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9월 통권 제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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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에 나누는 이야기]
문학으로 배우는 웃음

박숙경 | 2003년 09월

요즘은 남을 웃기는 것이 최고 덕목인 것 같다. 텔레비전을 보면 가수나 배우들도 어떻게든 농담 한 마디 더 하려고 전전긍긍하고, 인터넷에는 셀 수 없는 농담들이 태어났다 사라지고, 사람들은 그 농담들을 여기저기 퍼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웃음들은 매체의 특성 때문인지 그 자체가 속도전에 가까워서 0.1초 사이에 계속 새 것으로 교체된다. 많이 웃어서 생활이 윤택해지고 여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농담에 대한 강박증에 빠져 들기 십상이다.

나 자신도 그런 증상에서 자유롭지 않아 조심하고는 있지만, 날 때부터 온갖 속도전에 노출된 요즘 아이들을 생각하면 괜히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남의 말을 탁탁 끊는 농담도 즐겁겠지만 긴 시간을 두고 몇 번씩 되새겨 보는 농담도 그 못지 않게 즐겁다는 것, 세상에는 달고 쓰고 짜고 신, 온갖 웃음의 맛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말이다. 이렇게 느긋하고 다양한 웃음을 배우려면 역시 시대의 속도에 역행하는 ‘느린’ 매체인 책, 특히 문학이 왕도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동 문학에도 질 좋은 웃음이 드물지 않다.

느긋한 토종 웃음부터 시작하자. 김옥의 『학교에 간 개돌이』에서는 개돌이가 주인 집 아들 준우 뒤를 쫓아 학교에 간다. 그런데 동네에서 영웅이던 준우는 학교에서는 맨날 빵점만 맞고 선생님한테 혼나는 개구쟁이였다. 팽이 잘 돌리고, 개구리 잘 잡는 것은 학교 공부에는 아무 쓸모도 없나? 개돌이의 순진한 고민에 우선 웃음부터 나지만, 한편 그 생각도 옳다 싶어 독자들은 준우를 따뜻하게 지켜보는 개돌이의 시선을 빌리게 된다. 개의 낮은 시선에 잡힌 교실 풍경과 우리가 익히 아는 교실 풍경을 비교하며 느끼는 재미는 배꼽 쥐고 구르는 폭소와 다른 은근한 웃음이다.

『학교에 간 개돌이』표지와 본문

게다가 개돌이와 준우의 전라도 사투리는 어떤가. “개돌이, 너 후딱 집으로 가. 나는 시방 학교 가는 거여.” “싫당께롱. 나도 학교 가고 싶단 말여, 멍멍.”

『학교에 간 개돌이』가 전라도의 힘이라면, 김기정의 『바나나가 뭐예유?』는 충청도의 힘을 과시한다. 전국 팔도 중에서 제일 느리다는 충청도, 그 안에서도 제일 시간이 느릿느릿 갈 것 같은 지오 마을 앞에 어느 날 바나나를 가득 실은 트럭이 뒤집힌다. 소문으로만 듣고 동경했던 바나나를 드디어 보게 된 마을 주민들은 한 덩이씩 집에 들고 가서 솥에 삶고, 두엄에 묻고, 방부제를 뿌려서 바나나를 익힌다고 온갖 소동을 벌인다. 나중에 들통이 나서 경찰서에 잡혀 온 마을 주민들의 충청도스러운 핑계가 압권이다.

『바나나가 뭐예유?』표지와 본문

바나나가 제 발로 없어졌냐는 경찰 서장의 호통에 “모르쥬. 산에 너구리나 오소리가 오죽 많나유? 고것들이 그랬을지?”, “곰이란 놈은 아주 영리헌겨. 지금이야 못 보지만, 옛날엔 우리 집에 와서 우리 할아버지랑 점심도 같이 먹었댜.” 하고 받아치고, 바나나를 가마솥에 삶아 먹었더니 꼭 감자 맛이어서 아궁이에 태워 버렸는데 그곳을 지나던 뻐꾸기가 냄새에 취해서 “뻐내너, 뻐내너” 하고 울었다나? 아마 이 이야기를 들려준 충청도 양반은 우리가 한참 웃고 넘어지고 나서야, 한 박자 늦게 씨익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내렸을 것이다.

웃음은 때로 날카로운 사회 비판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현주의 『알 게 뭐야!』에서는 운전사들이 실수로 밀가루 트럭과 시멘트 트럭을 바꿔 타 버린다. 곧 차가 바뀐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에라, 알 게 뭐야! 내 건가?” 하고 공사장에, 과자 가게에 배달해 준다. 공사장 일꾼들도 시멘트가 밀가루인 것을 눈치챘지만 “에라 알 게 뭐야! 내가 살 집인가?” 하면서 집을 짓고, 하녀가 불을 땠더니 그대로 과자가 되어서 아이들은 기둥에 매달려 집을 갉아먹는다. 과자 가게에서는 시멘트로 과자를 구워서 사람들 이빨이 다 부러지는데, 정작 운전사들은 그 뒤에도 돈을 많이 벌어 달나라 땅까지 산다.

『알 게 뭐야!』표지와 본문

어른들은 속이 뜨끔해서 제대로 웃지도 못하겠지만, 아이들은 이야기를 읽으며 못난 어른들을 실컷 비웃을 일이다. 그리고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그 부조리한 웃음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윤태규의 『이상한 학교』 연작이 풍자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 반갑다. 그의 이상한 나라에서는 식구들끼리는 마주 보지도 않은 채 이상한 상자(텔레비전)만 들여다보고, 여배우가 페인트를 뒤집어 쓴 것을 최신 화장법이라며 모두 따라하기 바쁘다. 과학 기술이 너무 발전해서 아무도 제철 과일을 기억 못하는 농사법도 이상한 나라의 풍경이다. 우스운 상황이지만, 그 비판의 화살이 독자 자신에게도 향한다는 것을 알아채는 묘한 긴장감은 풍자만이 전할 수 있는 맵싸한 웃음이다.

『이상한 학교』표지와 본문

『몽실 언니』로 수많은 사람들의 억장을 무너뜨린 권정생도 남다른 유머 감각의 소유자다. 그의 웃음은 가난하고 짓밟힌 사람들의 정서에 강하게 뿌리박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보일 듯 말 듯 눈물이 비칠 때가 많다. 『짱구네 고추밭 소동』에 실린 「용원이네 아버지와 순난이네 아버지」에서 소문난 방귀쟁이 아저씨들이 서로 방귀내기를 하는 초반부는 우스워 죽을 지경이지만, 바로 그 방귀 때문에 전쟁 통에 모진 고초를 당해 죽거나 마을을 떠나는 것을 보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분이 된다. 「달맞이 언덕으로 날아간 고등어」에서는 술 취한 아저씨가 자반 고등어에게 신세 한탄을 하고, 고등어는 아저씨 말 장구를 쳐 주다가 자기들처럼 속을 시원하게 비우지 못하는 아저씨를 꾸짖으며 하늘로 휙 날아가 버린다.

『짱구네 고추밭 소동』표지와 「용원이네 아버지와 순난이네 아버지」
본문

아저씨가 고등어를 길에 떨어뜨렸다는 것은 진작에 눈치채지만 아저씨와 고등어의 대화에 진심으로 웃고, 마지막에는 아저씨의 때묻고 슬픈 과거와 현실이 가슴에 짠하게 울려 온다. 이런 복잡 미묘한 웃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때쯤이면 아이는 이미 속 깊은 어른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다.
박숙경/ 1973년 경기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인하대학교 국문과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겨레아동문학연구회’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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