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통권 제1호
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열린 주제 열린 글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열린 주제 열린 글

[이 달에 나누는 이야기]
추위와 더불어 쌓는 추억

남정령 | 2002년 12월

『겨울방』표지
며칠 전, 제가 사는 곳에 눈이 내렸습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에 살짝 내린 첫눈에 이어 두 번째로 내린 눈이었지요. 지난 겨울에 눈과 함께 했던 추억을 잔설처럼 갖고 있는 아이는 베란다에 매달려 성급하게도 눈사람을 만들러 나가자고 합니다.

지난 겨울에는 눈이 참 많이 왔답니다.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내려서 아이랑 눈사람을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눈꽃 축제를 보러 가는 태백산 고갯마루, 얼음처럼 박혀서 빛나는 별빛을 받아 반짝반짝 피어나던 주목의 눈꽃들도 그립습니다.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아이와 함께 걷던 숲 속의 눈길도 생각납니다. 동네의 공원 언덕에서, 쌓인 눈 위에 비료 포대를 깔고 앉아 아이와 함께 깔깔 웃으며 타던 썰매도 재미있었고……. 지난 겨울은 이렇게 한 보퉁이의 추억을 풀어냅니다. 그리고 올 겨울에게 추억의 자리를 넘겨 줍니다. 올 겨울엔 아이와 어떤 겨울 그림을 그리게 될까요.

『황소 아저씨』표지
동화 『겨울방』에는 추운 겨울 동안 온 식구들이 난롯가에 모여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겨울방이 나옵니다. 흔히 거실이라고 부르는 공간인데 거실이라는 말보다 겨울방이라는 말이 더 아늑하게 느껴지네요.

겨울방에 둘러앉아 어른들이 해 주는 옛날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창 밖으로는 싸륵싸륵 눈이 내리고 난로의 불꽃은 타닥타닥 타오르고…….
그런 풍경들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요? 아랫목에 발을 파묻고 군고구마를 까먹으며 옛날이야기를 들었던 유년……. 아이와 함께 우리도 ‘겨울방’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서 책을 보며 겨울을 꿈꿔 보고 싶어요.

먼저, 추운 겨울을 녹일 만큼 따스한 이야기로 출발해 봅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을 그림책으로 만든 『황소 아저씨』입니다.

『눈 오는 날』표지
달빛이 은가루처럼 부서지는 겨울밤을 배경으로 덩치 큰 황소와 작은 새앙쥐가 서로 마음을 나눕니다. 혼자였다면 견디기 힘든 추위도 둘이 살을 맞대고 지내니 견딜 만합니다. 내가 가진 것도 별로 없지만 나보다 더 가진 것 없는 새앙쥐에게 기꺼이 베푸는 황소 아저씨의 마음이 훈훈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황소 아저씨의 마음이 예뻐서 눈이 포근포근 내려 줄지 모릅니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던 아이가 환호를 하며 밖으로 뛰어나가는 건 당연하겠죠? 『눈 오는 날』의 피터처럼요. 눈사람을 만들어 눈사람과 즐겁게 놀기도 하고, 눈천사도 만들고, 눈 위에 발자국도 찍고, 눈미끄럼도 타고……. 우리집 아이도 지난 겨울에 피터처럼 눈천사도 만들고 눈미끄럼도 타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답니다.

『짱뚱아 까치밥은 남겨 둬』『까치와 소담이의 수수께끼 놀이』표지
우리가 어릴 때 놀았던 사계절 놀이가 잔뜩 나오는 책이 『짱뚱아 까치밥은 남겨 둬』 입니다. 겨울에는 얼음 썰매를 만들어 타고 놀았죠. 쓰지 않는 헌 칼로 만드는 나무 썰매. 그도 여의치 않으면 그냥 언덕에서 비료 포대를 타고 노는 거지요. 추운 겨울밤이 되면 밤을 구워 먹거나 그림자 놀이를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듣고…….

『까치와 소담이의 수수께끼 놀이』에도 겨울 놀이 장면이 나옵니다. 썰매를 타고 눈싸움을 하고 팽이를 돌리고, 그리고 쌩쌩 부는 겨울 바람에 연도 날려 보지요. 대보름날 밤, 쥐불놀이를 하고 나면 어느새 겨울도 끝날 날이 멀지 않게 됩니다.

겨울 풍경,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겨울 철새들의 멋진 군무입니다. 멀리 시베리아의 북풍을 피해 우리 나라로 찾아든 기러기며 가창오리, 고니, 저어새 등……. 『흰 기러기의 여행』은 겨울 철새들의 힘겹고도 고단한 비행을 다큐멘터리처럼 펼치고 있는 그림책입니다.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거친 툰드라 땅을 지나 멀고먼 여행을 하는 새들의 힘겨운 몸짓.

『흰 기러기의 여행』표지
그들을 보다 보면 따스한 방에서 겨울이 춥다고 엄살을 부릴 아이들은 하나도 없지요. 우리 나라에도 한강의 밤섬, 철원 평야 일대, 주남 저수지, 을숙도, 천수만과 우포늪 등 크고 작은 저수지와 간척지가 철새 도래지로 손꼽히고 있답니다. 아이들하고 철새들의 군무를 지켜보면서 자연 속에서 사는 지혜를 한 수 배워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겨울이 지루해질 즈음 해서 슬슬 봄 꿈이 피어납니다. 『아기너구리네 봄맞이』는 겨울잠을 자다가 깨어난 아기너구리 삼형제가 성급하게 굴 밖을 구경나갔다가 눈을 만나는 장면이 따스한 그림으로 펼쳐집니다.

하얀 찔레꽃잎인 줄 알았는데 겨울 바람에 흩날리는 눈송이였지요. 연필로 그린 잔잔한 그림이 적막한 겨울산과 배릿하게 풍겨 오는 봄내음을 잘 표현했습니다. 올 겨울의 끄트머리쯤에선 이 그림책 마지막 장면처럼 연둣빛 바람이 풀풀 불어 오겠죠?

『아기너구리네 봄맞이』표지
손꼽아 겨울을 기다리는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난 겨울이 추워서 좋아.” 어른들은 여름은 더워서 싫고 겨울은 추워서 싫은데, 아이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여름은 더워서 좋고, 겨울은 추워서 좋습니다. 황소 아저씨와, 피터와, 흰 기러기와, 아기너구리들과 함께 꿈꿀 수 있어서 좋습니다.
남정령/일곱 살 지원이와 함께 책과 여행의 즐거움을 키워 가고 있는 엄마입니다. 홈페이지 '작은 책방(www.blueink.pe.kr)을 운영하면서 맘스쿨의 책 코너를 맡아하고 있고 쥬니어 네이버에도 어린이 책 소개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책 관련 일을 하는 게 행복하기만 합니다. 아울러 '어린이 도서연구회'의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을 하면서 어린이 책에 대한 공부도 꾸준히 해 나가고 있습니다. 늙을 때까지 지원이랑 머리 맞대고 책 읽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