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5월 통권 제18호
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열린어린이 책 여행
열린 주제 열린 글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열린 주제 열린 글

[우리집 책 이야기]
1+1=5인 고준이네 책 읽기

고은숙 | 2004년 05월

나는 자식이 셋이다. 자식 셋인 것이 무슨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요즘 인삿말을 자주 듣게 된다. 부의 상징이라느니 능력도 좋다느니 이런저런 덕담을 붙여 주는데 영 싫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아이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형편이 그리 넉넉한 것도 아닌데 낳다보니 여덟 살 고준이, 다섯 살 둘째 고현이, 그리고 셋째로는 두 살배기 딸 고윤이를 두게 되었다. 남들은 웃겠지만 삼십하고도 중반을 훌쩍 넘긴 내가 그 동안 한 일 중 아이 셋 낳은 거 빼고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내가 아이들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히 아이 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와 같다. 자식이 여럿이다보니 책을 많이 구입하는 편인데 아깝지가 않다. 아이가 여럿이고 터울이 적당하니 한 권 사면 거의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 큰 아이가 돌무렵부터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글을 깨칠 목적이나 수를 세는 정도의 학습을 고려한 것이 동기였다. 그러나 퇴근 후 여러 권의 책을 목소리 높여 감정 넣어 가며 읽어 준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것도 매일같이 여러 권을 아이가 싫증날 때까지 읽는다는 것은 좋은 엄마 컴플렉스를 지니고 사는 이 땅의 다른 엄마들처럼 여간 힘든 일이 아니나 달리 방법도 없었다. 게다가 둘째와 셋째도 줄줄이 있는 내게 정말 책 읽기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에 가까웠다. 그렇잖아도 기관지가 좋지 않아서 지치도록 책을 읽어 주고 난 어떤 저녁에는 목이 너무 아파 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괜한 화를 내기도 한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시작한 책 읽기가 내겐 고통이니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저런 책들을 기쁜 마음으로 읽어 준다는 다소 계몽적인 부모의 경험담을 접하게 되면 난 화부터 나게 마련이다. 아이들 책 읽어 주기가 나에겐 솔직히 고통이다. 하지만 그림책은 많이 다르다. 책을 읽으면서도 엄마의 손 끝으로 지나가는 글자에 신경써야 하고 다 읽고 나면 내용을 간추려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없애 주기 위해서라도 그림이 많은 책은 여러 가지로 자유로운 책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처럼 책 읽어 주기가 고통인 부모들한테는 글자 적고(글자가 많더라도 그림만으로 즐길 수 있는) 그림책들이 ‘유리’하다.

『만희네 집』 표지와 본문

『만희네 집』은 글자가 조금 있고 그림이 재미있어 아이들보다 내가 좋아하는 책 가운데 하나다. 읽어 주지 않아도 아이들이 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집중해서 보는데 어른인 내가 보아도 시간이 많이 걸려 보게 되는 책이다. 그리고 글을 아는 고준이나 모르는 고현이나 읽어 달라 하지 않고 잘 보는 책 가운데 한 권이다. 말보다 그림 속에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만희네 앞 뜰 화단과 대문 밖 화단의 꽃 이름 맞추기 하다가 하루 저녁을 보낼 수 있고 옥상 텃밭의 채소 이름 맞추기를 하며 하루 저녁을, 빨래 줄에 널린 옷 주인 찾는다고 하루 저녁을, 현관의 신발 주인 찾는다고 하루 저녁을, 그리고 요즘 잘 볼 수 없는 이상한 물건들 ― 목침 모기향 파리채 요강 삼두매 부적 떡판 ― 이야기로 또 하루 저녁을 보낼 수 있다. 실내 조감도로 그려진 마지막 장의 일층 평면도와 지붕층 평면도에선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이야기거리가 많고 다양하다. 앞 장에서 본 할머니 방과 아빠 방 그리고 부엌, 광, 화장실, 현관 등이 두 장의 도면으로 표현되었는데 아이들이 다른 점을 용케 찾아 내어 환호성을 지르는 클라이맥스도 맛본다.

어느 날 만희네 아빠 방의 책꽂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첫째 고준이가 말한다. “엄마, 만희네 집 아빠 방 책은 키가 똑같은 게 엄청 많지? 우리집은 다 다른데. 만희네 집은 부자여서 똑 같은 책을 여러 권 샀나봐. 오늘은 『만희네 집』에서 틀린 그림 찾기 해야지.” 한참 동안 책을 들여다보다가 모자간에 경쟁이 붙는다. “고준아, 내가 찾았어. 2층 아빠 방 창문 밖에 보이는 빨래집게 숫자와 색깔이 뒤에 나오는 평면도와 달라. 너 알고 있었니? 아이구, 또 찾았다. 아빠 방의 책상 옆 책장 위에 빨간 전화기가 있는데 뒤엔 없어. 아빠 방과 옥상으로 나가는 계단실 사이에 문턱이 있는데 뒷장엔 없네. 옥상 난간에 놓인 화분의 꽃과 평면도로 표현된 꽃 모양과 색깔도 다르네. 가마솥 옆의 화단 모양과 장독대로 올라가는 계단의 단수가 다르네.” 이쯤 되면 나의 직업병이 슬슬 살아난다. 어~ 이 작가가 실수했나보네, 도면 표현이 다르잖아!

아마 문법이나 철자가 이렇게 앞뒤에서 불일치했다면 출판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쉬움이 남는다. 앞의 확대된 여러 방들에서 보여 준 것과 한 장에 함축해서 표현한 뒷장의 그림은 얼핏 보면 모르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다른 게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다양한 호기심을 준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매력적인 책이다. 아이들에게 공간 감각을 심어 줄 수 있는 책이기도 하고 스스로 그림을 읽어 내는 힘을 길러 주는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바바빠빠』 표지와 본문

『바바빠빠』 역시 활자보다 그림에 관심이 가는 그림책이다. 만화같기도 한 이 그림책은 첫 장을 펼치는 순간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 그린 책이구나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주로 단면도(물체를 평면으로 자른 것처럼 가정하여 그 내부 구조를 그린 그림)를 그리면서도 입면도(투영법에 따라 입면에 투영된 그림)도 보여 주는데, 지반선을 진하게 표현하고 좌우 레벨 차이가 명확히 표현되어 있어 전체 종횡 단면도를 보는 듯하다. 마지막 장에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붕과 바바빠빠와 프랑수아 가족의 모습을 배치도 기법으로 그렸는데 그 표현이 색다르다. ‘바바빠빠’라는 제목에서 주는 어감이 재미있고 발음하기 쉬우며, 변신하는 바바빠빠의 무용담이 재미있는지 둘째 고현이가 자주 보는 책 중 하나다.

『찔레꽃 울타리』는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력에 감탄이 절로 나는 책 중 한 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책의 은은한 수채화 톤을 좋아하는데 난 조금 다른 면에서 이 책을 좋아한다. 전부 네 권인데 ‘여름 이야기’ 편에 나오는 냇둑의 물방앗간과 치즈 버터 공장 단면도를 보면 입이 쫙 벌어진다. 작가는 건축가이자 대단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임이 틀림없다. 또한 가구 디자이너이고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엔지니어이기도 한 듯하다. 구조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을 듯한 단면 시스템, 그리고 설비며 수직 배관 통로 등, 거기다 은은한 색감이 그림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기까지 한다.

『찔레꽃 울타리』 표지

비록 쥐들의 이야기지만 내가 꿈꾸는 삶을 엿보는 듯하여 읽는 동안 저절로 미소 짓게 하는 그런 책이다. 계절별로 나뉘어 있어 읽는 재미가 남다르고 이 책을 읽을 때면 아이와 함께 차를 마시고 싶어진다. 옛 친구가 생각나고 지난 계절이 떠오르고 가족이 느껴지고 재미있었던 일이 떠오르는…… 그런 여유를 찾게 해 주는 평화로운 책이다.

『이상한 나라의 숫자들』(크라안 부부 지음, 분도출판사, 1977)은 어떤 경위로 내가 갖게 되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내가 가장 아끼는 그림책 중 한 권이다. 앞표지는 찢겨져 없고 너덜너덜한 데다 군데군데 얼룩도 있고 빛이 바래 세월이 느껴지는 책이다. 하나라는 숫자가 혼자 사는 게 싫증나서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를 찾아 길을 나선다. 처음으로 영(0)을 만났지만 시시해서 지나쳐 버린다. 그 후 2부터 9까지 두루 만났지만 친구는 찾지 못하고 지쳐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지치고 실망한 일(1)은 산꼭대기에 앉은 영(0)과 친구가 되어 십(10)을 이룬다. 이에 다른 숫자들이 이들을 보고 친구가 되고 싶어 앞을 다투어 산에 오른다는 이야기다.

영어 원문이 같이 실려 있는데 그림이 독특하고 신기해 글을 모르는 고현이도 좋아하고 고준이는 숫자가 웃기게 생겼다고 좋아한다. 이 책이 묘사해 주는 숫자들 ― 둥글고 땅딸한 영`(0) / 메부리 코의 일`(1) / 백조 같은 이`(2) / 화가 난 삼`(3) / 근엄한 병사 같은 사`(4) / 서커스단의 오`(5) / 나무에 매달려 잠자는 육`(6) / 수도원의 기도하는 칠`(7) / 당근 먹는 팔`(8) / 돈 많고 피둥피둥한 구`(9) / 그리고 함께 이룬 십`(10).

가끔 영어를 모르는 아이들과 어른인 내가 영어 비디오를 함께 볼 때면 아이들은 웃고 또 웃는데 난 아이들이 왜 웃는지 이해할 수 없어 아이들 얼굴을 쳐다볼 때가 있다. 글을 모르는 아이들이 나보다 그림책을 더 온몸으로 느끼며 받아들이는 것을 보게 될 때 느끼는 놀라움도 비슷하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갖가지 책이 넘쳐나는 요즘의 현실 속에서 부족한 어른인 나는 책 읽기가 여전히 무섭고 두렵다.
고은숙 / 건축사가 직업이며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두었습니다. 아이들 책보다는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날을 소망하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늘 정신없는 삶이다보니 빨리 늙어 자유로워지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