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9월 통권 제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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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옥의 그림 읽기]
행복한 그림 읽기--행복하게 살기

한성옥 | 2004년 09월

이번에는, 작가의 해석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시각적 구조와 흐름을 탐구했던 이전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서술하려 한다.

2001년 6월부터 2002년 3월까지 나는 런던에 있는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서 일했습니다. 교육 개발원과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이 공동으로 주관해 3년 동안 추진한 ‘시각의 길(Visual Paths)’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었지요. 나는 미술관의 작품을 가지고 시내 11개 학교에서 온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 아이들과 함께 작업도 했습니다. 미술관 작품들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을 기초로 책을 한 권 만드는 것이 나의 목적이었지요. 그리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하는 워크숍도 지도했습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내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림놀이를 너무나 훌륭하게 해 낸 아이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하긴 아이들이란 누구나 그림 놀이를 잘 하게 되어 있지요.)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 서문이다. 여기서 작가는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필자가 부러움과 동시에 강한 도전을 느꼈던 것은 그 ‘시각의 길’이라는 3년 간의 프로젝트에 대해서였다. 물론 그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와 목적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작가가 참여한 프로그램의 커리큘럼만으로도 그 내용이 짐작되었다. 무엇보다도 일관성 있게 3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탄탄하고 치밀한 기획력, 담당자들의 미술과 교육에 대한 이해, 아니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겸손한 섬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풍토와 토양이 부러웠다.

6∼7년 전 필자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실리는 계기로 미국에서 출간된 6학년 영어 읽기 교재 Paint This를 읽은 후, 비쥬얼 교육 현장에 있는 필자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듯한 경험을 했다. 그 교재는, 9명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의 14개의 다양한 표현 형식의 일러스트레이션(사실적 표현부터 초현실적 표현, 회화적 표현부터 그래픽 디자인적 표현에 이르기까지)의 시각 정보를 읽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우선 그 내용을 미술 시간이 아닌 영어 읽기 교재에서 다루고, 또 읽고 난 후 체험 학습 커리큘럼에서 실제로 아이들이 각자 좋아하는 이야기를 골라 일러스트레이션해 보는 실감나는 열린 교육 방식도 놀라웠다. 더욱이 필자에게 도전이 되었던 것은 사람과의 상호 교통을 위한, 아이들의 잠재된 시각 언어 인지 능력의 가능성을 충분히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오는 교육 내용이었다. 초등 학교 6학년에서 그런 커리큘럼이 가능한 것은 담당자들이 미술과 미술의 존재 이유 그리고 인간과 미술이 갖는 관계의 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때문이리라. 그 책을 대학 4학년 수업 시간에서 다루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필자의 아이가 초등 학교를 마치고, 2년 간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한 얘기가 있다. 음악과 미술 시간에 ‘감상’이 많다는 거다. 설명을 들어보니, 다양한 내용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함께 나누며, 그 표현 언어로 인해 교통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언어 장르별로 이해시킨다는 것이다. 즉, 감상과 분석과 훈련이다. 다양한 언어에 대한 이해력을 증진시켜 세상에 대해서 보다 넓고 깊게 마음과 눈을 열어 공유, 교통할 수 있도록 그 채널을 늘려 주려는 거다. 교육의 본질과 직선거리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미술 교육을 들먹이는 까닭은, 앤서니 브라운이라는 작가가 있기까지, 그런 교육 토양이 한몫 했으리라는 점에서이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늘 비슷한 이미지들의 등장 인물을 갖고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열린 감각의 결정판이라고 감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문에서처럼, 참여한 프로젝트의 다양한 반응으로 책 한 권을 만들려는 작가의 기획된 의도에, 심지어 작가 스스로 자신의 ‘삶 전체가 완전히 바뀌는 계기가 되어 준 경험’이었다는 고백을 담은 결실이니 오죽하겠는가! 사소해 보이는 소재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앤서니 브라운 식의 용해와 분해 그리고 조합 과정을 거쳐 예측할 수 없는 기지로 늘 우리를 기쁘게 해 주는 얘기쟁이 그가, 이 책에서는 자전적인 이야기로까지 이야기를 끌어올려 설득력까지 포함한 빛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다루기 힘든 부부의 갈등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미화하거나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그만큼 그는 아이들을 믿는다.(그리고 사실 내 경험에 비추어도, 아이들도 웬만한 건 다 알고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 아이들이 보다 더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어디 꼭 미술관에서뿐이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나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행복이 달려 있다. 사실 그것은 아이들의 행복만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다. 이 책에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 독자들은 자유롭게 보고 즐기면 된다. 사실, 이 책은 독특한 표현 양식이 아닌 앤서니 브라운 식의 사실적인 이미지의 조합이다. 다만 무엇을 갖다놓아도 그만의 독특한 소화 효소를 뿜어 내며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앤서니 브라운 식의 ‘행복한 즐기기’가 우리 아이들의 것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미국 FIT와 SVA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였습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다 귀국하여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 작가로 활동합니다. 대표적인 국내 작품으로 『나의 사직동』 『우렁 각시』 『시인과 여우』 『수염 할아버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