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7월 통권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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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나누어요]
키보다 생각이 먼저 자라는 일기 쓰기

김진영 | 2004년 07월

제 동생 키가 쑥쑥 자라요 ― 『어진이의 농장 일기』

『어진이의 농장 일기』 표지와 본문

『어진이의 농장 일기』는 작가가 식구들과 주말 농장을 하면서 겪은 일을 아들 어진이의 시각에서 일기 형식으로 쓴 동화이다. 처음에 어진이는 컴퓨터 할 시간을 빼앗긴 것에 못마땅해 하지만 씨 뿌리고, 싹이 나서 열매를 거두는 과정을 통해 생명을 키워 내는 고단함과 보람을 알게 된다.

주말 농장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흔히 접할 수 없는 ‘애기똥풀’이나 ‘지줏대 세우기’, ‘고구마 모내기 방법’을 읽으면서 땀의 소중함, 식물을 가꾸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도시의 컴퓨터 대장이었던 어진이가 ‘농부의 마음 상’을 탈 수 있었던 것은 흙과 땀의 귀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진이의 농장 일기』로 독서 토론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씨앗을 선물로 주었다. 아이들은 무척 흥미를 보였다. 특히 쓸 거리 찾기를 어려워하는 저학년 아이들에게 이 책은 둘레의 풀과 나무도 쓸 거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아이들에게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날마다 식물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 일기를 써 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어진이의 일기에 나와 있는 ‘집에서 텃밭 꾸미기’를 열심히 보고 직접 스티로폼 상자를 구해다가 씨를 심었다. 꼭 관찰 일기가 아니어도 씨앗이 흙을 뚫고 나오기까지의 기다림을 쓰는 것은 또 얼마나 생생한 일기거리인가.

“선생님, 저는 열심히 키워서요, 엄마랑 열무 김치 담가 먹을 거예요.”
“저는 상추쌈 싸서 먹을래요.”
“토마토가 열릴 때까지 동생처럼 아끼고 보살필 거예요.”
식물을 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미래가 어떨지 생각해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일기장에도 이름을 붙여 줄래요 ― 『안네의 일기』

『안네의 일기』 표지와 본문
일기 수업을 할 때면 난 꼭 첫날엔 『안네의 일기』를 가지고 갔다.

“오늘부터 일기 수업을 할 거란다.”

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대개 실망스런 눈빛이었다. 그러면 나는 준비해 간 낡은 책 한 권을 책상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눈을 감게 하고, 책장 사이 사이의 냄새를 맡게 했다.

“무슨 냄새가 나지?”
“음, 선생님. 이건 무슨 곰팡이 냄새 같은데요?”
“먼지 냄새요. 그런데 싫지 않아요. 얼마나 오래된 책이에요?”

그러면 나는 말없이 책 뒤에 있는 출판 년도를 보여 주었다. 아이들은 1989년에 인쇄된 것을 확인한 순간 퍽 놀라곤 했다. 누런 색으로 바랜 책 속에 그어진 밑줄과 글귀들을 바라보며 어릴 적 좋아했던 책을 어른이 되어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무척 신기해했다.

안네
“이 책은 선생님이 5학년 때 어머님이 생일 선물로 사 주신 거야. 그 이후로 언제나 안네는 선생님 친구였단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일기를 썼다니 정말 놀랍지? 그래서 선생님도 안네에게 편지를 쓰듯 그 날의 일들을 이야기했어. 그러면 일기 쓰기도 재미있었어. 선생님은 너희들도 일기 쓰기를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일기도 친구라고 생각해 봐.”

글 쓰기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한 남자 아이가 『안네의 일기』는 재미없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읽어 보고, 안네에게 편지 형식으로 독서 감상글을 쓰고 싶다고 해서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무엇이든 흥미를 가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특히 고학년 아이들은 일기를 형식적으로 쓸 수 있다. 일기가 별 것 없는 일상을 나열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은신처에서 바깥 세상을 그리며 꿈과 사랑, 세상에 대한 생각을 적어 나갔던 안네의 이야기는 일기가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위대한 문학 작품임을 알려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열쇠 달린 일기장이 필요해요 ― 『비밀 일기』

“제 일기는 재미없는데 에이드리안 일기는 너무 재미있어요.”
“이렇게 똑똑한 남자애가 있다면 한 번 사귀어 보고 싶어요.”

『비밀 일기』1, 2 표지
여기, 인생에 대해 냉소적인 편이지만 한편으론 우스꽝스럽고 순수한 구석이 돋보이는 에이드리안 몰이라는 소년이 있다. 자신이 발견되지 않은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며 아들에게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부모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 에이드리안에게 위안이 되는 사람은 여자 친구 판도라와 89세의 잔소리만 해 대는 버트 할아버지뿐이다. 에이드리안은 많은 책을 읽고 방송국에 자신이 쓴 시도 보내며 장래에 수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엉뚱한 소년이다.

이 책은 6학년이나 중학생들에게 적합한 편이다. 성에 눈을 뜬 사춘기 아이들에게 여자 친구 판도라와의 사랑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이런저런 사건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 여드름쟁이 영국 소년의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는 쉽게 보지 못했던 매력으로 다가온다.

『비밀 일기』 본문
중학생 여자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열쇠 달린 일기장을 똑같이 사서 나누어 가졌다.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도 모르는 마음 속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털어 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동물 농장』이나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어려운 책들을 읽어 보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초등 학교 6학년 때 이 책을 처음 접하고,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서 내 또래 친구가 일기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다듬어 가는 것이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초등 학교 다닐 때는 일기장을 내밀며 읽어 달라던 아이들이 열쇠 달린 일기장을 가지고 다닐 때 나는 하드 커버의 일기장 표지에 달린 자물쇠를 바라보며 아이들의 목소리를 나직하게 들을 수 있었다.

『비밀 일기』 본문
‘선생님, 이제 우리도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구요!’



각기 다른 세 권의 책으로 일기 쓰기를 살짝 들여다보았다. 일기를 쓰는 것은 하루를 정리하고, 나를 돌아보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일기장은 나의 발자취를 기록한 작은 역사책이기도 하다. 일기 쓰기를 어려워하던 2학년 여자 아이가 일기를 꾸준히 쓰면서 둘레를 살펴본 뒤 찾아 낸 글감은 어른들의 머리로는 따라갈 수 없는 맑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선생님, 구름은 만질 수 없지요?”
“글쎄?”
“구름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선생님은 잘 말린 빨래 냄새가 날 거 같은데? 지금 한 얘기들을 오늘 일기로 써 보는 것은 어떨까?”

쓸 거리를 찾아 내는 능력은 둘레를 응시하고, 사소한 것을 지나치지 않는 힘에서 나온다. 그것은 일기 쓰기를 되풀이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나 역시 비밀 일기장을 만들어 내 속에 가두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토해 내면서 키보다 생각이 먼저 자라고, 그러면서 어른이 되었으니까.

물론 아이들의 푸념이 틀리지 않다. 일상이 날마다 찬란할 수 없으니 쓸 거리 찾아 내기도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쓸 거리를 찾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자란다. 눈을 크게 뜨고, 둘레를 바라보면서 마음 속에 와 닿는 생활 속 이야기들을 일기장에 한 자, 두 자 적어 나가다 보면 일기 속에 자신의 생활을 오롯이 드러내면서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김진영 / 대학에서 문예 창작학을 전공하고, 글쓰기 선생님을 거쳐 지금은 함께교육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글을 쓸 때 영감을 주는 인상파 화가의 그림과 여백이 살아 있는 흑백 사진, 별이 빛나는 밤, 아름답게 일렁이는 한강을 좋아합니다. 올 여름이 지나기 전에 좋은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