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5월 통권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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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의 그림책 살펴 보기]
입장 바꿔 생각해 볼까요?

서정숙 | 2004년 05월

여기 저기 상대를 끌어내리려는 비판이 난무한다. 소리 높여 내 입장을 주장하기에 바쁜 세상이다. 이런 시세에 맞춰 “입장 바꿔 생각해 봐”라고 역지사지를 노래하는 가수도 있다. 역지사지는 형편과 처지를 바꾸어 보는 발상의 전환이기도 하고, 내 입장에 가려서 안 보이던 다른 생명의 고통과 눈물까지도 볼 수 있게 해주는 수준 높은 도덕성이기도 하다.

피아제라는 학자는 유아의 사고의 특징을 자아 중심적이라고 하였다. 자기 입장에서 모든 사물과 사상을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아 중심적인 유아는 성장을 하면서, 그리고 사물이나 사람과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탈 자아 중심적이 되어 간다. 그러므로 유아에게 다양한 대상에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신발 밑의 꼬마 개미』는 개미를 밟으려는 아이와 살려 달라는 개미의 대화를 통해 유아에게 타인의 관점을 생각해 보게 하는 그림책이다. 또한 유아가 실제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유아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그림책이다. 전반적으로 유연한 펜 선에 밝은 색의 수채 물감으로 그려져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얼굴을 못 알아보게 눈을 가리고 과자 도둑질을 하는 개미의 의인화된 모습이 매우 익살스럽다.

아이와 개미의 대화: 열린 결말의 미덕

이 그림책은 몸이 크고 힘이 센 아이와 아주 작고 힘이 약한 개미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크고 힘이 센 아이가 과자 부스러기를 가져가고 있는 개미를 밟으려고 하자 작고 힘이 약한 개미는 그냥 가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한다. 그러나 아이는 음식 부스러기나 훔쳐 가는 귀찮고도 하찮은 개미를 밟는 것이 뭐 그리 대수며, 게다가 친구들 간에는 재미있는 놀이 정도로 여기는 개미 밟기가 뭐 그리 잘못된 일이냐고 한다.

그러자 개미는 자기에게도 아이와 마찬가지로 소중한 가족이 있고, 지금 가져가는 과자 부스러기는 개미들에게 중요한 양식이 된다고 하면서 자기를 그냥 보내 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정말 크고 힘이 세다면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스스로 결정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너고 네가 나처럼 쪼끄만 개미라면…… 넌 내가 어떻게 하길 바랄까?’ 하면서 입장 바꿔 생각해 볼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이 그림책은 마지막 장에서, 아이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짐으로써 결말을 열어 두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개미는 밟혀 죽게 될까요,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가게 될까요? 모든 건 아이에게 달렸어요. 자, 우리는 이제 떠나야 해요. 발을 들고 있는 아이와 그 밑에서 떨고 있는 개미를 두고서요. 여러분은 아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크기 대비를 통한 극적 효과

<장면 1>, <장면 2>, <장면 3>은 개미와 아이의 크기 차를 극대화시켜 표현했기 때문에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 이전 장면들과는 다르게 눈 앞 가득 확대되어 다가오는 그림에 의해 놀라게 된다. 그런데 이런 놀라움은 의외성이 주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수평으로 길게 그려진 대부분의 장면들과는 달리 수직으로 길게 그려진 <장면 1>과 <장면 3>은 이야기의 흐름을 매우 극적으로 만들어준다. <장면 3>에서 개미는 말한다. “내가 너고 네가 나처럼 쪼끄만 개미라면…… 넌 내가 어떻게 하길 바랄까?” 갑자기 엄청나게 크게 그려진 개미와 그 앞에서 주눅 들어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이들은 ‘내가 만약 저 아이처럼 작아진다면?’ 하는 생각을 해볼 것이다.
역지사지를 다소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 앞의 내 모습은?

『신발 밑의 꼬마 개미』는 동정심, 타인의 관점에 대한 민감성, 생명의 존귀함, 또래의 압력, 자기 결정, 타협 등 어린이들과 나눌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거리를 담고 있는 그림책이다. 또한 인간과 동물,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등 우리는 각각 다른 이름으로 살아 가고 있지만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되새기게 하는 그림책이다. 혹시 내가 <장면 1>의 그림에서처럼, 양 손을 허리에 얹은 채 위협적인 자세로 아이 앞에 군림하는 부모나 교사는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볼 일이다.
유아에 대한 공부를 통해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그림책에 대한 공부를 통해 삶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유아 교육을 전공하였고, 『Caldecott 메달 도서의 특성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저서로 『부모의 그림책 읽어 주기』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