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06월 웹진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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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 책 깊이 들여다보기]
이야기를 만들며 읽어 보아요

김금준 | 2001년 06월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듯이, 혹은 명화의 한 장면을 생각하면서 글자의 울타리를 벗어나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해 드릴께요. 글자가 없는 책은 오히려 글로 표현해 놓은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같은 사람이라도 볼 때마다 같은 느낌으로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글씨가 있어서 그 내용대로 항상 똑같이 읽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어떻게 보여 줄까.’고민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책장을 넘깁니다.

『함께 세어 보아요』표지 사진
어느 날은 그냥 아무 말 없이 책장을 하나씩 넘겨 주며 그림만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단순하게 그림을 묘사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하며, 또 어떤 날은 마음껏 이야기를 꾸미며 읽어 내려갈 수도 있겠지요. 때로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그림을 샅샅히 훑어보기도 하면서요. 맛보기로 몇 가지 책을 살짝 들여다볼까요?

제가 골라 본 책 중 첫 번째는『함께 세어 보아요』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제목처럼 단순한 숫자 세기가 아니랍니다. 수와 양에 대한 개념, 거기에 다양한 그림들, 그리고 계절의 변화까지 많은 것들이 표현되어 있는 책이에요. 속 페이지의 첫 장부터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한 장에 표현된 그저 단순한 그림으로 보여질지 모르겠지만 가운데 있는 한 개의 해님, 두 그루의 전나무, 세 채의 집, 네 명의 어른, 다섯 명의 아이들, 여섯 개의 호박, 일곱 개의 오리, 여덟 마리의 새, 아홉 그루의 나무, 열 송이의 꽃. 책 전체를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이 책은 페이지마다 대표되는 숫자로 사물을 그려 놓았습니다.

본격적으로 본문으로 들어가서 책장을 넘기면 우선 첫 페이지 0에서는 아무 것도 없는 하얀 눈밭과 하늘만 그려져 있습니다. 그 공간이 하나씩 채워 나가게 되는 것이지요. 1에서는 그 눈밭에 집도 한 채 들어서고, 강아지도 한 마리, 나무 한 그루씩. 그러다가 2, 3, 4… … 페이지가 더해질수록 집도 한 채씩 늘어나고, 나무도 한 그루씩 늘어나죠. 숫자에 해당하는 만큼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그렇게 아이와 마주앉아서 그림 속에 있는 것들을 찾아 보세요. 그렇게 작은 사물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그림 전체를 보게 되면, 처음엔 하얀 눈밭이었던 곳에 새싹이 돋고, 꽃도 피어나고, 나무에도 새순이 돋아난 걸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여기에 나오는 숫자는 1월, 2월, ……. 12월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책은 12라는 숫자까지 진행이 되는 것이죠. 겨울을 지나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로. 한 마을의 사계절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림책이랍니다.

『눈사람 아저씨』표지 사진
이번에는『눈사람 아저씨』를 들여다볼까요? 이 책은『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목욕은 즐거워』같은 책에서 느꼈던 것처럼 꿈인지 현실인지 애매한, 그래서 더 매력이 있는 환타지 동화의 한 종류예요. 편집에 따라, 혹은 출판사에 따라 간혹 내용이 들어가 있는 책으로도 나와 있지만, 마루벌에서 새롭게 나온 책은 파스텔 톤의 그림으로만 전개되어 있습니다.

눈이 오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 그건 바로 눈사람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요? 이 책의 주인공도 눈이 펑펑 오던 어느 날 눈사람을 하나 만들었어요. 그리고 밤이 되었지요. 그 소년은 밤새 그 눈사람 아저씨와 재미있게 놀았답니다. 눈사람 아저씨와 같이 집으로 들어와 아저씨가 녹지 않게 조심하면서 벽난로 불도 쬐고, 얼음과자도 먹고……. 눈사람 아저씨는 소년을 데리고 함께 하늘을 날아 마을 구경도 시켜 주고요.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마당으로 달려 나가는 소년. 눈사람 아저씨는 햇볕에 녹아 없어졌지만, 밤새 즐겁게 놀았던 기억은 남아 있어요. 소년은 꿈을 꾼 것이었겠지만 너무나도 생생해서 꿈이 아닌 것 같아요. 이 책만큼 꿈과 현실의 경계가 애매한, 그래서 더 멋진 그림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그림은 워낙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그림만으로도 내용 전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책 전체의 그림이 다 그렇지만 특히 마을을 향해 날아가는 그림은 정말 아름다워요. 눈사람 아저씨는 비디오로도 나와 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그림책을 본 뒤 애니메이션으로도 감상한다면 더 좋겠죠.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빨간 풍선의 모험』표지 사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 중의 하나가 바로 풍선일 거예요. 풍선의 어떤 면이 그렇게 매력적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풍선이라는 걸 참 좋아합니다. 풍선을 소재로 한 책 중에서 글자 없는 그림책『빨간 풍선의 모험』이 있습니다. 앞의 책들은 은은한 그림을 감상하실 수 있었던 반면에 이 책은 빨간 원색의 풍선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그리고 풍선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모두 흑백으로 표현되어 있지요. 풍선이 바람에 날아다니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사과도 되고, 나비도 되고, 우산도 되고……조금 큰 아이라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아이의 생각을 들어 보세요. 어른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대답이 나올 것 같지 않으세요?

‘보아요 시리즈’의 네 가지 책『걸어 보아요』『찾아 보아요』『두드려 보아요』『물어 보아요』에는 위의 책과는 달리 간단한 문장이 나와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꾸며 나갈 수 있을 거예요. 뒷 페이지에서 내용을 확인하기 전에 다른 상황을 생각하며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시리즈도 원색적인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배경으로 원하는 것만 확실하게 그려 놓았지요.『물어 보아요』에서 개가 왜 짖고 있는지, 새가 왜 날고 있는지 물어 보세요. 그리고『두드려 보아요』에서처럼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의 문을 두드리는 흉내도 같이 내면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떤 것이 있을지 그림책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 보세요.『찾아 보아요』를 읽고 난 뒤 집 안에 있는 물건들 찾기 놀이에 나서보는 것도 좋겠지요.

읽을 때마다 새로운 책이 될 수 있는 건 글자 없는 그림책이 주는 커다란 매력일 거예요. 어린 아기를 위해서라면 엄마가 조금 생각해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주세요. 아이들도 너무 많이 들어 내용을 다 외워 버린, 다음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나온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는 책보다 훨씬 재미있어하겠지요? 그리고 조금 큰 아이들에게는 엄마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해 보세요.
김금준 / 1973년에 태어났습니다. 이화 여자 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3년간 컴퓨터 회사에서 SE로 근무했습니다. 결혼 후 첫 아이를 가지면서 전업 주부의 대열에 들어섰고, 그때까지 그림책과는 아무 관련이 없이(^^) 지내다가 지금은 25개월이 된 아들 재현이 덕분에 그림책 고르는 재미, 그림책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답니다. 토끼 띠인 아들 재현이의 밥이어서 별명이 당근이랍니다. 재현이네 홈페이지에 그림책을 많이 소개하고 있지요.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