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08월 웹진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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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
카를로 콜로디

김서정 | 2002년 08월

『피노키오의 모험』은, 나한테는 참 이상한 책입니다. 나는 이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로 작정했었습니다. 내가 가장 경계해 마지않는 교훈, 아이들을 어른들 입맛대로 길들이려고 하는 의도가 너무나 표면적으로 차고도 넘치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삐노끼오의 모험』
표지에서
“아이들이 자기 부모 말을 안 듣고 아버지 집을 떠나면 큰일 나!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행복할 수 없어.”,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먹을 수 있어야 하고 또 맛있게 먹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해.”, “멋진 옷이 아니라 깨끗한 옷을 입어야 신사란다. 기억해 두거라.”, “잘 기억해 두렴. 변덕을 부리고 제멋대로 하는 아이들은 곧 후회하게 돼.”, “얘야, 아무리 배가 고프다 해도 도둑질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거란다.”, “나쁜 아이들이 착한 사람이 되면 온 가족이 웃을 수 있는 새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지.” 처럼, 구구절절 옳은 말씀들이 무슨 이정표처럼 이야기 중간중간에 우뚝우뚝 서 있습니다.

마치 ‘이 이야기의 갈 길은 여기다. 여기서 벗어나지 말아라.’ 하면서 잡아끄는 것 같습니다. 36개 장의 기나긴 제목들도 그런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여러분은 나쁜 아이들이 자기들보다 훨씬 더 많이 아는 사람들에게 꾸중듣는 걸 얼마나 지겨워하는지 보게 될 거예요.’, ‘피노키오는 말하는 귀뚜라미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강도들을 만났어요.’ ‘피노키오는 착한 아이가 되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고 요정과 약속했어요.’ 같은 제목들을 보세요.

『피노키오의 모험』표지와 본문
어른인 화자나 어른 등장인물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린아이인 피노키오도 참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렇게 온갖 말썽을 부리면서 매번 얼마나 뼈저린 후회와 다짐을 하는지 모릅니다. “난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착하단 말이에요. 그리고 난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아요. 약속할게요, 아빠. 기술을 배워서 아빠가 늙으셨을 때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고 지팡이가 되어 드릴게요.”부터 시작해서 “꼭두각시였을 때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몰라! 그런데 지금 이렇게 착한 아이가 되고 나니 정말 기뻐!”에 이르기까지, 거의 닭살이 돋을 정도입니다.

이 이야기는 또 구성이 퍽이나 엉성합니다. 일관되고 탄탄한 기승전결이 있는 게 아니라, 신문 연재용이었기 때문에 토막토막 에피소드들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극에서 극을 오가며 변덕을 부리는 피노키오, 무기력해 보이는 아버지 제페토, 지나치게 허풍스러운 서커스 단장, 야비한 악당들인 여우와 고양이, 지당하고 지루한 교훈만 늘어놓는 귀뚜라미, 처음에는 섬뜩하게도 죽은 사람으로 등장하더니 가슴 에이는 슬픔과 한없는 사랑을 품은 어머니 상을 연기하는 파란 머리 소녀……. 매력을 느낄 만한 인물도 도무지 없습니다.

『삐노끼오의 모험』
표지에서
그런데도 이 이야기는 참 재미있습니다. 분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번 읽고 밀어 놓을 책이 아니라 다시 읽어도 또 재미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재미있는 이유가 참 꺼림칙합니다. 꺼림칙해도 털어놓자면, 나는 피노키오가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일을 해서 진짜 사람이 되는 게 재미있는 게 아니라, 녀석의 그 건방짐과 욕심과 게으름에서 나오는 온갖 말썽과 그로 인해 받는 끔찍한 벌들이 재미있었습니다.

피노키오의 ‘죄와 벌’은 무척이나 극단적이고 난폭해서 거의 가학적 혹은 피학적일 정도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아빠를 감옥으로 보내 버리지 않나, 난로 옆에서 잠들었다가 다리를 홀랑 태워먹고 바닥을 기며 울부짖지 않나, 강도 손을 한 입에 물어뜯어 완전히 절단내 버리지 않나(잘린 고양이 손을 퉤, 내뱉지요), 약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관을 멘 저승사자들을 보내 “넌 앞으로 몇 분 못 살 거야.”하고 협박을 하지 않나, 포도알 몇 개 따 먹으려다 날카로운 덫에 걸리고, 무거운 쇠목걸이를 건 채 집 지키는 개 노릇을 해야 하지 않나, 장난으로 던진 책에 친구가 맞아 죽고 그 누명을 쓴 채 개에게 쫓겨 바다에 빠졌다가 그물에 걸려 튀겨질 뻔하질 않나, 당나귀로 변해 털이 다 빠질 정도로 채찍질 당하고 곡마단에서 재주를 부리다가 다리가 부러지고, 급기야는 목에 돌을 매단 채 바다에 던져지지 않나……. 무엇보다도 압권(!)인 것은 피노키오가 나무에 목이 달려 몇 시간을 대롱거리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장면입니다.

아무리 나무 인형이라지만 어린아이의 표상인 피노키오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재미있어하다니, 나는 사디스트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교훈도 좋다지만, 아이들이라는 게 원래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세상 경험 없어서 바보짓 나쁜짓 하기 마련인데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죄를 짓게 하고 벌을 받게 하다니, 콜로디는 사디스트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까지 복잡한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동화는 정말이지 다시없을 것입니다.

『삐노끼오의 모험 1』표지와 본문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콜로디도 나도 사디스트라고 몰아붙일 필요가 없게 해 주는 요소를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갖고 있습니다. 죄의식과 함께 위안과 안도감을 주는 셈이지요. 우선, 피노키오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꼭두각시 나무 인형입니다. 이 설정은 독자들에게 피노키오와 자신 사이에 충분히 안전한 거리감을 확보해 줍니다. 마치 “옛날 옛날 먼 옛날에”하고 시작하는 전래동화 같습니다. 피노키오는 전래동화 속의 도형적 인물 같아서 아무리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상어 뱃속으로 들어가더라도 우리 사람이 느끼는 것 같은 실제적 고통을 느끼지는 않으리라는 게 독자와 작가 사이의 암묵적 합의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피노키오가 아파하고 배고파하는 묘사가 나오더라도 그걸 마음 가볍게 넘길 수 있습니다. 그 가장 확실한 증거가 책 서두에 나옵니다. 이야기가 ‘옛날 옛날에……’ 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꼬마 독자들은 임금님이 살았어요! 라고 하겠지? 아니다, 틀렸다. 옛날 옛날에 나무토막이 하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요소로는, 서두에서 이미 눈치챌 수 있다시피, 빛나는 유머 감각을 들 수 있습니다. 첫 장에서는 나중에 피노키오가 되는 그 나무토막이 “엄숙하게” 도끼질을 당하면서 “아야! 아프단 말이에요!” 하고 투덜거립니다. 대패질을 하면 간지럼 태우지 말라며 킥킥거리고요. 둘째 장에서는 그 나무토막 때문에 기겁을 한 목수와 인형 깎을 재료를 얻으러 온 제페토 사이의 싸움박질과 그걸 부추기는 나무토막의 장난기가 유쾌하게 어우러집니다. 이 첫 두 장에서 각인된 장난기와 유머의 분위기는 책 전체에서 맴돌면서, 피노키오의 말썽과 고난의 무게를 덜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삐노끼오의 모험 2』본문
사 층에서 일 층까지 문 열러 내려오는 데 아홉 시간이 걸리는 달팽이, 도둑 맞은 사람은 감옥에 넣고 도둑질한 사람은 풀어 주는 원숭이 판사들도 중간중간 그 힘을 보탭니다. 피노키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진단하러 와서 “죽은 사람이 울면 이것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죽은 사람이 운다는 건, 그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같은 궤변을 늘어놓는 까마귀와 올빼미 의사, 다랑어로 태어난 이상 기름에 튀겨져 죽는 것보다는 물에 빠져 죽는 게 훨씬 더 품위 있는 일이다, 이건 내 의견이며, 다랑어 정치가들의 말처럼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상어 뱃속에 들어앉아 강변하는 다랑어 등등의 엑스트라들은 피노키오를 통해 주어지는 심각하고 무거운 도덕적 교훈들을 가볍게 띄워 줍니다.

그렇게 보면, 어느 연구자가 표현했듯이, 우리가 이 ‘유쾌하게 가학적인 판타지’를 즐기면 안 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심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벌받는 것을 보면서 쌤통이라고 여기는 심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그 ‘죄와 벌’과는 무관하다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는 한 말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것이, 무고하게 다친 친구는 위로해 주지만 말썽 부린 친구는 선생님에게 이르지 않습니까? 구제불능의 말썽꾸러기가 호되게 벌을 받는 걸 보면서 쯧쯧, 혀를 차면서도 고소해하고, 그러나 결국 그 아이가 개과천선해서 새사람이 되는 걸 보면서 안도하고 기뻐하는 마음. 피노키오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후련한 마음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노키오에는 풍성한 모험이 들어 있습니다. 꽃무늬 종이 옷에 나무 껍질 신발을 신고 빵 조각 모자를 쓰고서 집을 나선 피노키오가 서커스와 곡마단과 요정의 집과 상어 뱃속과 장난감 마을을 종횡무진 누비며 겪는 모험 자체만으로도 이 이야기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삐노끼오의 모험』
표지에서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쓴 카를로 콜로디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826년 플로렌스 태생이며 본명은 카를로 로렌지니라는 것, 어머니 고향 마을의 이름을 따서 콜로디라는 필명을 썼다는 것, 직업은 신문기자이며, 이탈리아 독립 전쟁에 참가했고, 풍자 잡지를 창간했다는 것 정도입니다. 『피노키오의 모험』은 1881년부터 연재를 시작했고 1883년 책으로 나왔습니다. 출판사는 이 책으로 한 재산 단단히 잡았지만, 정작 콜로디 자신은 자기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콜로디는 어린이용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만족시키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를 위해 쓰기로 했다.” 이 말은 어쩌면 어린이용 이야기가 어른용 이야기에 비해 쉽고 단순해서 아무나 쓸 수 있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풍자 잡지를 창간할 정도로 남다른 감각을 지녔던 콜로디가 그런 뜻으로 그 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공연히 까다롭고, 아집과 독선으로 굳어 있는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은 훨씬 열린 마음으로 기꺼이 재미와 즐거움을 받아들인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내 독자로 택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립니다. 과연, 아이들은 120여 년 후에도 피노키오의 충실한 독자가 되고 있습니다.
김서정 / 1959년에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뮌헨 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한국프뢰벨 유아교육연구소의 수석 연구원과 공주 영상 정보 대학 아동 학습 지도과 교수를 지냈습니다. 동화 작가와 아동 문학 평론가,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화『믿거나 말거나 동물 이야기』『유령들의 회의』를 썼고,『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행복한 하하호호 가족』『용감한 아이린』『어린이 문학의 즐거움』(시리즈)『용의 아이들』등 옮긴 책이 아주 많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