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9월 통권 제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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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었어요]
아이들 가슴 속에 푸르른 숲을

서진석 | 2004년 09월

“아이들에게 자신을 그려 보라고 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몸을 그리느라 종이 한 장을 가득 채웁니다. 하지만 나바호 인디언 아이들은 아주 다르게 그립니다. 자기들 몸은 훨씬 작게 그리고 그 옆에 산, 계곡, 물이 말라 버린 황량한 개울 등을 그려 넣습니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마치 팔다리가 몸의 일부인 것처럼 자신이 주변 환경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자연체험 2』, 조셉 코넬)

지금의 부모 세대만 되어도 어릴 적에 그림을 그리면 맨 먼저 산을 두세 개 그렸다. 그리고 강과 들판을 그렸고, 그 다음 집을 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림의 주제가 항상 비슷하며 단순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크레용을 들면 그렇게 그려 나갔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그림에서는 산과 강과 들이 사라져 버렸다. 새나 동물을 그릴 때 특히 차이가 났다. 내 어릴 적에는 나무와 숲을 먼저 그리고 그 다음에 새와 동물을 그렸는데, 요즘 아이들의 그림에서는 새와 동물은 그려져 있어도 그 ‘배경 그림’은 보통 그냥 여백이다. 동물을 나무와 숲에서 느꼈던 우리 어린 시절과, 동물원이나 책과 비디오를 통해서 동물을 느끼는 요즘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이렇게 큰 차이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아이들의 그림에 산과 강과 들이 돌아와야만 한다. 자연의 배경 없이 사람이나 동물이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존재하는 사람과 동물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한다. 최근 아이들 교육 관련해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자연 도감에서부터 환경 동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의 책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많은 책들이 환경의 중요성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 아래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전달하는 데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간단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장을 넘길 때마다 수많은 생물을 그려 놓고 그 옆에 그 생물의 이름을 적어 놓곤 한다.

물론 자연의 경이로운 세계, 수많은 생태계의 여러 모습, 다양한 생물의 존재 등이 좋은 느낌으로 우선 다가온다. 이러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책에서라도 자세히 안내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인 듯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도감과 비슷한 책은 아이들에게 정보 전달은 잘 할 수 있어도 교감까지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자연 사물의 이름을 알고 식별하는 것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 일이 진정으로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의 여부는, 부모와 아이가 자연 사물을 주제로 어떻게 함께 노느냐에 달려 있다. 이름을 알고 식별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그처럼 가치 없는 목적도 없다. 심지어 생명의 경이와 신비를 단 한번도 느껴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연 사물의 방대한 목록을 작성할 수는 있을 터이니 말이다.”(『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레이첼 카슨)

『오소리네 집 꽃밭』 표지와 본문

정작 중요한 것은 이름보다는 느낌일 것이다. ‘이름’은 ‘느낌’의 토양 위에 자라는 싹일 뿐, 이름이 느낌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또 이름은 아이가 자라서도 얻을 수 있지만, 느낌은 아이가 어렸을 때 얻는 것이야말로 가장 값지다. 따라서 책 또한 아이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책이 좋을 것이다.

느낌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아이들이 생각할 거리를 하나라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오소리네 집 꽃밭』이란 그림책은 그런 점에서 소박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어느 날 회오리바람 때문에 40리나 떨어진 읍내까지 날려간 오소리 아주머니는 학교에 가꾸어진 꽃밭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도취된다. 그래서 산으로 올라오자마자 남편을 졸라 예쁜 꽃밭을 만들자고 한다. 남편 오소리가 괭이질을 시작하려 하면 오소리 아주머니가 화들짝 놀란다. 거기에는 패랭이꽃이 있다, 잔대꽃이 있다, 또 용담꽃이 있지 않느냐 하며 꽃을 피해 괭이질을 하라고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꽃이 없는 곳이 도대체 없다. 그때서야 오소리 아주머니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야말로 일부러 꽃밭을 만들지 않아도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임을 알고 새삼 기뻐한다는 내용이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 주다가 아이들 생각이 궁금하여 학교 꽃밭이 좋은지 오소리 아주머니 집 주변에 피어 있는 꽃밭이 좋은지 물어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서슴없이 오소리 아주머니 산 속 꽃밭을 선택하기를 사실 바랐다. 사실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학교 꽃밭처럼 잘 가꾸어진 것이 익숙하고 보기 좋을 것이다. 이른바 구경에 익숙해지도록 자라왔기 때문이다. ‘가꾸어지고 길들여진 자연’과 ‘원래 그대로의 거친 자연’ 중에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지 아이들과 얘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도도새와 카바리아나무와 스모호 추장』 표지와 본문

『도도새와 카바리아나무와 스모호 추장』은 자연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또 최근 서구 문명이 이러한 자연을 파괴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남아메리카에 사는 도도새는 카바리아 나무에 둥지를 틀고 또 그 열매를 먹고 자란다. 반면 카바리아 나무는 도도새가 그 열매를 먹어 그 배 속을 거쳐 나와야 비로소 씨의 싹을 틔울 수가 있다. 그리고 스모호 추장은 이렇게 자연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하나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4백년 전 나타난 포르투갈의 침략자들은 아름다운 도도새를 잡고 인디오들을 땅에서 몰아 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결국 모두 파괴되고 스모호 추장이 끝까지 지킨 카바리아 나무만 현재까지 살아 남는다.

이 책의 끝 부분에는 스모호 추장이 나무 껍질에 써놓은 글귀가 나온다. 그것은 인디오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이자, 카바리아 나무가 없어지면 지구도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다. 예전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안타깝게도 사라져 버린 자연의 모습을 생각하게 해 준다. 이 책은 아이만이 아니라 부모 역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것이다.

『작은 집 이야기』 표지
『작은 집 이야기』 역시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우리 주변에서 소중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언덕 위의 아름다운 작은 집이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처음 ‘작은 집’은 자연 속에 어울리는 아담한 집이었다. 그러다 문명이 점차 발달하면서 이 ‘작은 집’은 도심 속으로 편입되고, 공해와 바쁜 삶 속에서 점차 찌든 모습이 된다. 결국 ‘작은 집’은 시골로 옮겨져 자연 속에서 안정을 찾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작은 집’을 통해서 은유적으로 도시에서의 삶과 자연 속에서의 삶을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숲을 지킨 아이들』 표지와 본문

『숲을 지킨 아이들』이란 환경 동화도 부모가 아이와 함께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책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 책은 숲을 없애고 그 자리에 고층 빌딩을 지으려는 시장님과 숲을 지키려는 아이들의 힘 겨루기를 다루고 있다.

나무에 해충이 많으면 농약을 뿌리는 방법과 해충을 잡아먹는 새를 부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후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에 보통은 간단하게 농약에 손을 대곤 만다. 환경에 관한 책을 접하게 할 때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정보를 주는 것보다 아이들 마음 속에 느낌이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비록 그것은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한번 자리잡은 느낌은 평생 아이들 가슴 속에 살아 남아 푸르른 잎을 계속 피워 낼 것이다.
서진석 / 1965년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의 부드러운 품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8남매의 따뜻한 정을 받으며 꿈 많은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홉 살, 여섯 살 난 아이 둘을 두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2001년에는 여성부에서 주최하는 제1회 ‘평등부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1998년 6월부터 매달 가족 신문 『종이비행기』를 발행했으며, 수필집 『나에겐 가족이 있다』와 아빠를 돕는 책 『얘들아∼ 아빠랑 놀자』를 냈습니다. 올 가을에는 자연에서 하는 환경 놀이를 주제로 한 책을 펴 낼 계획입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