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2월 통권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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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꼼꼼히 들여다보기]
예술의 힘을 느끼게 하는 『조각이불』

엄혜숙 | 2003년 02월

추억과 기억이 담긴 물건들

『조각이불』표지
겨울이면, 엄마는 털실로 스웨터나 바지를 떠 주시곤 했다. 털실로 뜬 한 코 한 코가 모여서 등판도 되고 팔도 되고 다리도 되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초등 학교 다닐 때, 엄마가 초록색 실을 사서 목 부분을 고무뜨기로 떠서 접어 입는 스웨터, 이른바 도꾸리를 떠준 적이 있다. 나는 그 스웨터가 마음에 들어서 겨울 내내 입고 다녔다. 그러다가 내게 작아지자 동생이 물려 입었고, 동생에게도 작아지자 옷을 풀어서 그 실로 다른 옷을 떴다. 그 스웨터를 입고 찍은 사진도 있는데, 흑백 사진이어서 한겨울의 풀밭 같던 스웨터의 초록색이 이제는 내 마음 속에만 있다.

그런데 이렇게 새 실을 사서 옷을 떠 주신 건 어쩌다가 한 번 있는 일이고, 대부분은 집에 있는 자투리 실과 이 옷 저 옷에서 나온 헌 실들을 모아서 색동으로 털옷을 떠 주시곤 했다. 그래서일까? 『조각이불』을 보니까, 가장 먼저 엄마가 짜 주었던 스웨터 생각이 났다. 『조각이불』의 작가도 자기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이 그림책을 만든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림책을 펴 읽어 보았다.

이불과 상상놀이

아이들에게는 현실과 상상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언제 어디서나 계기만 주어지면 현실에서 곧장 상상의 세계로 날아간다. 잠자리에서 잠이 들기 전에 이불을 덮고 누워 상상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게다가 그 이불이 알록달록한 새 이불이라면, 온갖 공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이 이 그림책 구성의 전제 조건이 된다.

첫 연속 장면을 보자. 이 연속 장면은 현실에서 출발한다. 잠옷 차림의 여자아이가 왼팔에는 헝겊으로 만든 강아지 인형을 걸치고, 머리와 오른팔로는 알록달록한 조각이불을 뒤집어쓴 것처럼 들고 서 있다. 이불의 바깥 면은 갖가지 색깔과 무늬의 네모 헝겊을 잇대어 만들었고, 안쪽 면은 초록 바탕에 자잘한 꽃무늬가 가득한 헝겊으로 통째로 만들었다. 글을 보면, “나에게 새 이불이 생겼어요.”라고 되어 있다. (그림 1 : 새 이불이 생긴 아이. 동그란 눈과 웃을 듯 말 듯한 입가가 인상적이다.) 그 다음 장면은 아이가 이불을 끌고 가는 장면이다.

<그림 1>

그 다음 연속 장면은 연달아 아이 방이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첫 번째 장면을 보자. 왼편에는 동그란 그림 액자가 있고, 오른편에는 하늘이 들이비치는 유리창이 있다. 방 한가운데는 조각이불을 덮은 침대가 있는데, 아이는 침대 위에 엎드려서 무늬 하나를 짚고 있다. 글을 보면, 조각이불에 얽힌 사연을 알 수 있다. 조각이불은 보통 이불이 아니라, 아이가 어릴 때 쓰던 헝겊들을 모아서 엄마 아빠가 만들어 준 것이다. 아이 옆에는 강아지 인형이 있는데, 글을 보면 강아지 인형의 이름이 샐리이고, 아이가 아기 때 입었던 잠옷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2 : 아이 혼자 있는 방. 아이가 엎드려 있기 때문에 아이에게 주목하기보다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고루 보게 한다.)

<그림 2>

두 번째 장면을 보자. 이번에도 아이는 엎드려서 조각이불 무늬를 보며, 그 헝겊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 3 : 액자의 그림이 흐려지고, 창문에 비치는 하늘 색깔이 짙어진다. 시간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림 3>

세 번째 장면을 보자. 액자의 그림이 더 흐려지고, 유리창에 비치는 색깔이 더 짙어졌다. 글을 보면, 아이는 “오늘 밤 잠들 수가 없을 거 같아요. 이불이 마치 작은 마을 같아요…….” 라고 말한다. 그러자 이 말이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불 한 구석에서 풍선이 둥실둥실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림 4 : 아이가 침대 밑으로 사라진다. 화면의 중심이 동그란 그림 액자, 유리창, 침대가 된다.)

<그림 4>

한 장을 더 넘기면, 왼쪽부터 아이 방이 변모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조각이불은 왼쪽부터 마을로 변하고 있고, 오른쪽 창문에서 별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방 안이 하늘로 바뀌고 있다. 화면 왼쪽에는 두둥실 달이 떠 있는데, 위치로 보아서 아까 동그란 그림 액자가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강아지 인형이 떨어져 있고, 아직 아이의 오른손이 보인다. 원경(long shot)으로 아이의 상상 공간 전체가 제시되는 것이다. (그림 5 : 아이가 모험을 할 상상의 공간이 전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림 5>


사라진 강아지 샐리를 찾아서

책장을 넘겨서 다음 연속 장면을 보자. 여기서부터는 연달아서 부분 장면을 보여 준다. 첫 번째 장면은 중경(middle shot)으로 서커스단 외부의 모습이다. 화면 왼쪽에 달이 떠 있고, 화면 중간에는 둥그런 풍선들이 시선을 잡고 있다. 글을 보면, “그런데 샐리가 안 보여요!”라고 되어 있다. 이제 아이는 완전히 상상 세계로 들어왔고, 샐리가 안 보여서 찾고 있는 것이다. 다음 장면을 보자. 이번에는 근경(close up)으로 서커스단 내부이다. 아이는 여전히 샐리를 찾고 있다. (그림 6 : 달은 사라졌지만, 동그란 원의 이미지가 전체 장면을 구성하고 있다.) 다음 장면은 다시 서커스단 외부이다. 근경으로 우리에 있는 동물들이 보인다. 여기에도 샐리는 없다.

<그림 6>

다음 장면에는 중경으로 마을의 집들이 나온다. 왼쪽 한 구석에 서커스단이 있고, 오른쪽 위로는 아주 자그마하게 터널이 보이고, 옆으로는 꽃밭들과 우람한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서 있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다시 한번 상상의 모험 공간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샐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림 7 : 화면 구성과 색감은 변모했지만, 다시 한번 둥근 달이 나타나서 이미지의 연속성을 유지해 준다.)

<그림 7>

그 다음 장면들은 연달아 근경들이다. 먼저 아이는 꽃밭으로 가서 샐리를 찾지만, 여기에도 샐리는 없다. 그 다음 장면은 터널이다. 아이는 겁을 내면서도 이 터널로 들어가 뛰어다니면서 샐리를 찾는다. 글을 보면, “샐리! 샐리! 샐리! 샐리! 샐리! 샐리!” 하고 여섯 번이나 강아지 이름이 나온다. 아이가 긴 터널을 뛰어가면서 강아지 이름을 여러 번 부른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8 : 까마득하게 보이는 출구와 입구에 늘어진 이끼와 나무들이 음산한 기분을 자아낸다. 아이의 두려운 마음을 이렇게 시각화하고 있다.)

<그림 8>

그 다음 장면은 터널 바깥이다. 하늘에는 달이 두둥실 떠 있고, 호수에는 삼각돛을 단 배들이 여러 척 떠 있다. 여기에도 여전히 샐리는 보이지 않는다. 한 장을 더 넘기면, 어두운 숲이 나온다. 왼쪽으로 자그마하게 호수와 삼각돛을 단 배가 얼핏 보인다. 이제 아이는 샐리를 찾아서 어두운 숲으로 온 것이다. 글을 보면, “여기는 터널보다 더 무서운걸요!”라고 되어 있다.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잃었던 숲처럼 여기는 커다란 나무들만 빽빽이 서 있고, 빛은 한 줄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여전히 “샐리!”하고 부르며 강아지를 찾고 있다. (그림 9 : 앞 장면에 있던 달의 이미지가 이 장면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직선 형태의 나무들과 화면의 어두운 색조가 아이의 두려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 9>


강아지 샐리를 찾은 아이

그 다음 장면을 보자. 이제 장면은 밝고 환하게 바뀌어 있다. 오른쪽 화면에 샛노란 해가 반쯤 보이고, 절벽 아래에 샐리가 있다. 글을 보면, “아, 샐리를 찾았어요!”라고 되어 있다. 서커스단, 꽃밭, 터널, 호수, 숲 속을 지나서 아이는 마침내 절벽 아래에 있는 샐리를 찾은 것이다. (그림 10 : 그림 2, 3, 4, 5를 다시 넘겨 보면, 절벽은 바로 침대 커버가 변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림 10>

마지막 장면은 현실 세계로, 다음 날 아침이다. 화면 왼쪽에 있는 창문은 앞 장면의 해와 똑같이 샛노란 색이다. 창문으로 들어온 빛으로 날이 밝은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조각이불은 침대 밑으로 떨어져 있고, 그 위에서 아이는 강아지 인형을 꼭 안고 있다. 샐리를 찾아서 이리저리 다녔기 때문에 조각이불은 어느새 침대에서 떨어지고 만 것이다. 다시금 아이 얼굴을 보여 줌으로써 상상에서 현실의 아이 방으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림 11 : 처음으로 창문이 왼쪽에 등장한다. 이제 상상놀이가 끝나고 현실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림 11>


짜임새가 돋보이는 시각적 구성

이 그림책은 내용이 단순하다. 주인공 아이가 어릴 때 쓰던 헝겊들을 모아서 엄마, 아빠가 조각이불을 만들어 준다. 아이는 헝겊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을 떠올리며 어느덧 상상 세계로 빠져들어 가고, 어디론가 사라진 강아지 샐리를 찾아 나선다. 그러다가 어느새 날이 밝아 아침이 된 것이다. 즉, ‘현실―상상―현실’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내용은 이렇게 단순하지만, 시각적 구성을 살펴보면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아이 방에 있던 동그란 그림 액자, 네모난 창문, 조각이불에 있는 온갖 무늬와 색깔의 헝겊들, 잠옷으로 만든 강아지 인형 샐리가 제각기 소도구가 되어 흥미진진한 상상 세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동그란 그림 액자는 달이라든가, 바퀴, 풍선, 굴렁쇠, 해 등으로 변모하면서 그림책 전체에 일관된 이미지를 유지시키고 있다. 그리고 조각이불에 있는 무늬들에서 서커스단, 집들, 꽃밭, 터널, 호수, 어두운 숲이 나타난다. 아이가 강아지 샐리를 찾은 절벽은 또 어떤가? 절벽은 침대 위와 방바닥의 높이 차이에서 유추한 것이겠지만, 침대보와 절벽의 모양새가 어찌나 유사한지 절로 감탄하게 된다.

추억과 기억, 관찰력과 상상력이 주변의 물건에 숨결을 불어넣어 살아나게 한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의 힘이 아닐까.
엄혜숙/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오랫동안 어린이 책을 기획하고 만들었습니다. 어린이 책 기획, 글쓰기, 번역하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인하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다니면서 아동 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쓴 책으로는 『두껍아 두껍아』『혼자 집을 보았어요』가 있습니다. 엮고 번역한 책으로는『이야기 이야기』『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