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9월 통권 제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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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우리 그림책 들여다보기]
맛있는 곶감이 무섭다는 우스운 호랑이 이야기

김은천 | 2004년 09월

전염병만큼이나 우리 선조들이 두려워했다는 ‘호랑이’. 그런데 옛이야기에서는 호랑이만큼 호되게 당하는 인물이 없지요. 하물며 달고 맛있는 곶감이 무서워 벌벌 떠는 호랑이까지 만들어 냈으니 말입니다. 널리 알려진 옛이야기 「호랑이와 곶감」의 호랑이가 그 주인공입니다. 민화풍 목판화 그림과 간결한 입말체 글로 새롭게 단장하여 나온 그림책 『호랑이와 곶감』의 호랑이는 해학적인 민화 속 호랑이와 비슷한 모습입니다. 겁이 많아 보이는 큰 눈, 삐뚤어진 코, 귀에까지 걸린 커다란 입, 길게 나온 혀……. 생김부터 사람을 위협하거나 해칠 호랑이의 모습은 아닙니다. 마치 분장을 마치고 무대에 선 코미디언 같아서, 그 모습에 먼저 한 번 웃게 됩니다.

눈이 많이 온 겨울, 깊은 산 호랑이도 먹이를 찾지 못해 민가를 찾아갑니다. ‘어흥!’ 한 번 울부짖고 마을로 내려가는 폼이 늠름하기보다는 우스꽝스러워요. 호랑이 탈을 쓴 사람들이 사물놀이 장단에 맞춰 뒤뚱거리며 연기하는 모습이 연상되네요. 탈춤이나 판소리 같은 한바탕 놀이에서도 양반처럼 힘 있는 존재들을 희화화(戱畵化)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현실 세계에서라도 마음껏 조롱하고 화풀이를 하면 통쾌한 마음이 들겠지요. 강한 것의 대명사인 호랑이가 옛이야기에서 약자에게 당하는 역할을 맡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일 겁니다.

화면을 꽉 채우는 큰 덩치의 호랑이가 하는 생각과 행동은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응? 쟤는 내가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지?” “곶감이 누구지? 나보다 더 무서운 놈인가?” 놀란 호랑이의 얼굴 좀 보세요. 눈은 더 커지고, 털은 쭈뼛쭈뼛 선 채로 뒷걸음질칩니다. 독자들은 다 알고 있는데, 힘세고 강한 녀석 혼자서 전혀 무섭지 않은 것에 잔뜩 겁을 먹고 있으니, 마치 내가 골탕을 먹인 듯 신이 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여느 코미디 영화 못지 않은 배꼽 잡는 우당탕탕 사건이 이어집니다. 마침 시커멓고 엄청 큰 손과 발을 가진 소도둑이 오두막에 들었다가 호랑이를 소로 착각하고 덮쳤습니다. 힘 좋은 둘은 산과 들을 밤새도록 달렸지요. 산 속 오두막의 엄마와 아기는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른 채 평온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풍자할 대상이 남아 있군요. 약은 꾀 부리는 토끼가 호랑이에게 잘난 척하려고 소도둑이 숨어 있는 나무 구멍을 엉덩이로 막았어요. 이번에는 소도둑과 토끼의 대결. 토끼의 꼬리가 소도둑에게 잡힌 거죠. 발버둥치다 토끼의 꽁지가 빠지고, 호랑이는 곶감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해 혼비백산 달아납니다.

민화에서 나온 듯한 호랑이가 다채로운 표정과 몸짓으로 이야기를 누빌 수 있도록 조화로운 배경이 되어 준 이 책의 그림 기법은 목판화입니다. 날카롭지 않으면서도 검고 굵은 선들은 힘있고 역동적인 느낌을 줍니다. 우리 산세, 가옥, 사람과 동물 들을 투박하고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그림이 전래동화의 예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굵고 무딘 선으로 놀라고 아프고 공포스러워하는 표정, 뛰어내리고 도망가고 잡아당기는 몸짓이 강렬하게 전달됩니다. 특히 혀를 쭉 빼고 소도둑을 달고 산으로 줄행랑을 치는 호랑이의 모습에서는 만화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습니다. 이 책은 『훨훨 간다』에 이어 옛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다시 펴 내는 ‘옛날옛적에’ 시리즈 두 번째로, 1995년 같은 작가가 만든 작품의 글을 다듬고 새로운 그림을 입혀 만든 것입니다. 위기철 작가의 글은 더욱 간결해지고 입말체를 잘 살렸습니다. 읽다 보면 절로 구연이 될 정도로 감탄사와 의성어·의태어가 많이 사용된 것도 이 그림책의 장점입니다.

이 옛이야기에서는 짐짓 센 척하는 권력자나 현실의 어려운 문제들을 어리석고 우스운 호랑이쯤으로 생각하고 곶감 하나로 벌벌 떨게 할 수 있고, 나쁜 일이 닥치더라도 스스로 물러갈 것이라는 우리 선조들의 낙관적인 태도와 기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곶감 때문에 일어난 소동에 까르르 넘어가며 웃는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넌지시 말해 주세요.

“호랑이처럼 무서운 일이 생겨도 너만의 곶감을 준비하렴. 그러면 호랑이만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오려고 했던 나쁜 소도둑까지 함께 도망가 버릴 거야. 힘세 보이는 일들도 알고 보면 되게 웃기게 생겼고 머리도 아주 나쁘단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린이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점점 아이가 되어 갑니다. 아이들과 어린 마음을 나누기 바라면서 오픈키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