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5월 통권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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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률의 우리 동화 읽기]
낯설고도 익숙한, 멀고도 가까운 땅에서 온 아이

박상률 | 2004년 05월

우리 또래가 아이였던 1960년대 초등 학교 교실에서는 한반도 지도를 그릴 때면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반 전체 아이들 모두 위쪽은 빨강 색을 칠하고 아래쪽은 파랑 색을 칠했다. 위쪽 북한에는 뿔난 ‘빨갱이’들이 사는 곳이라 하여 그런 색깔을 칠한 것이다. 그 때는 북한은 죄다 빨강으로 나타내야 했다.

이러다보니 심지어는 태극기의 한 가운데에 둥글게 그려진 원의 태극 무늬에서도 ‘빨갱이’를 읽어 내는(?) 선생님조차 있었다. 실제로 어떤 선생님이 태극기를 설명할 때 원 안 위쪽의 붉은색은 북한을 뜻하는 것이고 파란색은 남한을 뜻하는 거라고 가르쳐 주어서 우리는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한참 나중에야 둥근 원은 우주를 뜻하고 붉은빛은 ‘양’이고 남빛은 ‘음’이라는 걸 알고 얼마나 어처구니없어 했던지…….

이처럼 북한 그러면 빨강으로 덧씌워진 세월이 벌써 반 세기가 넘었다. 남북 이산 가족 상봉 같은 것을 통해 그쪽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도 사람들은 북쪽의 ‘사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남한 사회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정적을 몰아붙일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빨갱이’라고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도 시대착오적인 정객들은 걸핏하면 이 말을 들먹인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건 오로지 한반도가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어른들이 보는 소설에서는 북한과 관련된 작품이 끊이지 않고 생산되었다. 그러나 어린이 문학에서는 몇 작품 되지 않았다. 물론 1980년대 이전에 오로지 반공 교육을 위해 생산된 소위 ‘반공 동화’ 속에서는 많이 나온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들 대부분이 다룬 소재는 둘째치고라도 아예 문학적으로 논할 만한 가치가 전혀 없을 정도로 조잡하고 도식적이다. 그런데도 일선 학교에선 그런 ‘반공 동화’가 권장되고 독후감 대상이 되었으니, 돌이켜보면 참으로 막막한 시절이었다.

『딱친구 강만기』는 북한에서 살던 일가족이 압록강을 넘어 중국에서 숨어 살다가 마침내 남한으로 와서 살게 된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만기네 가족이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무는 동안 일어나는 일과 남한으로 들어와 살면서 부딪치는 문제로 크게 나뉜다. 작가는 만기가 남한에 들어와 학교 생활에 적응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더 맞춘 듯싶다. 그러나 이야기로서의 긴장감과 완성도는 남한으로 들어오기 전까지가 훨씬 더 높다.

이런 작품은 자칫 ‘기록 문학’(다큐멘터리)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사실적인 내용 자체가 워낙 커서 굳이 문학적으로 꾸미거나 다듬을 필요 없이 그대로 보여 주어도 읽힐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록 문학도 소중하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와 관련 있는 삽화라 해서 사실 그대로 이것저것 주렁주렁 죄다 매달고 있기보다는 가지치기를 하면서 불필요한 것을 걸러 냈을 때 훨씬 더 오래 가는 감동을 자아낼 수 있다. 가지를 쳐 내는 기구는 무엇보다 구성력과 문장력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을 쓴 문선이는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작가이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보면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도 그는 이야기의 장면 전환을 제 때에 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다음 장으로 곧바로 옮겨 놓는다. 어떤 상황에서 필요 이상으로 늘어지거나 작가가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 바로 속도감 있는 구성을 할 줄 안다는 말이다.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 역시 작품의 진행 속도를 빠르게 한다.

다만 이 작품만을 두고 볼 때 아쉬운 점은 뒷부분으로 가면서 조금은 도식적인 틀로 짜여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만기를 이해해 주는 민지가 고맙기는 하지만 애어른 같은 성격이 너무 도드라지는 것이랄지, 민지 할아버지를 북쪽에서 가정을 한 번 꾸렸던 사람으로 해 놓고 만기에게 아버지 재혼 문제에 대해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이랄지, 선생님이 굳이 귀화 식물 운운하는 부분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장치들이 이 작품의 바탕을 기울게 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의욕이 지나칠 정도로 넘치는 걸 엿볼 수 있는 이 작품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작가의 성실성에 있다.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꼼꼼하게 자료를 조사하고 발품을 팔아 취재를 한 흔적들을 보면, 좋은 작가로 남겠구나 싶다.

동화를 쉽게 여기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추억 몇 꼭지를 가지고 평생을 우려먹으려 한다. 그러나 여타 문학 갈래가 다 그렇듯이 동화 문학 역시 추억 몇 개로 꾸려나갈 ‘살림’이 아니다. 끝없이 조사하고 공부하고 부딪쳐야 조금이나마 ‘살림’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이 어떠한 삶의 태도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좋은 동화가 나오기도 하고 좋지 않은 동화가 나오기도 한다. 똑같은 물이라도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듯이 말이다.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상과대학을 다녔습니다. 1990년 『한길문학』에 시 <진도아리랑>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집 『진도아리랑』 『배고픈 웃음 』 등과 소설 『봄바람』 『나는 아름답다 』 『밥이 끓는 시간』, 동화 『바람으로 남은 엄마 』 『까치학교』 『개밥상과 시인 아저씨』 등을 펴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