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통권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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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책 이야기]
그림책으로 가꾸는 행복

문선남 | 2002년 12월

아이랑 나들이하여 구경하기에는 시골 5일장 구경이 단연 으뜸입니다. 인천에 살 때는 소래 포구나 연안 부두에 있는 어시장에 가서 싱싱한 해산물을 구경하고 조금씩이나마 사 오는 즐거움을 누렸는데, 이곳 양산으로 이사 와서는 4일과 9일마다 열리는 장을 보러 가는 즐거움에 푹 빠졌습니다. 그리 살 것도 없지만 아이랑 둘이서 마을 버스를 타고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들 장바구니 틈에 끼어 오가는 즐거움이 큽니다.

『시장 나들이』를 펴 보면 우리 부모들에게조차도 이제는 낯설어진 장터의 모습이 아주 커다랗고 자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장터 곳곳에서 무엇을 파는지 그림을 보며 대장간, 포목전, 가축시장, 신발가게, 옹기전, 튀밥튀기는 곳 따위를 아이에게 설명해 주고, 책을 다 보고 나서 아이랑 큰 그림을 펼쳐 놓고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함께 찾아보면 좋습니다. 오늘은 아이랑 가을이 깊어가는 장터구경을 했습니다. 뭘 샀냐고요?

장터에서 한 그릇에 500원 하는 ‘식혜’를 달게 마시고, ‘수수가루(빈대떡용)’와 가을이 제철인 ‘도토리 묵’과 ‘표고 버섯’을 샀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장터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할머니들이 지팡이를 짚어가면서 장터나 마을 버스에서 나누시는 입담입니다. 구수한 사투리의 정겨움과 삶의 고단함이 고통으로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란다면 옛 전통 놀이도 함께 장터에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시장 나들이』표지와 본문

그림책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를 위해서 최근에 산 책이 『난 그림책이 정말 좋아요』입니다. 토끼 한 마리가 책을 펼치고 앉아 있는 모습이 꼭 토끼띠, 우리 아이 모습 같습니다. 새로 책을 사게 되면 아이도 새 것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지만, 엄마도 아이 못지않게 책의 그림과 내용을 궁금해 합니다.

특히 이 책은 제목이 『난 그림책이 정말 좋아요』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만날 그림책을 읽다가 조금 나태해질 무렵에 접한 책이라 ‘도대체 얼마나 좋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다 보고 나니 역시 그림책이 좋음을 아이보다 제가 먼저 느끼게 되었습니다.

『난 그림책이 정말 좋아요』표지와 본문

주인공 토끼가 그림책을 들고서 좋아하는 모습 ― 네모난 모양, 촉감, 그림책에 나오는 곳 ―을 보며 정말 그렇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죠. 아이에게 책이 네모난 모양임을 보여 주고 책 여러 권을 옆에 두고서 네모에도 크고 작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답니다. 또 집안에 있는 물건 중에 여러 가지 모양을 함께 찾아보았습니다. 토끼는 그림책을 보다가 깡충 뛰어넘기도 하고, 책 밑으로 기어가기도 하며 나무에 올라가 책에 뭐가 있을까 하고 호기심어린 몸짓으로 책장을 넘기기도 하네요.

그림책에 나오는 마법의 숲에는 지금껏 그림책을 통해 만났던 동무들과 앞으로 수많은 책을 통해 만나게 될 동무들을 잠깐이나마 미리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 토끼처럼 우리도 그림책이 정말 좋아요. 맨 처음부터 맨 끝까지…….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바로 전에 늘 함께 보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바로 『바람이 멈출 때』입니다. 한 편의 시처럼 묘사된 글과 자연의 변화와 하루의 작은 변화를 그대로 담아 놓아 이제 막 ‘왜’라는 물음을 시작하는 아이와 함께 보기에 좋은 책입니다.

『바람이 멈출 때』표지와 본문

글을 모르는 우리 아이지만 우리는 그림책에 나오는 엄마와 아이가 되어서 그림책에 나오는 대로 서로 문장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합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해님이나 달님이 어디에 가냐고 물으면 길게 생각하지도 않고 ‘자러 간다.’고 했는데, 이 책을 접하고서는 ‘이렇게 이야기해 줘야 겠구나.’하고 감탄했습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서 큰 아이들에게 가르치듯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낮이 끝나면 해는 어디로 가나요?”하고 아이가 묻습니다. “낮은 끝나지 않아. 어딘가 다른 곳에서 시작하지. 이곳에서 밤이 시작되면, 다른 곳에서 해가 빛나기 시작한단다. 이 세상에 완전히 끝나는 건 없단다. 다른 곳에서 시작하거나 다른 모습으로 시작한단다”하고 엄마가 대답합니다.

자연의 순환이, 우리의 삶이 그러합니다. 끝이란 건, 그것으로 완전히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시작임을 아이와 우리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중하고,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로서 시작과 끝이 있고, 끝은 또 다른 시작을 뜻함을 이 그림책을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자세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동요그림책이 많이 나왔습니다. 유아들부터 큰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한 곡의 노래와 한 폭의 동양화도 감상하며 노래를 부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이랑 도서관 나들이 할 때면 항상 동요그림책 한 권은 빌리게 됩니다. 지난 여름 도서관 앞 그늘진 벤치에 앉아서 남이 보건 말건 아이랑 손장단을 맞추어 가며 함께 불렀던 『노래노래 부르며』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노래노래 부르며』표지와 본문

『노래노래 부르며』는 부모님들이 잘 알고 있는 동요 열아홉 곡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 또한 서양화가 판을 치는 요즘 쉽게 접할 수 없는 우리 전통의 그림이어서 아이에게나 엄마인 저에게나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내키기만 한다면 노래를 잘 부릅니다. 노래를 부르다가 모르는 척하며 ‘뭐지, 그 다음 뭐지?’ 슬쩍 물어 오기도 하고, 저도 모르는 척하며 ‘글쎄, 뭐더라?’고 하면, 신나게 소리도 크게 부릅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노래도 잘 하네.’하면 쑥스러워 고개 숙인답니다.

노래는 사철을 담아 놓았는데, 한 곡도 모르는 곡이 없을 정도로 익숙한 노래들입니다. 아이 자장가 삼아 불러 주었던 「나뭇잎 배」, 가을에 많이 불렀던 「둥근 달」, 비 오는 날에나 맑은 날에나 자주 불렀던 「우산」, 엄마들이 자장가로 잘 들려주는 「섬집아기」……. 계절에 맞는 동요가 생각나고 지금도 입가에 노래가 저절로 나옵니다.

『호랑이와 곶감』표지와 본문

그림책을 볼 때나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줄 때, 아이도 원하고 저도 되도록이면 우리 옛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려고 합니다. 캄캄한 밤에 아이에게 누워서 읽어 주는 게 아니라 들려 주려면 엄마가 우리 옛이야기를 많이 알아야겠지요. 우리 옛이야기에는 호랑이가 많이 등장하지요. 호랑이가 그만큼 우리 조상들의 생활에 친근한 동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도 아이가 칭얼댈 때 자꾸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고 하는 할머니나 어머니가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아이는 호랑이가 잡아간다거나 엄마가 호랑이처럼 두 손 손가락 펴고 잡아먹겠다는 시늉을 하면 이 그림책 『호랑이와 곶감』 때문인지 놀이쯤으로 생각하고 즐거워만 합니다.

옛이야기 중에서 『호랑이와 곶감』을 특별히 좋아하는 까닭은 호랑이가 어리석고 순박한 모습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겁이 많은 호랑이가 곶감이 무서워서 소도둑을 등에 태우고 밤새 헉헉대며 달리는 꼴이 정말 어리석고 바보스럽기도 한데, 그런 호랑이의 모습을 보며 아이는 즐겁기만 합니다. 여기서도 꾀 많은 토끼는 잘난 척 하다가 꼬리가 잘리고 눈도 빨개진다는 양념 같은 이야기가 곁들여져 재미를 더해 줍니다. 우리 아이들도 호랑이의 순박함을 배울 수 있기 바랍니다.
문선남/아이가 세 돌이 될 때까지 아이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즐기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이제는 접었던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새내기와 같은 마음으로 바삐 살고 있습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야 겨우 멋진 그림책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세상 모든것이 책으로 통한다는 진실을 아이와 함께 느껴보고 싶답니다. 요즘 아주 큰 꿈이 하나 생겼는데, 좋은 그림책 한 권을 깨끗한 우리 말로 옮겨 보는 것이랍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