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7월 통권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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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창작 동화 들여다보기]
어리석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그들

김지현 | 2004년 07월

‘실다의 똑똑한 사람들’. 이 제목을 보고 ‘도대체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이 나올까?’하는 기대감으로 첫 장을 펼친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음~ 멍청한 사람들의 이야기로군.’ 하며 또 다른 기대감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문학 작품의 제목으로 ‘사람들’ 앞에 ‘똑똑한(사전적 의미의)’이란 수식어를 붙일 정도로 용감한 작가는 아마도 실다 시내에밖에 없을 테니까요. 똑똑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좀 아는 우리 독자들은 완벽하게 똑똑한 사람이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똑똑한 사람인 양 완벽하게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러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바로 실다입니다.

실다 사람들도 처음부터 어리석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할아버지들은 아주 지혜로워서 이웃 나라의 자문 위원으로 여러 해 동안 실다를 떠나 있기도 했습니다. 그게 문제의 발단이었지요. 가장이 없는 동안 자녀들은 버릇만 나빠지고 일꾼들은 일을 내팽개쳤습니다. 실다 전체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들은 돌아와서 새로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내용은…… 바보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 실다에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그런데 정말 지혜로운 할아버지들 맞나요?)

그들의 손자와 증손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바보처럼 행동하며 살아야 하는 게 싫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똑똑한 실다 사람들’이라는 옛날의 명성을 찾고 싶어서 다시 똑똑한 사람들이 되기로 했습니다. 나참, ‘시작!’이란 외침으로 똑똑해질 수 있다면 세상살이 참 쉽게 풀리겠지요. 아무튼 실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이 가장 똑똑하다는 자부심으로 이런 저런 상황에 대처하지만 그 결과들을 보면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산비탈에서 통나무가 저절로 굴러 내린다는 것을 알고는 힘들게 끌어내린 나무들을 다시 꼭대기로 가져가 굴리고는 ‘우리들은 역시 똑똑해’하며 만족해하지요. 그런가하면 시청 안에 빛이 들어오게 한다며 지붕을 뜯어내고, 부자가 되겠다며 소금나무를 심고, 달걀이 썩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멀쩡한 달걀 예순 개를 깨뜨리고, 끝까지 ‘생쥐개’라고 믿었던 고양이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온 도시에 불을 붙이고……. 실다 사람들이 저지른 ‘똑똑한 일’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거예요.

실다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자신은 똑똑하고 언제나 잘 해나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게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지 알게 됩니다. 작가는 독자들을 실컷 웃게 하면서도 풍자와 교훈을 잊지 않고 깔아 두었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의 매력은 전체적인 주제나 교훈보다는 각각의 에피소드 안에 있습니다.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실다 사람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지요. 소 쫓는 사람이 소금밭을 밟아 망가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어깨에 짊어지고 걷는 여섯 명의 장정, 전쟁에 대비해 시청의 종을 호수에 빠뜨리고는 배 난간에 빠뜨린 위치를 표시해 놓은 실다의 시장 등 보통 사람들은 생각도 못할, 아니 안할 일들을 이들은 최선의 방법인 양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닐까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조금 알았다며 그런 어리석은 방법은 상상도 하지 않았던 독자들에게 실다 사람들의 모습은 우스우면서도 한편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 행동의 가치가 어떻든, 결과가 어떻든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그들의 모습은 순수한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실다 사람들을 그저 ‘멍청한 사람들’로 치부하고 비웃는 것에서 끝낼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의 순수함에 있습니다. 실다의 시장이라면 멋진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황제의 말에 미련 없이 직책을 넘긴 헤켈만 시장, 지나가던 나그네의 말조차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고마워하는 실다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심 없고 순진한 모습이라 신선한 느낌마저 줍니다. 어리석지만 악하지는 않기에 무조건 손가락질하고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웃음과 안쓰러움과 약간의 애정이 섞인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물론 그것은 실다 사람들의 능력이라기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꽤 똑똑한 작가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의 역량이겠지요. 웃고 즐기는 사이에 자연스레 인물들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꼬집고, 그러면서도 대상에 대한 동정과 애정을 잃지 않도록 하는 ‘매우 인간적인 풍자’를 자유자재로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하고 오픈키드 컨텐츠팀에서 즐겁게 어린이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힘, 그 힘을 믿으며 자라는 아이들이 이 땅에 많아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