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2월 통권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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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를 향한 두 날개

김지현 | 2004년 02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문학을 다큐멘터리라고 하지만 실상 그 안에서 글쓴이의 주관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작가의 관점을 한번, 혹은 몇 번이나 통과한 인물과 사건들이 읽는 이에게는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 되어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실제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경우, 어린이들이 느꼈으면 하는 감정이나 교훈이 글에 녹아있을 때가 많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작가의 존재. 그 존재를 좋다 나쁘다 규정 지을 수는 없겠지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목적인 글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려주는 게 목적인 글, 각각의 목적에 따라 글쓰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가장 좋은 다큐멘터리는 가감 없는 사실을 통해 독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글입니다.『하늘의 개척자 라이트 형제』는 바로 그런 다큐멘터리에 속하는 책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작가 ‘러셀 프리드먼’의 자취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어린 시절과 그들의 성장 과정, ‘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후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구와 실험, 라이트 형제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모습만이 명확하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안에서 감동을 얻었다면 그것은 작가가 아닌,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의 역할이었겠죠.

라이트 형제는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비행기였습니다. 어린 시절 선물로 받은 장난감 헬리콥터로부터 시작된 비행기에 대한 관심은 삶의 목적까지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비행기로 인한 돈이나 명예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비행기 자체가 순수한 목적이었지요.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해 연구와 실험, 실패를 반복했습니다. 많은 실패 속에서도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 천직인 양,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일에 몰두하는 라이트 형제의 모습은 우리에게 묵직한 감동을 안겨줍니다.

20세기 초반은 라이트 형제 말고도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독일 기술자 오토 릴리엔탈이 글라이더 비행을 하다 목숨을 잃고, 미 국방부의 지원을 받은 사뮤엘 랭글리 박사의 비행 실험이 실패하는 등 인간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아직 꿈같은 이야기인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실패의 역사도 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의 것이 되고 새로운 발명의 밑거름이 됩니다. 그 성공의 주인공들이 바로 라이트 형제였지요. 윌버와 오빌의 꿈이 현실이 된 순간, 그들은 역사의 새로운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동력 비행기로 하늘을 날아 역사의 전환점을 찍기까지의 과정이 두 사람이 직접 찍은 90여 컷의 사진과 함께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사진에도 관심이 많았던 형제는 비행 실험 모습과 개인적인 생활, 당시의 인물들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그들은 사진을 보며 자신들의 실험을 분석하고 실수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에게 사진은 과학적 실험의 도구였고, 후대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성실하게 노력하는 연구자였던 것을 증명하는 기록이 되었습니다. 형제가 함께 서 있는 사진 한 컷 속에서도 그들 사이에 오갔던 비행기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와 열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찍었던 카메라처럼 작가의 서술은 자세하고 객관적입니다. 라이트 형제가 만들었던 글라이더와 동력 비행기의 모양과 치수, 각각의 부품들이 작동되는 원리, 실험한 기간과 횟수, 비행한 시간과 거리, 비행할 당시의 기상 상태, 비행한 날짜 등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당시의 상황들이 실감나게 그려집니다. 윌버와 오빌의 말을 인용한 문장 속에서는 역사 속에 갇힌 인물이 아닌, 바로 옆에서 부품을 만들고 고치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통해 독자와 인물을 곧장 연결시켜주고, 그 만남 속에서 감동을 얻게 하는 고맙고 유익한 책입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하고 오픈키드 컨텐츠팀에서 즐겁게 어린이책을 읽고 있습니다. 자신이 느꼈던 글이 가진 좋은 힘, 그 힘을 믿으며 자라는 아이들이 이 땅에 많아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