고 잠든다. 햄스터에게서 “우리보다 몇천배 몇만배 더 불쌍하다” 소리나 듣는다. 만물의 영장이라면서 “자기 이름을 더럽히고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지구상에 사람이나 동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한정되어 있는데 한쪽은 좋은 것을 배탈나게 먹고 한쪽은 굶주”리게 만드는 “배신”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 유전자를 조작해서 순전히 애완용으로 주먹만한 토끼를 만드는, “생명의 질서를 마구마구 흐트러뜨리고 있”는 사람들. 땡꼴이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사람이 햄스터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햄스터 땡꼴이의 작은 인생이야기』본문 그림
이 시니컬한 인식은 그러나 통통 튀는 유머 가득한 서술 뒤로 숨는다. 햄스터의 작은 인생을 온전히 훑어나가면서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는 섹스와 폭력과 죽음 같은 터부성 소재도 이런 서술 태도 덕분에 한껏 가벼워진다. 그래서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는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런 태도가 이 이야기의 장점이 아닐까. ‘배워라!’하고 종주먹을 들이대지 않는 태도. 작고 가벼운 햄스터의 시선을 따라 작고 가볍게 인간과 인생을 그려내는 태도. 햄스터 몇 마리가 태어나 자라고, 사랑하여 일가를 이루고, 싸우고 화해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갈등하고 깨닫고 하는 엎치락뒤치락 에피소드 안에서 작가는 자신이 느낀 생명에 대한 사랑과 놀라움과 기쁨을 말없이 전해 준다. 결국 애완 동물 가게의 우리 안에서 톱밥 쌓아 놓고 사람처럼 기대앉아 텔레비전 보는 것이 “세상 편하고 좋았”다는 땡꼴이 이야기의 결말이 무기력한 체념이 아니라 가볍지만 마음 따뜻한 포용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 ‘너도 나도 다 하잘것없다’는 태도를 가끔 내보이는 땡꼴이의 마음 속에 사실은 인생에 대한 애정과 소망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한다. 작가는 그렇게 숨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전해지지 않는 말로 열심히 이야기하는 땡꼴이처럼.
김서정 / 동화 작가,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어린이 문학을 너무나 사랑하는 선생님은 동화『유령들의 회의』를 썼고,『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행복한 하하호호 가족』『용의 아이들』등을 우리말로 옮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