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5월 통권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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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보는 다른 나라 그림책]
독특하고 독창적인 토미 웅게러

서남희 | 2003년 05월

기억하시나요? 가수 ‘혜은이’가 예쁜 목소리로 부르던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 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 나라.”라는 노래. ‘아무리 봐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그 나라가 토미 웅게러의 그림책『Die Blaue Wolke』(꼬마 구름 파랑이)에 쏙 감춰져 있군요.

장난스럽게 생긴 꼬마 구름 파랑이는 다른 구름들이 비를 내리거나 천둥 번개를 치는 등 구름으로서 할 일을 할 때 그저 놀고만 있었지요. 파랑이 속으로 들어가면 연도 파랗게 변해서 나오고 새나 비행기도 파랗게 물들어 버린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파랑이는 이상한 도시를 보게 되었어요. 그 도시는 서로를 괴롭히고 죽이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지요. 도끼를 든 까만 사람을 똑같이 도끼를 든 하얀 사람이 뒤따르고, 그 뒤에는 빨간 사람이, 그 뒤에는 노란 사람이, 다시 또 까만 사람이……. 다양한 색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줄줄이 무기를 들고 쫓아다니는 대신 줄줄이 목욕탕에 앉아 등이라도 밀어 주면 좋으련만, 이 그림에서 남자들은 그렇게 싸우며 죽어 나가고 여자와 어린애들은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아비규환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본 파랑이는 여태 안 하던 일을 했어요. 파랑이가 비를 쏟아 부으니, 온 도시는 파랗게 물이 들었답니다. 사람들은 모두 색깔이 같아지니까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고, 이제 그 도시는 파랑이 도시가 되었답니다…….(라고 끝나면 좋았을 텐데.)

『꼬마 구름 파랑이』표지와 본문

온 사람들이 파랗게 물들었는데, 저 구석에 딱 한 사람은 우산을 받고 있어서 그 파랑 물이 들지 않았죠. 도끼를 든 그 초록색 얼굴을 보니 언제 또 자기가 가진 무기를 휘두를지 몰라 으스스하군요.

토미 웅게러가 그림책을 통해 반전, 평화를 그려 내면서도 한편으로 사람에게서 악의 씨앗이랄까, 배반의 장미랄까를 유달리 파헤치는 것은 어린 시절에 겪은 전쟁에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1931년에 알퐁스 도데의 좥마지막 수업좦으로 유명한 알사스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 쪽의 애국심을 고취시키지만, 웅게러는 독일 계죠. 여섯 살 때 아버지가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나자 외가에서 자라면서 아버지가 남긴 다양한 책을 통해 문학적 상상력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데다 전쟁이 끝나 알사스가 다시 프랑스로 편입되자 새로운 세계에 적응을 하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나기까지 하죠. 알제리에서 군대 생활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미술을 전공하지만, 이 때도 역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해 퇴학당하고, 1954년에 60달러를 들고(에릭 칼은 40달러의 사나이) 미국으로 갑니다. 일설에 의하면 굶주림에 지쳐 출판사 앞에 쓰러져 있다가 그의 그림을 보고 반한 편집자와 일하게 되었다는데, 그를 빛나는 작가로 만들어 준 책은 수잔 헐쉬만이 ‘완벽한 그림책’이라고 극찬한 『Crictor』(크릭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싫어하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매우 좋아하는(침 꿀꺽!) 뱀을 소재로 한 최소한의 선만을 살린 재미있는 그림들이 경쾌한 책입니다.

『Crictor』(크릭터) 표지와 본문

웅게러는 『The Three Robbers』(세 강도)에서는 인간 내면에 있는 선의 씨앗을 찾아냅니다. 즉, 강도에게도 사랑이 깃들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려 낸 거지요. 까만 모자, 까만 망토를 두른 세 강도는 사람들에게서 돈이나 보석을 강탈하지요. 그것을 어디에 써야 할지도 모르고 그저 쌓아 두기만 하는 강도들.(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죠? ) 하지만 돌멩이에 황금칠을 한 것과 다름없는 이 보물들은 꼬마 고아 티파니 덕분에 그 가치를 찾게 됩니다. 강도들이 그 보물을 쓰려고 길 잃은 아이들이나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와 키우게 되거든요. 강도들은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성을 사고, 이 소문은 온 나라에 퍼져, 아이들은 점점 불어나지요. 결국, 이들은 아이들에게 인정 많은 양아버지로 남아 있게 됩니다. 아주 조그맣게 숨어 있는 선의 씨앗이 사랑으로 인해 이렇게 활짝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이들을 통해 보여 줍니다. 도끼를 들고 있을 때는 무시무시해 보였는데, 티파니를 품에 안고 데려갈 때의 강도 그림을 보면 자기한테 있는지도 몰랐던 ‘사랑’이란 감정이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봐 애절하고 소중하게 껴안고 있는 절절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The Three Robbers』(세 강도) 표지와 본문

따분하게 달에 갇혀 있는 달 사람이 밤마다 지구 사람들이 춤추는 것을 지켜보며 부러워하다가 드디어 별똥별 꼬리를 붙잡고(이 기막힌 아이디어!) 지구로 내려와서 겪는 이야기를 담은 『Der Mondmann』(달 사람)에서는 웃어 줄 수밖에 없는 인간 군상이 나옵니다. 별똥별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는데, 군인들은 탱크를 타고 ‘지구를 지키러’나오고, 소방대는 불을 끄러 나오고, 경찰도 나타나고, 딸아이를 데리고 스포츠카를 타고 구경 나오는 아빠에, 더 웃긴 건 구경꾼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팔러 급히 수레를 끌고 나오는 아이스크림 장수까지 있다는 점이죠. 자기도 급히 가면서 쏟아져 오는 손님들을 흘깃 보며 흐뭇해 하는 아이스크림 장수의 모습은 슬프기까지 합니다. 달 사람은 졸지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달이 점점 이지러지면서 자기 몸도 함께 이지러지지요. 이지러진 몸으로 쇠창살 틈으로 빠져나와 가면 무도회장에서 즐기다가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다시 달로 가서는 오마나, 무서워라, 이제 다시는 지구로 돌아가지 않으리 하며 하늘 자기 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는데……. 이 책의 시원시원한 붓 터치에 올록볼록한 몸, 유쾌해 보이면서도 약간은 엽기적인 표정들을 보면 모리스 센닥의 『In the Night Kitchen』(깊은 밤 부엌에서)과 그림 맛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Der Mondmann』(달 사람) 표지와 본문

억세게 재수 좋은 사나이를 그린, 하지만 결국 모자가 주인공인 『Der Hut』(모자)에서는 앉을 자리를 바꿔 가며 날아다니는 신기한 비단 모자가 가난하고 불쌍한 늙은 외다리 병사인 바도글리오의 대머리에 내려앉아 생기는 일을 다룬 그림책이지요. 바도글리오는 모자에게도 그저 ‘항복’해 버리는 인생의 실패자이지만, 이 살아 움직이는 모자 덕분에 그의 삶은 활기차게 바뀝니다. 어느 여행객의 생명을 구해 주고, 강도들을 잡고, 계단 아래로 굴러 가는 유모차 속의 아기를 구해 주고, 마침내 공주까지 구해서 결혼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무엇보다도 이 책은 그림이 재미있습니다. 그의 대머리 위에 모자가 내려앉자 깜짝 놀라 도망가는 강아지, 뼈다귀를 입에 문 개에게 뒷발로 물을 튀기는 다른 개, 달리는 말 앞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구정물 위에 종이배를 띄우고 있는 꼬마 아이……. 그런데 무엇보다도 압권은 마지막 그림이죠. 바도글리오의 머리에서 날아가 버린 모자는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르는데, 저 밑 다리 아래서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리고 있군요!

『Der Hut』(모자) 표지와 본문

언뜻 보기에는 맛난 음식이 솔솔 냄새를 피우는 유쾌한 그림책 『Zeralda’s Riese』(제랄다와 거인)의 마지막 장은 선뜻한 느낌. 아이들을 잡아먹는 거인 때문에 그 동네 아이들은 모두들 여기저기 숨어 지냅니다. 그런데 요리 솜씨 좋은 꼬마 소녀 제랄다가 아이 구경을 못해 배고파 쓰러진 거인에게 한 상 가득 맛있는 음식을 차려 준 것을 계기로 거인족들은 사람 잡아먹는 습성을 버리지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제랄다는 아름다운 처녀가 되어 거인과 사랑하게 돼서 결혼을 하고 아이도 여럿 낳았는데, 마무리가 ‘And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가 될 것 같지만, 작가는 ‘죽을 때까지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해도 좋을 거예요.’라고 합니다. 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아닐까요? 그림을 보면 그 답이 나오지요. 거인과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제랄다의 행복한 표정, 아이들 둘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기를 만져 보려고 하지만, 뒷모습만 보이는 아이는 한 손에 포크를, 한 손에는 나이프를 들고 있거든요. 반쪽이 최정현의 만화에서 보면 평등 부부상을 받았다고 모두들 반쪽이를 축하하며 헹가래쳐 주는데, 그 군중 속 누군가가 칼을 번득이고 있죠. 공중에서 잘못 떨어지는 날에는……?

『Zeralda’s Riese』(제랄다와 거인)표지와 본문

곰 인형의 일대기를 그린 『Otto』(곰 인형 오토)의 첫 페이지에서 웅게러는 낡아빠진 데다 가슴에는 찢어져 꿰맨 자국까지 있는 곰 인형을 내보입니다. 이 인형도 갓 태어났을 때는 다비드라는 아이의 생일 선물이 되어 사랑을 받았었죠. 다비드의 친구 오스카와 셋이서 재미나게 놀며 지내던 어느 날, 다비드는 유태인을 나타내는 노란 별표를 달고 다녀야만 했죠. 다비드 식구가 어디론가 실려 가면서 이제 오토는 오스카에게 맡겨집니다. 하지만 곧 폭격이 시작되고 오토도 공중으로 튀어 올라 오스카와도 헤어지게 됩니다. 폭격당한 잔해 속에서 한 흑인 병사가 오토를 집어드는 순간 총을 맞지요. 그 병사는 자기 생명의 은인이라고 오토를 챙겨서 미국의 집까지 데려갔지만 남자아이들의 장난에 오토는 쓰레기통에 박혀 있게 되지요. 그러나 골동품 가게에 진열되어 관광객의 눈에 띄게 되는데, 그 관광객이 바로 오스카였고, 이들의 이야기는 신문에 나서 마침내 다비드까지 만나 셋이 다시 함께 사는 인생유전을 겪는다는 이야기. 다른 책에서는 유쾌한 그림들을 보여 준 작가가 이 책에서만큼은 무척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 냅니다. 그런데 오토가 자신을 소개하는 첫 장면을 보세요. 인형 공장에 있는 상자에는 인형 눈이 가득 담겨 있죠. 막 눈을 달게 되는 오토. 앞으로 그 눈으로 보게 될 세상은 험난합니다. 이제 제각각 눈을 달고 세상으로 나갈 곰들은 앞으로 어떤 풍경을 보게 될까요?

『Otto』(곰 인형 오토) 표지와 본문

지난 40년 간 수많은 그림책과 삽화(『Flat Stanley』[납작이가 된 스탠리]와 『Tomi Ungerer`s Heidi:The Classic Novel』의 삽화는 유명합니다.), 카툰, 포스터 등을 그리면서 토미 웅게러가 아우른 한 가지 주제는 인간이 존중받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까탈스런 모리스 센닥으로부터 “토미 웅게러처럼 독창적인 사람은 처음 봤다.”라는 칭찬을 들었던 그는 1998년에 한스 크리스챤 안데르센 상을 받은 바 있고, 지금은 캐나다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Flat Stanley』[납작이가 된 스탠리] 표지와 본문
서남희/개인 홈페이지 ‘The Cozy Corner(www.cozycorner.new21.net)’에 영어 그림책 이야기를 엮어 올리고 있습니다. 서강 대학교와 서강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UCLA Extension에서 TESOL(영어 교수법)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 10년 간 살면서 Haslett Adult Education의 영어 클래스에서 보조 교사, 이스트 랜싱에 있는 ‘한마음 한글 학교’의 외국인 반 교사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미국 유치원 교육에서 활용하고 있는 ‘꼬마책(Mini-Books)’을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구성한 『아이와 함께 만드는 꼬마 영어 그림책』을 만들었답니다. 그림책, 소설책, 시를 좋아하고, 북한산, 도봉산, 지리산, 속리산, 소백산 등 바위산을 좋아하며, 무엇보다 잠 자는 것을 제일 좋아한답니다. 스스로 뾰족뾰족하다고 말하면서 사랑하는 남편과 딸과 더불어 누구보다 둥글고 넓게 살고 있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