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5월 통권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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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보는 다른 나라 그림책]
현대 팝업 북의 선구자 얀 피엔콥스키

서남희 | 2004년 05월

얀 피엔콥스키
손전등 하나로 재미있는 놀이를 해 보신 적이 있나요? 깜깜한 방에서 거울을 보며 입을 아~ 벌리고 손전등으로 입 속을 비춰 보는 놀이 같은 거요. 그 불빛이 요상스럽게 시퍼렇다면 좀 더 효과가 나지요. 아, 물론 머리를 앞으로 쫘악 내리고 선글래스를 끼고 목 언저리부터 위쪽으로 불빛을 비추면 으스스합니다.

Haunted House 표지
팝업 북을 보면서 소름이 쪼~옥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얀 피엔콥스키(Jan Pienkowski)의 Haunted House (유령 들린 집)를 보면서 알았습니다. 표지는 그 집으로 들어가는 문 모양이지요. 색깔은 녹색 ― 시체가 부패되어 곰팡이와 이끼가 낀 색깔을 드러내는 녹색치고는 매우 밝은 색이군요. 벌레 한 마리 꿈틀거리며 우편함 속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도 벌레를 따라 유령 들린 집에 들어가 한 바퀴 돌아야겠죠?

첫 장을 열면 계단이 나오고, 계단에는 거미 한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지요. 화살표 손잡이를 당기면 벽에 걸린 액자 속에서 여자의 눈과 검은 고양이의 눈이 휙휙 돌아갑니다. 흠~ 흰자위가 많이 보이는 눈은 역시나 무섭군요. 다음 장에서 부엌으로 들어가면 문어가 설거지를 하고 있고, 괴물이 붉은 목젖을 드러내며 입을 벌려 댑니다. 냉장고나 찬장에는 갖가지 기괴한 음식들이 쌓여 있고요.

Haunted House 본문
다음 장은 거실입니다. 오랑우탕이 폭신한 의자에서 긴 팔을 벌리며 몸을 일으키고 검은 고양이는 붉고 노란 불길이 넘실대는 벽난로를 향한 채 뒷모습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와중에 화살표를 당기면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가고요. 욕실도 으스스하긴 마찬가집니다. 화살표를 당기면 욕조에서 악어가 튀어나오고 변기 뚜껑을 열면 검은 고양이가 노란 눈을 빛내며 스윽 올라오는군요. 침실은 신비로운 보랏빛 색조인데, 장롱을 열면 해골이 튀어나오고 침대 벽에서는 유령이 스멀스멀 모습을 보입니다. 마지막 장을 펼치는데 끼끼긱 소리에 소름이 끼쳤지요. 잡동사니가 모여 있는 다락에서 박쥐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는데, 그 밑에 있는 상자에서 톱 하나가 스윽 나오며 그런 기괴한 소리를 내니까요.

이 책을 만든 얀 아저씨는 그림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그림 동네와 아주 가까이 살고, 태어난 재주를 어쩌지 못해 결국 그 길로 나간 사람입니다. 1936년에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는데, 일가 친척 중에 건축가와 예술가가 꽤 있었다네요. 어린 나이에 전쟁 때문에 오스트리아와 독일, 이탈리아를 떠돌다가 1946년에 영국에 정착하게 됩니다. 10살 먹은 소년에게는 영어라는 언어가 이국적으로 느껴져 호기심의 대상이었을까요? 그는 영국살이를 시작하며 경험하게 된 새로운 일 두 가지를 ‘학교와 영어’로 꼽습니다. 떠돌던 아이에게 그 두 가지는 참으로 즐거웠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계속 앞으로, 앞으로……. 런던의 카디너 바간 스쿨을 거쳐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에서 고전과 영어를 공부하지요. 이 때 학부 행사에서 세트와 의상뿐 아니라 포스터까지 만들고 나니 이름이 알려졌다네요.

졸업을 하고 그는 카드를 만드는 회사를 차리고, 광고와 출판일을 하고 BBC의 TV 시리즈인 ‘Watch!’(조심해!)에서 그래픽 작업을 합니다. 그러다가 책의 세계로 뛰어들어 조앤 애이컨의 Kingdom Under the Sea (바다 밑 왕국)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기 위해 실루엣 테크닉으로 그림을 그려 1972년에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받게 되지요.

Haunted House도 1980년에 같은 상을 받습니다. 이 책에서 얀 아저씨는 아주 창의적인 면을 보여 줍니다. 책을 펼칠 때 새로운 모양이 튀어나오는 것(pop-up)은 기본이고, 다이얼을 빙그르르 돌리면 병 속의 색깔이 기괴하게 바뀐다거나(dial-turn), 화살표 방향으로 안내지를 끌어 당기면(pull-out) 문어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거나 하는 장면은 지금은 비슷한 류의 팝업 북이 많이 나와서 으레 그렇거니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매우 새로운 시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현대 팝업 북의 선구라는 찬사를 받지요. 이 책은 CD-Rom으로도 제작되었습니다.

Meg and Mog 표지와 본문

그는 이 책이 자기가 겪은 전쟁의 공포와 대장간의 경험이 모두 녹아 있는 책이라고 말합니다. 대장간이라뇨? 샤갈은 푸주간을 하는 삼촌네 집에 들락날락 거리면서 동물(!)을 구경했다는데 ― 흠, 그래서 샤갈 그림에 소와 말이 그렇게 자주 나오나요? ― 얀 아저씨는 어렸을 때 대장간에 자주 들락거렸다네요. 불구경이란 게 촛불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으로 신비롭지요. 아예 대장간에 출근을 한 어린 얀은 탁탁 튀는 불꽃과 훨훨 타는 불, 그리고 시끌벅적한 소리 및 완벽한 기술에 매혹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유리 공장에 구경을 갔다가 긴 대롱으로 달군 유리 덩어리를 불어 유리병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 온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었지요. 달군 쇠 대신 종이를 오려 붙여 기막힌 디자인을 해 내, 무시무시한 팝업 북을 만들어 재미가 든 얀 아저씨는 그 후 Robot, Dinner Time, Good Night 등 17권의 팝업 북을 만들어 냅니다.

Haunted House을 보면 마치 연극 무대에 갖가지 장치를 해 놓아 조명과 배경이 휙휙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느낌은 팝업의 ‘팝’ 자도 찾을 수 없는 아주 단순한 책인 Meg and Mog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Meg’s Car 표지와 본문

메그는 조그만 마녀입니다. 자정이 되어 부엉이가 세 번 울면 그제서야 잠자리에서 일어나 마녀들끼리 모여 주문을 외는 파티에 나갈 준비를 하지요. 줄무늬 고양이 모그, 부엉이를 데리고 노란 달이 떠 있는 밤에 언덕에 올라 다른 마녀들과 함께 개구리와 거미 등을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요술약을 만드는데, 그만 주문이 잘못되었는지 폭발이 일어나 다른 마녀들이 쥐로 변하는 바람에 모그는 신나게 쥐잡기 놀이를 하게 되지요. 문제는 이 주문이 풀리려면 내년 할로윈 파티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

이 시리즈에서 얀 아저씨는 아주 단순한 선과 색을 즐겨 씁니다. 또 무엇보다도 글 풍선 및 그림 풍선을 이용한 만화적인 표현 덕분에 어린이들은 등장 인물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금방 알아 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Meg’s Car(메그의 자동차)를 보면 메그와 모그, 부엉이가 모두 차에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각자가 다 다른 자동차를 원하고 있다는 게 그림 풍선에 재미나게 드러나 있지요. 또한 메그는 아침을 준비하러 계단을 내려가다가 줄무늬 고양이 모그를 밟게 되는데, 그 부분의 문장도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씌어 있어서 마치 연극 무대에서 대사를 한 마디, 한 마디 하며 동작으로 그 의미를 극대화시키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Meg and MOG (메그와 모그) Meg's Car (메그의 차) Meg's Eggs (메그의 알들)

Frog in a bog Boot and bonnet Lizards and newts
Bat in a hat Rattle and clang 3 Ioud hoots
Snap crackle pot Make me a car Green frogs legs
And fancy that That goes with a bang 3 big eggs



마녀가 가는 길에 주문이 없을 수 없죠. ‘수리수리 마수리’도 ‘리,리,리’로 끝나고, ‘수리, 수리’ 두 번 반복에 모자 하나 얹어 ‘마수리’로 해서 강조가 되는, 주문 중에서는 제일 꼭대기에 있을 만한 재미있는 주문인데, 메그가 외우는 주문은 상황마다 다르답니다. 그런데 그 주문 역시 라임으로 되어 있어 소리내 읽으면 아주 재미납니다.

재미난 주문, 만화적인 표현 방법, 단순한 이야기 구조 등으로 이 시리즈는 인기를 끌어 드디어는 TV 만화 영화 시리즈에 진출하게 되지요. 로저 메인우드가 감독을 맡고, 레이 리플리가 메그의 목소리를, 알랜 베네트가 부엉이를, 필 콘월이 모그의 목소리를 연기한 이 시리즈는 CiTV에서 이미 두 차례 방영되었고, 2004년 9월에 다시 방영될 예정이랍니다.

Meg’s Eggs 표지와 본문

기본적으로 색깔과 모양을 배열하는 데 매우 관심이 많다는 얀 아저씨는 여전히 무대 디자인을 좋아해서 로얄 발레단의 「미녀와 야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테임즈 강을 바라보고 있는 다락방 스튜디오의 벽에는 무엇이 붙어 있을까요? 아래에서 골라 보실래요?

1) 포스터 2) 실제 크기의 미이라 관 사진 3) 설형 문자 4) 개구쟁이 데니스 책 5) 어금니 모양으로 생긴 치과 의사용 거울 6) 모두 다.

참고 사이트
http://www.janpienkowski.com http://www.mumatwork.pwp.blueyonder.co.uk/mumatwork/Expressions_Newsletter1.htm#JAN http://www.virtvic.freeserve.co.uk/
서남희 / 미국 유치원 교육에서 활용하고 있는 ‘꼬마 책(Mini-Books)’을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구성한 『아이와 함께 만드는 꼬마 영어그림책』을 만들었고, 뉴베리 상을 받은 작품 『별을 헤아리며』와 『꿀벌나무』를 번역했습니다. 그림책과 시, 바위산, 걷는 것과 잠자는 것을 아주 좋아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