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웹진 제11호
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열린 주제 열린 글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열린 주제 열린 글

[우리집 책 이야기]
병원 가기 싫다구요?

이선주 | 2001년 11월

요즘은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가 깜짝 놀라는 일이 많습니다. 휑하고 딱딱한 느낌의 병원보다는 아늑하고 환한 조명들로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병원들이 참 많거든요. 특히 소아과 같은 곳은 아이들이 대기하는 동안 잠깐이라도 놀 수 있도록 놀이기구까지 가져다 놓은 곳도 많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은 병원은 무섭고, 공포스런 곳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딸애가 처음으로 접했던 병원 관련 책은 고미 타로의『악어도 깜짝, 치과 의사도 깜짝!』이란 그림책이었습니다. 이가 아파 치료를 하러 온 악어를 무서워하는 치과 의사의 마음과, 치료를 해 줄 치과 의사를 무서워하는 악어. 이 둘의 마음을 아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그림책입니다. 깔끔한 일러스트에 짧은 대사가 똑같이 반복을 이루면서 아이들은 책에서나마 병원이 공포스럽다는 느낌을 잊고 깔깔 웃게 되는데요.
『악어도 깜짝, 치과 의사도 깜짝!』표지와 본문
어찌 보면 “치과에 가지 않으려면 양치질을 해야 한다”는 교훈적인 면이 아이에게 많이 부각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양치질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싫어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마지막 문구에서 던져 주는 짧은 교훈 역시 참 재미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를 닦자, 이를 닦아.” 그래요, 병원을 공포스럽게 생각하기 전에 이를 열심히 닦아 예방을 해 버리면 되겠네요.

푸른 빛 어두운 톤으로 그려진 에른스트 얀들의「다섯번째」라는 시를 그림책으로 만든『다음엔 너야』라는 그림책은 다친 장난감 인형들의 그림이 담긴 표지부터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당깁니다. 푸른 어둠 속에 몸을 다친 장난감 친구들 펭귄, 오리, 곰, 개구리, 피노키오 인형들이 앉아 있지요. 사각형의 방 한 켠에는 문이 하나 있구요. 이 문으로 다친 인형들이 차례차례 들어갔다가 완전해진 몸이 되어 나옵니다. 그 모습이 아이들 눈엔 여간 신기해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다음엔 너야』표지와 본문
이 책을 읽히다 보면 엄마가 애써서 아이에게 “넌 병원에 가야지 아픈 곳이 다 나을 수 있단다.”라고 말하며 아이를 억지로 이끌고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자기 차례가 돌아오자 한 명씩 차례대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는 다친 장난감들이 무서워하는 모습은 병원 진료실에 앉은 아이들의 모습과 많이 닮았습니다. 병원이 아무리 멋지고 밝아졌다 해도 우리 아이들이 병원 진료실에 앉아 차례를 기다릴 때는 갓전등 하나만 달린 어두운 방에 앉아 있는 느낌일 거예요. 이제 세 친구들은 모두 치료를 끝내고 돌아가고, 네 번째 친구가 진료실에 들어가자 코가 부러진 피노키오는 혼자 남아 눈물을 흘리지요. 하지만 네 번째 친구마저 치료를 받고 돌아가고 진료실로 들어간 피노키오는 “안녕하세요. 의사 선생님. ”하고 밝게 인사하지요. 그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물론 그 앞엔 만면에 미소를 띤 의사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지요.

『병원에 입원한 내동생』표지와 본문
『달님 안녕』『이슬이의 첫 심부름』등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의『병원에 입원한 내동생』을 읽다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 작가의 작품들이 모두 그렇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이 일상의 한 부분을 잡아서 우리에게 와 닿도록 만드는데요. 여기서도 주인공 순이가 못마땅해 하던 여동생 영이의 입원으로 인해 받은 충격이나 외로움, 걱정스런 마음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엮어나가고 있습니다. 병원이야기뿐만 아니라 형제자매간의 우애까지도 너무 자연스럽게 풀어나간 그림책이랍니다.

아이들은 병원을 무서워하면서도 병원놀이하는 건 참으로 재미있어 하는데요. 제 딸애도 처음으로 하고 싶어했던 역할 놀이가 아마도 병원놀이였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밤마다 환자가 된 엄마 아빠를 눕혀 놓고 반창고를 꺼내 이마며 눈에 마구 붙여놓고 붕대를 말아놓고……. 다음에 다시 쓸 수 있도록 반창고를 잘 떼어내 책상 옆에 반듯하게 붙여 놓았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는데 그 시절에 좋아했던 그림책이 - 물론 아직도 열심히 병원놀이를 즐기고 있고, 열심히 이 책도 읽고 있답니다 -『병원놀이를 했어요』였습니다. 고양이들이 서로에게 반창고를 붙이는 장면을 특히나 좋아했습니다.

『병원놀이를 했어요』와『멍멍 의사 선생님』표지
병원놀이 이야기를 해 주는 그림책으로는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시각으로 그림책을 그리는 베빗콜의『멍멍 의사 선생님』도 권하고 싶네요. 그림책은 우리의 실제 일상 속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아이들만의 시각에서 본 환상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풍부한 상상력을 기를 수 있어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 권할 만한 장난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강아지가 가족의 주치의구요. 지저분한 가족들이 병에 걸리고, 강아지가 직접 병을 고쳐주면서 왜 병에 걸렸는지를 설명해 주는 내용이 아주 코믹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아이와 역할 놀이를 할 수도 있고 또 책을 통해서 직접 병균에 대한 이해를 키우며 왜 손을 닦아야 하는지, 왜 담배를 피면 안 되는지에 관한 간단한 과학적 상식까지도 더불어 알게 되는 책입니다.

느낌 좋은 수채화 그림에 등장인물의 표정이 살아 있는 일러스트가 돋보이는『나도 아프고 싶어』는 오빠의 병으로 온통 오빠에게 쏠린 관심 때문에 오빠가 마냥 부럽기만 한 아기 고양이 엘리자베스의 심리를 통해서 아이들의 맘을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아파 보니까 오빠가 재밌게 놀고 뭔가 하는 것이 마냥 부럽기만 한 엘리자베스……. 역시나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게 제일이라는 생각을 아이들에게 심어 준답니다.

『나도 아프고 싶어』표지와 본문
평생 병원에 갈 일이 없으면 좋겠죠? 하지만 평생 병원에 가지 않고 지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랍니다. 제가 엄마가 되고 보니 더 무서운 것은 조그만 딸애가 아파서 병원에 갈 일이 생길 때인데요. 제가 아파서 주사 맞는 것보다 더 무섭고 힘들더라구요.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병원 가기 전에 아이와 그간 모은 그림책들을 펼쳐 놓고 읽어 보고 실컷 웃어보기도 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 저는 특별히 이래 저래서 병원에 가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나 설명을 해 주지 않습니다. 애써 어른들이 말해 주지 않아도 아이들이 그림책을 통해 주인공과 공감대를 이루면서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어떤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아이들 각자 그림책을 보면서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는 그것, 바로 그것이 정답 아닐까요?
이선주 / 1970년에 세상과 만났답니다. 육아와 교육, 그림책 이야기를 담은 개인 홈페이지 ‘겨레한가온빛’( http://gyure.new21.net )을 운영하고 있는 세 돌배기 딸 ‘겨레한가온빛’의 엄마입니다. 겨레 두 돌 때까지 4년 가량 초중등부 학원을 운영했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겨레한가온빛’홈페이지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웹서핑은 겨레가 깨어나기 전에 즐겨하는 취미의 하나이고, 하루 가운데 대부분의 시간을 겨레와 그림책 읽기와 활용하기로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를 가슴에 안고 함께 그림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지극히 평범한 엄마랍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