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1월 통권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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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작가 이형진의 그림책 살피기 ]
‘천둥 치는 밤’의 편안함

이형진 | 2003년 01월

어떤 사람이 존 버닝햄의 그림은 꼭 자신에게만 보여 주려고 그린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나 보여 줄 만한, 꾸밈없이 편안한 그림이라는 뜻이었다. 존 버닝햄의 그림은 정말 그렇다. 억지로 정성 들여 그림을 채워 나가는 법이 없이 딱 보여 줘야 할 만큼만 슬슬 느긋하게 그린 듯하다. 그게 바로 독자들에게 편안함으로 받아들여지는가 보다.

『천둥 치는 밤』을 만든 미셸 르미유의 작업도 내게 존 버닝햄과 비슷한 쾌감을 주었다. 많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만 결과물로 접근하는 마지막 작업에서는 편안함으로 다가서기. 그리고 독자들을 그 편안함으로 끌어들인 다음, 진지함으로 빠져들게 하기. 뭐, 책 만드는 일이 다 그런 작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핵심을 참 잘 드러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천둥 치는 밤』을 펼치면 (별로 힘 안들이고 슬슬 그린) 불안한 밤 풍경이 나온다. 이름 모를 소녀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들지 않는다. 소녀는 그 때부터 공상을 시작한다. 하나도 신기할 게 없이 우리랑 똑 같은 공상들을 끊임없이 이어 나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갖가지 걱정들이 나오는데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품어 보았을 뻔한 것들이다. 그래서 너무 편안해서 나도 모르게 책장을 자꾸만 넘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진지하게 책을 들여다보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죽음, 존재, 영혼……. 그런 것들을 편안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고학년이 보기에 알맞다. 그 나이가 되면서 서서히 존재에 대한 인식으로 이런 저런 공상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청소년들을 위해 그 쪽으로 집중 연구된 전문서들도 많지 않지만, 이렇게 편안한 책이라면 그들에게 더 도움이 될 듯싶다. 『천둥 치는 밤』에서는 답을 알 수 없는 많은 질문들을 그저 꺼내 놓기만 한다. 잠 안 오는 아이의 공상을 그냥 들여다보기만 한다. 미셸 르미유는 알쏭달쏭한 문제들에 대해 재치 있는 그림으로 맞장구를 쳐 줄 뿐이다. 사실 그런 문제들에 어느 누가 명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작가는 그저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며 불안한 공상에 안도감을 주고 있다. ‘맞아, 나도 그런 생각하거든.’ 이것이 이 책의 제일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머릿속에서 맘대로 지우다 만들다 하는 공상처럼 미셸 르미유의 그림은 참 쉽게 느껴진다. 슬슬 손 가는 대로 그린 듯한 그림이 막힘 없는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기에 딱 알맞아 보인다. 묵직한 고민들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놀랍도록 경쾌해서 책을 보는 내내 참 즐거웠다.
이형진│좋은 어린이 책을 만드는 꿈을 이루려고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고양이』『쉬잉쉬잉, 빙글빙글』『하늘이 이야기』『아주 바쁜 입』을 비롯한 많은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