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9월 통권 제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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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었어요]
너희들은 모두 좋은 책이란다

이윤복 | 2003년 09월

강원이, 누리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책을 읽어 주었더니 이제는 아이들 잠자리 습관이 돼서 지금도 잠자리에 누우면 아들, 딸은 아빠가 당연히 책을 읽어 주는 줄로 안다. 그런데 문제는 순서다. 아들은 자기가 오빠니까 먼저 읽어 달라고 하고 딸은 아랑곳없이 먼저 읽어 달라고 조르고 결국은 서로 싸움까지 하게 된다.

“왜 그렇게 싸우면서까지 아빠한테 책을 읽어 달라는 거야, 엄마가 읽어 주면 안 되니?” 해도 아들 녀석은 “엄마가 읽어 주는 것보다 아빠가 읽어 주는 게 훨씬 더 재미있어.” 하고 동생인 딸 아이는 이에 질세라 “나도~.” 한다. 그러면 나는 귀찮아했던 맘을 저 멀리 보내고 책을 읽어 주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잠이 든다. 나 역시 스스로 동화책 속에 빠져 동화의 나라에서 아들의 꿈, 딸의 상상을 본다.

『박박 바가지』표지와 본문

그런 책 중에 『박박 바가지』는 강원이가 제일 좋아하는 대표적인 옛날 이야기 책이다. 그 책은 얼마나 많이 읽어 주었는지 책 표지가 너덜너덜……. 급기야는 청테이프로 긴급 수선을 했을 정도로 많이 읽었다. 책을 읽다 보면 강원이보다 내가 더 재미가 들린다. 그래서 강원이는 한두 꼭지 읽어 주며 얼른 재우고 난 뒤 나는 두세 꼭지를 더 읽고야 잔다. 물론 책 읽기에 빠지면 그 책 한 권을 다 읽고 잘 때도 있다.

강원이 책 읽어 주고 나면 동생 누리가 여지없이 『두드려 보아요!』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참 신기한 것은 강원이가 네 살때 좋아한 책은 누리도 네 살때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자기 나이에 맞는 책을 좋아하나 보다. 『두드려 보아요!』는 파란색 문, 빨간색 문, 초록색 문, 노란색 문, 하얀색 문, 다시 파란색 문을 지나 누가 있는지 알아 보는 내용인데 문이 나올 때마다 앙증맞은 손을 꼭 쥐고 문을 두드리듯 책에 똑똑똑! 하며 다음 책장을 열게 하는 누리의 몸짓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누리보다 아빠가 더 좋아하는 책이다.

『열두 띠 동물, 까꿍놀이』표지와 본문

『열두 띠 동물, 까꿍놀이』는 우연히 좋아하게 되었다. 누리 친구 재열이네 집에 갔는데 누리가 그 집 책장에서 이 책을 들고 오더니 막무가내로 읽어 달란다. 할 수 없이 읽어 주는데 열두 띠 동물들의 “없다.” 하는 몸짓이 자기 나이 또래가 하는 ‘없다’의 몸짓과 너무 닮았는지 자기도 “없다.” 하며 따라한다. 그리고 바로 “까꿍!” 하며 갑자기 책장을 넘겨 다음 장의 동물 얼굴을 보여 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집에 온 다음날 “아빠 까꿍~.” 하며 집에 없는 책을 읽어 달란다. 할 수 없이 책방에 가서 이 책을 사고 그 뒤로 한달 넘게 이 책에 시달렸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은 아직도 유효하다.

『손이 나왔네』표지와 본문

『손이 나왔네』를 읽으면서는 손, 머리, 얼굴, 눈, 코, 입, 발 등의 몸 구조를 아는 것뿐만 아니라 “얼굴이 쑥~ 나왔네”, “손이 쑥~”, “발이 쑥~” 등 아이들 옷 입히는 일이 전쟁이 아니라 재미있는 놀이가 되었다. 『충치 도깨비 달달이와 콤콤이』를 읽으면서는 그렇게 싫어하는 치카치카(양치질)를 수월하게 시킬 수 있게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생활 습관을 올바르게 자리잡게 했으니, 아빠 입장에서 보면 덕을 본 책이다. 아이들은 똥이나 방귀를 더러움이나 불쾌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인다. 약간의 과장이 포함되면 오히려 좋아하기도 한다.

『똥벼락』표지와 본문

그런 책 중에 『똥벼락』이 있다. 욕심 많은 김 부자는 결국 똥 산에 묻히고 마음씨 착하고 정직한 돌쇠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 똥 산 덕에 농사를 잘 지었다는 줄거리의 책인데 김 부자의 욕심을 벌하는 산도깨비의 “수리수리 수수리! 온 세상 똥아, 김 부자네로 날아라!” 하는 그림에서 “이건 아빠 똥, 이건 엄마 똥, 강원이 똥, 누리 똥.” 하면서 그림에 있는 똥들마다 똥의 주인을 찾아 주면 아이는 배꼽을 쥐고 웃으며 뒹군다. 그림 속의 똥을 손으로 퍼다가 철퍼덕 하고 누리의 머리에 올려 놓으면 누리는 기겁을 하고 한바탕 똥 장난으로 한밤중 아파트의 고요를 깨뜨린다.

『누구나 눈다』표지와 본문

똥에 대한 책으로는 『누구나 눈다』도 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똥이 나온다. 누리는 흥미진진해서 입이 벌써 귀 밑까지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코끼리 똥.” 하면 “하하하”, “새앙쥐 똥.” 하면 “까르르르~.” 그러다가 누리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연필과 종이를 가져온다. 아직 제대로 그리지도 못하면서 “토끼 똥!”, “누리 똥!” 하며 있는 힘을 다하여 말한다. ‘누리야 너무 힘주어 말하지마, 그러다가 진짜로 힘 들어가면 진짜 누리 똥 싸러 가야 해.’ 결국 이 책을 읽을 때면 보통 그림책의 네다섯 배의 시간이 들어간다.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표지와 본문

강원이에서 누리로 대물림하는 책도 있지만 강원이와 누리가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책도 있다.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가 그러한 책인데 매일 잠자리에서 책 읽어 주는 순서를 가지고 싸우던 아이들도 이 책만 꺼내면 서로 양 옆에 나란히 누워 같이 듣는다. 치치의 일상, 모험스러운 일탈,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의 회귀를 큰 아이는 내용을 쫓아가면서 듣고, 작은 아이는 그림을 쫓아가면서 듣는다. 모험스런 일탈의 행로가 긴박감을 주면서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기에 아이들은 잔뜩 긴장도 하고 공감도 하며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아빠의 목소리 변화와 아빠의 손놀림에 빠져 든다. 물론, 이럴 때 책 읽어 주는 아빠는 행복감을 느낀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표지와 본문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를 읽으며 책 구성이 참 잘 되어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다. 잠자리에서 엄마의 잔소리, 그리고 꿈나라로의 출발. 꿈나라 여행이 끝나고 다시 잠자리에서 엄마의 잔소리. 꿈나라 속 여행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느낄 수 있는 계절 표현과 그림의 부드러움은 아빠인 나까지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강아지, 코끼리, 물개, 두루미, 호랑이, 북극곰 등의 등장을 통해 깨끗한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의 흐름은 두번 세번 읽게 만든다.

강원이 누리와 함께 책을 읽으며 다녔던 수많은 상상의 나라에서 나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대충 여행을 했다. 하지만 상상력에 제한 받지 않는 강원이 누리는 분명 그 나라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여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했던 그 많은 책(상상의 나라)들 중에 몇 권만 골라서 글을 쓰려니 다른 책(상상의 나라)들이 시샘할 것이 분명하다.

“책들아 책들아, 강원이 누리 책들아, 너희들은 모두 좋은 책이란다.”
이윤복/ 일명 복실이. 민중 가요를 만들어 부르기도 즐기며, ‘품앗이’라는 미명 아래 두 아이와 아이 친구들까지 모두 데리고 들에 나가 노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멋진 아빠입니다. 육아와 유아 교육에 일가견이 있는 아내 방글이와 함께 공동체적 육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은 꿈을 갖고서 오늘도 하하호호 삽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