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7월 통권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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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보는 다른 나라 그림책]
나도 그림자가 될래, 마샤 브라운

서남희 | 2004년 07월

마샤 브라운
어렸을 때 『서유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삼장법사 따라 천축까지 험난하고 신기한 모험 길을 헤매고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재롱을 떤답시고 언니, 오빠들을 사오정, 저팔계, 삼장법사라고 놀려 대며 까르륵대곤 했는데, 물론 나는……손오공! 그런데 요 손오공은 늘 꾀만 부리고 잘난 척하지만, 결국 늘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맴돌고 있잖아요?!

마샤 브라운의 『옛날에 생쥐 한 마리가 있었는데…』(Once a Mouse…)에는 손오공만도 못한 생쥐가 한 마리 나옵니다. 인도의 한 은자가 크다는 것과 작다는 것에 대해 명상하고 있다가 문득 생쥐 한 마리를 보게 되지요. 까마귀 한 마리가 생쥐를 낚아채려는 순간, 은자는 급히 생쥐를 구하고, 오두막으로 데려와 먹을거리를 주는데, 이번에는 숲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슬슬 다가오지 않겠어요? 쥐에게 위험이 닥친 것을 보고 은자는 쥐를 튼튼한 고양이로 바꿔 놓지요. 하지만 위험은 언제나 꼬리를 물고 닥치는 법. 개가 나타나니 고양이를 개로 바꿔 주고, 배고픈 호랑이가 나타나니, 그 개를 손짓 한 번으로 당당한 호랑이로 바꿔 줍니다. 어? 그런데, 요 호랑이가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아는군요. ‘감추고 싶은 과거는 잊어 줘. 아니, 내 과거를 아는 놈은 없애 주겠어.’ 호랑이는 자기가 원래 생쥐였음을 말하는 놈은 죽여 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기가 막힌 은자는 다시 손짓 한 번에 호랑이를 생쥐로 원위치. 아이구머니, 이 생쥐 그만 창피해서 얼른 숲 속으로 도망질치는군요. ‘아.…… 나의 본성이란 무어란 말인고?’

『옛날에 생쥐 한 마리가 있었는데…』 표지와 본문

목판으로 찍은 그림 한 장 한 장은 작가의 넘치는 아이디어를 아낌없이 보여 줍니다. 까마귀가 막 생쥐를 채려는 순간, 도사가 뛰어가는 누우런 땅은 마치 까마귀가 입을 벌려 쥐를 잡아먹으려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은은히 살아있는 나무 결을 그대로 살려 땅의 굴곡을 매우 잘 드러내고 있답니다. 내가 쥐가 되어 까마귀나 솔개한테 쫓긴다고 상상해 보세요. 게다가 상대방은 위에서 날 내려다보며 쫓아오는데, 나는 기껏해야 땅바닥에서 허겁지겁 살 길을 찾아 도망치고 있다면, 새 그림자가 땅에 깔릴 때, 마치 온 땅이 다 나를 잡으려고 으스스한 손길을 주욱 뻗는 것 같지 않겠어요? 인물의 심리 상태를 땅 그림자로 표현한 장면이 또 있습니다. 생쥐가 고양이로 변하는 장면에서도 힘자랑하며 갈갈이 털을 뻗친 고양이의 모습을 땅 그림자가 더욱 더 강조해 주지요. 호랑이가 된 생쥐가 못된 마음을 먹었다가 다시 생쥐로 되돌아가는 장면도 재미납니다. 작가는 여기서 나무덤불이 호랑이인 듯, 호랑이가 나무 덤불인 듯, 묘하게 무늬를 섞바꾸어 놓거든요.

마샤 브라운은 1918년 뉴욕 로체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경제 공황기에 목사인 아버지에게 제 주장을 펼치기엔 너무 미안스러워서 뉴욕 주립사대(얼바니 소재 뉴욕 주립대학의 전신)에 들어가 영어와 연극을 공부합니다. 이때 학교의 여러 잡지에서 미술 담당 및 공동 편집장 등으로 일했는데, 당시의 학교 출판물에 마샤가 쥐, 사자 등의 여러 동물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스케치들이 남아 있다고 하네요. 또한 전공 수업들은 앞으로 그녀가 작가이자 아티스트로 평생 일하게 되는 데 귀중한 훈련이 되었습니다. 연출법 시간에 자기 자신의 연기를 스스로 감독하고 제작해 보았다고 하니, 그림책 만드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겠지요. 영어 전공 수업 때는 세익스피어와 창작법을 공부하면서 금요일 오후마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노래들과 엘리자베스 시대의 민요들과 영국의 뱃노래들을 부르곤 했다는데, 상상이 가는군요. 오~ 그 발랄한 청춘! 사공의 뱃노래여…….

대학을 졸업하고 삼 년 동안 고등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마샤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그 교사직을 미련 없이 던져 버립니다.

“전 가르치는 게 무척이나 즐거웠어요. 하지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1943년, 그녀는 뉴욕 공립 도서관의 어린이실 사서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여 꼬박 6년 간 일하는 동안 밤에는 우드스톡 회화 학교 등지에서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이 시기에 책을 네 권 내는데, 자기가 살던 소란스런 동네를 생생하게 묘사한 첫 책, The Little Carousel (작은 회전 목마)이 평론가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두 번째 책인 Stone Soup(돌멩이 수프)은 1948년 칼데콧 아너 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Stone Soup 표지와 본문

프랑스의 옛이야기를 그림책으로 꾸민 Stone Soup에서는 어느 가난한 농촌 마을에 나타난 세 병사와, 그 병사들에게 먹을 것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을 사람들 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잔뜩 긴장해서 헐레벌떡 우유도 숨기고 달걀도 숨기고 아무튼 먹을 거라면 꼭꼭 숨겨 놓지요. 그러자 병사들은 꾀를 내서 우리가 돌멩이 수프를 여러분께 대접하겠다고 하지요. 그러면서 큰 솥에 물을 잔뜩 붓고 매끈매끈한 조약돌 세 개를 넣고 젓다가 소금과 후추를 넣어야겠네요, 말하니 돌멩이 수프가 다 되기만을 잔뜩 기다리고 있던 마을 사람 하나가 얼른 집에 가서 소금과 후추를 가져옵니다. 차례 차례 홍당무, 양파, 소고기, 감자, 우유, 보리…… 한 마디씩 꺼낼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얼른 얼른 그걸 가져오지요. 이제 돌멩이 수프는 기막힌 냄새를 풍기고, 병사들과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그 수프를 나누어 먹으며 동네잔치를 벌입니다.

내용이 매우 유쾌하고 선과 색깔이 단순한 이 책은 전체적으로 신나는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색이 도장 찍을 때 쓰는 ‘인주’ 색이어서 좀 맘에 안 드는군요. 이거야 저 개인의 생각이긴 하지만서두…….

마샤는 여행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이탈리아, 하와이, 서인도 제도, 멕시코 할 것 없이 돌아다니고, 중국의 항저우에 있는 쩨지앙 아카데미에서 그림 공부를 한 적도 있는데, 이렇게 세상 구경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민담과 설화를 모으게 되었고, 이것을 그림책으로 꾸며 내는 경우가 많았지요.

이 작가는 목판을 즐겨 쓰고 목판화 전시회를 열 정도로 그 기법을 사랑했지만, 그림책을 만들면서 단 한 권도 같은 기법을 쓴 게 없다고 평가될 만큼 (레오 리오니, 에릭 칼과 엄청난 대조가 되는구만요) 다양한 방법을 실험해 보았답니다. 그 중 하나가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일할 때 발견한 블레즈 상드라르의 산문시 「주술사」의 내용에, 케냐와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여행에서 받은 강렬한 이미지를 담아 낸 『그림자』(Shadow)입니다.

『그림자』 표지와 본문

그림자란 무엇일까요? 내 발끝에 달려 있는, 나의 가짜일까요? 가장 무도회에 온 손님일까요? 작가의 글에 따르면 “프랑스 시인 블레즈 상드라르는…… 모닥불가에서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춤추는 영상” 즉 그림자를 떠올립니다. “이야기꾼의 이야기와 불빛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의 영상 속에는 과거가” 들어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믿음, 과거 속의 혼령들”이요. “우리의 현재는 그렇게 과거를 안고 미래로 뻗어 갑니다.”

이 어려운 그림자를 작가는 어떻게 표현해 내고 있을까요? 바로 실루엣을 이용했지요. 실루엣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림꾼의 실루엣을 통해 그림자는 이야기꾼이 못 다한 생명을 얻고 삶으로 드러납니다.

처음에 작가는 목판화를 통해 이 내용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만 세월의 무게가 가져다 준 관절염 때문에 목판화를 포기하고 대신 종이를 오려 붙이고 물감의 번짐 효과 등을 이용해서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그녀는 코네티컷의 작은 마을에 오랫동안 살며 Cinderella(신데렐라) Dick Whittington and His Cat(딕 휘팅턴과 고양이) Skipper John’s Cook(존 선장의 요리사) Henry - Fisherman(어부 헨리) 등 수많은 책을 내고 칼데콧 메달과 아너 상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이제 그녀는 자기가 그 동안 해 온 자료들을 모두 얼바니 소재 뉴욕 대학에 기증하고 캘리포니아로 이사했습니다. 60여 년이 넘게 어린이 책에 몰두했던 그녀가 남긴 자료는 그곳의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제 작가는 은퇴했을까요? 아니죠. 마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예술가가 은퇴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지금쯤 지팡이에 물감을 묻혀가며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낡은 옷을 벗고 그림자로, 과거를 담은 혼령으로 두둥실 하늘로 떠올라가겠지요.

참고 사이트
http://www.lib.usm.edu/%7Edegrum/html/research/findaids/brownmar.htm
http://www.hbook.com/exhibit/brownbio.html
http://www.albany.edu/feature/marcia_brown/index.html
서남희 / 미국 유치원 교육에서 활용하고 있는 ‘꼬마 책(Mini―Books)’을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구성한 『아이와 함께 만드는 꼬마 영어그림책』을 만들었고, 뉴베리 상을 받은 작품 『별을 헤아리며』와 『꿀벌 나무』를 번역했습니다. 그림책과 시, 바위산, 걷는 것과 잠자는 것을 아주 좋아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