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통권 제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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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우리나라 그림책 동네의 어제와 오늘

김세희 | 2003년 12월

필자는 그림책에서 느낀 첫 감동을 25년 동안 그림책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 오면서 우리나라 그림책 동네가 양적·질적으로 발전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뻐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그림책 동네란 그림책 작가, 그림책 출판, 그림책 판매 시장, 서평, 그림책에 대한 교육, 그림책 관련 도서 출판, 그림책상 제도, 그림책 관련 단체 등 그림책을 중심으로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는 유형·무형의 장(場)을 말한다.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중반까지 전집으로 판매하는 창작 그림책과 저작권도 없이 외국 그림책의 원작을 훼손시킨 번역 그림책들이 우리나라 그림책 시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전집 그림책이라도 보고 자란 어린이들은 우리나라 어린이 중 소수에 해당하는, 혜택받은 어린이들이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이름의 디즈니 영화 다이제스트 판을 그림책의 대명사인 양 즐겨 보며 자랐다. 그 당시와 비교해 보면 최고의 것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그림책 출판사, 그림책 작가의 현재 모습은 사뭇 다르다.

1980년대 후반에는 소수의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 단행본이 출판되긴 했지만, 1990년대 초 웅진출판사에서 나온 ‘올챙이 그림책’ 시리즈는 단행본 창작 그림책의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즉 시리즈물이었지만 단행본처럼 어린이나 부모들이 골라서 살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고, 당시 디즈니 다이제스트 판보다 싼 2,000원이라는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의 초창기 작품이었다. 그 시리즈에는 현재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 작가 중 대가라고 일컬어지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그러나 작고 동일한 크기로 만들어져야 했기 때문에 그림 작가들은 자신이 그린 원화의 위 아래가 잘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 사지가 잘리는 것과 같은 고통도 감수해야만 했을 것이다. 현재에 와서 그림 작가에게 그런 고통을 또다시 감수하라고 한다면, 그림책 동네의 어느 누구도 그런 상식 밖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그림책 동네가 이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수입한 외국 그림책의 번역본들이 하루에도 몇 권씩 출판되고, 수준 높은 창작 그림책도 드문드문 출판된다. 성인 대상 출판사들이 어린이, 꼬마, 주니어, 소년이라는 단어를 출판사 이름의 앞뒤에 붙이고, 혹은 새 이름으로 어린이 책 출판사를 열고 그림책을 출판하고 있으니, 이면의 이유가 어떻든 그림책의 위치가 상승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런 그림책 동네의 변화를 기쁘게 바라보면서 이 글에서는 그림책을 장르별로 살피는 것을 중심으로 과거의 그림책에서 현재의 그림책이 있기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나아가 양적·질적으로 발전한 그림책이지만, 앞으로 좀더 보충되었으면 하는 부분을 간단히 적어 보기로 하겠다.

장르별 그림책

그림책은 어린이 문학의 모든 장르를 포함하는 특징이 있다. 그림책의 장르는 옛이야기 그림책, 환상 그림책, 사실 그림책, 개념 그림책, 정보 그림책, 운문 그림책으로 나눌 수 있다.

『브레멘 음악대』표지

옛이야기 그림책이란 전래 동화, 신화, 전설, 우화를 소재로 한 그림책이다. 그 동안의 큰 변화는 대부분 시리즈물로 판매되던 옛이야기 그림책이 단행본으로 출판되고 판매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다른 장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옛이야기 그림책의 경우에는 그 현상이 두드러진다. 독일의 그림 형제나 프랑스의 샤를르 페로의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서구 번역 그림책들도 단행본으로 다수 출판되어 있다. 그림 형제의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으로는 『찔레꽃 공주』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비룡소), 『개구리 왕자』 『빨간 모자』 『브레멘 음악대』(시공사) 등이 있고, 샤를르 페로의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으로는 『장화 신은 고양이』(시공사), 『요정의 선물』(물구나무) 등이 있다.

『단군신화』/『요정의 선물』표지
우리나라 옛이야기 그림책으로는 『단군신화』(보림), 『재미네골』(재미마주)이 있고, 『아씨방 일곱 동무』 『신기한 그림족자』(비룡소), 『호랑이 잡은 피리』 『반쪽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보림), 『끝지』(느림보) 등도 있다.

옛이야기의 초현실적인 요소들은 현대 환상 이야기 책의 바탕이 되었다. 같은 맥락으로 옛이야기를 패러디한 그림책은 전통적인 옛이야기의 유형을 바탕으로 하였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도 변하므로, 재미있고 익숙한 옛이야기의 등장 인물이나 플롯은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현대인의 가치관에 맞게 이야기를 변형하고 재창조한 것이 패러디 그림책이다. 예를 들어 옛이야기 속의 수동적인 여성상은 현대인의 여성관에 적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조화롭게 살아 가야 할 미래 사회에서 지향해야 할 가치관도 아니다. 그리하여 여러 외국 그림 작가들은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의 모습을 다룬 옛이야기 패러디 그림책을 제작하였다.

이러한 패러디 그림책은 어린이를 비롯한 어른 독자들에게도 커다란 즐거움을 주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가치관 형성을 도울 수 있다. 서구 패러디 그림책의 예로는 『종이 봉지 공주』(비룡소), 『아기돼지 세 자매』(파랑새어린이) 등이 번역 출판되어 있다. 좀더 많은 패러디 그림책이 번역되었으면 하고, 아울러 우리나라 옛이야기의 패러디 그림책도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장화 쓴 공주님』(느림보)은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패러디 그림책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창작 패러디 그림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장화 쓴 공주님』표지와 본문

환상 그림책은 환상적인 요소가 들어 있는 그림책을 말한다. 서구의 어린이 문학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후 환상이나 공상이야기가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 관점이 우리나라 그림책 동네에도 자리 잡기 시작했고, 부모와 교사들에게도 서서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모리스 센닥, 윌리엄 스타이그, 존 버닝햄, 토미 웅거러, 앤서니 브라운, 데이비드 와이즈너, 크리스 반 올스버그의 번역 환상 그림책은 우리 그림책 동네 사람들의 시각을 바꾸기에 충분한 환상 그림책들이었다. 그리하여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창작 그림책에서도 환상과 공상 그리고 유머로 웃음을 자아내는 그림책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가벼운 웃음으로 끝나 버리는 그림책도 있지만, 웃음 속에 잔잔한 감동을 남기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림책들도 다수 출판되어 있다. 좋은 그림책이란 가치 있는 메시지가 재미난 이야기 속에 스며들어 그림과 글이 감동으로 가슴 속에 남는 책일 것이다.

사실 그림책이란 어린이의 생활 경험을 소재로 한 그림책을 말한다. 눈에 띄는 그 동안의 변화는 자아 정체감, 자아 존중 등 자아 성장에 관한 주제의 창작 그림책이 꾸준히 출판되고 있고, 많은 수의 번역 그림책이 출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우리 문화는 자기 자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신을 감추고 자신을 외부에 맞추어 가는 것을 덕목으로 삼아 왔기 때문에, 어린이 문학 전체를 보더라도 자아 성장에 관한 주제나 소재를 다룬 작품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번역 그림책이나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을 막론하고 부족한 사실 그림책의 소재로는 어린이와 교사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에 관한 것이다. 초등학교 생활을 배경으로 한 그림책은 2~3 권 정도 있으나, 유아 교사와 유아의 관계에 대한 수준 높은 그림책은 찾아 보기 힘들다. 또한 조부모와 손자 혹은 손녀와의 갈등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중 우리 문화에 적합한 그림책이 부족하다. 앞으로 노령층 인구의 증가에 따라 조부모의 존재는 더욱 더 손자, 손녀의 성장 과정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개념 그림책은 글자, 수, 모양, 색 등 간단한 개념을 다룬 그림책으로 주로 어린 유아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다. 외국에서 수입되는 알파벳 그림책을 보면, 그 다양성과 창의성에 놀랄 정도이다. 사물의 첫 음운(예 : apple)과 알파벳(a)을 대응시킨 단순한 형태의 것부터 이야기가 있는 알파벳 그림책, 생활 주변의 사물이나 자연물에서 글자 모양을 찾는 시각적 알파벳 그림책, 알파벳 순서에 맞추어 찾은 형용사 알파벳 그림책, 동사 알파벳 그림책, 창조한 새로운 알파벳으로 된 단어를 소개하는 그림책 등은 어린이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치는 이상으로 창의력과 상상력의 신장과 함께 시각적 즐거움도 제공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그림책 동네의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의 외국 그림책 대가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만든 알파벳 책이 있다는 것이다. 그 대가들이란 모리스 센닥, 크리스 반 올스버그, 부루노 무나리, 데이비드 디아즈, 닥터 수스, 레오 리오니, 아놀드 로벨, 도날드 크루즈, 존 버닝햄,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 등이다. 그리고 그들의 알파벳 그림책은 그림책 대가의 작품답게 창의력이 뛰어나고 훌륭하며, 어린이에 대한 진지한 애정을 충분히 담고 있다.

우리 그림책 작가들은 왜 ‘한글 글자 그림책’에 관심이 없을까? 영어에 비해 한글이 배우기 쉬워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모들이 유아기 때부터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려고 애쓰는 교육열에 비하면 한글 글자 그림책은 그 수효가 턱없이 적다.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들과 기획자들도 한글에 대한 애정과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한글 글자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전해 주기를 바란다.

정보 그림책은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어린이들에게 흥미로운 대상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주는 그림책이다. 정보 그림책의 좋은 예들은 대부분 번역 그림책이다. 현재 여러 출판사에서 한국 창작 정보 그림책의 출판에 애쓰고 있지만, 외국의 우수한 정보 그림책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정보와 이야기를 혼합한 형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나라 창작 정보 그림책이 갖는 어려움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외국 그림책에 흔히 사용되는 예술적인 사진으로 순간을 포착한 정보 그림책이 우리나라에도 출판되었으면 한다.

『자장자장 엄마 품에』/『자장자장 엄마 품에』표지
운문 그림책에서 다룰 수 있는 운문으로는 전래 동요, 창작 동요, 동시가 있다. 운문 그림책의 경우, 영어 문화권과 언어 체계가 다르므로 주로 우리나라 동요와 동시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특이성도 있고, 과거 우리나라 그림책 동네에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장르이다. 1990년대 중반 첫 전래 동요 그림책이 ‘한국어린이육영회’에서 출판되어 나온 후, 전래 동요, 창작 동요, 동시 그림책이 꾸준히 출판되고 있다. 전래 동요 그림책으로는 『하늘이랑 바다랑 도리도리 짝짜꿍』 『우리 할아버지가 꼭 나만 했을 때』(보림)가 있고, 우리나라 자장가를 모은 그림책으로는 『자장 자장 엄마 품에』(한림출판사)가 있다. 창작 동요 그림책으로는 『노래 노래 부르며』(길벗어린이)가 있다. 그리고 특히 동시의 경우에는 동시 모음집이 출판되다가, 최근에는 시 한 수로 만든 수준 있는 운문 그림책이 출판되고 있으나, 다른 장르에 비해 그 수가 극히 적다. 『가을을 만났어요』 『이렇게 자 볼까? 저렇게 자 볼까?』(보림), 『내 동생』(창비)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창의성이 돋보이는 운문 그림책이 많이 출판되었으면 한다.

글을 마치면서

이제 그림책 작가들을 소개하는 수업 시간에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들의 작품들도 유명한 외국 작가들의 그림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의 그림책을 한 사람 당 적게는 3~4권, 많게는 10권 정도 들고 교실로 향하는 두 팔은 무겁지만, 상대적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런 결과는 2~3년 동안 그림책 작가들과 출판사들의 꾸준한 공동작업 덕분일 것이다. 외국 그림책의 번역에만 주력하는 출판사들도 비록 비용과 시간은 많이 들겠지만, 이제 우리나라 그림책 동네도 충분한 역량을 갖추었으므로, 창작 그림책 출판을 위해 노력하여 명실공히 세계적인 그림책 출판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그림책 동네의 모든 분들이 서로 도와 주고 노력한다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세계적인 그림책을 많이 출판하는 그림책 강국이 되리라 믿으며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월간 『열린어린이』의 창간 1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어린이 책 관련 전문지로서 어린이 책 작가, 출판사, 부모와 교사에게 좋은 어린이 책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소개하며, 깊이를 더해 가고 있는 월간 『열린어린이』의 관련자 여러분께 기쁨과 동시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나라 어린이 문학이 날로 발전하는 데, 모든 어린이들이 좋은 책으로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냄으로써 사려 깊고 너그러운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더 알차고 깊이 있는 내용의 월간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전국 곳곳 오지에까지 어린이 책과 함께 월간지를 배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김세희/ 유아 교육을 전공하고 현재 덕성여자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서 아동 문학과 그림책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유아문학교육』 등을 저술하였으며, 그림책『하늘이랑 바다랑 도리도리 짝짜꿍』에 글을 썼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