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통권 제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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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별똥별 아줌마의 과학책 산책]
고래 보러 갈까, 염전에 갈까?

이지유 | 2003년 10월

나의 작은 라루스백과사전『고래』본문
중에서
가끔 부모들로부터 어떤 과학 책을 골라 주면 좋으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부모들은 대부분 책 한 권으로 한 분야를 모두 정복할 수 있는 그런 책을 찾는다. 오래 전부터 ‘다목적용’에 길든 사회 풍토 때문이 아닌가 짐작된다. ‘다목적용’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다. 얼마 전 밀가루를 사러 가게에 갔다가 아주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나는 부침개를 하려고 밀가루가 놓인 곳에 갔는데,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은 물론이고 당근 밀가루, 시금치 밀가루 등 종류가 너무 많아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 결국 간이 다 되어 있는 부침가루를 사고 말았다. 비록 밀가루를 사다 벌어진 이야기지만 이런 내 모습은 책을 고르는 많은 부모들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같은 주제라도 책은 다양하게 나오기 시작하는데 독자들은 어떤 책을 고를지 몰라 결국 이것저것 다 들어 있는, 내용 많은 책을 사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밀가루에도 목적이 있듯 책에도 알맞은 역할이 있다.

자, 그럼 고래에 관한 책들을 보면서 어떻게 책을 ‘잘 볼지’ 생각해 보자. 우선 주제를 ‘고래’로 정했으면 고래에 대한 ‘사실’을 정리한 책을 먼저 봐야 한다. 사람들은 이 단계에서 아이들에게 지나친 친절을 베풀어 고래를 의인화한 이야기라든가 사실이 왜곡된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고래를 제대로 아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초등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에게는 그간 알았던 의인화된 동물이나 식물이 원래 그들의 모습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평생 꿈 속에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이 단계에서 보면 도움이 되는 책은 『고래는 왜 바다로 갔을까』와 나의 작은 라루스백과사전 『고래』 편이다. 『고래는 왜 바다로 갔을까』에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고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지, 고래가 바다에 살기는 하지만 원래는 육지 동물이었다는 이야기, 고래의 특성과 모습 등이 설명되어 있고 사람들이 고래를 잡게 된 이야기와 그래서 고래 수가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글 한 편의 길이가 길지 않아 호흡이 짧은 아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고래 학자가 나오는 뒷부분은 만화로 그려져 있어서 책의 형식이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고래는 왜 바다로 갔을까』표지와 본문

나의 작은 라루스 백과사전 『고래』 편은 고래의 겉모습과 사는 방식에 더 중점을 두어 설명하는 책이다. 실제 고래 사진을 사용하지 않고 그림을 그린 것이 좀 아쉽기는 하나 그림 자체에 틀린 점이 있다거나 크게 무리가 있지는 않으므로 고래에 대한 사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고래에 대한 ‘사실’이 파악되면 이제부터 고래가 등장하는 이야기 책을 본다. 어린이들은 고래에 대한 사실을 바탕으로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의 주제가 빗대어 이야기하거나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까지 더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또 사실에 걸맞지 않은 비유와 논리에 맞지 않는 가르침을 구분해 내기도 할 것이다. 사실에 바탕을 두고 이성적으로 책을 보는 것, 이것이 비판적 안목을 기르는 첫 걸음이다.

『미오와 고래들의 바다』는 고래가 북쪽 바다에서 여름을 보내다 물이 너무 차가워지는 겨울이 되면 남쪽으로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오는 할아버지에게 받은 피리를 들고 혹등고래와 함께 여행을 한다. 철새만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 속 생물들도 지내기 좋은 온도를 따라 움직인다는 이야기, 놀랍게도 지구에서 가장 큰 생물인 고래가 작은 새우를 먹으며 살아 간다는 이야기, 인간이 지구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바다에 사는 생물도 함부로 대하면 안 되고 잘 보호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오와 고래들의 바다』표지와 본문

주인공 미오가 고래와 이야기할 수 있는 피리를 지닌 채 고래와 여행을 한다는 점은 허구이지만 고래의 습성에 대한 것은 사실에 기반을 두었다. 아이들은 이 둘을 훌륭히 구분해 낼 것이다.

자, 이제 고래에 대한 책을 보며 고래를 과학의 대상이 아닌 감수성을 기르는 소재로 이용할 방법을 찾아 보자. 그렇게 하고 싶다면 방법은 단연 고래를 소재로 한 감동적인 책 한 권을 보는 것이다. 내가 고른 책은 『고래들의 노래』.

어린 소녀 릴리는 할머니에게 들은 고래 이야기를 기억하며 꿈 속에서 고래를 만난다. 어디 그뿐인가? 릴리는 그 고래를 진짜 만나기도 한다. 아름다운 그림과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가 이 지구에서 가장 큰 생물인 고래의 아름다움을 감각적으로 알려 주는 데 손색이 없다.

『고래들의 노래』표지와 본문

자, 이런 단계를 거쳐 고래에 대한 책들을 모두 보았다면 이제야 고래에 대해서 좀 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했다고 다 끝났다고 할 수는 없다. 진짜 이 독서가 완성되려면 진짜 고래를 보러 가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가 어디 쉬운가? 고래는 지나가다 볼 수 있는 그런 쉬운 동물이 아니다. 사실 내가 고래 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나의 둘째 아이가 하와이 학교에서 두 달 반 동안 고래에 관해 심화 학습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래를 보기 힘들지만 하와이에서는 겨울이 되면 바닷가를 지나가다가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그곳의 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소재를 주변에서 찾다가 고른 대상이 바로 고래였던 것이다.

『소금아 고마워!』본문 중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소재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갯벌과 염전이다. 얼마 전 나는 『소금아 고마워!』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소금에 대한 ‘사실’을 써 놓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사실 외에는 군말이 한 마디도 없다. 어찌 보면 지루하고 무료할 수 있는 책인데, 그런 책을 재미나게 해 주는 것은 익살스러운 그림이다. 아이들은 이 책을 보고 대뜸 한다는 말이 왜 주인공이 모두 ‘개’냐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과학자, 상인들은 모두 개다. 이 익살스러운 그림은 그냥 농담이나 하려고 그린 것이 아니라 짧게 설명한 내용을 보충하고 설명하려고 그렸다.

이 책에는 소금의 역할, 화학적으로 본 소금, 소금은 어디에서 나는가, 소금의 역사, 소금의 쓰임새 등 실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많은 이야기를 얇은 책 한 권에 밀어 넣자니 설명이 다소 어려운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특히 염전을 설명한 부분은 그 넓은 염전을 작은 그림으로 소화하자니 좀 무리가 따르기도 한다.

그런 아쉬움을 풀어 주는 책이 『소금이 온다』다. 이 책은 염전에서 소금이 나오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보여 주는 책이다. 사실적인 그림이 염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우리 나라 사람이 그린 책이라 등장하는 인물도 모두 동양인의 특징을 지닌 우리들이다. 여러 가지 이유 댈 것 없이 친근한 느낌.

『소금이 온다』표지와 본문

이렇게 소금에 대한 사실을 알고 나면 소금이 나오는 옛이야기, 예를 들면 바닷물이 짜게 된 옛이야기라든가, 소금에 얽힌 허구가 섞인 이야기 책을 읽으면 좋다. 그런 다음 할 일은 정말 염전을 보러 가는 거다. 여기까지 해야 독서가 완성된다.

사람들은 책이 간접 체험의 일부라는 것을 잊는 때가 종종 있다. 지식이 담긴 책은 더욱 그렇다. 책에 있는 내용만 안다고 해서 자연의 모든 모습을 알았다고는 할 수 없다. 관찰과 실험, 체험이 빠진 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책은 아주 작은 부분만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지유/ 대학에서 천문학과 과학 교육을 전공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재미난 과학 글을 쓰려고 천문대, 화산, 박물관, 열대 식물원, 병원 등 안 가는 곳이 없습니다. 늘 디지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필요하다 싶으면 아무 때나 사진을 찍는 바람에 아들, 딸이 아주 괴로워한답니다. 어린이들을 위해 지은 책으로는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와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화산 이야기』가 있고, 초보 부모들을 위해 『그림책 사냥을 떠나자』를 썼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