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5월 통권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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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창작 동화 들여다보기]
끊어진 그물코 깁듯 서로를 다독이는 마음

김은천 | 2004년 05월

바닷가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여느 때처럼 희미해진 바닷가 풍경을 다시 마음에 담는 나들이었다면, 지금 한결 가벼운 마음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장터, 학교, 마을, 집…… 너무 가까이서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만난 아이들의 웅크리고 눈물짓는 모습이 돌아서는 발걸음을 자꾸만 잡아끕니다. 아이들은 수평선 위로 밝고 힘차게 떠오르는 ‘해’와 밤하늘에 유난히 빛나는 ‘별’을 보며, 바다 위 하늘을 나는 ‘물새처럼’ 살겠다고 희망적인 결말을 보여주는데 말입니다.

이 동화집은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바닷가 마을 아이들의 이야기 세 편을 엮은 책입니다. 「물새처럼」에는 엄마를 잃고 아빠는 몇 달씩 고기잡이 나가서 돌볼 사람이 없는 형제가 등장합니다. 한수는 정신 지체 장애로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는 형을 창피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형 때문에 소풍날 놀림감이 된 후 학교에도 가지 않고 방황합니다. 수영 대회에서 실격된 후 몹시 실망하지만, 장터 구석에서 구관조와 함께 자신을 응원하고 있는 형을 보고 진한 형제애를 느낍니다. 「우리들의 바다」는 불법 어업으로 지도선에 걸려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낡은 배를 사서 의욕적으로 일하던 여울이 부모님은 단속에 걸려 당분간 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바다 속 깊은 곳에서 해산물을 따다 병이 나고, 아빠는 술에 취해 배를 바다로 끌고 나갑니다. 절망에 빠진 여울이네 가족은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와 도움으로 조금씩 용기를 냅니다. 「길고 긴 나들이」는 가족을 잃은 외로운 사람들끼리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북한 어부 출신 탈북자 할아버지는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몹시 그리워합니다. 그러던 중 집주인의 아들 한비에게서 같은 반 친구 미진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빠를 잃고 엄마마저 떠난 미진이와 동생을 돌보며 함께 살기로 결심합니다.

사람들 모습이 높은 파도와 거센 바람에 넘어질 듯 위태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바닷가 사람들은 지금껏 사나운 바다와 맞서 왔습니다. 이 책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큰 힘이 ‘서로 돕는 마음’이라고 말해 줍니다. ‘너는 너, 나는 나’, ‘남의 인생에 너무 깊이 개입하는 것도 실례’라는 생각이 이미 깊어진 요즘 세태로 볼 때, 동화 속 인물들의 깊고도 끈끈한 관계는 다소 낯설기까지 합니다. 마을 할아버지는 아이가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잡아끌어 교장 선생님에게 데려갑니다. 선생님 앞에서 무례한 말을 하자 호통치기도 합니다. 이웃 할머니는 값싼 동정이 아니라 내 손자 먹이듯 고기를 먹이고 잔소리도 서슴지 않습니다(「물새처럼」). 여울이네 배가 지도선에 잡혔을 때, 엄마가 물질하다 기절했을 때, 아빠가 배를 끌고 나가 위험한 행동을 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우리들의 바다」). 할아버지가 사라졌을 때는 한비네 식구가 모두 찾아 나섰고, 미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자 선생님과 한비가 찾아갑니다(「길고 긴 나들이」). 요즘 자꾸 높아지는 자살률은 사람들이 서로를 향한 끈을 굳게 잡지 않은 결과일 겁니다. 동화 속 인물들은 삶을 포기할 이유가 훨씬 많아 보이지만, 자신의 일처럼 같이 아파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대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바다」의 할아버지가 가람이네 헌 그물을 수선해서 여울이네 집에 희망을 선물했던 것처럼, 헐겁고 찢어진 그물코를 꿰매는 손길이 절망의 바다에 빠진 이웃을 건져 내는 힘이 됨을 봅니다.

하지만 이웃간의 끈끈한 정이 빛날수록 주인공들의 나약함도 더욱 드러납니다. 부끄러움이나 좌절 앞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회피나 도망, 방황의 행동을 취합니다. 이웃이 내미는 손길, 이웃이 잡아 주는 힘이 없다면 삶의 끈을 놓아 버릴 것 같은 위태함마저 느껴집니다. 불행을 앞에 둔 사람들의 모습이 당연히 그러하겠고, 성장통처럼 한층 성숙하기 위해 거치는 단계라고 볼 수 있지만, 중심 인물들이 자기 삶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축축 처지는 느낌이 듭니다. 「물새처럼」에서는 주인공 한수가 형 때문에 겪는 일상적 불만이 가장 크게 부각됩니다. 그러다보니 한수가 처한 복잡한 상황이나 심리까지 그려내지는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왜 갑자기 수영 대회에서 상을 타고 싶어하는지, 그렇다면 왜 수영 연습에 매진하지 않는지,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 점입니다. 물새, 아침 해, 별 등 바닷가의 자연물들에 기대어 내린 몇 줄의 희망찬 마무리로도 그런 느낌을 만회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막연한 희망 너머 주인공들의 여전한 삶이 너무나 선명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시점은 여러 인물들의 입장이 되어 심리와 행동을 묘사하며 자유롭게 이동합니다. 그런데 인물의 호칭은 주인공의 입장을 따릅니다. 여러 인물들의 주관적인 심리 묘사는 이야기의 일관된 흐름을 때때로 방해합니다. 한 인물 중심이거나 작가 시점의 객관적 전개라면 훨씬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책이 현실을 잘 반영했다고 생각할수록 마음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다음에는 멋진 바닷가 풍경으로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바다만큼 힘찬 바닷가 마을을 다녀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린이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점점 아이가 되어 갑니다. 아이들과 어린 마음을 나누기 바라면서 오픈키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