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5월 통권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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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어린이-동화는 무엇을, 왜, 어떻게 말하는가]
조국, 정치, 경제, 종교, 문화……그 어느 이름으로도 아이들을 울리지 마라

노경실 | 2004년 05월

이른바, 리얼리즘 작가로 알려진 나에게 많은 이들이 묻거나, 따지거나, 머리를 흔든다. ‘요즘 애들이 농촌 이야기나 가난에 찌든 이야기를 읽나요? 지금이 어떤 시댄데…….’ ‘이제 노 선생도 수제비 끓이는 이야기 좀 그만 쓰시고, 조앤 롤링처럼 멋진 팬터지 동화를 써 보시죠. 능력 되잖아요. 언제까지 그 징글징글한 이야기를 애들한테 들려줄 거죠?’ ‘우리 동화 정말 문제 많아요. 그러니까 애들이 외국 책만 보잖아요. 일간지 북 섹션만 보더라도 소개되는 열 권의 책 가운데 번역 책이 보통 아홉 권이나 여덟 권입니다. 이제 우리 작가들도 지지고 볶는 이야기는 그만 멈추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한껏 키워 주는 재미있는 작품을 내야 해요.’

『딸꼬마이』 표지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그들이 나를 잘못 찾아온 것뿐이다. 그렇다고 이 귀한 지면에 내가 ‘왜’ 한국의 조앤 롤링이 되지 않거나, 되지 못하거나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쓰지는 않겠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실이다. 끔찍한 생명의 단절 소식이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귀를 막아도 들려오고 있다. 그 가슴 아픈 일은 도시나 농촌을 가리지 않고, 학자나 무학자도 가리지 않는다. 작년 한 해만이라도 뒤돌아보자. 상반기는 그렇다 치고, 여름 장마와 태풍에 우리의 농가는 목숨 하나만 달랑 건졌다. 컨테이너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이를 악무는데 이번에는 산불이란다. 희망의 불씨마저 태웠던가. 게다가 조류 독감과 광우병이라니. 날개를 퍼득거리는 오리들을 땅 속에 채 던지기도 전에 이번엔 폭설이 내렸다. 지금 이 글을 새우깡이나 담배를 입에 물며 읽고 있는 당신 같으면 어떠하겠는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붓지 않겠는가? 아니면 그마저 힘이 없어 얼굴을 흙바닥에 부벼대지 않겠는가. 이런! ― 또 내가 흥분했는가? 하지만 나는 문학 평론가나 교수가 아니다. 나는 작가이고, 내 식의 글쓰기로 가족이건, 희망이건, 울음이건 이야기해야 한다.

여기 한 작은 여자 아이가 있다. 이제 초등 학교 2학년. 옥례라는 이름 대신 땅꼬마라는 뜻의 ‘딸꼬마이’라는 아이가 있다. 농촌의 한 마을인 가물치골에 사는 가난한 집안의 딸꼬마이. 그러나 딸꼬마이는 학교도 잘 다니고, 밥도 잘 먹고,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 그것은 딸꼬마이에게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 아버지, 엄마, 귀례 언니, 재철이, 재두 오빠, 남동생 재섬이. 게다가 눈망울이 예쁜 송아지도 있다. 그래서 딸꼬마이는 명랑하고, 바랄 것이 없다. 바람이 기분 좋게 불면 연을 날리고, 가끔씩 버스 소리가 들리면 달려 나가고, 눈이 발목까지 쌓인 날이면 산토끼를 잡는다.

그런데 딸꼬마이에게 불행이 시작된다. 살기 위해서 귀례 언니는 중학교에 가지 못한 채 도시로 떠난다. 이것은 그야말로 시작이며, 아귀처럼 달라붙는 슬픔의 첫 비명이다. 그 다음엔 두 오빠가 돈을 위해 집을 떠나고, 옆집 친구네는 그나마 시골 마을에서조차 살 수 없게 되어 황급히 고향을 떠난다. 모두 떠난다. 결국 아버지마저 절망의 그늘에 짓눌려 거리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만나게 되자 딸꼬마이는 앓아 눕는다.

모두들…… 모두들…… 마침내는 온갖 사랑과 소망을 담아 기른 아홉 마리의 소마저 헐값에 남의 품으로 떠나보낸다. 아버지, 형제, 친구, 그리고 소와 송아지마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약속을 ― 꼭 돌아올게, 우리 함께 잘 살자 ― 하며 떠날 때마다 딸꼬마이는 너무도 가슴이 아픈 나머지 열병에 시달리며 가위에 눌린다. 그 가위눌림 속에서 그리운 형제를 만나고, 아버지를 만난다.

흐르는 눈물조차 닦지 못한 채 잠이 든 딸꼬마이는 꿈 속으로 떨어졌다.
하얀 옷을 입은 언니가 보였다.
“언니, 언니. 기다려!”
아무리 악을 쓰고 달려가도 언니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고막원이란 기차역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보따리를 들고 기차를 탔다.
모두 고향을 떠나가는 사람들이었다.
딸꼬마이와 비슷한 수십 명의 아이들이 울면서 달려왔다.
“오빠, 가지마!” “언니, 같이 가아!” “아버지이!”
아이들은 울부짖으며 악을 썼다.
딸꼬마이도 그들 속에 끼어 있었다.
그러나 악마같은 기적 소리는 아이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삼키고야 말았다.

이것은 홀로 남겨진, 버려진, 그래서 혼자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 영원히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가위눌림이며, 반복되는 악몽인 것이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 등 돌려야 하는 사람의 가슴이 그저 서늘해지는 것은 아니다.

“싫어, 오빠! 다 필요 없어. 나만 떼어놓고 도망치려고 그러지. 같이 살아, 오빠야, 응?”
“딸꼬마이야, 오빠는……”
재철이는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몸이 그대로 으깨어지고, 뱃속의 창자가 가닥가닥 뒤틀리며 토막토막 끊어져 나가는 듯싶었다.
“오빠는…… 으응, 말이지…… 서울로 가야만 돼. 그래야 먼 훗날 딸꼬마이랑 모든 식구들이 다 모여서 오순도순 살수가 있어. 꼭 그럴 테니까, 자아, 울지 마. 어서, 동생 깨겠다.”
“거짓말이야, 오빠. 누가 모를 줄 알고. 언니는 부산에 있는데 어떻게 함께 살아, 으응? 그냥 옛날처럼 살자, 오빠아!”
딸꼬마이는 있는 힘을 다해 재철이를 흔들어 댔다. 재철이는 맥없이 흔들렸다. 재철이는 딸꼬마이를 그러안고 머리카락에다 얼굴을 비벼 댔다.

딸꼬마이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다. 그리고 지금은 21세기다. 과거의 가족 해체 현상이 ‘선발전 후안정’이라는 산업화 과정의 산물이었다면, 지금의 가족 붕괴는 사람의 영혼과 정신을 무참히 갉아먹는(아볼라 바이러스 정도되는) ‘물질 만능 숭배 사상’ 바이러스 탓이 아닌가 싶다. 이에 대해 명쾌히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날 학파의 제 3세대 역사가인 조르주 뒤비는 ‘실제로 가족은 위협받는 개인에게 국가의 권위가 약화될 때 찾을 수 있는 첫번째 보호처가 되었다. 그러나 정치 기구가 개인에게 충분한 보장을 허용하자마자, 개인은 가족적 속박을 교묘히 피했고, 혈연 관계는 느슨해졌다. 가계의 역사는 정치 질서가 변하는 리듬에 따라 긴장과 완화를 계속해 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역사 학자인 필립 아리에스는 그의 저서 『아동의 탄생』(L`’enfant et la vie familiale sous l`’Ancien Regime)에서 ‘……그러나 이 가족은 사회성이 위축되는 것에 비례해 확대되었다. 모든 것은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정신적 고독을 피하기 위해, 점차 결점이 드러나고 있던 옛 사회 관계들을 근대적 가족으로 대체하면서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18세기부터 사람들은 끊임없는 교제가 교육, 부, 명성의 근원이 되었던 사회에 대항해 스스로를 방어하기 시작했다. 이후 근본적인 변동이 주인과 하인, 어른과 아이, 친구 혹은 고객들 사이의 옛 관계들을 해체시켰다. (중략) 그리하여 우리는 가족 의식과 사회성은 양립할 수 없으며, 어느 한 쪽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다른 한 쪽이 발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라며 산업화 이후 가족이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해 말했다.

굳이 이런 학자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딸꼬마이에게 가족은 바깥 세상, 어른들의 세상이 어떤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흘러가든 보호처였자 울타리였다. 할머니, 아버지와 엄마, 오빠들과 언니와 남동생. 이들은 딸꼬마이가 작은 키로 힘껏 발돋움해야 조금이나마 더 멀리 보이는 광활한 세상을 존재 자체만으로도 두려움 없이 부딪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었다. 딸꼬마이는 그 존재들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았고, 요구하거나 불만을 품지 않았다.

꼬부랑 할머니와 거친 손의 엄마는 화장 한 번 못해 본 여자(?)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이쁜 닮고픈 여인네들이었고, 아버지의 욱한 성격은 아버지다워 좋았고, 중학교에 못 간 언니는 기 죽지 않고 씩씩해서 의지가 되었고, 영원히 대학생이 못 될 것 같은 두 오빠는 언제나 내 편이라 든든하며 자랑스러웠고, 재섬이 동생은 송아지처럼 귀여워서 사랑스러웠고, 송아지들은 재섬이 동생처럼 예뻤다.

그러나 도시와 공장과 돈은 악마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가족을 불러들였다. 발전이라는 대국민 구호는 아버지와 소를 제물로 삼았다. 그리고 마침내는 딸꼬마이까지 짐을 싸게 했다. 늘 자기를 홀로 놔두고 떠나 버리는 자리에서 심장이 조여오는 아픔을 참아야만 했던 어린 딸꼬마이. 그런데 그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이번엔 역할이 바뀌고 만다.

“누나야, 정말 갈 거야, 부산에?”
옆에 쪼그려 앉아 있던 재섬이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듯이 두 눈을 슴벅거렸다.
“으응, 꼬옥 가야 돼.”
딸꼬마이는 눈물을 닦으면서 언니가 했던 것처럼 재섬이를 달랬다.
재섬이는 더 이상 어리광도 부리지 않았다.
딸꼬마이는 조용히 가물치골을 떠났다.
“개바위야, 잘 있어. 모두…….”
버스에 올라타자 딸꼬마이는 눈을 감았다.
“동백나무야, 재섬아. 누나가 돈 많이 벌어서 올게.”

딸꼬마이는 무슨 이유인지도 모른 채 이 모든 어려움을 겪고도 건강한 가슴을 지닌 채 커 가며, 오히려 세상을 품는 자가 되어 가고 있다며 작가는 마지막을 대신한다.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이제는 꿈 꾸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해야 하는가? 예전만 해도 돈 좀 모으게 되면 언니도, 오빠도, 형도, 누나도, 엄마도, 아버지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가족의 꼴을 갖추어 나갔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네 가족은 빈자리가 너무도 많다. 아니 집이 허물어지고 있고, 형제와의 만남은 쉽지가 않다. 게다가 고통 속에 놓여진 가족은 너무도 쉽게 흔들리고, 흩어지고, 잊혀지고, 심지어는 사라진다. 그래도 우리 작가들은 제 한을 풀 듯, 제 소망을 담듯, 제 억울함을 스스로 치유하듯 이런 식으로 늘 결말을 맺어야 하는가?

‘딸꼬마이는(잠시 이 이름을 이 세상 갖가지 이름의 고통 속에 놓여진 아이들의 보통명사로 본다.) 용기를 잃지 않고 잘 살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딸꼬마이는 자기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인 친구들에게 언제나 웃음을 전해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아이의 집에는 이제 평안의 기운이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밝은 햇살이 눈부시게 비쳐 왔습니다. 딸꼬마이는 다시는 울지 않을 겁니다. 이제 딸꼬마이는 어린애가 아니니까요. 아, 새소리가 들리네요. 우리 모두 새소리를 따라가 볼까요. 그곳에 희망의 씨앗이 있는지 모르니까요…….’ 이런 식으로 마침표를 찍어야만 구원이 있는 문학이고, 우리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며, 어른이라는 우리가 스스로를 덜 자책할 수 있는 면죄부가 되는 것인가? 하지만 그 마침표는 우리들의 무능력과 무자비함의 변명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많은 아이들, 지금도 도시에서건 농촌에서건 아파트에서건 하꼬방에서건……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상처받고, 외로워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라고 말하는 어른들이여!
노경실 / 『중앙일보』(동화)와 『한국일보』(소설)로 등단하였습니다. 출판 일을 하면서 열심히 글을 쓰고, 시시때때로 그림책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권의 장편 소설과 많은 동화책을 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반 고흐와 체 게바라와 로알드 달 그리고 희진이와 현호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