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1월 통권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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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었어요]
그림책 속의 보물을 찾아

이제희 | 2003년 01월

『트럭』표지
얼마 안 있어 만 네 돌이 되는 아들이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던 책이 한 권 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어리지만, 그 때, 정말 존재 자체가 신기하기만하던 한 돌 반쯤 때부터였던 듯하다. 그게 바로 『트럭』인데, 이 책은 우선 그 크기가 여느 책과 다르다. A4 용지 두세 배 정도의 크기에 종이도 두꺼운 게 여느 책들과는 기획 의도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 그 의도라는 것은 단지 나의 추측일 뿐이지만, 그 커다란 크기 때문인지 몰라도 아이와 같이 『트럭』을 읽을 때면 그림책 속의 공간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덕에 이 그림책을 타고 현장감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책의 소재나 주제도 그다지 별다르지 않다. 트럭 한 대가 열심히 어디론가 간다. 출발지도 목적지도 불분명하다. 다만, 그 트럭은 아이용 세발 자전거가 그려져 있는 박스들을 한 가득 실었고, 색깔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원색의 빨강이며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리고 도심의 풍경들과 매연을 뚫고 주유소, 터널을 거쳐 가며 비를 맞기도 한다.

『트럭』본문
벌써 꽤 오래 된 기억이지만 내가 그랬듯, 아들이 처음 이 책을 대했을 때는 단 수십 초 내에 독파하고선 “이게 뭐야?” 하고 허무해 했다. 이 책은 그냥 트럭을 따라가며 트럭과 주위 환경을 보여 줄 뿐이다. 어떤 것은 눈여겨보기도 하고 어떤 것은 그냥 무심히 지나치기도 하고……. 하지만, 여기에 이 책의 재미가 있다. 지금까지 무수히 읽어 왔지만 한 번도 같은 패턴으로 보지 않았다. 볼 때마다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 되어 보물찾기 같은 책 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글이 하나도 없는 벙어리 책인데 그 덕에 아빠는 더 많은 말을 해야 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내가 뭐라 뭐라 하면, 아이도 그래 그래 한다. 아이가 제대로 말을 못할 때는 미소나 작은 탄성 혹은 환호성을 지르더니, 요즈음엔 좀 컸다고 나름대로 긍정하기도 부정 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칭찬하거나 반박하기까지 한다.

이 얼마나 큰 변화이며 이 책의 커다란 역량인가? 맨처음 이 책을 같이 보며 들려주었던 말들을 내가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 명제에는 명확한 결론이 있다. 나도 커 가고 아이도 커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상호 교류를 해 가면서. 나는 기대한다. 언제까지 이 책을 아이와 같이 볼는지 몰라도 언제나 이 책은 우리 부자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유난히 차를 좋아하는 아들 덕(네 돌쯤이면 로봇이나 공룡으로 관심이 돌아간다는데 아직도 차를 가지고 노는 걸 제일 행복해 한다)에 얼마 전엔 차를 직접 만든 적이 있다. 별 대단한 차는 아니지만 일요일 오후 내내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던 이 사건은 작은 그림책 한 권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My Car』표지
바로 『My Car』라는 책이다. 단순하지만 꽤 괜찮은 아이디어인 ‘박스 자동차 만들기’에 관한 책이다. 주위의 사물들을 자동차의 부품으로 적용해 가며 자동차 하나를 뚝딱 만들어 낸다. 아마 아이들 중 열이면 아홉은 아빠에게 조르게 될 거다. 우리도 해 보자고…….

우리의 처음 목표는 책에 있는 그대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아빠인 내 역할이 주가 될 거라 생각했고, 어쨌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아들에겐 큰 경험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대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아들의 참여도가 예상보다 높았다. 그리고 아이의 까다로운 요구 사항, 예컨대 차를 구입할 때 부가되는 옵션쯤에 해당되는 것들이 그림책에 있는 것보다 많아졌는데, 이는 상상력이 이미 빈곤해져 버린 내 머리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My Car』본문
우리가 만든 차는 투명 필름을 끼운 유리창은 물론이고 문도 열리며, 결정적으로 스포츠 카의 옵션인 후방 날개(아마 리어 스포일러라고 부르는 것)까지 달았다. 안전 벨트가 없다는 아이의 지적에 끈도 하나 구해다 걸쳐 놓으니 거의 완벽한 수준이었다. 어쨌든 아들과 나는 박스 하나와 글루건(Hot Melt Glue Gun, DIY용) 하나로 이것 저것 붙여 가며 나름대로 그럴싸한 팀워크를 구사했다. 이만하면 성공적인 책 읽기와 활용이 아닌가! (뿌듯~)

한 술 더 뜨면, 이런 종류의 책은 시간이 되면 내 아이디어로 기획해 보고 싶다. (서점에서 읽고 아이디어만 취해 가도 충분해서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런 책은 어떤 정보 전달의 역할보다는 함께 책을 읽는 부모 자식 간의 상호 교감에 아주 효과적인 도구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희/퇴근 후 아들과 함께 스포츠카 경주를 즐기는 보통 아빠입니다. 아빠의 생각과 지식이 아이의 마음에 씨앗으로 뿌려질 수 있도록 언젠가는 아이를 위하여 좋은 과학 정보책을 만들 계획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